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이긴 요셉의 신앙
창세기 39:1-23
1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4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5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7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9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
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그러할 때에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은 하나도 거기 없었더라 12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13그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버려 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도다 그가 나를 겁간코자 내게로 들어오기로 내가 크게 소리질렀더니 15그가 나의 소리질러 부름을 듣고 그 옷을 내게 버려 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그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이 말로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코자 내게로 들어왔기로 18내가 소리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 옷을 내게 버려 두고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
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창세기 39:1-23
1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4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5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7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9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
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그러할 때에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은 하나도 거기 없었더라 12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13그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버려 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도다 그가 나를 겁간코자 내게로 들어오기로 내가 크게 소리질렀더니 15그가 나의 소리질러 부름을 듣고 그 옷을 내게 버려 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그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이 말로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코자 내게로 들어왔기로 18내가 소리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 옷을 내게 버려 두고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
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1. 요셉의 신앙
본문 1절에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마엘 장사꾼이 요셉을 애굽으로 데리고 가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았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팔리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
본문 2-3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말이 여러번
나오는데, 이것이 요셉이 형통한 비결입니다. 요셉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으로 인하여 보디발의 집에 하나님의 복이 임했습니다. 그러면 요셉이 하나님과 동행한 신앙은 어떠한 신앙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며,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신뢰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범사에 형통하였습니다.
본문 4-5절에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
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형통하였고, 또 요셉으로 인해서 애굽사람의 집에 하나님이 복을 내리셨습니다. 요셉이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였고, 또 하나님께서 요셉이 가는 곳마다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것을 본 주인이 요셉에게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요셉의 신앙이 참 위대한 신앙입니다. 요셉은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과 늘 영적 교통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요셉의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즉 언제나 하나님을 찾는 신앙,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앙,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을 항상 가지면 하나님이 그 사람과 함께 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났다면, 회개하고 돌이켜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앙을 갖고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합당치 않은 것을 책망 받을까봐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신앙
본문 6-9절에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
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외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으므로,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였습니다. 그때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하며 거절하였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요셉은 죄를 두려워하였습니다. 사람이 무서워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두려워서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셉은 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신앙 양심을 지키며, 말씀을 지키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을 요셉이 가졌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도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도와주시고 함께 하시면서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
또 요셉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이었기 때문에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팔았지만 하나님이 애굽에 보내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주실 것을 믿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바로 하려고 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하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줄로 알고 충성을 다했습니다. 요셉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을 다합니다. 그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틀림없다”고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게 충성을 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도 충성되어야 하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충성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일에 형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또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역사도 나타납니다.
요셉이 맡긴 일에 충성하며 양심대로 모든 일을 해나가므로 보디발이 요셉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겼습니다. 간섭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보디발이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맡겼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동침하자고 할 때에 요셉이 거절하며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할 수가 없다고 하며 거절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요셉은 신앙의 용사입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다 보디발 아내의 유혹에 빠질 텐데, 요셉이 이러한 죄에 빠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입니다.
또 요셉이 항상 하나님과 같이 했기 때문에 이 시험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2. 요셉이 시험을 이김
본문 11-12절에 “그러할 때에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은 하나도 거기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요셉이 일하려고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집안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때 주인의 처가 요셉의 옷을 붙들고 간음하자고 하자, 요셉은 옷을 벗어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동침하자고 유혹하였으나 요셉은 함께 있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죄는 기회를
타서 들어온다고 하였습니다(로 7:11). 요셉은 죄가 들어오는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보디발의 아내와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 “음행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음행은 피하여야 마귀로 하여금 들어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음란죄를 이기는 방법은 피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잡고 동침하자고 할 때에 요셉은 자기 옷을 보디발의 아내의 손
에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오히려 요셉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3. 보디발의 처가 요셉을 誣告(무고)함
어떻게 요셉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습니까? 본문 14-15절에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고 하면서 여자가 죄를 요셉에게 씌웠습니다. 자기 남편이 아직 들어오지 않을 때인데 집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그 집에 일하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뭐라고 했습니까? 주인이 이 데리고 온 히브리 사람이 자기를 희롱하여 강제로 간음하려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옷을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다고 했습니다. 이 여자가 잘했습니까? 거짓말하고 잘못한 것입니다. 요셉이 의복을 벗어두고 도망쳤으면 회개할 기회를 준 것이니, 요셉의 의복을 슬그머니 치우고 회개하고 바로 서야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집에 여러 일하는 사람을 불러 모았다는 말입니다.
불러 모아놓고는 요셉을 히브리 사람이라 했습니다. 히브리 사람이라 부른 것은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물론 요셉이 히브리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히브리 사람이라 부른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멸시하면서 부른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조센징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주 멸시하는 것입니다. 조선 사람이라는 의미의 조센징이라고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조센징이라 한 것은 한국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은 한국과 일본 사람을 야만으로 봅니다. 동쪽의 야만이라고 했습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三國志 魏志 東夷傳 )이라는 중국 역사에 한국 역사가 나옵니다. 한국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더 오래된 한국역사가 이 책에서 나옵니다. 이 책에서는 중국의 위나라의 주변국들을 전부 오랑캐로 간주하고, 오랑캐 이(夷)자를 만들어서 ‘동쪽의 오랑캐’라는 뜻으로 東夷(동이)라고 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중화(中華)’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온 천하의 중심이면서 가장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선민(選民)의식을 가진 것입니다.
애굽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 사람이라 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을 낮추는 것입니다. 본문 14절 하반 절에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코자 하도다 그가 내게 겁간코자 들어왔기로 내가 크게 소리질렀더니”라고 하면서 애굽 사람을 괴롭히는 히브리 사람이라고 하여, 히브리 사람을 비하시킨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이 나를 강간하려고 들어와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옷을 벗어두고 도망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는 피해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 말을 하면 자기가 올라갑니까? 내려갑니까? 자기가 내려갑니다. 그 일이 사실이라고 해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없는 것처럼 해야 됩니다. 실제로 종이 강간하려고 해서 소리 질러서 도망했어도, 그것이 자랑할 만한 일입니까? 결국 자기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똥파리가 왔는데 내가 놓쳤다고 하면, ‘똥 냄새가 나니까 똥파리가 왔지 왜 똥파리가 왔겠느냐’고 다른 사람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건드리면 넘어갈 가능성이 있겠고 냄새가 나기에 파리가 왔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말을 안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맹목적으로 요셉을 매장하려고, 요셉을 못된 죄인으로 몰아세우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도 거기에 걸려들어 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예 말을 하지 말아야 자기 위신이 서는 것입니다.
종이 겁탈하려고 들어 온 것을 쫒아 냈다고 하면 자기가 위대한 것이 나타납니까? 또 위신이 있다면 종이 들어 왔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덕이 안 되는 문제는 될 수 있는 한 말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말해야 무슨 덕이 됩니까? 안하는 것만 못합니다. 말 안하고 고치고 조용히 있는 것이 낫습니다.
또한, 의복을 두었다가 자기 남편이 들어온 다음에 말했습니다. 본문 16-18절에 “그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이 말로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종이 나를 희롱코자 내게로 들어왔기로 내가 소리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남편에게 히브리 종 요셉이 자기를 희롱하려다가 소리지르니까 옷을 버리고 도망하였다고 거짓으로 요셉을 참소했습니다. 그리고 죄를 요셉에게 씌웠습니다. 또한 요셉을 무고해서 나쁜 히브리 종으로 몰아세웠을뿐만 아니라,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어떻게 원망했습니까? “당신이 어디서 그런 히브리 종을 데려다 놓아서 내가 희롱 당하게 만들었느냐”며 자기 남편에게 원망했습니다.
4. 요셉이 김옥에 갇힘
요셉이 순순히 옥에 들어감
본문 19-20절에 “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라고 하였습니다.
보디발이 노하여 요셉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감옥에 갇힐 때에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당신 부인이 먼저 동침하자고 옷을 붙잡았기 때문에 내가 그 말을 듣지 않고 옷을 버려두고 도망친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순순히 옥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모든 것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긴 것이고, 그 집에 더 큰 일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셉이 죄 없이 옥에 갇힌 것은 매우 억울한 일이지만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워 흉년 때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장차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해 나가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그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억울하게 고난을 당할 때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이루어진 일인 줄 알고, 하나님의 공의에 맡기며 인내하며 믿음으로 나가야겠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들어갈 때에도 하나님이 더 유익되게, 더 형통하도록 하기 위해 주신 줄 믿고 하나님이나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사람에 대해서 사랑과 선으로 행했습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무조건 감옥에 가둠
그런데 보디발이 요셉을 감옥에 가두었을 때, 주인이 좀 알아보고 감옥에 넣었습니까?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감옥에 잡아넣었습니다. 알아나 보고 잡아넣어야 되는데 부부가 똑같습니다.
잠언 18장 17절에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한편의 말만 듣고 송사를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원고의 말이 다 옳은 것 같아서 송사를 받습니다. 그러나 누가 와서 밝힙니까? 피고가 와서 밝힌다는 말입니다. 한
편의 말만 듣고 송사를 못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아내가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된 말인가 하고 한번 알아 봤어야 합니다. 요셉을 불러와서 어떻게 된 일인가를 물어보면 요셉은 요셉대로 말할 것 아닙니까? 주인의 처가 눈짓을 한지가 몇 달이 되었고, 내가 여러 번 피했는데 이번에는 아무 사람이 없을 때 들어갔다가, 옷을 붙잡고 간음하자 하기에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쳤다고 할 것이 아닙니까? 그 다음에 부인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면 부인이 화가 나서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코자 하기로 소리를 질렀더니 나갔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사실을 바로 알고 판단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말을 들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요셉을 감옥에 넣었습니다. 사실도 알아보지 아니하고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서 무조건 감옥에 집어 넣은 것입니다.
사실대로 바로 알고 죄 있는 것을 죄 있다고 해야지, 죄 없는 것을 죄 있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 벌 받습니다. 죄 없는 사람을 정죄하니 이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입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바로 판단하고, 바로 알고, 바로 모든 것을 해야지, 무조건 한 편말만 듣고 틀
렸다고 하면 안 됩니다. 또 추측해서 죄인으로 모는 것도 잘못 된 것입니다. 사실대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누가 어떻게 죄를 지었는지 바로 알고 처리해야 합니다. 보디발도 잘못한 것입니다. 도적끼리 삼년동안 살면 도적이라는데 둘 다 같습니다. 부인이 잘못한 것
을 바로 알지 못하고, 들은 대로 남을 정죄하면 하나님께 악한 일입니다.
5. 고난을 유익으로 주신 하나님
요셉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애매하게 갇혔습니다. 요셉이 몇 살 되었을 때 팔리어 갔습니까? 창세기 37장 2절에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고 했습니다. 17세의 소년으로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갔다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리워, 결국 바로의 신하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 갔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감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감옥에 간지 몇 년 만에 감옥에서 나왔습니까? 창세기 41장 1절에“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하수가에 섰는데”라고 했는데 요셉이 감옥에 들어간 지 만 이년 후에 애굽왕 바로 앞에 섰습니다. 창세기 41장 46절에 “요셉이 애굽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고 했습니다. 나이 삼십 세였습니다. 애굽에 팔려간 때가 17세라고 하였고 바로 앞에 설 때에는 30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몇 년입니까? 13년입니다. 감옥에는 몇 년 있었습니까? 만 2년 있었습니다. 그러면 종살이는 11년 한 것입니다. 17세에 팔려가서 만 2년 옥살이를 하고 30세 바로 앞에 섰으니 말입니다. 11년은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감옥에 애매히 누명을 쓰고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13년 동안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 요셉이 감옥에 안 들어갔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보디발의 아내로 인한 사건이 없었다면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일꾼으로써 잘해주었다면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늙어 죽도록 종살이 하였을
것입니다. 늙어 죽도록 종살이 하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또 안 팔려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기 형들이 팔아먹지 아니하고, 자기 형들이 동생을 진정으로 사랑해서 아버지 앞으로 돌려보내고, 안 팔아먹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형들이 잘해 주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일생동안 양이나 치다가 인생을 마칠 뻔 했습니다. 요셉이 양을 치다가 죽으면 아무도 요셉을 알지도 못합니다. 또 애굽에 가서도 주인이 아주 잘해주어서 시험을 안 만났더라면 종살이하다가 죽을 뻔 했습니다. 이십 년이고 삼십년이고 사십년이고 살다가 죽을 뻔했습니다. 그러면 요셉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그래도 형들이 팔아서 애굽에 갔고, 거기서 누명을 씌어 감옥에 가두었기 때문에,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형들이 좋게 해준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주인이 잘해준다고 해서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경과 환난이 요셉을 더 좋게, 잘되게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팔리어 가서 종살이하다가 감옥생활하면서 애매히 고난 받은 것은, 요셉을 총리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서 장차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없었으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운동도 틀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당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두 다 은혜로 주신 것이고, 복으로 주신 것이고, 앞으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고난이 올 때 하나님을 믿고, 단 마음으로 잘 받아야 하겠습니다.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과 역경들, 즉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서 팔려가고 주인에게 애매히 누명을 씌워서 감옥에 들어간, 모든 것들이 도리어 요셉에게 유익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인격을 더 좋은 인격으로 만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려고 그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감옥생활 2년 동안은 요셉이 신학교를 한 것입니다. 요나는 며칠 동안 신학교 했습니까? 삼일 삼야를 했습니다. 요나는 삼일 삼야 동안의 고기 뱃속이 신학교이고, 모세는 얼마 동안 신학교 했습니까? 40년 미디안 광야생활이 모세의 신학교입니다. 요셉은 감옥 생활을 하면서 2년 동안 신학교를 했습니다. 실천 신학인 것입니다. 이 감옥생활이 신학인데, 이 감옥 생활이 없었더라면 요셉이 총리가 못되었을 것입니다. 감옥에서 2년 동안 많은 것을 깨닫고 좀 더 깊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말씀 많이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감옥에 안 들어갔으면 보디발의 종노릇 하느라 얼마나 바쁩니까? 매일 일 할 일이 생겨서 바쁘고 복잡했을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할 일이 많은데 언제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감옥에 들어가니 할 일이 없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서 2년 동안 아주 고
요한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좀 더 하나님과 가까이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깊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어서, 요셉에게 가장 좋은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익 되게 하시려고 감옥생활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6절에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주신 것은 마침내는 복을 주시기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많은 환난을 통과해야 됩니다. 시험과 환난과 역경 등의 많은 난관을 통
과해야 그래도 쓸 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과하지 못하면 쓸 만한 사람이 못 됩니다. 닳아져야 되고, 모가 깨어져야 됩니다. 날이 너무 서도 못씁니다. 원만한 사람이 되려면 많은 시련을 통과 해야만 됩니다.
한강의 자갈돌도 둥글둥글한 것이 원만하지 않습니까? 처음에 산에서 굴러 내려올 때는 날이 선 것들입니다. 날이 서고 삐쭉하고 날카롭고 손이 베어지는 돌들이 산에서 굴러 내려오는데 몇 십리 몇 백리씩 굴러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돌과 돌끼리 부딪치고 부딪치면 깨져 나가고 닳아지면서 내려온 것입니다. 낙동강 700리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하여튼 한강의 돌도 몇 백리 굴러내려 오는 동안에 많이 쪼아지고 깨지고 닳아지고 둥그레져서 내려오게 됩니다. 그것을 가져다 쓰는 것입니다.
사람도 많이 닳아 없어져야 됩니다. 시험과 환난 속에 깨지고 닳아지고 없어져야 앞으로 쓸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교역자들도 처음에는 날이 서서 서로 부딪히고 상처 받아서, 상처 때문에 뒤로 나가 자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여러
가지 시험이 많습니다. 낙망할 때도 많지만, 그 가운데서 깨지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깨져나가는 과정입니다. 한 조각씩 깨져나가는 동안, 아프지만 닳아지면서 부딪히고 깨져나가서 둥그레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을 통과한 다음에 원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새로 결혼한 다음에도 많이 깨져야 됩니다. 서로가 날이 서 있는 돌끼리 만나는 것이 결혼입니다. 결혼 전에는 깨질 시간이 없었는데, 결혼한 다음에 받히고 닳아지고 깨지는 가운데 상처도 납니다. 깨지면 상처 나는 것이 아닙니까? 상처 나고 상하면서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죽을 지경이 되고 못 살 것 같고 피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굴러져서 점점 원만한 사람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원만한 사람으로 점점 만들어 집니다. 또 교회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만들어집니다. 자꾸 시험이 들어오고 부딪치고 회개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책망 받으면, 바로 서고 회개하면서 그러다가 또 부딪힙니다. 이렇게 시험을 당하면서 자꾸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도 많이 닳아 없어져야 됩니다. 시험과 환난 속에 깨지고 닳아지고 없어져야 앞으로 쓸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교역자들도 처음에는 날이 서서 서로 부딪히고 상처 받아서, 상처 때문에 뒤로 나가 자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여러
가지 시험이 많습니다. 낙망할 때도 많지만, 그 가운데서 깨지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깨져나가는 과정입니다. 한 조각씩 깨져나가는 동안, 아프지만 닳아지면서 부딪히고 깨져나가서 둥그레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을 통과한 다음에 원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새로 결혼한 다음에도 많이 깨져야 됩니다. 서로가 날이 서 있는 돌끼리 만나는 것이 결혼입니다. 결혼 전에는 깨질 시간이 없었는데, 결혼한 다음에 받히고 닳아지고 깨지는 가운데 상처도 납니다. 깨지면 상처 나는 것이 아닙니까? 상처 나고 상하면서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죽을 지경이 되고 못 살 것 같고 피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굴러져서 점점 원만한 사람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원만한 사람으로 점점 만들어 집니다. 또 교회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만들어집니다. 자꾸 시험이 들어오고 부딪치고 회개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책망 받으면, 바로 서고 회개하면서 그러다가 또 부딪힙니다. 이렇게 시험을 당하면서 자꾸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잘해주는 좋은 사람만 만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요셉도 형들이 좋은 형들이었고, 또 종살이 할 때 좋은 주인을 만났으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랬으면 양이나 치면서 살거나, 종살이 하다가, 흉년들면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칠년 흉년들면 다 죽
습니다. 좋은 형을 만나고 좋은 주인을 만났더라면 말입니다. 형한테 매도 좀 맞고 미움도 받고 배척도 받아서 눈물 흘리면서 죽을 위기에 빠지는 가운데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애굽에 가서도 그런 어려운 환경을 당해야 됩니다. 윗사람을 늘 좋은 사람만 만나면 안 됩니다. 왜 좋은 사람 만나면 안 됩니까? 윗사람을 좋은 사람 만나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시험이 되는 사람을 만나야 됩니다. 남편도 어떠한 남편을 만나야 하겠습니까? 늘 자기에게 잘해주는 남편을 만나면 자기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부인도 자기에게 늘 못살게 하는 남편을 만나야 합니다. 며느리는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를 만나야 됩니다. 여러 가지 자기에게 시험거리가 되는 것을 만나야 됩니다.
다음에 선볼 때는 ‘어떤 사람을 만나야 시험을 당해서 내가 만들어지겠나’하는 것을 봐야합니다. 처녀들이 선 볼 때 두 가지 종류라고 합니다. 결혼하려고 신랑 고를 때 두 가지 종류인데 처녀나 과부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신랑 고를 때 ‘누가 내 말을 잘 들어 주겠느냐’ 하
는 것을 본다는 말입니다. ‘어떤 남자가 내 말 잘 들어 주겠는가’를 보고 신랑을 택한 답니다. 다른 것은 그 다음에 본다고 합니다. 돈과 인물과 직업보다 자기 말 잘 들을 사람이면 오케이랍니다.
또 한 가지 종류는 ‘어떻게 해야 내가 잘 봉사할 남편을 택할까’를 본다고 합니다. ‘자기가 잘 봉사 할 남편’을 택한다고 합니다. 자기 말 잘 들어주는 남편을 택하는 사람은 1번이고, 자기가 잘 봉사할 남편 택하는 사람은 2번입니다. 2번은 발 씻어 주고 잘 수종을 들어 남편을 위해주려는 사람입니다. 둘 중에 어떤 사람이 많겠습니까? 1번이 많겠습니까? 2번이 많겠습니까? 어느 쪽이 많겠습니까? 아마 1번을 택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더욱 1번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2번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남편을 하늘같이 섬기고 잘해줄까를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그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내 말을 잘 들어줄까’를 생각하고 남편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는 어느 것이 맞습니까? 2번이 맞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여자는 남자를 도와주게끔 창조되지 않았습니까? 하와를 창조한 목적이, 남자인 아담을 도와주기 위하여 택한 것인데, 요즘은 거꾸로 되어서 여자가 이젠 자기를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여자들은 자기를 도와주는 남편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상적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 지려면 좀 힘든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빳빳해서 만만하지 않겠다고 여겨지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남편은 부인을 ‘아무리 봐도 만만하지 않겠다’고 생각되고, 또 부인은 남편을 ‘만만하지 않아서 맞추어 살기 힘들겠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고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야 깨져나가지 않겠습니까? 깨져나가고 닳아지고 부딪치고 그다음에 회개하고 바로 서고 그러면서 점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원만한 사람이 되고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시험을 은혜로 주시고 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빳빳하고, 만만하지 않고, 좀 센 사람을 만난 사람은 잘 얻은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가 만들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연단 시켜서 쓰시려고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도 호랑이같고 며느리도 여우같은 것을 만나면, 서로가 다 힘이 들지만, 힘든 가운데서
만들어집니다. 거기서 내가 깨져나가고 낮아지고 마음이 넓어지게 되는 것이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재미가 있으면 하나님께 맡깁니까? 재미가 없으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제는 ‘예수님만 믿자’고 하면서 점점 바로 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줄 알고 감사해야겠습니다.
안 팔려 간 것 보다는 팔려간 것이 낫고 또 가서 편하게 잘 있는 것보다 감옥에 간 것이 낫지 않습니까?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환난을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국가적으로 볼 때도 환난이 많은 국가에서 사는 성도가 더 많이 만들어집
니다. 환난 없이 평안히 잘 먹고 잘 살면서 항상 편안한 국가라고 하면 만들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무엇으로 만들겠습니까? 방탕할 것 밖에는 없습니다. 환난이 많아서 어려운 문제와 전쟁과 풍파 등이 많은 곳에서 연단 받은 성도가 쓸만해집니다.
우리나라도 여러 가지 환난과 시련을 많이 받지 않았습니까?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바람, 해방 후 공산당 바람, 기독교 연맹바람 등 여러 가지 시험을 많이 당했습니다. 6.25전쟁에서도 많이 깨졌습니다. 그리고 4.19와 5.16을 겪으면서 여러 환난의 바람이 지나가지 않았습니
까? 환난 가운데서 깨져나가고 만들어지면서 바로 서고 원만해지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연단 받은 교역자가 앞으로 쓸 만합니다. 여러 가지 환난과 문제로 싸우면서 환난을 이기면서 하나님과 진리의 말씀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단도 되었습니다. 환난이 없이는 연단이 안 됩니다.
습니다. 좋은 형을 만나고 좋은 주인을 만났더라면 말입니다. 형한테 매도 좀 맞고 미움도 받고 배척도 받아서 눈물 흘리면서 죽을 위기에 빠지는 가운데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애굽에 가서도 그런 어려운 환경을 당해야 됩니다. 윗사람을 늘 좋은 사람만 만나면 안 됩니다. 왜 좋은 사람 만나면 안 됩니까? 윗사람을 좋은 사람 만나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시험이 되는 사람을 만나야 됩니다. 남편도 어떠한 남편을 만나야 하겠습니까? 늘 자기에게 잘해주는 남편을 만나면 자기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부인도 자기에게 늘 못살게 하는 남편을 만나야 합니다. 며느리는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를 만나야 됩니다. 여러 가지 자기에게 시험거리가 되는 것을 만나야 됩니다.
다음에 선볼 때는 ‘어떤 사람을 만나야 시험을 당해서 내가 만들어지겠나’하는 것을 봐야합니다. 처녀들이 선 볼 때 두 가지 종류라고 합니다. 결혼하려고 신랑 고를 때 두 가지 종류인데 처녀나 과부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신랑 고를 때 ‘누가 내 말을 잘 들어 주겠느냐’ 하
는 것을 본다는 말입니다. ‘어떤 남자가 내 말 잘 들어 주겠는가’를 보고 신랑을 택한 답니다. 다른 것은 그 다음에 본다고 합니다. 돈과 인물과 직업보다 자기 말 잘 들을 사람이면 오케이랍니다.
또 한 가지 종류는 ‘어떻게 해야 내가 잘 봉사할 남편을 택할까’를 본다고 합니다. ‘자기가 잘 봉사 할 남편’을 택한다고 합니다. 자기 말 잘 들어주는 남편을 택하는 사람은 1번이고, 자기가 잘 봉사할 남편 택하는 사람은 2번입니다. 2번은 발 씻어 주고 잘 수종을 들어 남편을 위해주려는 사람입니다. 둘 중에 어떤 사람이 많겠습니까? 1번이 많겠습니까? 2번이 많겠습니까? 어느 쪽이 많겠습니까? 아마 1번을 택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더욱 1번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2번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남편을 하늘같이 섬기고 잘해줄까를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그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내 말을 잘 들어줄까’를 생각하고 남편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는 어느 것이 맞습니까? 2번이 맞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여자는 남자를 도와주게끔 창조되지 않았습니까? 하와를 창조한 목적이, 남자인 아담을 도와주기 위하여 택한 것인데, 요즘은 거꾸로 되어서 여자가 이젠 자기를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여자들은 자기를 도와주는 남편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상적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 지려면 좀 힘든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빳빳해서 만만하지 않겠다고 여겨지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남편은 부인을 ‘아무리 봐도 만만하지 않겠다’고 생각되고, 또 부인은 남편을 ‘만만하지 않아서 맞추어 살기 힘들겠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고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야 깨져나가지 않겠습니까? 깨져나가고 닳아지고 부딪치고 그다음에 회개하고 바로 서고 그러면서 점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원만한 사람이 되고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시험을 은혜로 주시고 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빳빳하고, 만만하지 않고, 좀 센 사람을 만난 사람은 잘 얻은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가 만들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연단 시켜서 쓰시려고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도 호랑이같고 며느리도 여우같은 것을 만나면, 서로가 다 힘이 들지만, 힘든 가운데서
만들어집니다. 거기서 내가 깨져나가고 낮아지고 마음이 넓어지게 되는 것이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재미가 있으면 하나님께 맡깁니까? 재미가 없으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제는 ‘예수님만 믿자’고 하면서 점점 바로 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줄 알고 감사해야겠습니다.
안 팔려 간 것 보다는 팔려간 것이 낫고 또 가서 편하게 잘 있는 것보다 감옥에 간 것이 낫지 않습니까?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환난을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국가적으로 볼 때도 환난이 많은 국가에서 사는 성도가 더 많이 만들어집
니다. 환난 없이 평안히 잘 먹고 잘 살면서 항상 편안한 국가라고 하면 만들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무엇으로 만들겠습니까? 방탕할 것 밖에는 없습니다. 환난이 많아서 어려운 문제와 전쟁과 풍파 등이 많은 곳에서 연단 받은 성도가 쓸만해집니다.
우리나라도 여러 가지 환난과 시련을 많이 받지 않았습니까?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바람, 해방 후 공산당 바람, 기독교 연맹바람 등 여러 가지 시험을 많이 당했습니다. 6.25전쟁에서도 많이 깨졌습니다. 그리고 4.19와 5.16을 겪으면서 여러 환난의 바람이 지나가지 않았습니
까? 환난 가운데서 깨져나가고 만들어지면서 바로 서고 원만해지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연단 받은 교역자가 앞으로 쓸 만합니다. 여러 가지 환난과 문제로 싸우면서 환난을 이기면서 하나님과 진리의 말씀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단도 되었습니다. 환난이 없이는 연단이 안 됩니다.
6. 감옥에서도 형통한 요셉
그런데 무고하게 감옥에 간 요셉은 감옥에서도 형통하였다고 했습니다. 본문 21-23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거기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모든 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러므로 감옥에서도 하나님이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셔서, 요셉의 손에 죄수를 다 맡기고 제반 사무를 다 처리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요셉은 어디를 가나 형통하였습니다. 범사에 형통하였습니다. 감옥에 가면 감옥에서 형통하고 종살이 하면 종살이 하는 곳에서 형통했습니다. 또 총리대신 하면 총리대신 하면서 범사에 형통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범사에 형통합니다. 감옥일지라도 하나님이 형통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이 형통하게 해주시니까 요셉이 있는 곳은 싸움도 하지 않고 평안합니다. 하나님이 형통하게 해주시지 않으면 감옥에서도 사고가 납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끼리 물고 찢으며 싸우고, 서로 빼앗는 등 사고가 많이 나지만 요셉이 있는 감옥에는 싸우지 않고 평안합니다.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므로 악의 세력을 누르고 은혜 가운데로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참 좋은 감옥이 됩니다.
전옥은 요셉에게 옥중의 제반사를 다 맡기므로 편안하게 보냈을 것입니다. 또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요셉을 보면 언제나 화평이 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나타나므로 요셉을 공경하는 사람들도 생겼을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을 범사에 하나님이 형통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앞에서 죄짓지 않으려고 두렵고 떨림으로 신앙양심을 써서 말씀대로 순종하여야겠습니다. 또 잠시라도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되겠습니다. 그 러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형통하게 해주십니다. 요셉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 하나님 앞에서 사는 신앙,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7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였는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면 범사에 형통해집니다. 요셉이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당하든지 어떻게 했습니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여서 범사에 형통한 요셉이었습니다. 우리도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형통하는 그런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요셉은 누구에게나 쓸만한 사람입니다. 아버지에게도 쓸만한 아들이고, 남의 집 종살이 할 때에는 주인에게 쓸만한 종이고, 감옥에 들어갔어도 전옥에게 쓸 만한 사람이고, 왕이 볼 때도 쓸만한 신하입니다. 어디를 가나 쓸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사에 형
통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범사에 형통하게 됩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범사에 형통합니다.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해주어야지 사람이 해서는 아무리 잘 될 것 같아도 안 되는 것입니다. 다 되었다가도 틀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면 잘 됩니다.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成事在天)’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계획은 사람이 하고 수고도 사람이 하지만,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셔야 잘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되게 하려 해도 안 됩니다. 건강도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셔야 건강한 것입니다. 아이들도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셔야 잘되는 것입니다. 공부 잘한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고 또 일류대학 졸업했다고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셔야 잘 되는 것입니다. 돈이 있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닙니다. 범사에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셔야 잘 되는 것입니다.
또 요셉은 누구에게나 쓸만한 사람입니다. 아버지에게도 쓸만한 아들이고, 남의 집 종살이 할 때에는 주인에게 쓸만한 종이고, 감옥에 들어갔어도 전옥에게 쓸 만한 사람이고, 왕이 볼 때도 쓸만한 신하입니다. 어디를 가나 쓸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사에 형
통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범사에 형통하게 됩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범사에 형통합니다.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해주어야지 사람이 해서는 아무리 잘 될 것 같아도 안 되는 것입니다. 다 되었다가도 틀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면 잘 됩니다.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成事在天)’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계획은 사람이 하고 수고도 사람이 하지만,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셔야 잘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되게 하려 해도 안 됩니다. 건강도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셔야 건강한 것입니다. 아이들도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셔야 잘되는 것입니다. 공부 잘한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고 또 일류대학 졸업했다고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셔야 잘 되는 것입니다. 돈이 있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닙니다. 범사에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셔야 잘 되는 것입니다.
7. 하나님이 잘되게 해주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 하는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잘되게 해주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잘 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잘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우러러 공경하라는 말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사람을 잘되게 해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잘되게 해주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잘 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잘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우러러 공경하라는 말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사람을 잘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은 잘 됩니다. 순종하는 믿음이 산 믿음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은 또 윗사람을 존경하고 순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윗사람을 존경하고 순종 잘 하라고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
하는 사람은 자연히 윗사람을 존경하고 순종합니다. 그러면 어디를 가나 윗사람에게 순종 잘하고 윗사람 존경 잘하는 사람을 나쁘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은 잘 됩니다. 순종하는 믿음이 산 믿음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은 또 윗사람을 존경하고 순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윗사람을 존경하고 순종 잘 하라고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
하는 사람은 자연히 윗사람을 존경하고 순종합니다. 그러면 어디를 가나 윗사람에게 순종 잘하고 윗사람 존경 잘하는 사람을 나쁘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양심을 쓰는 자
양심을 쓰는 사람을 잘되게 해주십니다. 항상 양심을 써서 정직하고 무엇이나 범사에 양심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양심을 쓰는 사람을 잘되게 해주십니다. 항상 양심을 써서 정직하고 무엇이나 범사에 양심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진실한 자
진실한 사람을 잘 되게 해주십니다. 믿음직하고 진실해야합니다. 언제나 믿음직하고, 무엇이든 맡길 수 있을만한 진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볼 때나 안 볼 때나, 주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진실한사람입니다. 이런 진실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지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진실한 사람에게는 윗사람이 모든 것을 다 맡긴다고 합니다. 이기선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진실한 며느리에게는 쌀독과 열쇠를 다 맡긴다”고 합니다. 시어머니가 진실한 며느리에게는 다 맡기는데 진실하지 않으면 안 맡긴답니다. 진실하니까 나가 볼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진실하면 다 맡겨줍니다. 믿음직하고 양심적이고 또 순종 잘하고 경외하면 말입니다.
진실한 사람을 잘 되게 해주십니다. 믿음직하고 진실해야합니다. 언제나 믿음직하고, 무엇이든 맡길 수 있을만한 진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볼 때나 안 볼 때나, 주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진실한사람입니다. 이런 진실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지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진실한 사람에게는 윗사람이 모든 것을 다 맡긴다고 합니다. 이기선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진실한 며느리에게는 쌀독과 열쇠를 다 맡긴다”고 합니다. 시어머니가 진실한 며느리에게는 다 맡기는데 진실하지 않으면 안 맡긴답니다. 진실하니까 나가 볼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진실하면 다 맡겨줍니다. 믿음직하고 양심적이고 또 순종 잘하고 경외하면 말입니다.
능하고 지혜 있는 자
그 다음에 능하고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이 믿음을 쓰면 능한 자가 되고 지혜가 생깁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능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무엇이나
맡기면 척척 잘해 나갑니다. 믿음으로 행하고 믿음을 쓰면서 하나님께 맡기신 일을 바로 행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능력도 주시고 지혜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능하게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맡겨놓으면 척척 다 하고 지혜롭게 합니다. 그리고 양심대로 합니다, 이것을 맡겨도 잘 하고 저것을 맡겨도 잘하는 것은 하나님이 지혜와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잘 참는 자
고난을 잘 참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을 하려면 고난이 많습니다. 고난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고난을 달게 잘 참고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 8절에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고난을 잘 참고 또 고난을 통과해야 좋은 것이 옵니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으면 좋은 것이 오지 않습니다. 일 년 곡식도 삼재팔난(三災八難)을 당한다고 합니다. 일 년 곡식이 자라나서 열매를 맺으려고 하면 세 가지 재앙을 만나야 하고 여덟 가지 난관을 통과해야지 된다고 것 입니다. 무엇이나 고난과 난관을 통과하지 않고서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고난을 잘 참고 통과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고난을 통과해야만 축복이 옵니다. 고난을 당하지 않으면 무슨 축복이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충성된 자
그 다음에 마지막은 충성된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시험을 당할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 감옥에 갇혀도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해도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대로 충성되게 하고, 무엇이나 믿음직하고 신임할만하고 무엇을 시켜도 감당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이 와도 잘 참고, 지혜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잘 참고 견디면서, 윗사람을 잘 공경하고 순종하고 양심 쓰는 사람이 되면, 무슨 일이나 잘 됩니다. 직장이 왜 없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서로 데려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집에다 데려다 놓으면 집이 바로 되고, 공장에 데려다 놓으면 공장이 바로 되고, 사무실에 데려다 놓으면 사무실이 바로 됩니다. 직장에 있으면 직장이 바로 되는데 그런 사람 있으면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국가의 공무원이 되면 국가의 공무가 바로 됩니다. 군대에 가면 군대가 바로 되어 나갑니다. 이런 사람이 없어서 세상이 바로 되지 못 하는 것이지, 이런 사람이 있으면 여기저기서 서로 데려갑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형통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잘 순종합니다. 그리고 양심대로 하고 진실하고 믿음을 쓰니 지혜와 능력이 생깁니다. 믿음으로 잘 참고 충성되면 하나님이 얼마나 귀히 여기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어서 못씁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살고 믿음을 써서 하나님이 기뻐 하시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은 충성된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시험을 당할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 감옥에 갇혀도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해도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대로 충성되게 하고, 무엇이나 믿음직하고 신임할만하고 무엇을 시켜도 감당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이 와도 잘 참고, 지혜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잘 참고 견디면서, 윗사람을 잘 공경하고 순종하고 양심 쓰는 사람이 되면, 무슨 일이나 잘 됩니다. 직장이 왜 없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서로 데려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집에다 데려다 놓으면 집이 바로 되고, 공장에 데려다 놓으면 공장이 바로 되고, 사무실에 데려다 놓으면 사무실이 바로 됩니다. 직장에 있으면 직장이 바로 되는데 그런 사람 있으면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국가의 공무원이 되면 국가의 공무가 바로 됩니다. 군대에 가면 군대가 바로 되어 나갑니다. 이런 사람이 없어서 세상이 바로 되지 못 하는 것이지, 이런 사람이 있으면 여기저기서 서로 데려갑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형통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잘 순종합니다. 그리고 양심대로 하고 진실하고 믿음을 쓰니 지혜와 능력이 생깁니다. 믿음으로 잘 참고 충성되면 하나님이 얼마나 귀히 여기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어서 못씁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살고 믿음을 써서 하나님이 기뻐 하시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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