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
사사기 15:4-20
4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을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취하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5홰에 불을 켜고 그것을 불레셋 사람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감람원을 사른지라 6블레셋 사람이 가로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혹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취하여 그 동무 되었던 자에게 준 연고니라 블레셋 사람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비를 불사르니라 7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 하고 8블레셋 사람을 크게 도륙하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거하니라 9이에 블레셋 사람이 올라와서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편만한지라 10유다 사람들이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올라오기는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 11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12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려고 이제
내려왔노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친히 나를 치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라 13그들이 삼손에게 일러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다만 너를 단단히 결박하여 그들의 손에 붙일 뿐이요 우리가 결단코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고 새 줄 둘로 결박하고 바위 틈에서 그를 끌어내니라 14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15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16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 17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18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19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 20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내었더라
사사기 15:4-20
4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을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취하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5홰에 불을 켜고 그것을 불레셋 사람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감람원을 사른지라 6블레셋 사람이 가로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혹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취하여 그 동무 되었던 자에게 준 연고니라 블레셋 사람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비를 불사르니라 7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 하고 8블레셋 사람을 크게 도륙하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거하니라 9이에 블레셋 사람이 올라와서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편만한지라 10유다 사람들이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올라오기는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 11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12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려고 이제
내려왔노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친히 나를 치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라 13그들이 삼손에게 일러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다만 너를 단단히 결박하여 그들의 손에 붙일 뿐이요 우리가 결단코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고 새 줄 둘로 결박하고 바위 틈에서 그를 끌어내니라 14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15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16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 17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18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19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 20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내었더라
1. 삼손의 응징
본문 4-5절에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을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취하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홰에 불을 켜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곡식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감람원을 사른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우도 이용하셨습니다. 삼손이 여우를 이용해서 블레셋 사람을 친 것입니다. 삼백 마리의 여우 꼬리를 서로 매고 가운데 횃불을 달아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곡식밭으로 몰아넣어 아직 베지 못한 곡식과 감람원을 다 살랐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여우와 같은 사람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횃불은 진리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누가복음 12장 49-50절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불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라’고 하였는데,
이 불은 진리를 가리킵니다. 이 횃불 또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횃불을 여우 삼백 마리의 꼬리에 달아 사방의 곡식단에 놓았다고 하였는데, 신령한 뜻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사방에 퍼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 중에도 여우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도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방에 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불은 진리를 가리킵니다. 이 횃불 또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횃불을 여우 삼백 마리의 꼬리에 달아 사방의 곡식단에 놓았다고 하였는데, 신령한 뜻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사방에 퍼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 중에도 여우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도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방에 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블레셋 사람이 가로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혹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취하여 그 동무 되었던 자에게 준 연고니라 블레셋 사람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비를 불사르니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삼손의 아내와 장인을 불살랐습니다. 전에 삼손이 수수께끼 문제를 냈을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남편을 꾀어서 답을 알게 해 주지 않으면 집을 불사르겠다고 위협한 일이 있었습니다. 삼손의 아내는 그것이 무서워서 그 위협을 면해 보려고 삼손을 꾀어 그 답을 알아내고
블레셋 청년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아내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불사름을 당했습니다. 만약에 그때에 수수께끼 답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삼손이 아내를 잃어버리지도 않고 삼손의 장인이나 아내도 불사름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삼손이 양보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더라면 자기도 살고 아내도 살고 장인도 살았을 텐데, 삼손이 믿음을 양보했기 때문에 이렇게 비참한 결과가 온 것입니다.
2.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삼손을 잡으러 감
본문 7-11절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 하고 블레셋 사람을 크게 도륙하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틈에 거하니라 이에 블레셋 사람이 올라와서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편만한지라 유다 사람들이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올라오기는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에 올라와서 레히라는 곳에 진을 쳤습니다. 그곳에 군대가 편만했다고 했습니다.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유다 사람이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라고 하자 그들이 ‘우리가 올라오기는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삼손을 잡으러 갔습니다. 그러나 삼손을 도와주러 갔어야 합니다. 지금 삼손이 하나님의 사사로서 블레셋 나라를 치고 있기 때문에 합심해서 블레셋 사람을 쳐야 하는데, 삼천 명이 삼손을 잡으려고 갔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유다 나라의 사사이며 큰 장사입니다. 나라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보배입니까? 그런데 잡으러 간 것입니다.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왜 삼손을 잡으러 갔습니까? 힘을 합하여 블레셋 나라와 싸워야 하는데 왜 잡아주러 갔습니까? 자기네가 죽겠으니까 잡으러 간 것입니다. 블레셋 나라의 군대가 편만했다고 했는데, 상당히 많은 군대가 온 모양입니다. 몇 십만 명이 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유다 사람들은 고작 삼천 명이 갔기 때문에 싸워도 결국 자기네가 죽겠으니까 ‘삼손을 잡아서 주더라도 우리가 죽지 않아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간 것 같습니다.
본문 7-11절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 하고 블레셋 사람을 크게 도륙하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틈에 거하니라 이에 블레셋 사람이 올라와서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편만한지라 유다 사람들이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올라오기는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에 올라와서 레히라는 곳에 진을 쳤습니다. 그곳에 군대가 편만했다고 했습니다.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유다 사람이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라고 하자 그들이 ‘우리가 올라오기는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삼손을 잡으러 갔습니다. 그러나 삼손을 도와주러 갔어야 합니다. 지금 삼손이 하나님의 사사로서 블레셋 나라를 치고 있기 때문에 합심해서 블레셋 사람을 쳐야 하는데, 삼천 명이 삼손을 잡으려고 갔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유다 나라의 사사이며 큰 장사입니다. 나라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보배입니까? 그런데 잡으러 간 것입니다.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왜 삼손을 잡으러 갔습니까? 힘을 합하여 블레셋 나라와 싸워야 하는데 왜 잡아주러 갔습니까? 자기네가 죽겠으니까 잡으러 간 것입니다. 블레셋 나라의 군대가 편만했다고 했는데, 상당히 많은 군대가 온 모양입니다. 몇 십만 명이 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유다 사람들은 고작 삼천 명이 갔기 때문에 싸워도 결국 자기네가 죽겠으니까 ‘삼손을 잡아서 주더라도 우리가 죽지 않아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간 것 같습니다.
자기가 죽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을 잡아주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유다 사람들이 삼손이 옳은 줄 알고 있고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는 줄도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람인 줄도 알지만 자기들이 죽지 않으려고 삼손을 잡아주려고 간 것입니다. 환난 때에는 자기를
죽인다고 하면 다른 사람을 잡아주기도 합니다. 가룟 유다와 같이 돈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잡아주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죽을까봐 다른 사람을 잡아주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북에서도 교인이 목사를 잡아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집사가 잡아주고 장로가 잡아줍니다. 안 잡아주
면 자기를 죽인다고 하니까 잡아주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지 않으면 안 잡아 줄 수가 없습니다. 죽어도 좋다는 결사 각오로 나가야 하는데 자기가 죽을까봐 잡아주는 것입니다.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자기들이 죽을까봐 삼손을 잡아주고 자기들은 살려고 한 것입니다.
삼손을 잡아 블레셋에게 넘김
본문 12절에 “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려고 이제 내려왔노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친히 나를 치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죽게 생겼으니까 삼손을 잡아서 블레셋 사람에게 붙이겠다며
이기주의, 개인주의로 나갔습니다. 삼손을 도와서 블레셋과 싸울 생각은 안 하고 이렇게 삼손을 잡아 주려고 내려온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려고 이제 내려왔노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친히 나를 치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죽게 생겼으니까 삼손을 잡아서 블레셋 사람에게 붙이겠다며
이기주의, 개인주의로 나갔습니다. 삼손을 도와서 블레셋과 싸울 생각은 안 하고 이렇게 삼손을 잡아 주려고 내려온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그들이 삼손에게 일러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다만 너를 단단히 결박하여 그들의 손에 붙일 뿐이요 우리가 결단코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고 새 줄 둘로 결박하고 바위틈에서 그를 끌어내니라”고 하였습니다. 삼손이 “친히 나를 치지 않겠다고 맹세하라”고하자 유다 사람들이 “치지 않겠다, 죽이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너를 단단히 결박하여 그들의 손에 붙일 뿐이요 우리가 결단코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고 새 밧줄 둘로 결박하고 바위틈에서 그를 끌어내니라’고 하였습니다. 삼손을 블레셋 사람 손에 붙이려고 했습니
다. 또 붙이면 죽을 것을 뻔히 알았습니다. 삼손이 죽어도 자기들만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보호할 생각을 하지 아니한 것은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자기 생명이 우상이 되어서 삼손을 잡아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삼손을 새 밧줄 둘로 결박하여 바위에서 끌
어내어 블레셋 사람 손에 붙이게 되었습니다.
다. 또 붙이면 죽을 것을 뻔히 알았습니다. 삼손이 죽어도 자기들만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보호할 생각을 하지 아니한 것은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자기 생명이 우상이 되어서 삼손을 잡아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삼손을 새 밧줄 둘로 결박하여 바위에서 끌
어내어 블레셋 사람 손에 붙이게 되었습니다.
3. 삼손의 나귀 턱뼈
나귀 턱뼈로 일천 명을 죽임
본문 14절에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고 하였습니다. 삼손이 결박되어 블레셋 사람들 앞에 갔을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매 결박했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손에서 떨어진지라’고 하였습니다. 삼은 불타면 아무 힘이 없습니다. 후루룩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불탄 솜과 같습니다. 삼을 불태우면 짚 태운 것보다 더 약합니다. 삼손을 결박하였던 밧줄이 불탄 삼처럼 되어 다 끊어진
것입니다.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셨습니다. 여호와의 권능이 삼손에게 크게 임하니까 결박하였던 새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떨어져서 풀렸습니다.
본문 15절에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라고 하였습니다. 새 나귀의 턱뼈니까 아주 단단했을 것입니다. 나귀 턱뼈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 일천 명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삼손에게 임했고 삼손의 능력이 나귀 턱뼈
를 통해서 나갔습니다. 나귀 턱뼈라고 해도 삼손의 손에 붙잡히면 이렇게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혔으니 얼마나 큰 능력이 있었겠습니까? 턱뼈가 삼손의 손에 붙잡혔지만 좀 더 들어가 보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것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혔고 나귀의 뼈는 삼손의 손에 붙잡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것입니다. 그래서 일천 명을 쳐죽였습니다.
본문 16절에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죽은 사람들을 한 더미, 두 더미로 쌓았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나귀의 턱뼈로 죽여서 한 더미, 두 더미 시체를 쌓고 일천 명을 죽였다고 노래를 하였
습니다. 나귀의 턱뼈로 맞아 죽은 사람들은 다 블레셋 나라 군인들입니다. 군인들은 무기와 검도 있었을 것이고 창도 있었을 텐데 왜 나귀 턱뼈에 맞아 죽었습니까? 삼손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크게 임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삼손에게 크게 임하니까 삼손을 보기만
해도 질겁했을 것 같습니다. 결박했던 새 밧줄을 끊고 나간 삼손을 보기만 해도 무서웠을 것입니다. 삼손에게 맞으면 죽을까봐 벌벌 떨 때 한 번 치면 죽었을 것입니다. 벌벌 떠는 사람이 어떻게 창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삼손이 나가면 사족을 못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다 이와 같습니다. 아무리 대적이 강해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면 사족을 못 씁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적은 다 망하고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 던지고 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말을 마치고 손에서 나귀 턱뼈를 내어 던졌습니다. 다 죽였으므로 그 곳을 ‘라맛 레히’라고 하였습니다. 라맛 레히는 ‘턱뼈의 언덕(산)’이라는 뜻입니다. 즉, 나귀의 턱뼈로 많은 사람을 죽여서 산더미 같이 쌓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큰 역사가 나타남
본문 20절에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년을 지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삼손이 사사로 이십년 동안 있었는데 사사로 있으면서 블레셋 사람을 많이 쳤습니 다. 나귀 턱뼈라도 하나님 손에 붙들리면 만능이 나타납니다. 많은 구원운동을 하게 되고 대
적을 물리 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발람 선지자가 그릇된 길로 걸어갈 때에도 당나귀를 사용하셔서 책망하셨습니다. 산 당나귀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죽은 당나귀뼈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일, 이스라엘의 구원운동에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이 측량하지 못합니다. 삼손은 무기가 없었습니다. 숨어있던 삼손을 찾아서 밧줄로 결박해 놨는데 무슨 무기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나귀 턱뼈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손에 들고 나가서 일천 명을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나귀 턱뼈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큰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나귀 턱뼈와 같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귀 턱뼈가 삼손의 손에 붙들리지 않으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굴러다니다가 썩어서 없어졌을 텐데 삼손의 손에 붙들렸기 때문에 큰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또 삼손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나귀의 턱뼈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것입니다. 그래서 삼손이 모든 블레셋 사람을 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아무 보잘 것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나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잘 되어 나갑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족하다, 나귀 턱뼈와 같은 자다, 보잘 것 없다’ 이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나귀의 턱뼈와 같은 자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못할것이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일천 명을 쳐버릴 수도 있고 또 몇 천 명을 구원할 수도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 일천 명을 쳐버린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나귀 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원수를 친 것입니다. 원수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나귀 뼈로 인해 이렇게 큰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붙들리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나귀 뼈는 나귀 뼈대로 굴러 돌아다니다가 얼마 후 썩어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붙들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붙들리기만 하면 하나님의 구원운동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원수를 쳐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4. 삼손을 살려주심
구원역사를 위해 삼손을 살리심
본문 18-19절에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 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삼손이 얼마나 목이 마른지 목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정신이 다 혼미해 진 것입니다. 일천명과 많은 시간을 싸웠을 텐데, 심히 목이 말라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여호와께 부르짖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부르짖지 않고는 안 됩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회개하면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 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이 한 우묵한 곳을 터치셔서 샘물이 나오게 만드셨습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였습니다. 샘물을 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샘물을 나게 하셨습니까? 삼손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신 것입니다. 삼손이 죽으면 이스라엘의 구원운동이 중단되기 때문에, 삼손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나게 하신 것입니다. 삼손이 죽으면 이스라엘 구원운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땅의 우묵한 곳을 터트려 샘물이 나오게 하시고 그것을 마시고 살게 하셨습니다. 삼손을 위해서 살리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위해서 살게 만드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죽게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도 죽을 고비에 빠질 때 살려주신 적이 여러 번 있는데, 그것은 자기를 위해서 살라고 살려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위해서 살려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하라고 살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위해 우리를 살려 주신 것입니다. 죽으면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가 나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소생하여 정신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보니 그 전에는 정신이 희미해지고 기력이 쇠해졌었던 모양입니다. 너무 목이 말라 죽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샘물을 터트려내셔서 물을 마시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삼손이 죽으면 이스라엘의 구원운동이 잘 안 됩니다. 누가 삼손을 대체하겠습니까? 유다 사람들은 겁쟁이라 삼천 명이 나가도 블레셋 나라와 싸우지 못하고 자기들이 죽을까봐 삼손을 잡아주었는데, 삼손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삼손을 살리셔서 이스라엘의 구원운동을 해나가려고 하신 것입니다. 특히 삼손 같은 사람이 죽으면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위해서 삼손이 죽으면 안 되기 때문에, 샘물을 터뜨리셔서 삼손이 그 샘물을 마시고 소생하게 하신 것입니다. 정신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운동을 위해 삼손을 이용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기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땅의 우묵한 곳이 터져서 샘물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람이 생각도 못할 일인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운동을 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이와 같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삼손을 살려놓으신 것입니다. 물론 삼손을 먹이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삼손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운동을 위해서 이 우묵한 곳을 터트려 샘물이 나오게 하시고, 삼손의 정신을 회복시켜 소생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고 하였는데, 삼손이 그 샘의 이름을 ‘엔학고레’라 하였습니다. 엔학고레라는 것은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샘물을 터뜨려 주셨다는 뜻으로 엔학고레 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부
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살 길을 열어주셨는데 삼손을 위해서 열어주신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구원운동을 위해 열어주신 것을 우리가 언제나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건져주시는데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라고 건져 주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위해서 건져주시는 줄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해야겠습니다.
구원역사를 위해 사용된 도구는 도구일 뿐
지금도 레히라는 곳에 이 샘이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사마리아 우물, 갈릴리 바다, 나사렛 말구유, 요단강, 시내산 등이 나옵니다. 또 종려나무 칠십 주 있는 엘림에도 샘이 있다고 하였는데(출 15:27), 요새도 가본 사람들이 사막 중간에 종려나무가 여러 주 있다고 합니다. 그
샘도 아마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곳이 있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옛날 갈릴리 바다 그대로 있을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잡았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먹고 사마리아 우물의 물을 길어서 마시고 왔다고 해도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 사마리아 우물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베들레헴의 말구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말구유가 아직까지 있겠습니까? 다 없어지고 다른 것을 만들어 놓고는 베들레헴 말구유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예수님이 부활하신 굴도 있다고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부활하신 굴이 다른 곳이라고 하고 개신교에서는 또 다른 곳에 있다고 하면서 자기네가 서로 옳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큰 것이지 무덤이 큰 것이 아닙니다. 또 요단강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요새는 요단강 물이 말라 발 벗고도 건널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유브라데강이 굉장히 큰 강일것 같지만 발 벗고 건너갈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지라고 하는 곳도 그 당시 한번 이용된 것뿐이지,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삼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이 큰 것이지, 샘이 큰 것이 아닙니다. 그 샘이 아직까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샘이 있어도 보통 샘과 같은 것입니다. 언제나 구원역사에 이용됐다는 것이 큰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용당한 것이 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샘물을 나게 하셔서 삼손을 살려주신 것이 큰 것입니다. 샘은 단지 한 번 쓴 도구입니다. 철사도 한 번 사용하고 내버리듯이, 구원역사를 위해 사용된 것이 큰 것이지 도구는 큰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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