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를 장사지내기 위해 막벨라 밭을 삼
창세기 23:1-20
창세기 23:1-20
1사라가 일백 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2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4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5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6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7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거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 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그로 그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10때에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11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께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2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 13그 땅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14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15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6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데서 말한 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17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18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한지라 19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
1. 사라가 별세함
본문 1-2절에 “사라가 일백 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일백 이십칠 세에 죽었습니다. 가나
안 땅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라를 위해 막벨라 굴을 사서 그곳에 장사한 내용이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127세는 오래 산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25:7절에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세라”고 하였는데,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산 것입니다. 이삭은 180세를 살았습니다. 당시의 사람인 아브라함과 이삭의 나이와 비교하면 사라는 오래 산 것이라고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사라가 일백 이십 칠 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성경에 여자로서 연령이 기록된 것은 사라뿐입니다. 사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가 죽은 것을 인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위해서 슬퍼하며 애통한 것은 아브라함이 그 아내를 노년에도 진정으로 사랑하여 귀히 여긴 증거입니다.
2. 아브라함이 장지를 구함
본문 3-4절에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서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라고 했습니다. 사라가 죽었으니 이제 장사해야 되겠기에 아브라함이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당시 살고 있던 땅이 헷 족속의 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임시로, 나그네로, 우거하는 자로 살고 있던 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한 땅이고 허락하신 땅이지만, 아직도 때가 되지 않아서 그 땅에 임시로 붙어 사는 때였다는 것입니다. 나그네 생활하던 때입니다. 그래서 그 지방 사람인 헷족속에게 말하기를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시오”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3. 막벨라 굴을 매입함
헷 족속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방백으로 여김
본문 5-6절에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아브라함이 그 땅에 지금 우거하고 나그네 생활을 하지만 거기서 믿음 잘 지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또 거기서 믿음 잘 지킴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에게 덕을 세우고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곳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는 역사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역사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방백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위가 있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생각하는 것이나 판단하는 것의 모든 것을 다 바로 했다는 것입니다. 정도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지방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다 우러러보았습니다. 무슨 일이 생길 때에는 아브라함에게 가서 잘 처리 받고, 또 아브라함에게 가서 물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지방에서 방백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본문 6절에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큰 세력이 된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볼 때도 저 사람은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우러러 보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여’ 하는 것은 존칭어입니다. 그만큼 존경을 받고 큰 세력이 되어서 우러러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지방의 방백만한 세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은 자를 매장하게 소유를 조금 사자고 하니까 거저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제일 좋은 데를 골라서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죽은 자 장사하는 것을 금할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대통령이 이 부락에 와서 살다가 대통령 부인이 세상 떠났다고 합시다. 그런데 대통령 부인 장사 하겠다고 그러면 금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자기 땅에 장사하라고 할 것입니다. 대통령 부인이 세상 떠났다고 여기 묘지 하나 사자고 하면 이 지방 사람이 제일 좋은 것 쓰라고 할 것입니다. 거저 드릴테니 값은 말하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방백과 같은 권위자가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지방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다 혜택을 받고, 아브라함의 좋은 지시를 따라서 많이 발전되고, 문명화 되고, 많이 개량되고, 또 모든 법을 잘 배웠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가르침대로 하니까 모든 것이 잘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지방 사람들은 아브라함이라고 하면 ‘아브라함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하며 다 우러러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다 아브라함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말 한 마디를 하면, 그것은 다 좋은 말이고, 들어서 복 받을 말인 줄 알고 다 순종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지방의 방백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방백으로 세운 것은 아니지만,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어느 지방이나 선각자가 있기 마련인데, 아브라함의 경우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므로 선각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모든 것을 잘 지도해서 그 지방이 많이 발전된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저희 고향에서도 있었습니다. 평안북도 정주군에 강이 하나 있는데, 그 강변이 전부 갈대밭이었습니다. 갈대밭이 상당히 넓게 있었는데, 어떤 분이 그 갈대밭을 논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때 갈대밭은 물 들어올 때만 잠기고 그 다음에 안 잠기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막아서 갈대밭을 논으로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방 사람들에게 많이 나눠줬습니다. 물론 자기가 지주가 되고, 소작농으로 나눠줬을 것입니다. 또 그 지방에 학교가 없었는데,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 지방에서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어느 지방이나 그런 사람이 있으면 존경 받습니다. 어떤 지방이 뒤떨어져서 발전을 못하고 있을 때, 선각자가 하나 와서, 이렇게 하면 된다, 무엇을 하면 된다고 했는데 일을 해서 잘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을 우러러 보고, 방백과 같이 여깁니다. 한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들이 한국을 발전시킨 사람들 가운데 일부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던 지방에서 그런 좋은 일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사람은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잘 섬기므로 도덕적으로 아주 높습니다. 그 지방 사람들은 다 죄 짓고 방탕하지만, 아브라함은 거룩한 성자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하시는 것이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셔서, 잘된 결과가 자꾸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아브라함을 존경을 했다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아브라함 때문에 자기네들도 그만큼 좀 나아진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이 도덕적으로 높고 거룩하고 의로우니까, 자기네들이 죄만 짓다가 아브라함을 보고는 ‘우리도 저렇게 살아야 되겠다’, ‘저것이 진짜다’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가 아브라함 손에서 계속 나타나니까,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브라함과는 같이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이 묘지를 하나 사자고 하니까 본문 6절에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대답이 아브라함이 그들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방백이므로 묘지를 살 것이 아니라 제일 좋은 것으로 그저 택해서 장사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서 자기 묘실에 아브라함의 죽은 자를 장사하는 데 금할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이만큼 되면 그 사람은 괜찮은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이 어디 있든지 덕을 세우고, 또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선한 일과 선한 싸움을 많이 하고, 모든 사람에게 후히 대해 주면,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고, 덕망이 높아지고, 의와 거룩을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지방 사람들이 다 우러러 봅니다. 우러러보고 존경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계신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하며 높이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이 덕을 세워야 함
믿는 사람들이 다 이렇게 되어야 됩니다. 다 이렇게 되어야 정상적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을 안 지키고 돌아가니까, “저 따위가 무슨 예수 믿는 사람이냐?”라고 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오히려 싸움이나 하고, 깍쟁이로 행동하고, 한 닢이라도 돈 안 내려고 합니다. 어떤 동네에 여러 세대가 함께 쓰는 쓰레기통이 하나 있는데, 쓰레기 값을 낼 때마다 싸운다고 합니다. 서로 조금 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안 믿는 사람이 “저 따위가 무슨 예수 믿는 거냐?”하고 욕을 하게 됩니다. 몇 푼 덜 내겠다고 하다가 예수님에게 욕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 쓰레기통에 자기들은 조금 버렸다고 해도 혼자 다 내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또 전기요금도 조금 내겠다고 그런다고 합니다. 계량기가 하나인데, 서로 조금 사용했다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런 사람 보기 싫어서 교회 못 나가겠다” 하고 욕 먹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에 좀 후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상대방이 내라는 대로 내고 넉넉히 내는 것이 좋습니다. 조금 썼어도 그저 ‘다 같이 합시다’ 하면서 후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누가 모자라는 사람이 있으면, 대신 내 줘서 해결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후히 해 주고,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거룩과 의와 진실과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다른 사람을 위해 선한 일을 많이 해야 됩니다.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 집에서 떡 해 먹으면 근처 집에 한 개씩이라도 갖다 주는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부조도 하면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개 결혼식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 이전에 우리 집에 부조를 했는지 안 했는지 예전에 적어놓은 장부를 펼쳐 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져온 사람에게는 부조하고, 안 가져온 사람에게는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안 가져왔어도, 좀 해주면 어떻습니까? 그러므로 덕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 잘 믿고 성경말씀 잘 순종하면 안 될 것 같아도 계속 되어나갑니다. 안 될 것 같아도 되어 나가고, 죽을 것 같아도 살아나가고, 없는 것 같아도 항상 기뻐하고, 거꾸로 될 것 같아도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잘 되어 나가니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 저 사람을 보니까 분명히 하나님이 계시다. 저 사람은 하나님이 같이하는 사람이다. 하늘이 낸 사람이다’라고 알고는 존경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가서 묘지 하나를 사자고 할 때, ‘살 것 없고 거저 가져가십시오.
당신에게 신세진 것이 많으니, 아무 묘지나 우리 중에 있는 것을 당신에게 다 줄테니 가져다가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십시오’라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신이 사는 그 부근에서 칭찬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사람에게도 칭찬 받는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4:18절에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욕 먹고 돌아다니면 그 사람은 믿음을 안 지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정식으로 매장지를 요청함
“당신은 우리 중에 계신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 무엇이나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을 금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앙 생활의 열매입니다. 열매가 잘 나타났습니다. 그 말에 아브라함이 너무 감사해서 몸을 굽혀서 그들에게 인사하였습니다.
본문 7-9절에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거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로 그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주게 하되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정식으로 요청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할의 아들 에브론이 가지고 있는 막벨라굴을 적당한 값을 받고 사서 그의 소유가 되게 하고 죽은 자의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나 정식으로 요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사람이 주겠는지 안 주겠는지 모릅니다. 또 팔겠는지 안 팔겠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정식으로 요청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줄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줄 것이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정식으로 요청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뜻이면 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줄 것이고, 또 하나님의 뜻이 아니어서 그 사람이 주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나 정식으로 해야지, 욕심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욕심으로 하면 안 됩니다. 정당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정식으로 요청을 하고는, 이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주실지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정당한 값을 주고 밭을 사서 사라를 장사함
본문 10절에 “때에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께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에브론은 땅 임자인데, 아브라함이 원하는 굴을 그에게 거저 선물할 것이니 그의 죽은 자를 막벨라 굴에 장사 지내라고 하였습니다. 거저 준다는 것입니다. 거저 준다고 하니까 잘 된 것이 아닙니까? 밭과 그 속의 굴까지도 거저 준다는 것입니다. 거저 받아서 거기에 장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좋은 통 만났습니다. 돈을 줘도 안 받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 그 땅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성들 다 듣는 데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듣는 데서 말해야 다음에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그론이 합당히 여기면 그 밭의 값을 주리니 그가 아브라함에게서 값을 받고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밭 값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에브론은 그 땅을 거저 준다고 하는데, 아브라함은 값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에브론이 그 밭 값은 은 사백 세겔이지만, 아브라함과 그 사이에 무슨 계산할 것이 있느냐면서, 거저 드릴 것이니 거저 받아서 장사하라는 것입니다. 은 사백 세겔이면 상당한 돈입니다. 성전 세를 위해서 일 년에 한 사람에 반 세겔씩 바쳤는데, 사백 세겔이면 얼마나 많은 돈이겠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당한 값이 나가는 밭을 거저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16-18절에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은 사백 세겔을 달아서 모든 사람 앞에서 에브론에게 밭 값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굴과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성읍에 있는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지로 삼았습니다. 증거를 다 세웠다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막벨라 밭을 사고 난 후에 거기 있는 굴에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장사했습니다.
4. 아브라함이 밭을 값 주고 산 이유
본문 20절에 “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에그론의 밭을 사서 영구히 자신의 소유로 삼았습니다. 그가 밭을 산 것은 잘한 것입니다. 이것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저 주겠다는데 안 받고, 돈을 주고 산 것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대가 없이 자기 것으로 삼지 않기 위해서 빚진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남에게 빚지지 말아야 합니다. 거저 줄 때에 좋아하지 말고 그 값을 반드시 지불하고 그것을 받아야 됩니다.그것이 원리원칙입니다. 남에게 빚지고 갚지 않는 자는 빚진 죄인입니다. 갚기 전까지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도 죄인이고 사람 앞에도 죄인인 것입니다. 반드시 갚아야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거저 주겠다고 하지만 거저 받으면 빚지는 것입니다. 신세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값을 주고 사는 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안사고 거저 받으면 그것은 부채를 진 것과 같습니다. 남한테 빚지는 건 옳지 않습니다. 다 물어 주는 것이 옳습니다. 땅을 연보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연보할 때 땅을 주겠다고 하면 먼저 “하나님께 바치겠나”를 물어보고 “하나님께 바치겠다”하면, 교회 이름으로 등기를 옮겨 놓아야 합니다. 등기 안 옮겨 놓으면 앞으로 시험이 들어옵니다.
남에게 신세를 지면 빚을 진 것입니다. 빚지면 그만큼 자유가 없습니다. 다 물어주는 것이 떳떳하지 않습니까? 빚지는 것은 정당하지 못합니다. 신세지지 말고 신세졌으면 반드시 갚으십시오. 반드시 빚진 것을 갚아야 옳지 그렇지 않으면 빚진 죄인입니다. 남한테 신세 졌으면 그것을 언제든지 갚아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딱딱 갚습니다. 무엇을 하나 받으면 답례할 것을 갖고 옵니다. 갚는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또 복음을 가르침 받은 사람은 전해준 자에게 부채를 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것 물어줘야 됩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이방교회에 복음을 전했는데 이방교회에선 예루살렘교회에 빚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서 이방교회가 신령한 것을 받았으니 물어 주는 게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5:27절에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복음을 전해 줬기 때문에 복음의 빚졌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갚는 것이 마땅하다 했습니다. 그것도 빚 물어주는 것입니다. 신세 갚는 게 마땅한 것입니다. 안 갚는 건 빚지고 그냥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남한테 신세지지 말아야 하고 반드시 신세를 졌으면 신세를 갚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재정에 대해서 깨끗하게 하고 남한테 폐 끼치지 말아야겠습니다. 교역자들은 특별히 남한테 폐끼치지 말고 신세지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목사들이 일본과 대만에 있는 한국 목사를 찾아가서 신세를 지고 옵니다. 그런데 일본이나 대만에 가서 개척하는 목사들 가정은 가난합니다. 그러니까 가서 신세지면 안 됩니다.
대만에 홍 목사라고 있었는데 내가 가서 한 이틀인가 하루 있다가 돈 얼마 주었습니다. 사실 호텔에 가서 있는 것만큼 주어야 됩니다. 그렇게 하니 한국목사치고 돈 주는 사람 처음 봤다고 합니다. 김성갑 목사님 지금 손님 치르느라고 힘들어 합니다. 일 년에 한국목사 백 명이 왔다 가는데 사례를 안 한답니다. 그리고 갈 때는 ‘한국 가서 봅시다’ 한답니다. 보긴 뭘 봅니까. 찾아 갈 수가 있어야지. 찾아가면 밥이나 한 끼 대접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 사람이 외국에 나가면 “반드시 어딜 가든지 어떤 교회에 가서 신세지면 그에 대한 사례를 하고 오십시오”라고 가르쳐 보냅니다. 신세지고 사례 안하는 것은 아주 무례한 일입니다. 그 사람은 빚진 자와 같고 빚진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 짖고 사람 앞에도 범죄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정당하게 하지 않으면 죄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당하게 남한테 신세 안지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떳떳한 하나님의 아들로 신세지지 마십시오. 기도원 와서도 거저먹지 말고 와서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봉사하면 신세 갚는 것입니다.
대접하는 사람 편에서는 얼마든지 대접하는 정신을 가지면 좋습니다. 그러나 먹는 편에서는 신세 갚도록 해야 됩니다. 신세를 안 지려는 생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밥 한 그릇 얻어먹었으면 밥 한 그릇만큼 앞으로 신세 갚겠다는 생각을 가지란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바로 하는 것입니다. 천 원 어치 대접 받았으면 천 원 어치 갚아야 마음이 편안하지 않습니까? 신세지면 빚진 죄인이니 다시는 그런 일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신세를 지고 사례를 했는데 안 받을 경우에는 그 교회에 연보해 주고 오면 됩니다.
사경회 때도 우리는 언제나 자기 일은 자기가 하고 또 가난한 사람은 자취해야 합니다. 얻어먹을 생각하지 말고 아예 집에서 가져와서 자취해야 합니다. 자취하는 정신이 좋은 것입니다. 또 자취하려고 해도 쌀이 없다 하면 쌀을 좀 보조해 줄 겁니다. 늘 자기가 자력으로 해나가려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신세 안지겠다는 정신이 좋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자기 힘으로 하고 남의 신세 안 진다는 정신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 주시고 상급이 되어 주셔서 반드시 잘 되게 해 주십니다.
또 신세 진 사람보다 신세 안 진 사람이 아브라함처럼 후대에 잘 됩니다. 아브라함이 매장지를 그냥 받았으면 좋았을 것 같지만 후대에 가선 후유증이 있을 것입니다. 헷 족속의 자손이 거저 줬으니 달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이 돈 주고 사고 신세 안 졌으니 후유증이 없습니다. 양심이 편안하고 떳떳하고 다음에 자손 세대에 가서도 문제가 없습니다. 이렇게 신세 안지고 정당하게 해 나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자력으로 하겠다는 정신을 처음부터 가져야 됩니다. 처음부터 예배당 짓는 것을 자력으로 해야겠다, 또 교회도 원조 안 받고 자립적으로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교인들에게 힘을 주셔서 자립 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신세지려는 생각하면 교인들도 힘 안 쓰고 자꾸 의지만 하게 되고 평생을 얻어먹게 됩니다. 자립으로 하겠다는 정신을 가질 때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자립으로 할 때에 떳떳하고 힘이 나는 것입니다. 왜 힘이 안 나겠습니까. 또 원조해주는 교회는 어떻게 하든지 약한 교회를 도와주려고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런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물질에 대하여 정당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신세지고, 폐를 끼치고, 누를 끼치는 것은 좋지 않으니 정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일 해주고 돈을 받고, 돈을 주고 모든 것을 사고, 정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들은 일은 하기 싫어서 하지 않고 다니면서 얻어 먹으려고 합니다. 공짜가 무엇이 있을까 하고 돌아가고, 남에게 돈을 꿔 쓰고 안 갚는 것과 같은 일은 하나님께 죄입니다. 정당하게 줄 것은 주고, 또 일할 것은 일하고, 받을 것은 받고, 그렇게 하고 모든 것을 해야 됩니다. 정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더 받지 말고, 또 너무 깎지도 말고, 정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 요새 IMF시대가 되어서 일감이 없을 때, 일하는 사람들은 임금을 조금 줘도 하시길 바랍니다. 조금 받고도 일 하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많이 받던 것을 생각하면 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을 안 하면 누가 먹을 것 줍니까?
조금이라도 일해야 먹을 것을 사다 먹을 수 있습니다. 많이 받을 때는 많이 받을 수도 있지만, 적게 받을 때에는 적게 받더라도 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래도 벌어먹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공짜로 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세지지 말고 정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일해 먹고, 줄 것은 정당하게 주고,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후대에 시험과 분쟁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또한 굴을 돈 주고 사서 장사한 이유는, 돈 주고 사지 않으면, 지금은 헷 족속이 거저 준다고 하지만, 이다음에 자기네 소유라고 소유권을 행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놓아야 다음에라도 내내 자기의 소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거저 가질 수 있지만 아예 사는 것이 좋습니다. 사야 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배당 자리를 하나 교회에 바친다고 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밭을 몇 백 평 바친다, 토지를 얼마나 바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 거저 받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사서 예배당을 짓던지, 그렇지 않으면 등기를 따로 옮겨놓고 지어야 됩니다. 등기를 옮겨 놓고 지어야지, 그냥 그 사람 이름으로 지어놓으면 이 다음에 시험이될 수 있습니다. 그런 문제로 여러 교회에 시험이 왔습니다. 부산에 어떤 공장이 있었는데, 그 공장 사장이 장로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공장에다 교회를 지으라고 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교회를 지었습니다. 자기가 사장이므로 공장 안에 부지를 줘서 교회를 짓고는 잘 해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가 죽었습니다. 그 장로가 죽은 후에 그 아들이 그것은 그의 아버지 땅이므로 그가 상속했으니 이제 교회의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바쳤다고 하더라도 아들이 자기 이름으로 상속이 됐으니 나가라고 하면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이 밭을 얼마 바친다고 예배당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밭의 명의가 작은 아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는 어머니의 밭인데, 작은 아들 명의로 되어 있었으니 그 아들이 교회에게 안 넘긴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머니가 바치려고 할 그때, 딱 돈을 좀 주고서라도 등기이전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다음에 시험이 없을 것인데, 그것을 분명히 하지 않아서 시험이 된 것입니다. 그런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교회가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값을 주고, 등기를 이전하고, 그 다음에 교회를 짓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시험이 들어오라고 환하게 시험 구멍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법적으로 소유권을 분명히 하지 않는 것은 시험이 들어올 구멍을 환하게 열어 놓고 있는 것이고, 그 구멍으로 시험이 들어오면 꼼짝 못하고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당을 목사 이름으로, 예배 대지나 집을 목사 이름으로 해 두었는데, 그 목사가 죽은 다음에 아들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만큼 믿음이 없어 그 다음에는 시험거리가 되었습니다. 제 동창생 목사 중에 신당동에 교회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교회가 상당히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명의를 그 목사 이름으로 해놓았습니다. 이전에 건물을 살 때 교회 돈으로 산 것이 아니라 목사 개인의 돈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사가 자기 돈으로 사서 교회를 했는데 교인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목사아들이 아버지 이름으로 되어 있는 교회 건물을 보증으로 해서 장사하다가 그만 부도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갈 데도 없이 되어 교회건물을 경매 부치게 되었습니다. 교회 건물이 다 날아간 것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빨리 교회 명의로 이전시켜 놓았으면, 아들이 장사하다 실패했어도 그 예배당은 안 날라 갔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다 날라 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교단 교역자들보고 언제든지 목사 이름으로 교회 명의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교회 소유는 전부 교회 이름으로 다 해놓고, 또 기도원이나 신학교는 재단 법인으로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재단법인으로 해서 아예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누가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개인의 이름으로 두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죽은 다음에 자손으로 넘어가면, 또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안 했으면 얼마나 편안한지 모릅니다. 현재 자신도 편안하고 교인들도 다 편안하고 이다음에도 다 편안합니다. 무엇이나 원리 원칙대로 해야지, 그것으로 무엇 하려고 제 이름으로 해놓고는 앞으로 시험 들어올 구멍을 환하게 열어놓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잘했는지 모릅니다. 이다음에 자기가 죽은 다음 에, 또 몇 백 년 후에 그 사람들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면 꼼짝 못합니다. 그러므로 일단 사서 많은 사람 앞에 증거를 세운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아브라함의 매장지로 삼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계속 전해 내려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백 세겔에 샀으니, 이 밭은 그의 것이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사라가 죽어서 장사하고 나서, 아브라함이 죽어서 장사해도, 그 다음에 또 이삭과 리브가가 죽어 장사해도 괜찮았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죽어서 장사해도괜찮았습니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재상분명 대장부(財上分明 大丈夫)’라는 말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재정은 분명히 해야만 대장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재산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분명히 하지 않고는 이다음에 시험이 들어옵니다.
가족의 매장지로 사용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이 밭을 산 것은 사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지금 산다고 한 것입니다. 이번에 아내를 장사하기 위해 한 번 사용하고 지나가면 그만 둘 것이 아니라, 이다음에 자기도 죽어서 그곳에 장사할 예산을 한 것입니다. 또 자기 자손도 죽으면 몇 사람을 거기에 장사할 예산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다 이제 사라를 먼저 장사하고, 그 다음에 자기도 장사하고, 또 이삭도 거기 장사하게 되고, 리브가도 장사하게 됩니다. 창세기 25:9절에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다음에 그 굴에 장사했습니다. 사라가 장사된 굴에 장사했다는 것입니다. 또 창세기 49:30-31절에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그 굴에 장사되었습니다. 또 창세기 49:31절에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고 하였는데, 야곱이 레아를 거기에 장사했습니다. 창세기 50:13절에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소유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고 하였는데, 야곱도 거기에 장사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기억시키기 위해서
또 굴 속에 장례해 놓으면, 굴이 없어지지 않으므로 이 굴 속에 조상이 장사되었다는 것을 후손으로 알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지금은 아브라함이 나그네이지만, 나그네 생활을 얼마 하다가 그 다음에 가나안 땅을 떠나서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애굽에 가서 사백 년간 종살이 할 것을 아브라함이 알았습니다. 여기서 지금은 임시로 있다가 애굽에 가서 사백 년간 종살이 하고 자손들이 여기로 다시 올 것인데, 그 때까지 묘가 남아 있으려면 굴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보통처럼 흙에 묻어서 흙을 쌓아두면 사백 년 후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굴이 제일이겠다는 것입니다. 굴은 사백 년 후에도 있을 것이고 몇 백 년 가도 그래도 있습니다. 삼각산 꼭대기 올라가면 굴 하나 있는데 그것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옛날부터 그냥 있습니다. 또 제주도에 굴이 많습니다. 뱀 굴, 만장굴 등, 몇 백 년, 몇 천 년 내려온 것입니다. 그것은 세대가 변하고 국가가 변해도 그냥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백 년 종살이 하고 나올 것을 아브라함이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창세기 15장에서 벌써 하나님께서 말해주셨습니다. 창세기 15:1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현재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이제 앞으로 애굽에 가서 사백 년 동안 종살이 하며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백 년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나오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그 무덤이 보존되려면, 돌로 된 굴이 아니면 보존될 수가 없습니다. 흙으로 무덤 해 놓은 것은 몇 백 년 가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사백 년 후에 애굽에 가 있다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서 그때 한몫 쓰려고 막벨라 굴을 사서 장사한 것은 아닙니다. 돌아온 다음에 무덤이 아무렇게나 되도 무슨 상관입니까?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백 년 후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을 증거 하려고 가나안 땅에 막벨라 굴을 사서 묘지로 삼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가나안 땅에 죽어서 지금 장사되어 있다. 그래서 너희가 살 땅은 가나안 땅이다.’ 사백 년 동안 이러한 신앙을 일깨워준 것이 막벨라굴의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는 사백 년 동안 관에 넣어가지고 있던 요셉의 해골이 증거하고 있고, 가나안 땅에서는 믿음의 조상들의 묘지와 그 해골들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에서도 증거하고, 가나안에세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나온다. 우리가 살 땅은 가나안이지 애굽이 아니다’라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바라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백 년 동안 그들의 신앙을 깨우치려고 막벨라 굴을 사서 장사했고, 또 요셉도 자신의 해골을 매장하지 말고 사백 년 동안 관을 놓아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백 년 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나갈 때, 요셉의 관을 메고 나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너희는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나간다’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앙을 깨우친 것입니다. ‘요셉의 해골을 메고 나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우리가 살 땅은 가나안이다. 애굽이 아니다. 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덤이 거기 있지 않느냐? 우리가 살 나라는 거기다. 야곱이 또 거기 장사하지 않았느냐? 우리가 나아갈 우리 고향은 거기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애굽에서 사백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앙을 깨우치려고 막벨라 굴을 사서, 사라와 아브라함 자신, 그 다음에는 이삭, 리브가, 야곱을 그곳에 장사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나가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증거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해골을 묻은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돌아오기 전까지 그들의 신앙을 깨우치고 가나안 땅에 살 것을 확증시키려고 이렇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새는 우리에게 무덤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지 그 무덤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이 이렇게 막벨라 굴을 사서 묘지로 삼았습니다. 우리도 무엇을 하든지 신앙 중심이 되어야겠습니다. 또 앞으로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중심으로, 신령한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중심이 되어야겠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육신이 중심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중심이 아니고, 세상 나라가 중심도 아니고, 우리는 하늘나라 중심이고, 신앙 중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는 그것을 언제나 중심으로 해서 나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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