2017년 1월 30일 월요일

사무엘하 15:1-23 압살롬의 반역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압살롬의 반역
사무엘하 15:1-23

1이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 오십 명을 세우니라 2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서 이르되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3압살롬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4또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5사람이 가까이 와서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잡고 입을 맞추니 6
무릇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압살롬의 행함이 이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 7사 년 만에 압살롬이 왕께 고하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컨대 나로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 8종이 아람 그술에 있을 때에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 하였나이다 9왕이 저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하니 저가 일어나 헤브론으로 가니라 10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부르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11그때에 압살롬에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그 사기를 알지 못하고 아무 뜻 없이 예루살렘에서 저와 함께 갔으며 12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13사자가 다윗에게 와서 고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14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저가 우리를 급히 따라 와서 해하고 칼로 성을 칠까 하노라 15왕의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의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하더라 16왕이 나갈 때에 권속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남겨 두어 궁을 지키게 하니라 17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머무니 18모든 신복이 그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육백 인이 왕의 앞으로 진행하니라 19그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20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날 어찌 너로 우리와 함께 유
리하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21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우리 주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무론 사생하고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22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 종자들과 그와 함께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23온 땅 사람이 대성통곡하며 모든 인민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1. 압살롬이 반역을 꾀함

군사를 준비하고 인심을 도적함

본문 1절에 “이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 오십 명을 세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압살롬이 자기 아버지를 쫓아내고 왕이 되려고 공작을 했습니다. 자기 아버지를 쫓아내고 왕이 되려고 한 것이 얼마나 악하고 패역무도한 일입니까? 또 처음에는 아버지를 쫓아내려고 했지만 그 다음에는 죽이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전배(前陪)는 상관을 인도하는 하인으로 호위병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압살롬이 자기 수하에 호위병 오십
명을 둔 것입니다. 또 말과 병거도 준비하였습니다.

본문 2-4절에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서 이르되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압살롬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또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압살롬이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을 보며 믿는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성문 길 곁에 서서 성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왕께 송사하려고 오면 그 사람을 붙들고 “너는 어디 사람이냐”라고 물어서 주소를 알아놓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연락해서 자기의 사람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압살롬은 다윗 왕에게 송사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왕께서 바로 재판할 사람을 세우지 않으셨기 때문에 네 일이 옳고 바르지만 바른 판결을 받지 못한다. 내가 이 땅의 재판관이 되어 내게로 오는 사람을 재판하게 되면 공의 베풀기를 원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 하셨다’는 것은 네가 재판을 하러 왔지만 네 송사를 바로 해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하노라’는 것은 내가 공의를 베풀어서 네가 옳고 바른 것을 판결해 줄 것이라는 뜻입니다. 

본문 5-6절에 “사람이 가까이 와서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잡고 입을 맞추니 무릇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압살롬의 행함이 이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가까이 와서 압살롬에게 절을 하려고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추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압살롬이 아주 친절하고 다정하게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쏙 빼앗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중에 재판하러 오는 자에게 압살롬이 이와 같이 해서 그들의 마음을 도적하여 자기에게로 다 돌려놓았습니다.
자기 일을 송사하러 왔는데 자기의 일이 옳고 바르다고 하면 누구나 좋아할 것입니다. 압살롬이 사 년 간 이런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사람의 마음을 도적한 것입니다. 하루에 재판을 몇 명씩이나 했겠습니까? 아마 수십 명, 혹은 백 명 이상 했을지도 모릅니다. 매일 이와 같이 했는데, 그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했다고 하면 일 년에 한 십만 명 이상이 될 것입니다. 또 그 사람들이 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각 곳 열두 지파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압살롬이 열두 지파의 각처에 자기 사람을 심어놓은 것입니다. 연락처도 다 만들어 놓고 조직도 했을 것입니다. ‘베들레헴 지방에는 책임자가 누구누구다, 에브라임 지방에는 책임자가 누구누구다’, 이런 식으로 각처에 조직을 해서 한 번 명령을 내리면 각 지방의 책임자가 명령을 전하되 일시에 다 전하도록 해놓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과 병거를 많이 준비하고 자기 앞에 전배 오십 명을 세워놓고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이런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한 몇 년을 해서 계획적으로 나라를 뒤집어엎고 자기가 왕권을 차지하려고 한 것입니다. 

2. 압살롬의 반역

다윗 왕이 압살롬을 내버려둠

본문 7-8절에 “사 년 만에 압살롬이 왕께 고하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컨대 나로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 종이 아람 그술에 있을 때에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 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9절에 “왕이 저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하니 저가 일어나 헤브론으로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어째서 다윗 왕이 이렇게 상황을 모르고 있었습니까?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압살롬이 공작을 사 년 간이나 했습니다. 또 말과 병거를 준비하고 자기 전배 오십 명을 대기시켜놓았습니다. 재판하러 오는 사람을 아침부터 나가서 붙들고 그 마음을 도적질하고 있던 것을 왕은 모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누군가 보고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 왕은 압살롬이 자기의 아들이므로 ‘그래도 괜찮지 않겠느냐, 저가 무슨 일을 하겠느냐, 마음을 도적질하면 무엇을 하겠느냐’라고 여기며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나간 것 같습니다. 다스릴 것은 다스려야 합니다. 잘못 나가는 것은 책망을 하고 단속을 해야 합니다. 다윗 왕이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아무 짓이나 다 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었는데 그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 계략

1) 나팔 소리로 자신이 왕이 되었음을 모든 지파에게 알림

본문 10절에 “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부르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각 지방에 보내었습니다. 그 지방의 책임자들에게 정탐을 보내고 나팔 소리가 나거든 그 소리를 듣고 또 다음 지방에서 나팔을 불고 그 나팔 소리를 듣고 또 다음 지방에서 나팔을 불어 몇 백 리라도 일시에 다 그 소리를 들은 후에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봉화 불을 붙여 서울에서 일어나 일을 먼 지역에까지 알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일시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목포까지, 신의주까지 알릴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것도 나팔 소리가 예루살렘에서 나면 들릴 만한 곳에 또 나팔을 불고 또 멀리로 다시 나팔을 불어 베들레헴에까지 내려가게 한 것입니다. 몇 사람만 나팔을 불면 일시에 계속 내려갈 수가 있습니다. 거기서 또 계속 내려갔을 것입니다. 올라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면 일시에 다 일어서라고 하며 진작에 나팔 부는 사람을 세웠을 것입니다. 전국으로 나팔 소리가 퍼지는 것이 몇 시간이 채 안 걸렸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나팔을 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이 조직을 아주 잘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일시에 나팔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면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고 전국 각지에서 외치는 것입니다. 한 십만 명이 일시에 외치면 전국이 일시에 다 가담할 수 있습니다.

2) 아히도벨을 자신의 모사로 삼음

본문 11-12절에 “그때에 압살롬에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그 사기를 알지 못하고 아무 뜻
없이 예루살렘에서 저와 함께 갔으며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 가운데 한 이백 명은 무슨 사연인지를 모르고 제사 드릴 때에 오라고 청하므로 그저 간 것입니다. 갔다가 지금 이 사람들이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할 때에 아무 데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연을 안 다음 가야겠느냐 안 가야겠느냐를 결정해야 합니다. 무조건 청한다고 가면 안 됩니다. 바로 알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고 하였는데, 아히도벨이 유명한 사람입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은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아주 모략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아히도벨이 안(案)을 낸 것은 그대로 하면 틀림없이 딱딱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다윗의 모사였습니다. 

일을 할 때에 참모를 잘할 사람, 지혜 있는 사람, 그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면 틀림이 없는 사람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참모하는 사람이 아무 데나 다 있는데 참모를 잘못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실패합니다. 가장 지혜롭고 똑바르고 사건을 바로 알고 바로 처리하고 바로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유명한 참모들이 있습니다. 아히도벨도 유명한 참모인데 그 사람의 지혜는 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대로만 하면 틀림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고 한 것을 보니까 그가 자기 고향에 내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히도벨이 다윗의 참모는 참모인데, 다윗과 같이 있지 아니하고 고향에 돌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아마 다윗이 아히도벨의 모략대로 다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가 알기는 잘 알아서 그대로 하면 승리하긴 승리하겠는데 무자비하게 사람을 많이 죽이는, 그러한 모략을 많이 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들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일본과 러시아 전쟁 때, 일본 군대가 러시아를 이겼는데 이 두 나라가 봉천에서 좀 내려가다가 대련, 여순 반도 이공삼이라는 산에서 최후 결전을 했습니다. 산의 이름이 이공삼인 것을 보니까 산의 높이가 이백삼 미터인 것 같습니다. 이백 미터면 얼마 높지 않습니다. 남산이 한 이백 미터 됩니다. 하여간 이백삼 미터가 되는 산에다 러시아 군대가 요새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겹겹이 전기 철망을 두르고 전기를 통하게 해놓았습니다. 거기에 오면 전기에 감전되어 다 죽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거기에 가면 다 죽습니다. 그런데 일본 군대가 어떻게 모략을 만들어 놓았는가 하면 계속 군대를 거기로 몰아가게 한 것입니다. 천 명이 죽든 만 명이 죽든 군대를 거기로 계속 몰아가게 한 것이 일본 군대의 모략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다가 죽으면 또 가고 죽으면 또 가고 죽으면 또 가고 해서 사람 죽은 것이 산더미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전기가 약해졌습니다. 그 바람에 사람 죽은 산더미를 타고 넘어가 러시아 군대를 점령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승리하는 모략이지만 좋은 모략이 아닙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겠습니까? 그때 일본군 대장이 그 전쟁에 이기고 일본에 돌아갈 때 승전 장군으로 못 가고 몰래 갔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을 너무 많이 죽였기 때문입니다. 일본 청년들 몇 십 만을 다 죽였는데 얼굴을 들 수가 있습니까? 자기 아들이 다 나가서 죽었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당시에 누가 모략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전쟁에서 승리를 하긴 했는데 좋은 모략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너무 가혹했습니다.
아히도벨의 모략도 너무 가혹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가 당시에 제일 능력 있는 모략가였습니다. 자기 말대로 다윗이 다 안 따라 섭섭한 마음이 있어서 자기 고향에 가있다가 압살롬이 오라고 하므로 한 패가 되었습니다. 섭섭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그런 종류의 사람과 합합니다. 아히도벨이 섭섭한 마음이 없었으면 압살롬이 오라고 해도 안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군데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제는 일어서자, 왕권을 빼앗자”고 하니까 좋은 기회를 만났다고 같이 간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각처에서 나팔을 불 때에 백성들이 다 일어났습니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고 하니까 많은 백성이 돌아왔다고 하였습니다. 다윗 때에 그렇게 잘해주었는데 그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그만 반대편에 다 가 붙은 것입니다. 그래서 믿을 수 없는 것이 인심(人心)입니다. 많은 백성이 압살롬에게로 돌아갔습니다. 

3. 왕이 압살롬을 피하여 예루살렘을 떠남

다윗 왕이 믿음을 쓰지 않고 두려워함

본문 13-14절에 “사자가 다윗에게 와서 고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저가 우리를 급히 따라 와서 해하고 칼로 성을 칠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다윗 왕이 “두렵건대 빨리 도망하자”고 한 점입니다. 예루살렘 왕국에 수비대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수비대가 있었으면 나가서 싸우라고 했어야 하겠는데 싸우지도 않고 두려워하여 무조건 도망만 치는 것입니다. 아마도 ‘급히 따라와서 해하고 칼로 성을 치지 않겠나’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제 다윗이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다윗을 보면 하나님의 보호가 떠난 것 같습니다. 믿음을 쓰지 못했습니다. 믿음을 썼다면 도망가겠습니까? 

옛날 전쟁할 때 같았으면 가겠습니까?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혼자 나가서 물리친 신앙이 있었다면 도망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려면 오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이긴다’라고 하며 담대하게 나아갔을 것 같습니다. 또 왕궁에 수비대가 있었을 것인데 수비대들을 보고 “힘써 싸워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같이 계신다”라고 해서 이겨야 하는데 다윗이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언제나 믿음이 아닙니다. 두려워할 때는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십니다. 마귀가 와서 계속 두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다윗이 “빨리 가자 칼로 성을 칠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5-16절에 “왕의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의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하더라 왕이 나갈 때에 권속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남겨 두어 궁을 지키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신복들이 왕께 “우리가 나가서 싸우리이다”라고 했어야 하겠는데 “우리 주 왕의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라고 한 것을 보아 피난갈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또 후궁을 남겨두었다고 했는데 후궁이 무슨 궁을 지키겠습니까?

본문 17-18절에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머무니 모든 신복이 그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육백 인이 왕의 앞으로 진행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벧메르학’은 먼 곳, 먼 집이라는 뜻으로, 각주에는 먼 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떨어져 있는 집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까지 간 것입니다. ‘모든 신복이 그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라고 하였는데,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은 블레셋 사람들로 개종하여 다윗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입니다. 본래는 블레셋 사람이었는데 그들이 유대나라로 와서 개종하고 다윗을 오랫동안 따라다녔습니다. 또 ‘가드에서 온 육백 인이 왕의 앞으로 진행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처음 피난 다닐 때에 늘 육백 명을 데리고 다녔는데, 그 사람들이 지금 다윗과 같이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 되기 전부터 육백 명을 데리고 다녔고 그 사람들은 다윗과 생사를 같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따라가고 죽어도 같이 죽을 생각을 가지고
따라가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육백 명이 본래부터 있던 군대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왔다가 대세가 불리하므로 압살롬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본래부터 있던 육백 명과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은 돌아가지 않고 다윗을 따라갔습니다. 

4. 가드 사람 잇대가 왕과 함께 함

본문 19-23절에 “그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날 어찌 너로 우리와 함께 유리하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우리 주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무론 사생하고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 종자들과 그와 함께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온 땅 사람이 대성통곡하며 모든 인민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잇대에게 돌아가라고 하니까 잇대가 “끝까지 무론 생사하고 왕이 계신 곳에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 일행은 기드론 시내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기드론 시내를 먼저 건너가라고 하니까 온 땅 백성이 통곡하면서 기드론 시내를 건넜습니다.
광야로 간 것입니다.

5. 압살롬의 반역 이유

명예욕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바가 있습니다. 어찌해서 압살롬이 아들로서 효도를 해야겠는데 효도는 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내쫓고 자기가 왕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또 내쫓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내쫓았다가 불리하면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압살롬의 명예욕이 이만큼 크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왕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고, 아버지를 내쫓고 죽이려고까지 하면서 왕이 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압살롬이 패역무도한 아들입니다. 효자가 있는가 하면 이런 패역무도한 아들도 있습니다. 명예욕이 이만큼 큽니다. 또 아들을 죽이고 왕이 된 여자도 있는데 아달랴가 그렇습니다. 그 여자가 자기 아들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악한 사람들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명예욕이 이만큼 강하다는 것을 알고 명예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역사를 보면 명예욕 때문에 사람이 많이 죽었습니다. 한국 역사에도 자기가 왕이 되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인, 그러한 일들이 있습니까? 우리는 명예욕이 이와 같이 큰 죄를 짓는
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명예욕을 버려야 합니다.

감정과 보복심

그 다음에 이 일이 왜 생겼습니까? 감정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압살롬이 피난 가서 그술에 삼 년 있을 동안에 왕이 자기를 부르지 않았다고 하는 나쁜 감정 때문에 생겼습니다. 근본적으로 압살롬이 이렇게 된 원인은 암논을 죽인 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왜 죽였습니까? 다말이 강간당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의 아내를 삼았기 때문에 음란죄가 다윗 가정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아들 암논에게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욕으로 말미암은 죄가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합니다. 또 압살롬이 누이 다말이 강간당한 다음부터 암논을 죽이려고 결심했다고 했는데 그 감정, 보복심이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보복심을 품으면 안 됩니다. 보복심을 가지고 나가면 마지막에 사람을 죽이게 되고 사람을 죽이면 자기도 살 수 없게 됩니다.
또 앞서 말한 대로 압살롬이 삼 년 간을 그술에 머물렀을 때 아버지가 자기를 부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감정이 반역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끊어버렸다. 상종도 안 한다. 불러주지도 않는다. 내버렸는가 보다’라며 안 좋은 감정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압이 드고아의 여자를 내세워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데려오게 했는데 그 이후에도 그가 이 년간 다윗 왕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거기서도 감정이 생겼습니다. 삼 년간 자기를 상종 안 한 데에 대한 감정이 생기고 예루살렘에 겨우 왔는데 왔어도 이 년간 왕을 보지 못하게 되므로 또 감정이 생겼습니다. 이렇듯 감정을 품고 있으면 감정은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품지 말라’고 하였습니다(엡4:26). 하룻밤이 지나면 분이 그만큼 커집니다. 해가 지기 전에 다 해결을 하고 지나가야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은 분을 안 내야겠지만 실수해서 분을 낸다고 해도 해가 지기 전, 그 날이 지나가기 전에 다 해결하고 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것을 생각해서 다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감정과 분을 품고 나가면 점점 분이 커집니다. 하루 지나면 그만큼 더 커지고 하루 지나면 또 그만큼 더 커지고 며칠이 지나면 더 커지고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사람을 죽입니다. 분 때문에 사람을 죽입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어서 분이 들어와도 그것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 물리치고 계속 분하고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처음에는 콩알만 하다가 며칠이 지나면 밤알만 해졌다가 또 며칠이 지나면 호박만 해집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면 항아리만 해졌다가 다시 김치 독만 해졌다가 그 다음에는 거기에 치어 죽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것인데 그것을 풀지 못하고 계속 나가면 자기가 망합니다. 풀지 않으면 또 뭘 하겠습니까? 보복한다고 하는데 보복하면 또 뭘 하겠습니까? 암논이 자기 누이를 강간했다고 해서 압살롬이 암논을 죽였는데 죽였으면 또 뭘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를 위해서 기도해주라고 했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러면 숯불을 그 머리에 놓은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감정을 품은 데서부터 압살롬에게 이런 마음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술에 삼 년간 있어도 아버지가 오라고 하지 않고 또 예루살렘에 왔어도 이 년간 자기를 만나주지 않은 데에서 보복하는 마음이 생겨서 왕을 내쫓고 자기가 왕이 될 공작을 한 것 같습니다. 감정을 품는 것이 상당히 큰 것이고 보복하는 마음이 아주 망하는 것입니다. 

물욕, 정욕, 사욕을 버리라

그러나 압살롬의 반역은 근본에서 보면 다윗이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데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 유혹을이겼으면 다윗의 가정에 이런 일이 없을 뻔했습니다. 그러니까 정욕이 점점 커져 온 집안을 망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욕을 이겨야 합니다. 명예욕도 이겨야 합니다. 요셉은 여자 문제에 승리하여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이스라엘 사람을 다 건져내었습니다. 애굽 사람도 건져내었습니다. 정욕 문제를 이기면 요셉과 같이 되고, 지면 다윗이나 삼손과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또 명예욕을 이기면 살 길이 생기고 이기지 못하면 압살롬과 같이 됩니다. 명예욕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물욕을 이겨야 합니다. 물욕을 이기면 화평이 들어오고 물욕을 이기지 못하면 계속 욕심이 욕심을 더하고 또 욕심이 욕심을 더해서 결국 천하를 다 주어도 욕심이 차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 가지 욕심, 즉 물욕, 정욕, 사욕(명예욕)을 버려야 합니다(요일 2:15-16).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가룟 유다는 물욕을 버리지 못하고 나가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었습니다. 선생님을 팔아먹었습니다. 물욕을 이겨야 하고 정욕을 이겨야 하고 사욕을 이겨야 합니다. 이기지 못하면 전부 마귀의 종이 되어 다 망합니다.
이기면 살고 이기지 못하면 죽습니다. 감정을 푸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감정을 푸는 것을 이겨야 합니다. 감정을 가지고 나가면 마지막에는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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