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 300명 용사
사사기 7:1-23
1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 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4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 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6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8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9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10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11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 기드온이 이에 그 부하 부라를 데리고 군대가 있는 진 가에 내려간즉 12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13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14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 15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16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17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가에 이르러서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18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19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 명이 이경 초에 진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20세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21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22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23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더라
사사기 7:1-23
1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 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4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 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6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8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9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10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11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 기드온이 이에 그 부하 부라를 데리고 군대가 있는 진 가에 내려간즉 12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13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14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 15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16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17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가에 이르러서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18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19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 명이 이경 초에 진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20세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21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22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23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더라
1.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삼백 명 군사를 선별케 함
두려워서 떠는 자를 돌려보내심
본문 1-3절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 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기드온 300명 용사가 아주 귀중합니다. 기드온이 사사가 되었는데, 그 때 미디안 사람들이 침략해 왔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침략해 왔는데 바다 모래와 같이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왔습니다. 그 때에 사사 기드온이 마주 나가 싸우려 군사를 모집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삼만 이천 명이 왔습니다.
미디안 군대는 군사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약대가 얼마나 많은지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다고 하였습니다(12절).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은 삼만 이천 명이 나와서 이렇게 많은 군대를 대적하여 싸우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기드온에게 지금 있는 군사가 너무 많다고 하시며 삼만 이천 명을 다 데리고 나가 싸우면 이긴 다음에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고 할까봐 전부 가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군사가 많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고, 군사가 적다고 지는 것도 아닙니다. 군사를
많이 데리고 가서 이기면 자기들의 힘으로 이겼다고 하고, 자기들의 손이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할까봐 다 돌려보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니 가서 전쟁하다가 죽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있는 이만 이천 명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두려워 떠는 자는 왜 두려워 떨었겠습니까? 돌아간 사람들은 전쟁에 나가면 죽을지도 모르니까 즉, 자기 생명이 우상이 된 고로 두려우면 가라는 말에 좋아하며 즉시 돌아가 버렸고 남은 만 명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든지 두려워 떠는 자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런 자
는 하나님께서 안 쓰십니다. 요한계시록 20장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즉 지옥에 들어갈 자중 제일 첫째가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 군대가 뒤에서 따라오니까 다 두려워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
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하시는 구원역사를 보지 못 하고 하나님 나라 일에도 그런 사람은 쓰지 못
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일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전쟁에서 미디안 군사는 이스라엘의 군사보다 몇 배나 더 많기 때문에 맞서 싸우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쓰시지 두려워하는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고,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떠나면 무얼 먹고 살까 염려하지 말고 또 뜨거운 사막을 통과해야 할 때에 어떻게 그 뜨거운 사막을 통과할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두려워하면 가다가 쓰러지고 맙니다. 아말렉이 싸우자 할 때도 두려워하지 말 라고 하셨고 또한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안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안도와 주시면 다 실패하고 패망합니다.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극히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뜨거운 사막도 구름기둥으로 덮어서 무사히 통과하게 해주시고 물이 없는 광야에서도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해주셔서 갈증을 다 없애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여주실 것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생명을 내놓고 나가야 합니다.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고 나가는 신앙 이것이 삼백 명 용사의 첫째 조건입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낙제입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하나님의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물가에서 무릎을 꿇고 입을 대고 마시는 자를 돌려보내심
이제 일만 명이 남았는데, 두 번째 남은 일만 명도 많으니까 시냇가에 내려가서 물을 마시게 하라고 하셨고 냇가에서 물을 마실 때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마시는 자는 돌려보내고 물을 손으로 떠서 핥는 자만 데리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일만 명이 남았는데, 두 번째 남은 일만 명도 많으니까 시냇가에 내려가서 물을 마시게 하라고 하셨고 냇가에서 물을 마실 때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마시는 자는 돌려보내고 물을 손으로 떠서 핥는 자만 데리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5-6절에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고 하였습니다. 군사 일만 명이 내려가서 물을 마시는데 그 중에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만 데리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물에다 입을 들이 대고 소와 같이 마신 사람은 다 돌려보내라 하셨습니다.
입을 물에 들이 대고 마시는 사람들은 정신무장이 안되어 있고 아직 신앙무장이 안 되어 있습니다. 입을 강에 쿡 들이 대고 물을 마시다가 원수가 와서 꾹 누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 죽을 것입니다. 물을 마시는 동안에 원수가 오면 싸울 수가 없습니다. 무릎을 꿇고 입을 들이 대고 마시는 사람은 사명을 바로 알지 못한 사람입니다. 물론 나가자고 해서 전쟁에 나오긴 나왔고 싸우라고 하면 싸우려고 나왔으나 먹는 것이 첫째이고, 사명감이 첫째가 되지 못 했습니다. 원수와 더불어 싸우는 정신이 미약합니다. 이런 사람을 데리고 나가면 하나님
의 전쟁에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물을 핥아먹는 사람을 들어서 승리케 하여 이스라엘 구원 운동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삼백 명 군사를 선별함
그러면 왜 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만 데리고 가라고 하셨을까요? 물을 손으로 떠서 혀로 핥아먹은 사람은 정신무장이 된 것이고 신앙무장이 된 사람들 입니다. 삼백 명은 물을 마실 때에도 자기 사명감을 가지고 마셨고 ‘물을 마시는 동안이라도 원수가 오지 않을까’ 하면서
원수가 오는 것을 살피면서 물을 마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먹긴 먹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먹은 것이고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먹은 것 입니다. 먹는 것도 싸움입니다. 손으로 물을 떠서 혀로 핥아먹으면서도 눈은 사방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쟁,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먹었습니다.
그러면 왜 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만 데리고 가라고 하셨을까요? 물을 손으로 떠서 혀로 핥아먹은 사람은 정신무장이 된 것이고 신앙무장이 된 사람들 입니다. 삼백 명은 물을 마실 때에도 자기 사명감을 가지고 마셨고 ‘물을 마시는 동안이라도 원수가 오지 않을까’ 하면서
원수가 오는 것을 살피면서 물을 마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먹긴 먹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먹은 것이고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먹은 것 입니다. 먹는 것도 싸움입니다. 손으로 물을 떠서 혀로 핥아먹으면서도 눈은 사방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쟁,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먹었습니다.
로마서 14장 6-8절에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
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이나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먹어도 주를 위해서 먹고, 마셔도 주를 위해서 마시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
도 주를 위해서 죽으려는 것이 바울의 신앙입니다. 입을 강에 대고 먹는 것은 자기의 소욕대로 먹는 것입니다. 전투의 정신이 없고 원수가 올 것을 살피는 것도 없이, 자기를 위해서 먹는 것이 첫째입니다. 그러나 물을 핥아먹는 사람들은 사는 것과 먹는 것이 첫째가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먹고, 살아도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죽어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자기사명이 중대한 사명입니다. 자기들의 어깨에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이 다 달렸습니다. 자기들이 이기면 이스라엘 백성이 살고, 자기들이 지면 백성도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으면서도 사명감을 갖고 싸우는 정신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물을 핥아먹은 사람은 자기 사명을 언제나 크게 느끼고, 1분 1초라도 방심 부주의하지 않고, 먹는
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이나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먹어도 주를 위해서 먹고, 마셔도 주를 위해서 마시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
도 주를 위해서 죽으려는 것이 바울의 신앙입니다. 입을 강에 대고 먹는 것은 자기의 소욕대로 먹는 것입니다. 전투의 정신이 없고 원수가 올 것을 살피는 것도 없이, 자기를 위해서 먹는 것이 첫째입니다. 그러나 물을 핥아먹는 사람들은 사는 것과 먹는 것이 첫째가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먹고, 살아도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죽어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자기사명이 중대한 사명입니다. 자기들의 어깨에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이 다 달렸습니다. 자기들이 이기면 이스라엘 백성이 살고, 자기들이 지면 백성도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으면서도 사명감을 갖고 싸우는 정신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물을 핥아먹은 사람은 자기 사명을 언제나 크게 느끼고, 1분 1초라도 방심 부주의하지 않고, 먹는
것에 도취되지 않고 나가는 사람들 입니다. 그들의 목표는 이스라엘 구원 운동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든 원수가 들이닥칠 것을 예상하고 물을 핥아먹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기드온 삼백 명 군사와 같은 자를 사용하심
오늘날도 이스라엘 구원 운동에 이런 사람을 들어서 사용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배워야 합니다. 첫째 사명감이 철저해야 됩니다. ‘내가잘 싸우면 이스라엘이 산다. 내가 여기서 승리하지 못하면 이스라엘이 다 죽는다’는 사명감을 여러분들도 가져야 합니다.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이기면 하나님의 백성이 살 수 있고, 원수를 물리칠 수 있고,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지 못하면 나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다 망합니다. 그 중대한 책임이 다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다 그리스도의 정병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에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은 다 그리스도의 군대라고 했습니다. 매일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물을 마실 때에도 선한 싸움을 싸우는 정신을 가지고 마셔야 되고, 또 하나님을 위해서 먹어야 되고, 또 원수 마귀와 더불어 싸우며, 승리의 길을 걸어가면서 먹어야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구원 운동의 승리로 모든 사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업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위해서 사업을 하고, 사업하면서도 이스라엘 구원 운동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늘 싸우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승리하여, 결과는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이용당해야 합니다. 또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2. 기드온이 적진을 정탐하고 용기를 얻음
본문 9-12절에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적진에 들어가 보라 하심으로 기드온이 부하를 데리고 미디안 진에 들어갑니다. 가보니, 군사가 바다 모래와 같이 많았지만 밤이라서 전부 다 잠자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쳐들어 갈 때에는 파수꾼의 체번할 때(19절)라고 하였는데,
이때는 파수꾼도 모두 잔 것 같습니다.
본문 9-12절에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적진에 들어가 보라 하심으로 기드온이 부하를 데리고 미디안 진에 들어갑니다. 가보니, 군사가 바다 모래와 같이 많았지만 밤이라서 전부 다 잠자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쳐들어 갈 때에는 파수꾼의 체번할 때(19절)라고 하였는데,
이때는 파수꾼도 모두 잔 것 같습니다.
본문 13-14절에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미디안진에 가서 그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기에, 기드온이 부하 부라를 데리고 미디안진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그곳 사람 하나가 꿈을 꾸고 나서, 동무에게 그 꿈 얘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부대에서 보리떡 한 덩이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들어오더니 장막이 다 무너졌다 하자 듣던 이가 그것은 기드온이 들어와 미디안을 멸망시키는 꿈이라고 해석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드온이 그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기게 해주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기드온이 보리떡처럼 피부색깔도 어둡고 잘 생기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보리떡은 값싼 하급 떡인데, 예수님께서 보리떡 5개를 떼어 오천 명을 먹이신 것처럼 보리떡과 같은 사람
이라도 하나님께 바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명한 사람을 들어서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보리떡이라도 바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리떡과 같은 기드온이지만 그 엄청난 수의 미디안 군대에 맞서서 하나님께서 지시 하신대로 왼손에는 항아리, 오른손에는 나팔을 들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켜서 감추고 미디안군대를 포위하였습니다. 본문 20절에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미디안군대가 밤에 자다가 갑자기 밝은 횃불과 또 항아리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에 혼비백산하며 자기들끼리 다 찔러 죽이며 도망쳤습니다.
3. 기드온의 전법
빈 항아리를 들고 감
본문 16-21절에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가에 이르러서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 명이 이경 초에 진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라고 하였습니다.
빈 항아리를 들고 감
본문 16-21절에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가에 이르러서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 명이 이경 초에 진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라고 하였습니다.
나팔과 빈항아리와 횃불을 줬습니다. 항아리 안에다 횃불을 켰으니까 멀리서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횃불이 있지만 항아리에 가리어서 빛이 새 나가지 않았습니다. 갈 때에는 세대로 나눠서 갔는데 기드온과 같이 백 명이 가고, 또 다른 두 대가 각각 백 명씩 갔는데 이 세 대가
미디안 군대 사면을 에워싸고 세 대가 다 일시에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는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는 나팔을 들고 불며 외쳤습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라고 외쳤습니다. 외치니까 적군이 다 도망치고 자기네들끼리 찔러 죽여서, 완전히 전멸했습니다. 이
것이 하나님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입니다. 항아리는 깨뜨려야 되고 횃불을 들어야 됩니다. 왼손으로 횃불을 들고 항아리를 깨고, 오른손은 나팔을 들고 불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미디안 군대 사면을 에워싸고 세 대가 다 일시에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는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는 나팔을 들고 불며 외쳤습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라고 외쳤습니다. 외치니까 적군이 다 도망치고 자기네들끼리 찔러 죽여서, 완전히 전멸했습니다. 이
것이 하나님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입니다. 항아리는 깨뜨려야 되고 횃불을 들어야 됩니다. 왼손으로 횃불을 들고 항아리를 깨고, 오른손은 나팔을 들고 불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항아리는 무엇을 뜻합니까? 항아리는 질그릇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고 하였는데 질그릇은 우리의 인간성, 육체를 가리킵니다(고후 4:7). 그러므로 항아리를 깨뜨리는 것은 ‘내 자신’, ‘나’라는 것을 깨뜨려 버리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도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했다’고 하였습니다(고전 9:27).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하고 날마다 자신을 죽이고 자신을 깨뜨려 내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을 깨뜨려 내버리지 못하고 죽이지 못하면 가다가 반드시 자기 때문에 자기가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자기를 죽이고 겸손을 배우고 낮아지는 것을 배우고 자기가 깨져야 됩니다. 깨지지 않으면 자기에게 조금만 불리한 일이 생겨도 속에서 자기라는 것이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도 손해고 하나님의 전쟁에도 손해를 주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를 줍니다. 자기 하나를 죽이지 못해서 하나님의 일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바울이 날마다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 것처럼 우리도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항아리 하나 깨뜨리지 못해서 횃불을 밝히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항아리가 깨져야 속에 있는 횃불이 밝아집니다. 또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자기’를 죽이는 것을 힘써 해 나가야 됩니다.
자신을 깨뜨려 내버리지 못하고 죽이지 못하면 가다가 반드시 자기 때문에 자기가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자기를 죽이고 겸손을 배우고 낮아지는 것을 배우고 자기가 깨져야 됩니다. 깨지지 않으면 자기에게 조금만 불리한 일이 생겨도 속에서 자기라는 것이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도 손해고 하나님의 전쟁에도 손해를 주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를 줍니다. 자기 하나를 죽이지 못해서 하나님의 일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바울이 날마다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 것처럼 우리도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항아리 하나 깨뜨리지 못해서 횃불을 밝히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항아리가 깨져야 속에 있는 횃불이 밝아집니다. 또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자기’를 죽이는 것을 힘써 해 나가야 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죽이는 것이 믿음을 쓰는 것입니다. 육체는 깨뜨리고 신앙 양심을 쓰고 영의 인도를 따라 가라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따라가야 합니다. 손해가 나든지, 멸시와 천대를 당하든지, 매를 맞든지, 감옥에 갇히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인
도를 계속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도 살고 이스라엘 백성도 살릴 수가 있습니다. 여기 저기 얽매이고 자기 육신의 일에 얽매이고 세상에 얽매이고 물질에 얽매이고 따라가지 못하면 그 항아리를 깨뜨리지 못합니다. 빛이 나오지 못합니다. 빛이 나오지 못하니까 자기도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살리지 못하고 이스라엘 구원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빛이 나와야 됩니다.
도를 계속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도 살고 이스라엘 백성도 살릴 수가 있습니다. 여기 저기 얽매이고 자기 육신의 일에 얽매이고 세상에 얽매이고 물질에 얽매이고 따라가지 못하면 그 항아리를 깨뜨리지 못합니다. 빛이 나오지 못합니다. 빛이 나오지 못하니까 자기도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살리지 못하고 이스라엘 구원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빛이 나와야 됩니다.
빈 항아리 안에 횃불을 넣고 들고 감
횃불을 든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와 중생한 영혼, 영의 역사를 따라 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20장 22절에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심령에 매임을 받아서 올라간다는 것은 심령의 인도를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신앙 양심을 쓰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고 중생한 영을 써서 영의 인도를 따라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고, 영의 세계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에 ‘하늘에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영이 열린 것입니다. 영의 세계를 바라본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영의 세계를 바라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 신앙 양심을 써서 양심을 쓰는 사람,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사람이 횃불을 높이 드는 사람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양심을 똑바로 쓰라고 하셨습니다. 양심을 써서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 하면서 아닌 것은 떠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 횃불을 드는
것 입니다. 그 사람들은 영의 역사가 강합니다. 영으로 사는 사람이 됩니다. 육신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대로 따르며 신앙 양심을 써서 양심의 인도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심령의 매임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심령 속에서 감동하시는 대로 따라
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죽을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 갔습니다. 이것이 신앙 양심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세상 물질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영이 사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횃불을 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진리입니다.
한 손에는 나팔을 들고 불면서 나감
에스겔 33장 2-4절에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33장 2-4절에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파수꾼의 나팔을 불라’고 했습니다. 파수꾼의 나팔을 불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라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와서 밝히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고, 말씀에 옳은 것은 옳다고 하며 말씀을 세워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제 이 일을 우리가 해야 됩니다. 나팔 부는 일, 말씀을 세워 나가는 일, 지금 적군(마귀)이 처 들어오려고 하는데 나팔을 불어서 적군이 들어온다고 알려야 합니다. ‘죄가 들어온다’, ‘마귀가 들어온다’고 알리고 ‘이것이 옳으니 이리로 가야 산다’고 나팔을 불면 다른 사람들
이 듣고 다 정신을 차립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몰랐었는데 이것이 죄구나’하고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나팔 부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정 때에 신사참배를 강요했는데 이기선 목사님이 사방을 다니면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전국에 다니면서 신사참배가 죄니까 신사참배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팔을 분 것입니다. 그 나팔 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래서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은 사람
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일본 형사들이 이기선 목사님을 잡아다가 ‘왜 신사참배를 반대하느냐? 다시는 신사참배 반대하지 않겠다고 하면 풀어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나와서는 전국으로 돌아다니면서 우상섬기면 죄니까 우상 섬기지 말라고 하면서 나팔을 불며 다녔습니다. 그러자 또 잡아가서 ‘신사참배 하지 말라고 안 하겠다 하고서 왜 또 하느냐’고 하니 ‘신사참배 하지 말라는 말 한 마디도 한 적 없다, 우상 섬기지 말라는 말만 했다’고 하니까 그 말도 하지 말라 하자 성경에 우상 섬기지 말라 했으니 안 할 수 없다며 나와서 또 내내 마찬가지로 돌아다닌 것입니다. 여러 해 동안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나팔을 부는 사람이 있어야 죄인 줄 깨닫습니다. 나팔 부는 사람이 없으면 죄인 줄 모릅니다.
이 듣고 다 정신을 차립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몰랐었는데 이것이 죄구나’하고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나팔 부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정 때에 신사참배를 강요했는데 이기선 목사님이 사방을 다니면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전국에 다니면서 신사참배가 죄니까 신사참배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팔을 분 것입니다. 그 나팔 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래서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은 사람
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일본 형사들이 이기선 목사님을 잡아다가 ‘왜 신사참배를 반대하느냐? 다시는 신사참배 반대하지 않겠다고 하면 풀어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나와서는 전국으로 돌아다니면서 우상섬기면 죄니까 우상 섬기지 말라고 하면서 나팔을 불며 다녔습니다. 그러자 또 잡아가서 ‘신사참배 하지 말라고 안 하겠다 하고서 왜 또 하느냐’고 하니 ‘신사참배 하지 말라는 말 한 마디도 한 적 없다, 우상 섬기지 말라는 말만 했다’고 하니까 그 말도 하지 말라 하자 성경에 우상 섬기지 말라 했으니 안 할 수 없다며 나와서 또 내내 마찬가지로 돌아다닌 것입니다. 여러 해 동안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나팔을 부는 사람이 있어야 죄인 줄 깨닫습니다. 나팔 부는 사람이 없으면 죄인 줄 모릅니다.
요새는 주일날을 범하면 죄니까 범하지 말라고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나도 미국에 가서 나팔을 불고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일을 범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죄다’, ‘추도 예배하면 죄다, 추도 예배하지 않아야 한다’고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나팔을 불
면 그 말을 듣고 ‘이제는 안 해야 되겠구나, 우상의 제물을 안 먹어야 되겠다, 이제는 주일날을 철저하게 지켜야 되겠다’고 깨닫게 됩니다.
나팔을 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교단에서는 말씀을 세워 나가고, 말씀을 증거하고, 각 처에 교회를 세우고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에도 선교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어야 바로 믿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저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고 죄이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팔 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일을 잘 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승리하며 나아가야함
나팔을 불기 전에 먼저 준비할 것이 무엇입니까? 물을 마실 때에 손으로 떠서 핥아 먹는 사람처럼, 사명감이 확실해야 합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을 어깨에 지고 있다, 내가 이기면 모두가 살고 내가 지면 다 죽는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주일학교 반장들도 사
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잘하면 아이들이 살고 내가 잘못하면 아이들이 죽는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전투의 정신으로, 마귀와 더불어 싸우는 정신으로, 나아가야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할 생각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계속 싸워나가면 그 결과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일이 됩니다.
나팔을 불기 전에 먼저 준비할 것이 무엇입니까? 물을 마실 때에 손으로 떠서 핥아 먹는 사람처럼, 사명감이 확실해야 합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을 어깨에 지고 있다, 내가 이기면 모두가 살고 내가 지면 다 죽는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주일학교 반장들도 사
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잘하면 아이들이 살고 내가 잘못하면 아이들이 죽는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전투의 정신으로, 마귀와 더불어 싸우는 정신으로, 나아가야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할 생각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계속 싸워나가면 그 결과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는 일심정력을 다해서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나가는 우리 주일학교 반사들과 심방하는 권찰들과 집사들, 장로들과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씀 밝히는 일을 첫째로 하고 중생한 영혼을 써나가고 잠시라도 방심 부주의 하지 말고 언제든지 선한 싸움을 계속 싸워 나가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전쟁에 반드시 승리하게 해주십니다. 방심 부주의할 때 마귀가 들어옵니다. 입을 물에 대고 마시는 사람은 방심 부주의 하는 것입니다. 먹는 것에 도취된 사람입니다. 사명감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명감에 불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에 모든 것을 다 기울이고 전력을 다해서 힘써야만 되겠습니다. 그리고 항아리는 깨뜨리고 횃불은 들고 나팔을 불어서 항상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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