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9일 일요일

사무엘상 27:1-12 다윗의 블레셋 망명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다윗의 블레셋 망명
사무엘상 27:1-12

1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2일어나 함께 있는 육백 인으로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3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각기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 되었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4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5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께 은혜를 받았거든 지방 성읍 중 한 곳을 주어 나로 거하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거하리이까 6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7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한 날 수는 일 년 넉 달이었더라 8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로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거민이라 9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 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약대와 의복을 취하고 돌아와서 아기스에게 이르매 10아기스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로하였느냐 다윗이 가로되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이니이다 11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행사가 이러하여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12아기스가 다
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하였으니 그는 영영히 내 사역자가 되리라 하니라 

1. 다윗의 망명

다윗이 블레셋 땅에 망명함

본문 1절에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으로 피하여 들어갔습니다. 전에 다윗은 사울 왕이 죽이려고 쫒아왔을 때, 동굴에서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다윗은 겉옷자락만 살며시 베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사울 왕에게 고했을 때, 사울왕은 다시는 다윗을 해하지 않겠다며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다시 마귀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다시 사울 왕이 다윗을 쫓아오다가 십 광야에서 진을 치고 잘 때에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몰래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왔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자기 목숨을 해하지 않고 창과 물병을 가지고 나온 것을 알고 다윗에게 또
잘못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다윗을 해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다시 마귀가 들어가면, 또 다윗을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사울이 진실하지 못하고 변덕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안하겠다고 했다가도 마귀가 들어가서 충동을 하면 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오늘 약속하고 내일 배반하는 사울 왕은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는 안하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이 충동하면 마귀가 들어가서 언제 또 죽이려고 할 지 모릅니다. 이렇게 사울이 언제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다윗이 이스라엘 나라에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나라에 피난을 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 간 것을 사울이 알면 절망하여 찾지 않게 되면 사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블레셋 나라 땅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습니다.

본문 2절에 “일어나 함께 있는 육백 인으로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 건너갔습니다. 아기스 왕은 다윗이 망명해 온 것을 좋게 여겨서 영접해 주었습니다. 아기스 왕은 망명해 온 사람을 용납하는 너그
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울의 원수 되는 다윗을 잘 영접하고 대접하면 앞으로 사울의 세력을 멸하는데 한 몫 쓸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기스 왕은 다윗과 같이 실력 있고 용맹한 사람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모아서 세력을 확장하고, 나라를 든든히 세우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기쁘게 영접했습니다. 다윗도 아기스 왕이 영접해 주니 좋은 피난처를 얻게 되어서 안심하고 그곳에 살게 되었습니다.

본문 3-4절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각기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 되었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혼자만 간 것이 아니고 자기와 함께한 600명을 데리고 갔습니다. 다윗이 그들을 통솔할 책임이 있고, 또한 가족을 거느릴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블레셋 나라로 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피난처를 예비해 주셨습니다.
사울이 기름 부음 받은 왕이지만 다윗을 죽이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 가드 왕을 감동시켜서 피난처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편안히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600명의 가족을 다 데리고 가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아기스 왕에게 지방 한 성읍에 거하도록 요청함

본문 5-6절에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께 은혜를 받았거든 지방 성읍 중 한 곳을 주어 나로 거하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거하리이까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왕도(王都)에 얼마쯤 있다가 아기스 왕에게 지방 성읍 중 하나를 주어서 거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왕도에 거하는 것이 좋지만 지방 성읍 중 아무 곳이나 하나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 왕도에 있는 것이 편리하고 좋다고 해서 그대로 있을 처지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피난 온 사람이기 때문에 지방 성읍 가운데 아무 곳이나 하나를 주면 거기에 가서 묻혀 살겠다는 것입니다. 참 잘했습니다.
언제나 자신을 낮추는 다윗입니다.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고 묻혀서 사는 것이 제일 상책입니다. 그래야 그 자리가 견고해 지고 모든 것이 견고합니다. 언제나 겸손과 낮아지는 자리에 있어야 견고합니다. 높아지고 다른 사람 눈에 띄게 되면 견고하
지 못합니다. 언제나 낮아져서 겸손한 자리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을 하기 때문에 그 자리가 견고합니다.
또 다윗은 어느 지방을 정해서 달라고 하지 않고, 지방 성읍 중 하나를 왕이 택해서 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겸손합니까? 좋은데 있기를 원치 않고 지방 성읍 중에 왕이 보내주는 대로 가겠다고 하는 것은 겸손한 자세입니다. 다윗이 어디 좋은데 알아봐가지고 보내달라고 한 것이 아니고, 아무 곳이나 보내도 좋다고 했습니다. 피난생활 할 때는 아무데나 보내도 좋은 것 아닙니까? 피난 생활인데 좋은데 가겠다고 하겠습니까? 아무 곳이라도 한 곳에 가서 사울 왕을 피하게 해 주면 그것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이 자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리입니다. ‘아무 곳이나 그저 보내주는 대로 가겠습니다. 좋은 자리거나 나쁜 자리거나 어떤 자리라도 왕이 보내 주는 대로 가겠습니다. 나는 좋은 곳을 원치 않습니다. 지방에 보잘 것 없는 곳으로 보내 주시면 나는 만족합니다’라는 신앙을
갖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교역자들도 좋은데 가겠다고 하지 않고, 시골 교회든 어디든 아무 곳이라도 보내주면 가는 것이 신앙이 바로 된 것입니다. 좋은 자리와 좋은 곳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다윗은 이렇게 왕이 보내 주는 대로 간다고 했습니다.

아기스 왕이 전에 유다 지파에 속했던 시글락을 줌

그래서 아기스 왕이 시글락을 택해서 주었습니다. 전에 유다 지파에 속했었던 시글락을 다시 준 것입니다. 여호수아 15장 30-31절에 “엘돌랏과 그실과 홀마와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르바옷과”라고 하였습니다. 예전에 시글락을 유다 지파에게 주었는데 그 후에 블레
셋 사람들이 취했던 것 같습니다. 아기스 왕은 시글락이 본래 유다 땅에 속했던 것인데, 블레셋 나라가 차지한 것이 안됐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지방도시 하나를 달라고 하니까 시글락을 준 것 같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기스 왕도 잘한 것 같습니다. 본래 유다 땅에 속했던 땅을 이번 기회에 다윗에게 주었으니 아기스 왕도 속이 시원하게 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다윗도 참 잘됐습니다. 전에 유다 땅에 속했던 땅이기 때문에 유대 나라 접경입니다. 유대 나라 접경에
와서 자리를 잡게 된 것이 참 잘된 일입니다. 유대 나라와 연락도 하기 쉽고 앞으로 왕이 될 때에도 유대 나라 접경에 있는 것이 유리할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곳으로 골라서 주셨습니다. 그 나라에 속했던 것을 그 나라에 다시 돌려주는 것이 원리 원칙 같습니다. 만주가 한국에 속했었다고 합니다. 만주 요동 들판과 서간도, 북간도를 중국에서 다시 한국에 돌려줘야 원리 원칙입니다. 언젠가 돌려줘야 합니다. 장 주석이 돌려주겠다고 했다는데 그만 실패해서 대만으로 쫓겨 가는 바람에 못 돌려 주고 지금까지 중국 땅에 속해 있습니다. 또 일본 북해도 위에 있는 치시마 열도도 일본이 소유했다고 하는데 2차 대전 때 소련이 취했습니다. 그것도 구 소련, 즉 러시아가 일본에게 돌려 줘야 원칙입니다. 대동아 전쟁 때 일본 것을 소련이 취했으니까 일본에 돌려주는 것이 원칙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돌려달라고 하니까 러시아에서는 돈을 많이 주면 돌려 준다고 한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돈을 많이 줄 수 없다고 하니까 엘친이 화가 나서 그러면 일본도 안 가고 이제는 안 돌려 준다고 했답니다. 그러나 일본이 돈이 많으니까 언젠가는 돈을 많이 주고서라도 치시마 열도를 도로 살 것 같습니다. 그래야 원리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나라가 일본 아닙니까? 세계 어디를 가든지 전자제품은 전부 일본 제품입니다. 호주도 가보니까 자동차가 일본 자동차입니다. 시계하면 일본 세이꼬입니다. 미국에 가도 일본 전자제품이 많고 자동차도 일본 자동차가 많습니다. 사진기도 거의 다 일본제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좋은 것은 다 일본제이고 미국도 다 일본제이니, 일본 사람들이 세계에서 돈을 다 벌어 오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어려운 때를 당했는데 몇 백 만 불, 몇 천 만 불 주고 치시마 열도를 다시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조금 주겠다니까 러시아가 대단히 섭섭해 했습니다. 그래서 엘친이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방문하겠다고 하다가 일본은 안 가고 한국만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거 잘 됐습니다. 일본 안 가고 한국만 와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한국만 잘 된 것입니다.

시글락도 본래 유대 나라 땅이었다가 점령당했는데, 강제로 가져갔는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나라와 붙어 있으니까 그것은 언젠가 돌려주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하여 이번에 시글락을 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땅을 골라서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유대 접경이니까 유대 나라와 같습니다. 조금 나가면 유대 나라와 연락하기도 좋고 앞으로 유대 나라 왕이 될 때에도 좋은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좋은 곳을 골라 주신 것입니다. 쫓겨서 피난 생활을 다니지만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주시고 가장 좋은 장소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남의 것을 가지고 있으면 돌려 줘야 합니다. 남의 책 얻어간 것을 돌려주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나도 이전에 남의 책 하나를 빌렸는데 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책꽂이에 그 책을 볼 때마다 ‘아! 이것은 남의 책이다, 남의 책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을 여러 해 후에 만났습니다. 그래서 “당신 책 빌려온 것이 우리 집에 있으니까 가져가라”고 하면서 얼른 보내줬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자기 집에 남의 것이 있나 한번 보십시오. 그릇들도 남의 것 있나 보세요. 기도원이라고 쓴 것 자기 집에 가져다 놓고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뒤에 기도원이라고 썼는데 가져오지 않고 자기 집에 가져다가 씁니까? 또 기도원 신주머니를 자기 집에 가져간 사람도 있습니다. 광목 천에다 창광 교회라고 써 놓았는데 그것을 가져다가 바지에 기워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창광 교회라고 쓴 것을 그대로 기워 입고 다닌다고 합니다. 왜 창광 교회 신주머니를 가져다가 바지에 기워 입고 다닙니까? 바지에 정 기워 입을 것이 없는 사람은 와서 말을 하십시오. 기울 천을 좀 주겠습니다. 신주머니를 가져다가 옷을 기워 입는 것이 말이 됩니까?
내가 그 말을 교육자 수양회에서 했더니, 바지에 써 붙이고 다니니까 어디가나 창광교회를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기도원 바가지 가져다 쓰고, 그릇 가져가고, 교회 그릇 가져가고, 신주머니 가져다가 옷 기워서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양심을 안 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습니다. 다 교회로 반납해야 합니다. 

2. 다윗이 유다 남방을 침노함

본문 8절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거민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아말렉을 침노했습니다. 여기에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이 나왔는데, 이곳은 지방
도시 같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술이나 기르스는 아말렉의 한 지방이고 아말렉을 침노했다고 하면 맞습니다. 다윗이 아말렉을 침노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침노 한 것 같습니다.
아말렉은 본래부터 이스라엘의 원수였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이스라엘의 원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다 진멸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한번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3절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을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했는데 사울 왕이 다 진멸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또 다윗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도록 명령하신 것 같습니다.
사울이 하다가 못다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들어서 아말렉을 어느 정도 진멸했는데 못다 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이 다 못한 것을 다윗을 시켜 진멸하도록 명령하신 것 같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하다가 못다 한 아말렉을 다윗이 가서 진멸한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 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약대와 의복을 취하고 돌아와서 아기스에게 이르매”라고 하였습니다. 다 죽였습니다. 남녀를 살려두지 않고, 양과 소와 나귀 약대와 의복을 취해서 돌아 왔습니다. 사울은 죽이다가 남겼지만, 다윗은 다 죽였습니다. 하나도 살리지 않고 죽였습니다. 백성들을 다윗이 다 죽이고 돌아왔습니다. 사울은 다 죽이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는데, 다윗은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신 명령을 완전히 다 이루었습니다. 아메렉을 다 죽여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고 아기스 왕에게 돌아 왔습니다. 또 여러 노략 물을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양과 소와 나귀와 약대와 의복을 취해서 돌아 온 것 같습니다. 아마 양과 소를 죽이라는 명령은 이때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남녀를 다 죽이라는 명령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략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다윗이 600명이 생활해야 되니 생활비가 상당히 많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얻은 것을 가지고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주십니다. 

3. 다윗의 블레셋 생활

본문 10절에 “아기스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다윗이 가로되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말렉을 침략한 것은 말하지 않고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과 겐 사람의 남방을 침략했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아말렉을 침략했다고 하면 아기스 왕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유다 남방에도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애굽 가는 길가에도 많이 살았고 유다 남방에도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말렉 본 지방을 침략한 것은 말하지 않고, 유다 남방에 섞여 사는 아말렉 사람들의 침략만을 말한 것 같습니다. 두 가지를 했을 때에 한 가지만 말한 것입니다. 왕이 괜히 노할 만한 일, 섭섭할 일을 말해서 화를 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다 남방에 가서 침략한 것만 말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다 말하면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십일조 드린다고 안 믿는 식구들에게 말할 필요 없습니다. 연보한다고 하면 됩니다. 얼마 하느냐고 물어보면 그것은 알아서 뭐하겠습니까? 얼마 안 한다고 하고, 십일조 같은 것도 말하지 말고, 건축연보 같은 것도 그저 연보한다는 것 정도만 말하고 액수는 말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험에 들 만 한 것은 말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괜히 다 말해서,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뽑아’ 화를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윗이 유다 겐 사람의 남방을 침략했습니다. 그것도 하긴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한 것은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말하면 아기스 왕이 노할까봐 말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본문 11절에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행사가 이러하여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남녀를 살려주지 아니한 것은 그들을 살려서 데려가면 그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살려서 가드로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또 블레셋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다윗이 이와 같이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빼앗아 왔다’는 말을 들을 까봐 아예 안 데려 갔습니다. 안 데려 가면 그런 말을 안 들을 것 아닙니까? 데리고 가서 말을 들을 만한 사람은 안 데려 가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모든 면에 사건이 안 생기도록 사전에 깊이 생각해서 예방을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말을 듣지 않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괜히 데리고 가서 말 들을 필요가 있습니까? 무엇이나 안하면 편안할 것을 해서 말 듣는 것이 많습니다. 안 데려 갔으면 편안할 것을 데리고 가서 사고만 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사전에 깊이 생각해서 방지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러 갈 때도 사환을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산 아래 두고 갔습니다. 데리고 가면 사고가 납니다. 사환을 데리고 가면 이삭을 결박해서 죽이려고 할 때에 가만히 있겠습니까? 사환들이 죽이지 못하게 붙잡을 것입니다. 사환들이 와서 아
브라함을 붙잡으면 어떻게 제사를 드리겠습니까? 그래서 사환을 안 데리고 갔기 때문에 올라가서 제사 드릴 때에 지장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전에 모든 것을 잘 처리하고 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12절에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하였으니 그는 영영히 내 사역자가 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윗사람이 자기를 믿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윗사람이 의심하게 하면 안 됩니다. ‘다윗은 틀림없다. 다윗은 분명히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고 왕을 위하는 사람이다’라고 믿게 했습니다. 또 믿었습니다. 다윗이 믿을 만한 모든 일을 했고, 또 윗사람 아기스 왕은 다윗을 믿고 영영히 나의 사역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은
서로 신임하고 도와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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