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9일 일요일

사무엘상 29:1-11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
사무엘상 29:1-11

1블레셋 사람들은 그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쳤더라 2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은 수백씩 수천씩 영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3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가로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4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 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5그들이 춤추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이 다윗이 아니니이까 6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군중에 출입하는 것이 나의 소견에는 좋으나 장관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7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
서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게 말라 8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의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나로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9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10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로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11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로 더불어 일찍이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
레셋 사람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1. 다윗이 블레셋 군에 가담하게 된 배경

본문 1-2절에 “블레셋 사람들은 그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쳤더라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은 수백씩 수천씩 영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전쟁하러 나갔습니다. 사무엘상 28장 1-2절에 “그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쳐서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한가지로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이 종의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로 영영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전쟁이 그 전쟁입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군대를 모집하는데 블레셋 왕 아기스가 다윗에게 함께 나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블레셋 왕의 말을 따라서 블레셋 군대에 합류하여 나가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수백씩 수천씩 영솔하여 나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사울 왕과 함께 이스르엘에 진을 쳤고 블레셋 사람들은 군대를 영솔하여 수백씩 수천씩 이스라엘을 치러 나가는 것인데 다윗이 블레셋 군대에 속하여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나가는 것이 옳습니까? 그러나 지금 다윗은 블레셋 나라에 망명해 있는 때이고 블
레셋 나라에 피난 가 있는 때입니다. 블레셋 왕 아기스가 다윗의 망명을 받아주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에게 시글락이라는 곳을 주어 거기서 평안히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 블레셋이 전쟁에 나가게 되자 왕의 수하에 있는 다윗도 당연히 함께 가자고 하므로 도리 없이 블레셋
왕을 순종해서 블레셋 군대에 가담하게 된 것입니다. 그 나라에 있을 때에는 그 나라의 법을 순종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마태복음 22장 21절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것입니다. 가이사는 로마의 황제로 그때 유대가 로마의 속국이 되어 그 나라에 속해 있는 이상 가이사에 대한 의무를 다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다윗도 블레셋 나라에 가 있는 이상 블레셋 통치 하에 있으므로 블레셋 나라에 대한 의무를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4-7절에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
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포로 잡혀 간 유대 사람들에
게 하나님께서 그 성이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유다를 점령하고 포로로 잡아간 바벨론이지만 바벨론이 망하기만을 기다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 때에도 로마 나라가 망하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고 가이사 황제에게 의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생활 동안에도 평안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 성이 평안해야만 너희도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나 우리가 있는 성이 평안하기를 힘쓰고 서울이면 서울, 한국이면 한국이 평안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왕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였으므로 대통령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나라가 평안해야 자기도 평안하고 교회도 평안한 것입니다. 또 순종해야 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나라에 있는 동안에 블레셋 나라가 평안하기를 힘썼고 왕이 전쟁하러 가자고 하므로 순종하여 나갔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과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려고 나갔겠습니까? 다윗이 하나님과 같이하여 지혜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려고 나가
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계시로 알았든지 그 대세를 봐서 알았든지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에 패전한다는 것과 사울이 이번 전쟁에서 죽는다는 것을 다윗이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자기가 지금 아기스 왕과 함께 전쟁에 나가지만 블레셋 장군들이 평소에 자기를 시
기하고 싫어하니 일단 나가도 돌려보내지 않을까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알았을 것 같은데 다윗의 짐작대로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을 싫어하였습니다.

2. 블레셋 방백들의 요구

본문 3-4절에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가로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 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아기스 왕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여 다윗이 망명해왔기 때문에 다윗과 사울 왕은 영영 원수가 되어 다시 합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사울이 다윗의 원수이니 다윗이 전쟁에 나가 분명히 사울과 그 군대를 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블레셋 방백들은 다윗이 오히려 자기들의 머리를 잘라 사울에게 바치고 화합할 염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아주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팔일오 이후에 서북 청년들이 이북에서 공산당들에게 숙청을 당해 대한민국에 많이 쫓겨 왔는데 대한민국 군대가 이들을 앞장세우면 이북 공산당들을 더 잘 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을 모아 군대를 조직했습니다. 그렇게 조직한 그 군대
가 제일 강한 군대로 서북 청년들만 들어가면 공산당들이 다 맥을 못추었습니다. 서북 청년들의 입장으로 볼 때에는 이북의 형제와 친척들이 다 공산당으로 끌려 나왔을 것이므로 월남한 서북 청년들은 자기 형제와 마주하게 되는데도 제일 싸움을 잘 싸웠던 겁니다. 아기스
왕도 이런 식으로 생각한 것 같으나 블레셋의 장군들은 그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블레셋 나라의 신세를 지고 있는데 대장들의 머리를 잘라가지고 갈 형편은 안 됩니다.

본문 5절에 “그들이 춤추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이 다윗이 아니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예전에 골리앗 대장을 죽이고 다윗이 돌아올 때에 이스라엘 여자들이 한 이 말을 블레셋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것을 물어보면 다 잊어버리고 아는 사람이 얼마 없을 텐데 사울과 블레셋 사람들은 언제나 이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보다 더 힘센 장수가 다윗이라는 것을 전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정은 원수가 더 잘 알고 있고 모든 형편도 원수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진실은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모두 다 알게 되어 있고 또 마귀는 이렇게 다윗과 같이 여호와의 전쟁에 승리한 사람을 죽이려고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다윗 같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 많은 마귀의 군대를 물리친 그런 능력 있는 종을 언제든지 죽이려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삼가 조심해서 나가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은혜로 역사하심

본문 6-7절에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군중에 출입하는 것이 나의 소견에는 좋으나 장관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서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게 말라”고 하였습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신임하고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려고 많이 힘을 썼습니다. 앞에서도 아기스가 다윗을 영영히 자기 경호원을 삼겠다고 한 것처럼 다윗을 전적으로 신임하게끔 하나님께서 해놓으신 것입니다
.
본문 9절에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라고 하였습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한 줄 알게 되고 전폭으로 다윗을 신임하고 아주 좋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블레셋 방백이나 장
관들은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을 좋아하지 않고 의심했습니다. 또 시기도 있어 그를 반대하여 이스라엘을 치는 전쟁에 빠지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다니엘 1장 9절에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 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포로 잡혀간 다니엘에게 좋은 환관장을 만나게
하셔서 바벨론에서 왕이 먹는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고 3년간 채식을 하며 거기에서 믿음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셔야 합니다. 또 에스라 1장 1-3절에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
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 잡혀간 지 70년이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 고레스라는 선한 왕을 내서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70년 전의 느부갓네살 왕은 성전을 불사르고 유다 백성을 다 포로로 잡아 갔는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선한 왕을 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은혜와 긍휼을 베풀도록 만드셔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기스 왕이 다윗에게 은혜와 긍휼을 많이 베풀게 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시려고 그를 감동시키신 것입니다.

4. 하나님과 함께 한 다윗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안다’고 아기스 왕이 말하였는데,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이 하신 것을 그 왕이 안 증거입니다. 사무엘상 18장 12절에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고 하였고 14절에도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28절에도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행하는 자임을 다들 알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4-35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였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다윗은 사자나 곰과 싸울 때 하나님께서 같이 하셨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또 골리앗과의 대전에서도 하나님께서 같이 하셨기
때문에 다윗이 믿음으로 나가서 이겼습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윗 집에서 나실 것을 다윗에게 알게 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과 늘 동행하셨기 때문에 아기스 왕도 그것을 보고 알았고 사울 왕도 알았습니다. 사무엘상24장 20절에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이 하시므로 전쟁에 나가면 다윗이 거느린 군대가 제일 강하고 지혜롭게 행하는 것을 사울이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그러한 다윗을 죽이려고만 하지 말고 사용했으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쫓다가 굴속에서 잠든 사울을 다윗이 보고 쉽게 죽일 수 있었지만 옷자락만 베고 죽이지 않았으며 또 사울이 들에서 잠들어 누운 것을 보았을 때도 죽일 수 있었으나 그의 창과 물병만 가져갔습니다. 그 일로 사울도 깨달아 다시는 내가 너를 해하지 않겠다, 네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네게 복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때 다시 다윗을 데려다가 자기 수하에 두었더라면 이번에 블레셋 군대가 왔을 때 다윗이 다 물리치고 남을뻔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시기하는 마음, 욕심, 인간의 생각에 빠져 끝내 다윗을 죽이려 하자 다윗이 블레셋으로 피해 가는 바람에 블레셋 군대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가장 강한 군대장관을 잃어버렸으므로 블레셋 나라가 쳐들어올 때에 나가서 막을 수가 없고
자기가 나갔다가 이번에 죽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만 하지 말고 화합했더라면 이스라엘 나라가 잘되고 또 자기도, 요나단도 안 죽을 뻔했는데 욕심 때문에 다윗을 잃어버렸습니다. 제일 강한 군대장관을 떼다가 적군인 블레셋 군대에게 붙인 꼴이 되었으니
얼마나 손해가 많습니까? 그러니 믿음으로 하지 않고 욕심으로 하면 자기에게 제일 필요하고 방패가 되고 보호해줄 그런 사람을 원수에게 붙이고 마는 것입니다. 인본주의로 하면 그만큼 손해가 납니다. 

한편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블레셋으로 보내시는 줄 생각하고 간 것입니다. 아무리 사울의 신하로서 충성을 다 하고 사울에 대한 선한 본심을 증명해 보여도 사울이 끊임없이 죽이려고 하니 거기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
는 사울로부터의 위해(危害)를 피해 블레셋에 잠시 망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옮겨 주신 줄로 알고 블레셋으로 가서 거기 있는 동안에는 블레셋 왕을 잘 섬기고 그 성이 평안하기를 힘쓰고 왕을 거역하지 않으려 힘을 쓴 것입니다. 그러자 블레셋 왕 아기스도 하나님을 섬기는 다윗이 언제나 정직하고 선하므로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 언제나 선한 양심을 쓰는 신앙, 악한 일을 멀리하려고 힘을 쓰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늘 자신이 있는 성이 평안하기를 힘쓰며 기도해주고 윗사람을 순종하여 잘 받들고 자기 직무에 충성해야 합니다. 맡겨진 일에 생명을 걸고 무엇을 하든지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잘 따르고 다윗처럼 하나님과 같이 하는 신앙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5. 아기스가 다윗을 돌려보냄

본문 7-8절에 “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서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게 말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의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나로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말은 자신을 신임해준 아기스에 대한 답례인사입니다. 본심과 다른 말을 한 것이 문제입니다만 다윗이 전에 유대에서 사울을 쉽게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어도 안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블레셋 사람과 나간다고 해서 사울과 싸우겠습니까? 이것은 다행히 아기스 왕이 돌아가라고 하니 세상적 인사로 말한 것입니다. 

본문 9-11절에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로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로 더불어 일찍이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언제 떠나라고 하였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깨기 전에 그들보다 먼저 일어나 떠나
라는 것입니다. 블레셋 군대가 깬 다음에 괜히 그들 눈에 띄어 신경을 건드리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블레셋 군대가 다 일어난 다음에 다윗 사람들이 일어나 웅성웅성하며 소란을 피우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가뜩이나 본문 4절에 ‘노했다’고 했는데 더 노할
것입니다. 그러니 신경 건드리지 말고 그 사람들이 깨기 전에 새벽에깨서 밝거든 곧 떠나라고 한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정신이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생활,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지 말고 신경 쓰이지 않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게 하면서도 얼마든지 신앙 생활할 수 있습니다. 공연히 남의 신경을 건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남의 신경 건드리지 않게 새벽에 기도할 수 있고 성경 볼 수 있는데 새벽에 안 하고 늦게 일어나서 남들 일하는데 나는 성경 봐야 하므로 일할 시간 없다, 기도해야 하므로 일할 시간 없다 하면 게으르게 사는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성경 보고 미리 다 해놓고 세상 일도 함께 열심히 하면 다른 사람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 일하는데 거슬리니까 온 식구가 다 예수 믿기 때문에 틀렸다, 예수 믿으니까 게을러졌다, 일할 줄 모른다 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일도 더 잘하고 더 부지런하고 남보다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새벽에 믿는 일 하는 것을 배워서 하나님의 모든 일에 지장이 없도록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