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3일 금요일

레위기 16:1-34 아사셀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아사셀
레위기 16:1-34

1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3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고 숫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4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5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을 위하여 숫염소 둘과 번제물을 위하여 숫양 하나를 취할지니라 6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7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8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9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10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11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12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13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며 14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편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15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16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17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 권속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까지는 누구든지 회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18그는 여호와 앞 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곧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취하여 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19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 20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산 염소를 드리되 21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22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23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고 24거룩한 곳에서 물로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25속죄제 희생의 기름을 단에 불사를 것이요 26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며 27속죄제 수송아지와 속죄제 염소의 피를 성소로 들여다가 속죄하였은즉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밖으로 내어다가 불사를 것이요 28불사른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올지니라 29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30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31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32그 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아비를 대신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제사장은 속죄하되 세마포 옷 곧 성의를 입고 33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며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34이는 너희의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년 일차 속죄할 것이니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1. 대제사장은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야 함

본문 1-2절에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는 당시 장막, 즉 천막이었습니다. 중간을 막아 두 개로 나누어서 첫 번의 것은 성소이고 안의 것은 지성소라고 합니다. 그 지성소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무시로 들어가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다만 일 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일 년에 한번만 들어가야 되고 또 들어갈 때에도 들어가는 순서가 있습니다. 속죄제 피를 가지고 대제사장만 들어가며 일 년에 한 번 밖에 못 들어가도록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은 보통으로는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와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해서 단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제를 드려줄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단번에 우리를 위해서 속죄제물이 되셔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실 것을 상징하므로 지성소에는 아무나 못 들어가고 대제사장이 한 번만 들어가게 했습니다.

본문 3절에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라고 했습니다. 속죄제물의 피를 가지지 않으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우리위해서 피 흘려주시고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서 단번에 우리를 위해
서 속죄 제사를 드려주실 것을 가르칩니다. 

본문 4절에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세마포 옷을 입고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제사장이 물로 몸을 씻고 정결
케 하고 세마포 속옷, 고의, 띠 그리고 관과 모자를 다 갖추고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옷을 입고 들어가지 못하고, 또 화려한 옷을 입고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검소하고 거룩한 제사장의 옷을 입어야만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와서 모든 의를 이루시고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 줄 것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세마포 옷을 입고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고 물로 몸을 씻고 말씀대로 자기를 바로 세우고 검소하고 진실하며 거룩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만 되겠습니다.

본문 5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 제물을 위하여 수염소 둘과 번제물을 위하여 수양 하나를 취할지니라”고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속죄 제물로 수염소 둘과 번제물로 수양 하나를 가지고 갔습니다. 

속죄제의 제물을 드려야 함

1) 자기를 위한 속죄제를 드려야 함

본문 6절에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하는 것이 첫째고, 둘째는 자기 권속을 위해
서 속죄하는 것이고, 셋째는 이제 백성의 죄를 위해서 속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회개하는 것도 자신의 죄를 찾아서 회개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마땅히 멸망 받아야 될 자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
의 피를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죽인 줄 알고 회막문에서 송아지를 잡고 가죽을 벗기고 머리를 자르고 각을 떠서 제사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송아지를 잡고 각을 떠야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제물인데, ‘내가 예수님을 이렇게 죽였다’하는 것을 늘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각을 뜨고 가죽을 벗긴 것처럼,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내가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씌운 줄 알고, 그 구속에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죄를 위해서 먼저 제사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먼저 회개해야 됩니다. 날마다 우리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의 죄를 보지 말고 자신의 죄부터 봐야 됩니다. 자기의 죄를 위해서 속죄제를 드리지 않고 남의 죄만 보는
사람은 이스라엘 밖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쫓겨난 사람인 것입니다. 

2) 자기의 권속들을 위한 속죄제를 드려야 함

둘째는 자기 권속들, 자녀와 가족과 친척들을 위해서 속죄제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권속들을 위해 드리는 회개와, 속죄제, 번제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구속에 적용 시켜서,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바치는 기도를 늘 하여야 되겠습니다.

3) 백성을 위한 속죄제를 드려야 함

세 번 째는 백성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만 위해서 하면 이기주의가 됩니다. 백성의 죄를 위해서 백성의 구원운동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와 자기 가족만 구원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다른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기울여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기도해주고 또 전도하는 데 힘을 쓰고 교회를 세우는 데 모든 협력을 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 교회만 하지 말고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자기 교회 다 해놓고 나서 다른 교회를 세우려면 늙어 죽어도 못 세웁니다. 세상의 일을 다 해놓고 죽은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자기 교회를 다 해 놓으려면 끝이 없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30억을 들여서 기도원을 지었답니다. 교회를 하나 세우는데 1억 원씩 든다면, 교회 30개 세울 수 있는 돈이 그 기도원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도원은 아주 잘 해 놓았답니다. 그 기도원에 갔다 온 사람은 우리 기도원보고 너저분하니 좀 잘 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30억 원을 들여서 만들었으니 번쩍할 것 같습니다. 현대식으로 몇 층 빌딩을 지어 놓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도 전부 호텔같이 해 놓아서 화장실도 수세식이고, 또 더운 물이 콸콸 나올 것 같습니다. 또 풀장도 해 놓았을 것 같고, 금붕어도 길렀을 것 같습니다. 30억 원만 있으면 우리도 잘 할 것 같습니다. 우리 기도원은 3억 원도 못 될 것 같습니다. 그 기도원의 십 분지 일도 못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30억 원짜리 기도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기도하겠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많은 돈을 투자해 놓으면 다른 것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을 먼저 해야 됩니다. 개척교회 세우는 일, 선교사 파송하는 일, 다른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해야 됩니다. 백성들 살리는 일, 교회 세우는 일, 전도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일에 충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2. 아사셀 염소와 속죄제 드릴 염소

백성을 위해 제사 할 두 염소

백성을 위해서 제사하는데 염소 두 마리를 취해서 가져가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7-10절에 “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
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고 했습니다. 먼저 아론은 자기를 위하여 속죄제 수송아지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권속을 위해 속죄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위해서 제사하는 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자기 권속 위해서 속제하는 것이고 셋째는 백성의 죄를 위해서 속죄하는 것입니다. 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한다고 하였습니다. 제비를 뽑는데 하나는 여호와를 위하는 염소로 제비를 뽑고 또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한 제비를 뽑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느 염소가 여호와께 해당이 되는지, 어느 염소가 아사셀을 위하는지 정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며”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도 아사셀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 아사셀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마귀다’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는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는 마귀
에게 바쳤다고 해서, 하나님과 마귀를 겸하여 섬겼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또 그 양 이름이 아사셀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아사셀은 ‘보냄 받은 염소’라는 뜻인데 ‘보내는 양이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아사셀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가 있어서 레위기 중에서 제일 난해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아사셀에게 보낸 것을 보면 양 이름은 아니고, 또 보냄을 받았다는 의미의 ‘보낸 양’이라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사셀을 위하여 보냈다고 했으니까, 마귀라고 하면 문맥상으로는 맞는 듯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마귀에게 양을 보낸다는 것이 또 안 맞습니다. 마귀에게 제물을 보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 전체에 안 맞습니다. 그러면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고 아사셀을 위하여 보낸 것은, 무엇을 보낸 것입니까? 누구한테 보냈습니까? 여러 책을 많이 봤어도 같은 해석들 입니다. 

제 생각에는 ‘하나님의 공의에게다가 보냈다’고 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한 염소는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는 하나님의 공의에게, 즉, 예수님의 피를 하나님의 공의에 주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셨습니다. 누구에게 예수님의
피를 주고 샀습니까? 어떤 목사는 마귀에게 예수님의 피를 주고 샀다고 했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피를 마귀에게다가 주고 샀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래서 그 교회 어떤 장로가 반박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공법에다 예수님의 피를 주고 우리를 샀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아사셀도 그와 같은 것 같습니다.
이 양을 주어서 예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우리를 구속해냈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아사셀을 하나님의 공의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두 염소가 상징하는 것

염소가 두 마리인데, 한 마리는 하나님께 속죄 제물로 드리고 한 마리는 아사셀에게 보낸다는 것입니다. 두 마리 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죄 제물로 드리는 것도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위해서 드렸고, 또 우리 그 죄를 전가 받아서 아사셀에게
보내는 것도 죄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아사셀 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사셀에게 보내는 양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한 마리도 내 죄를 지고 간 것이고,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리는 양도 내 죄를 위해 속죄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둘 다 우리 죄를 지고 속죄제물이 됐고, 우리 죄를 지고 가서 아사셀에게 보냈다는 말입니다. 둘 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속죄 제물 된
양도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고, 아사셀 양도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둘 다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속죄 제물로 죽은 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죽지 않고 살아서 아사셀에게 보낸 것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의를 완성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죽으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을 내버리시고 끊어버리셨습니다. 끊어버리는 것이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어버리셨을 때,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이 지시고 죽으심으로 의를 완성시키셨습니다. 곧,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끊어 버리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완전한 의로 갖다가 붙이셨다는 것입니다. 연결시키셨습니다. 의인은 죽는 법이 없습니다.
죄는 하나님께서 끊어버리셔서 죽이는 것이고 의는 사는 것입니다.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심판 받으셔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끊어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육신도 죽이고 영혼도 끊어버린 동시에 예수님의 의가 완성되는 시간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다 지키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완전 복종하셔서 의가 완성되는 시간인 것입니다. 의는 안 죽습니다. 죄는 하나님께서 끊어버리시고, 예수님의 의를 갖다가 붙이시는 것입니다. 끊어버리시는 동시에 갖다가 붙이셨습니다. 그래서 산양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는 양으로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또 동시에 의를 완성시키는 그 찬란한 산양의 역사로 우리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렇게 우리 죄를 대속해주시고, 예수님께서 의를 완성시키시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해주셨으니 얼마나 그 은혜가 감사한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의 구속에 대해 우리는 항상 감사하고 감격하는 신
앙을 가져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서 제물이 되시고, 죽어서 제물 되셔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주시고 하나님의 노를 풀어드리셨습니다. 죽음으로 속죄제를 드리는 양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사셀 양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죄 값을 하나님의 공의에다 지불하시고 의를 완성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죄를 완전히 죄 사함 받고 완전무결한 의인이 됩니다.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완전무결한 의인이 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늘나라에 갈 때에도 의인으로 갑니다. 무슨 의를 가지고 갑니까? 내가 행한 의는 없지만 예수님의 의를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또 내 죄는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갈 때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가면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의를 가지고 의인으로서 하늘나라에 정정당당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2절에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천국에 갈 자신 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자신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무엇을 보고 자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성경에 담대함으로 당당히 들어간다고 했는데 왜 못 들어가겠느냐? 난 예수님의 피가 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를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내 죄는 다 사함을 받았고 예수님의 의를 받아서 하나님 앞에 의인이다, 나는 의인의 자격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며 확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완전무결한 하나님의 의로 의인이 되어서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고 칭할 수 있는 법정적 선언의 의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3. 지성소에서 속죄제를 드려 성결케 할 것

하나님께서 뜻하신 불로 분향해야 함

본문 11-13절에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찌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향로를 취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장 안에 들어가서 분향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 단 위에 있는 불을 그 향로에 담아다가 피워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아들은 그 불이 아닌 다른 불을 담아 피우다 죽었습니다. 그러므로여호와 앞 단 위에 있는 불을 담아다가 제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놓으신 불, 하나님께서 시키신 불,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불, 말씀대로 이루어진 불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딴 불을 가지고 와서 드리면 말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놓으신 것이 아닌 것으로 향불을 피우면 죽습니다.
요새 성경에 어긋나는 교회, 종교운동, 그릇된 신비주의나 신 신학도 다 성경에 어긋납니다. 또 기독교 사회주의도 성경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불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불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성경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해야지, 인본주
의를 쓰고 성경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그러니까 성경대로 하는 교회를 세워야 되고, 성경대로 예수님을 믿어야 되고, 교단도 성경대로 돼야 되고, 인본주의로 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 어긋나는 것은 전부 다 다른 불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가다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제단과 지성소를 거룩하게 해야 함

본문 14-15절에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편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
죄소 앞에 뿌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씩 그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들어갈 때는 목욕을 하고 세마포 옷과 관과 고의를 입습니다. 또 수송아지의 피와 수양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됩니다. 거기에 들어가서 속죄소 동편에 피를 뿌리라는 말입니다. 피를
뿌려서 거룩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성소를 거룩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지성소를 속죄하고 또 제단을 속죄하는 것입니다. 제단은 물건인데 ‘물건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무엇을 속죄하는가’고 할 수 있는데, 죄인들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속죄해야 되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사용하는 제단이고, 지성소이기 때문에 속죄를 해야 됩니다. 인간들을 위하여 제사드리는 성소이기 때문에 속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피를 뿌려야 됩니다. 그리고 그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을 위해 제사하기 전, 먼저 자기를 위해서 속죄제를 드려야 됩니다. 자기 죄가 있는데 어떻게 남의 죄를 위해서 속죄 하겠습니까? 까딱하면 죽으니까 벌벌 떨어야 되는 것입니다. 향불을 잘못 피워도 죽고 제사를 잘못 드려도 죽습니다. 생명 내놓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게 하면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한 가지를 두렵고 떨림으로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원리 원칙으로 충성되게 속죄해야 함

본문 16-17절에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 권속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까지는 누구든
지 회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고 자기 권속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고 그 다음, 온 이스라엘을 위해서 속죄제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처리를 먼저하고 자기 권속처리를 둘째 번으로 하고 셋째 번으로 온 족속을 위해서 하라는 말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는데 먼저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자기 집을 다스리고, 자기 나라를 다스려야 마지막으로 온 천하를 평정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한 사람들이 비슷하게 안 것입니다. 한문 하는 사람들도, 성경을 보고 안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자연 원리를 보고 알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자연원리를 보면 어느 정도 그 원리가 비슷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이 항상 같으니까 그것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거나 듣고 아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원리원칙을 보고 어느 정도 안 것입니다. 또 죄인들은 망한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죄인이 계속 망하는 것을 보고 ‘죄인이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다’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또 선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것도, 선한 사람이 복을 받는 원리를 보고 공자가 안 것입니다. 그 공자의 도는 원형리정(元亨利貞) 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행하시는 원리원칙을 보고서 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되고, 그 다음에 자기 권속의 죄를 회개하여 정결케 해서 바로 세워야 되고, 다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운동에 참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해야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기 가족이나 남에게 써 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집 안에서 ‘여보시오, 자신의 죄부터 잘 다스리라고 했는데 왜 요새는 자신을 다스리지 않습니까?’라고 하게 되면, 상대방도 ‘자신의 죄부터 정결케 하라고 했으면 너부터 회개해야지, 왜 못되게 하느냐?’라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집안에서 서로 싸움하는 도구로 사용하면 마귀가 그 집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역사입니다. 자신의 죄부터 생각하고 다른 식구는 보지 말고 자기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왜 다른 식구한테 이 말씀을 이용합니까? 이 말은 며느리가 들었으면 좋을 말이다’, ‘이것은 시어머니가 들으면 좋을 말이다’, ‘시누이가 들으면 좋은 말이다’ 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들어야지 왜 며느리, 시누이가 들으라고 합니까? 자기가 먼저 해야지 왜 며느리나 시누이보고 하라고 합니까? 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자기가 해야 할 것은 안하고 남에게만 하라고 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또 성경가지고 싸우는 것은 괜찮을 것 같습니까? 아내는 남편보고 ‘여보, 성경에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왜 사랑하지 않습니까?’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여보, 성경에 남편을 순종하라고 했는데 왜 순종을 안 합니까?’하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어떤 집에 처음으로 심방을 갔는데 부인은 잘 나오는 성도였고 남편은 교회에 잘 나오지 않는 집이었습니다. 그 집에 가니 어떤 사람이 마당을 쓸고 있어서 ‘주인 계십니까?’하니까 그 사람이 ‘들어가보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십니까?’하고 내가 물어보니 ‘난 이 집 하숙하는 사람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난 진짜 하숙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들어가서 마당 쓰는 분이 누구냐고 했더니 자기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영감이 하숙하는 사람이라’고 했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마 남편 대우를 안 한 것 같습니다. 남편 대우를 안 하니까 그 집에 하숙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고, 말씀으로 자신부터 바로 세우도록 해야겠습니다. 

‘내가 영감 대접을 잘못 했다. 남편을 우러러 받들고 순종해야 되는데 안했구나’하면서 그것을 회개하고 또 남편은 ‘내가 아내를 사랑하지 못했다’하는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처녀가 시집가면 일등 신부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일류 아내가 되는 법은 남편을
우러러 받들고 그저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류 아내가 됩니다. 시집갈 때 그 집에 섬기러가는 줄 알아야지, 섬김을 받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섬기러 오셨는데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난 이 집에 섬기러 왔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성경대로 경외하면 됩니다. 경외라는 것은 우러러 받드는 것입니다. 자기만 못해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이상 순종하면 됩니다. 또 일류 남편은 무조건 아내를 사랑하고 귀히 여기면서 잘해주면 됩니다. 여자인 아내는 연약한 그릇인 줄 알고 아내에게 잘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일류 남편이 됩니다. 아직 미혼인 사람들이 결혼하면 오늘 배운 말씀대로만 하면 됩니다. 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결혼식 다 다시 하십시오. 와서 다시 하고 재출발 하십시오. 
자기부터 먼저 속죄제를 드리고, 자기 가족, 자기 권속을 위해서 드리고, 백성을 위해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백성을 위해서 드려서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등한히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충성되이 해야 되겠습니다.

4. 산 염소에게 죄를 지워 광야에 놓을 것

본문 18-22절에 “그는 여호와 앞 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할찌니 곧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취하여 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 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
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산 염소를 드리되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찌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양의 머리에 아론이 안수하라는 것은 백성의 모든 죄를 아사셀 양에게 모두 전가시키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그 양을 광야로 데리고 나가 無人之境(무인지경)에 가서 놔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처 없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이스라엘의 죄를 그 머리에 짊어지고, 또 그 몸에 짊어지고 나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우리 죄를 짊어지고 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의 공법을 만족시키시려고 나가신 것이고, 속죄제로 드려질 염소와 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려고 나가신 것입니다.

5. 지성소에서 나와서 할 뒤처리

본문 23-25절에 “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고 거룩한 곳에서 물로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속죄제 희생의 기름을 단에 불사를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아론이 지성소에서 나와 회막에 들어갔습니다. 거기 가서 세마포 옷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곳에서 물로 몸을 씻고, 자기 옷으로 다시 입고, 회막으로 나와 번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지성소에 들어가서 제사하고 나와서, 또 다시 제사를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26-28절에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며 속죄제 수송아지와 속죄제 염소의 피를 성소로 들여다가 속죄하였은즉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밖으로 내어다가 불사를 것이요 불사른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올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자는 옷을 빨고 몸을 물로 씻은 다음 진에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6. 7월 10일을 속죄일로 지킬 것

본문 29-31절에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찌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괴롭게 한다는 말이 두 번 나와 있습니다. 칠월 십일이 속죄일입니다. 일 년에 한 번씩 대속죄일이 있는데 칠월 십일 날인 것입니다. 그 날은 자기를 괴롭게 하는 날입니다. 죄가 사람을 괴롭게 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속죄일을 하루 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실 것을 상징하는 것이고, 우리도 죄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하는 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애통하는 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계명을 지켰다고 해도 잘 못 지켰고, 십일조를 드렸다고 해도 잘 못 드린 것이 많고, 안식일을 지켰다 해도 종일토록 하나님을 위해 거룩하게 지키지 못한 것이 많고, 기도한다고 하지만 기도하지 못한 죄, 전도하지 못한 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지 못한 죄,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진 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그 죄를 찾아 애통하는 날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일 년에 한 번씩 초막절이 있습니다. 초막절은 칠월 십오일부터입니다. 초막절은 자기 집에서 있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집이 좋아도 이날은 집에 있으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초막절에는 하나님 앞에 나가 나무로 초막을 짓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천막과 같습니다. 거기 가서 한 주간 있어야 됩니다. 비가와도 집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거기서 겪어내야 됩니다. 이 날을 지킴으로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것을 감사하고 애굽에서 나오던 생활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 하는데 중요합니다. 

유월절을 지켜야 되고, 오순절도 지켜야 되고, 죄로 인해서 스스로 괴롭게 하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자기 죄를 붙들고 늘 애통하며 탄식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하라고 속죄 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본문 31절에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고 하였습니다. 괴로운데 무슨 안식이 오겠습니까? 그러나 죄로 인해 탄식할 때에 영적 안식이 온다는 것입니다. 영적 위안이 옵니다.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요’ 라고 하였는데, 죄를 위해 애통할 때에 영적 위안과 안식이 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32-34절에 “그 기름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아비를 대신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제사장은 속죄하되 세마포 옷 곧 성의를 입고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며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이는 너희의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년 일차 속죄할 것이니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해서 속죄하고, 제사장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전체를 거룩하게 하고 자신을 거룩하게 하며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돌리는 일을 우리가 계속 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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