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가 아합과 아하시야의 집을 멸망시킴
열왕기하 10:1-14
1아합의 아들 칠십 인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예후가 편지들을 써서 사마리아에 보내어 이스르엘 방백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하니 일렀으되 2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병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지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3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 아비의 위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 4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 왕이 저를 당치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5궁내 대신과 부윤과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무릇 명하는 것을 우리가 행하고 아무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의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라 한지라 6예후가 다시 저희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취하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왕자 칠십 인이 성중에서 그 교육하는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7편지가 이르매 저희가 왕자 칠십 인을 잡아 몰수히 죽이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 8사자가 와서 예후에게 고하여 가로되 무리가 왕자들의 머리를가지고 왔나이다 가로되 두 무더기로 쌓아 내일 아침까지 문어귀에 두라 하고 9이튿날 아침에 저가 나가 서서 뭇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의롭도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거니와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 10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11예후가 무릇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 존귀한 자와 가까운 친구와 제사장들을 죽이되 저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12예후가 일어나서 사마리아로 가더니 노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에 이르러 13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14가로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 인이 하나도 남지 아니 하였더라
열왕기하 10:1-14
1아합의 아들 칠십 인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예후가 편지들을 써서 사마리아에 보내어 이스르엘 방백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하니 일렀으되 2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병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지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3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 아비의 위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 4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 왕이 저를 당치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5궁내 대신과 부윤과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무릇 명하는 것을 우리가 행하고 아무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의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라 한지라 6예후가 다시 저희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취하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왕자 칠십 인이 성중에서 그 교육하는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7편지가 이르매 저희가 왕자 칠십 인을 잡아 몰수히 죽이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 8사자가 와서 예후에게 고하여 가로되 무리가 왕자들의 머리를가지고 왔나이다 가로되 두 무더기로 쌓아 내일 아침까지 문어귀에 두라 하고 9이튿날 아침에 저가 나가 서서 뭇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의롭도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거니와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 10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11예후가 무릇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 존귀한 자와 가까운 친구와 제사장들을 죽이되 저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12예후가 일어나서 사마리아로 가더니 노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에 이르러 13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14가로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 인이 하나도 남지 아니 하였더라
1. 아합의 아들 칠십 인과 그 집에 속한 자를 죽임
예후가 사마리아에 편지를 써서 보냄
본문 1절에 “아합의 아들 칠십 인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예후가 편지들을 써서 사마리아에 보내어 이스르엘 방백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하니 일렀으되”라고 하였습니다. 아합의 아들이 전부 몇 명이라고 하였습니까? 칠십 명입니다. 아합의 아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아하시야의 나이가 몇이라고 했습니까? 42세나 22세라고 하였습니다. 역대하 22장 2절에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 사십이 세라”고 하였습니다. 또 열왕기하 8장 26절에 “아하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이 세라”고 하였습니다. 둘 중 22세가 맞습니다. 아하시야가 22세 때 왕이 되었습니다. 성경 원어에서 42와 22의 두 글자가 얼핏 보면 같습니다. 22세라는 말은 ‘하프베트’라고 하고, 42세라는 말은 ‘멘베트’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사본으로 옮겨 쓰는 사람들이 22세를 42세로 착각해서 이렇게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하시야의 나이를 42세로 하면 아합의 나이와 비교할 때 상황이 맞지 않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아집니다.
어쨌든 아합의 아들이 칠십 명인데, 다 사마리아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칠십 명의 아들을 위하여 교사들을 많이 두었습니다. 또 방백들과 궁내 대신, 부윤(府尹), 장로 등, 여러 사람이 아합의 아들을 위하여 거기 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합의 아들들을 보호하고 잘 양육하며 인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특별한 교사들을 많이 두고, 그 교사들이 특별한 교육을 시키고 있었을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제일 유명한 가정교사를 갖다 둔 것입니다. 아합의 아들들을 공부 시키는 것이니 아마 그 나라에서 가장 실력 있고 가르치기 잘하는 사람을 데려다 선생으로 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칠십 명이면 한 사람에 선생을 하나씩만 두어도 칠십 명의 교사가 있게 됩니다. 하여간 아합의 아들들이 제일 좋은 교사들로부터 공부를 하고, 그 외 여러 면으로도 잘 양육 받고 있었습니다. 먹는 것이나 입는 것, 숙소 등 전부 맡아 일 보는 사람을 두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아함의 아들들이 잘 길러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 지식 면으로나 다른 어떤 면으로 봐도 그 나라에서 으뜸이 될 만한 자로 교육을 받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후가 혁명을 하면서 사람을 사마리아로 보냈습니다. 그 전에 요람 왕과 이세벨은 어디서 죽였습니까? 이스르엘이라는 곳에서 죽였습니다. 그곳은 사마리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인데, 요람 왕과 이세벨이 그곳에 가 있었습니다. 예후가 요람 왕과 이세벨을 죽이고 나서 사마리아의 방백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장로들과 아합의 아들들을 교육하는 자에게 편지를 전하였습니다.
본문 2-3절에 “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 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병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지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 아비의 위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예후가 ‘이제는 너희에게 병거와 말과 무기와 견고한 성이 있으니 너희 아들들 칠십 인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고 나와 더불어 싸우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본문 4-5절에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 왕이 저를 당치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궁내 대신과 부윤과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무릇 명하는 것을 우리가 행하고 아무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의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라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예후의 편지를 받고 사마리아에 있는 궁내 대신과 부윤과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심히 두려워하며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두 왕이 당치 못했는데,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라고 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즉, 요람과 아하시야 두 왕이 예후를 맞으러 나갔다가 그만 둘 다 죽었는데, 그 예후를 우리가 어떻게 당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 의논하고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무릇 명하는 것을 우리가 행하고 아무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의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본문 6절에 “예후가 다시 저희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취하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왕자 칠십 인이 성중에서 그 교육하는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라고 하였습니다. 예후가 다시 저희에게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취하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고 편지를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편지가 이르매 저희가 왕자 칠십 인을 잡아 몰수히 죽이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후의 편지가 도착하니 그 사람들이 왕자 칠십 인을 잡아 몰수히 죽이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냈습니다.
본문 8절에 “사자가 와서 예후에게 고하여 가로되 무리가 왕자들의 머리를 가지고 왔나이다 가로되 두 무더기로 쌓아 내일 아침까지 문어귀에 두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무리가 칠십 인 왕자의 머리를 잘라서 광주리에 담아 사마리아로 가져왔는데, 그때에 예후가 나가서 “두
무더기로 쌓아 내일 아침까지 문어귀에 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칠십 인의 머리를 두 무더기로 쌓아 이튿날 아침까지 문어귀에 두었습니다.
본문 9-10절에 “이튿날 아침에 저가 나가 서서 뭇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의롭도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거니와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 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육신이 잘되기를 구하기 전에 영이 먼저 살아야 함
아합의 아들들은 세상 편에서 볼 때에 잘되어 나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죄를 짓는 가운데 세상 일이 잘되는 것은 결국 다 어그러지고 맙니다. 아합의 아들들과 같이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됩니다. 신앙에 기초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지 아니하면 다 이렇게 됩니다. 이 칠십 인의 아들들은 세상 기준으로는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수가 많고, 그들이 고등 교육을 특별히 받는 가운데 공부를 잘하고 있습니다. 또 그 아들들이 존귀하고, 보기에도 아름답습니다. 칠십 인의 왕자들이 나가면 기름이 쩔쩔 돌 것입니다. 이렇게 아주 굉장한 아들들이지만, 그 뿌리가 다 썩었습니다. 근본이 다 썩은 것입니다. 죄악의 터 위에 세워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의 터 위에 세워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침내 칠십 인의 아들들이 하루아침에 다 망하고 그만 두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칠십 명의 아들들의 목이 다 잘리었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들이 광주리에 담겨져 이스르엘 성문 어귀에 쌓아둠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아합의 아들들은 세상 편에서 볼 때에 잘되어 나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죄를 짓는 가운데 세상 일이 잘되는 것은 결국 다 어그러지고 맙니다. 아합의 아들들과 같이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됩니다. 신앙에 기초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지 아니하면 다 이렇게 됩니다. 이 칠십 인의 아들들은 세상 기준으로는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수가 많고, 그들이 고등 교육을 특별히 받는 가운데 공부를 잘하고 있습니다. 또 그 아들들이 존귀하고, 보기에도 아름답습니다. 칠십 인의 왕자들이 나가면 기름이 쩔쩔 돌 것입니다. 이렇게 아주 굉장한 아들들이지만, 그 뿌리가 다 썩었습니다. 근본이 다 썩은 것입니다. 죄악의 터 위에 세워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의 터 위에 세워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침내 칠십 인의 아들들이 하루아침에 다 망하고 그만 두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칠십 명의 아들들의 목이 다 잘리었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들이 광주리에 담겨져 이스르엘 성문 어귀에 쌓아둠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성공, 신앙으로 이루지 않은 성공은 다 이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되지 않고, 영이 살지 못하고, 육신으로만 잘 되는 것은 마침내, 언젠가는 한 번 이처럼 비참한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칠십 명이면 그 중에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그들이 다 재주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세벨의 아들들이니, 재간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세벨이 악한 여자인데, 악한 것도 재간이 있어야 합니다. 재간이 있어야 악을 행하지, 미련하면 악을 행하지 못합니다. 아마 그 아들들이 재주가 있어서 공부도 잘하고, 모든 면으로 어디 내어놓아도 훌륭했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다 길러서 성공한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뿌리가 무엇입니까? 근본이 무엇입니까? 어디다 세워놓은 것입니까? 반석 위에 세운 집입니까? 모래 위에 세운 집입니까? 영이 살고, 육신이 잘된 것입니까? 영이 살지 못하고, 육신이 잘된 것입니까? 결론적으로 이것은 영이 살지 못하고 육신만 잘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도 영은 죽었는데 육신만 잘되는 것을 추구하면, 돼지를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영은 살지 못했는데, 출세하고, 아름답게 되고, 생활도 부유하고 풍성하게 되는 것은 돼지를 기르는 것과 한 가지입니다. 돼지를 잘 길러서 마지막에는 잡아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잔칫날 잡아먹고, 제삿날 잡아먹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잘되도록 가만 내버려 두십니다. ‘잘 먹어라. 공부 잘해라. 좋은 교사를 얼마든지 청해라. 견고한 성도 쌓고, 존귀한 자도 많이 불러서 아름다운 교육을 받아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영이 살지 못하고 말씀에 서지 못하면, 마침내 하루아침에 다 실패해서 비참하게 됩니다. 그런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아합의 아들들이 한순간에 망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세상 성공만 보면 안 됩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좋은 기술을 배우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영이 먼저 사는 것이 중요 합니다. 영이 먼저 살고 그다음에 세상적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말씀에 바로 서고 그다음에 세상적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것을 하지 못하고 세상적으로만 잘된 것은 언젠가 다 무너집니다. 그러한 것은 얼음장 위에 지어놓은 집과 같고, 모래 위에 지어놓은 집과 같습니다. 아무리 얼음장이나 모래 위에 집을 잘 지어놓아도, 얼음장이 녹는 날이 반드시 있고 장마가 나고 바람이 불어 창수가 이는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무너질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잘 써야 복이 있습니다. 먼저 믿음의 터를 잘 짓고 그 위에 다른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영이 살고, 그다음에 육의 것이 잘되어야 합니다. 영이 살지 못하고 육의 것이 잘되는 것은 돼지를 잘 먹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영이 살고 육의 것이 잘되는 것은
아름다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영이 살아야 그릇이 됩니다. 영이 못 사는 것은 잡아먹을 돼지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한 사람을 만나면 그가 잡아먹을 돼지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쓰실 그릇인지 분별해야겠습니다. 성전인가, 돼지인가를 분별해야겠습니다. 말을 조금 해보면 압니다.
몇 마디 해보면 ‘아, 돼지로구나!’라고 알게 됩니다. 반대로 믿음의 터위에서 영이 살고, 더불어 이 세상 것, 육신의 것이 잘되었으면 그 사람은 성전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그릇으로서,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자격자입니다. 그러나 영은 살지 못하고, 육신의 것만 잘되고, 세상 것만 성공하였다면, 돼지 밖에는 되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영이 살아야 그릇이 됩니다. 영이 못 사는 것은 잡아먹을 돼지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한 사람을 만나면 그가 잡아먹을 돼지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쓰실 그릇인지 분별해야겠습니다. 성전인가, 돼지인가를 분별해야겠습니다. 말을 조금 해보면 압니다.
몇 마디 해보면 ‘아, 돼지로구나!’라고 알게 됩니다. 반대로 믿음의 터위에서 영이 살고, 더불어 이 세상 것, 육신의 것이 잘되었으면 그 사람은 성전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그릇으로서,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자격자입니다. 그러나 영은 살지 못하고, 육신의 것만 잘되고, 세상 것만 성공하였다면, 돼지 밖에는 되지 못합니다.
믿음을 떠나서 사는 자는 자기의 유익만을 쫓음
그런데 아합의 칠십 인의 아들을 누가 죽였습니까? 지금 그 아들들이 머물고 있는 성은 잘 보호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에서 누가 그들을 죽였습니까? 그 집의 안 사람이 죽였습니까? 바깥 사람이 죽였습니까? 집 안의 사람이 죽였습니다. 왕자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은, 집 안의 사람들이 죽였습니다. 왕자를 보호하며 또 가르쳐주는 사람들이 죽였습니다.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 죽인 것입니다. 또 예후도 왕자들과 가까운 사람이 아닙니까? 예후는 요람 왕이 늘 데리고 다니던 사람입니다. 아합 왕도 사마리아에서 예후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므로 화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으면 아무리 성을 견고하게 짓고 지키고 있어도 성 안의 사람이 생명을 거두어 갑니다. 제일 가까운 사람이 자기를 죽이게 됩니다. 이미 말한 대로, 예후는 요람 왕이 가깝게 데리고 다니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요람 왕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십니다. 또 왕자들은 자기를 가르치던 선생이 죽였습니다. 자신을 지켜주던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죽음의 칼을 들이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렇게 비참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원수가 많아지고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해놓아도, 그것이 도리어 자기를 죽이는 것이 됩니다. 아무리 견고하게 하려고 가져다놓아도 그것이 도리어 자기를 죽이는 것이 됩니다. 자기를 보호하려고 해놓았지만 보호할 의무가 있는 그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인간이 잘해놓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바로 서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와 병기가 되어주십니다. 또 영이 살면 우리가 성전이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 속에 들어와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십니다. 이처럼 영이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이 살지 못하면 아무리 견고하고, 부요해지고, 잘해 놓아도 그것이 앙화와 저주가 되고 올무와 덫이 되어서 마지막에는 그것 때문에 망할 날이 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 밖에는 우리에게 생명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왕자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왜 칠십 명이나 되는 아합의 아들들을 죽였겠습니까? 죽이지 않으면 자기들이 죽을까봐 그런 것입니다. 왕자들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들이 죽게 되겠으니까, 죽을까봐 죽인 것입니다. 예후 편에 다 붙어선 것입니다. 왕자 편에 붙었다가는 자신들까지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염려가 들어온 것입니다. 사실 예후는 방백들과 장로들, 그리고 왕자들을 교육하는 자들을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왕자들을 죽여서 그 머리를 가져오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만일에 왕자들의 머리를 안 가져가면 우리가 죽지 않겠느냐고 여겨 자기들이 살기 위해서 왕자들을 다 죽인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일하고 권력에 아부하며 살다가 상황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될 때에는 왕자고 왕이고 할 것 없이 다 잡아 죽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믿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유익하면 와 보고 자기에게 손해가 날 것 같으면 반대편으로 갑니다. 사람은 간사한 것입니다. 왕자들에게 가서 교육을 시키니까 자기에게 유익이 왔습니다. 돈도 많이 받고, 높은 벼슬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익을 보러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후가 아합의 집을 숙청하는 바람에 자기들이 위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후에게 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믿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23-25절에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무튼 믿음을 떠난 세계는 이렇습니다. 자기 유익만 구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갔다가 손해가 날 것 같으면 대적의 편이 되어 돌아 옵니다. 상대를 죽이면서까지 자기가 살고자하는 자는 바로 이 세상 사람입니다. 그런 자는 신앙을 떠난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자기 유익을 위해서 어떤 곳에 가서 붙었다가 조금 손해가 날 것 같으면 거기서 떠나서 함께 했던 사람의 대적이 됩니다. 대적이 되어 비방하고, 악평하고, 아예 죽이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합의 아들들을 받들다가 비참하게 죽인 방백들, 장로들 무리와 같은 자입니다. 이렇게 성도가 신앙을 떠나면 세상 사람들과 같이 됩니다. 믿음으로 살지 아니하면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유익과 생명 보전을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욕하고, 비방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떠한 손해가 와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변하지 않습니다. 괴로운 때나 즐거운 때나, 자기에게 유익이 올 때나 손해가 올 때나, 자기 자리를 지킵니다. 그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만일 방백들과 장로들, 그리고 왕자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왕자들을 죽이지 않으면 너희를 죽이겠다는 말이 전해졌다고 해도, 그들은 자신들이 죽을 각오를 해야 맞습니다. ‘왕자와 같이 죽자. 나는 왕자를 지키던 사람이고 교육하던 사람인데, 왕자들이 죽는데 내가 어떻게 살겠는가?’라고 여겨야 합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은 왕자들과 같이 죽을 것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은 죽으면 죽었지, 왕자들을 자신이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그들이 왕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떠한 손해가 와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변하지 않습니다. 괴로운 때나 즐거운 때나, 자기에게 유익이 올 때나 손해가 올 때나, 자기 자리를 지킵니다. 그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만일 방백들과 장로들, 그리고 왕자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왕자들을 죽이지 않으면 너희를 죽이겠다는 말이 전해졌다고 해도, 그들은 자신들이 죽을 각오를 해야 맞습니다. ‘왕자와 같이 죽자. 나는 왕자를 지키던 사람이고 교육하던 사람인데, 왕자들이 죽는데 내가 어떻게 살겠는가?’라고 여겨야 합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은 왕자들과 같이 죽을 것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은 죽으면 죽었지, 왕자들을 자신이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그들이 왕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먼저 영이 산 다음에 다른 것을 하라
1)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함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의리를 안 지키고 양심을 어기며 왕자들을 죽였습니다. 악을 행한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전에 엘리야를 통하여 그 집을 말갛게 쓸어버려 여로보암과 바아사의 집과 같이 씨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죽여 없애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된 것입니다. 열왕기상 21장 20-22절에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나의 대적이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의 노를 격동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로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죄 값은 반드시 사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에 서는 것이 제일 중요한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 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2) 영이 사는 기초 위에 모든 것을 해나가야 함
비록 세상 것은 좋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뿌리가 든든하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뿌리 없이 세상 것으로만 잘 지어놓으면 그것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실패합니다. 뿌리가 든든하면 외부의 것은 비록 좋지 못한 것 같아도 결국 살아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견고하게 지켜주시어 보호하십니다.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기초 위에, 자기 영이 사는 기초 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기초 위에 모든 것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견고한 것입니다.
아이들 교육도 신앙의 기초 위에 해야 합니다. 부모가 영적 생활을 하는 가운데, 아이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업도 믿음에 기초하여 해나가야 합니다. 또 육신의 건강도 영이 먼저 살고 그 영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챙겨야 합니다. 기도부터 많이 해서 먼저 영이 살게 하고 그다음에 육체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새벽에 운동한다고 새벽 기도를 안 하는 사람은 아합의 아들과 같습니다. 새벽 기도를 안 하고 등산을 한다, 수영을 한다고 하는 것은 나는 아합의 아들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뿌리 없는 건강입니다. 먼저 뿌리가 단단히 서야 합니다. 영이 살고 영의 일을 풍성히 한 다음에 육체도 건강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새벽 기도 나옵니까? 집사들, 새벽 기도 좀 나오십시오. 새벽 기도를 아무리 안 나와도 주일에는 나와야 할 것 아닙니까?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하는데,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주일에도 새벽 기도를 안 하면, 어떻게 그 아이들을 가르칩니까? 속이 편안합니까? 생각을 좀 해보십시오. 기도하고 가르쳐야 속이 편안하지, 기도하지 않고 가르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 자기부터 은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명절날 차례를 몇 시에 하는 줄 아십니까? 새벽 닭 울 때에 제사합니다. 그 사람들은 제사하기 전 날 초저녁부터 ‘내일은 제사다’하고 아예 준비했다가 새벽에 벌떡 일어나서 다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종 치는 시계가 있었습니까? 그런데 어떻게들 깨는지, 새벽 이른 시간에 다 깨서 제사했습니다. 요새는 몇 천원 주면 종 치는 시계를 살 수 있습니다. 시계를 사다놓으면 ‘째르릉’하고 알려주어 새벽에 깰 수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시대입니까? 왜 새벽 기도를 안 합니까? 다시 말하지만, 영이 살아나가는 가운데 다른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업도 영이 살면서 해야 합니다. 영이 살면서 돈도 벌라는 것입니다. 영은 살지 못하는데, 돈을 벌어서 아무리 세상에 잘 꾸며놓고 살아도, 그것은 뿌리 없는 나무를 가져다가 심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잘해놓은 것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언젠가는 무너질 날이 옵니다. 뿌리가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날이 옵니다.
요새 자본주의 문화가 잘 발전되어 나가지만 그 뿌리를 보면 다 썩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신앙 위에 세워놓아야 하는데, 미국 사람들도 신앙이 점점 퇴보되어 갑니다. 신(新) 신학이 되고 세속주의가 되어서, 돈이 많고 문화도 잘 건설해놓았지만 신앙의 좋은 뿌리가 없어
지고 있는 것입니다. 점점 뿌리가 썩어져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의 몽둥이로 한 번 얻어맞을 날이 올 것입니다. 문화가 발전하는 것은 좋은데, 뿌리가 썩어지면 안 됩니다. 얼마 안 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몽둥이가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뿌리를 견고하게 하고, 그다음에 위의 것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고, 어떤 것이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합의 아들들처럼 아무리 잘되는 것 같아도 마지막에 비참하게 됩니다. 결과가 비참하게 되고 맙니다. 길어야 몇 십 년 잘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공부 많이 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돈 많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성공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화려하고 아름답게 잘 지어놓은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영원한 삶에 비추어 보면 다 일시적일 뿐입니다. 그리고 영이 살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아무 유익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맙니다.
지고 있는 것입니다. 점점 뿌리가 썩어져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의 몽둥이로 한 번 얻어맞을 날이 올 것입니다. 문화가 발전하는 것은 좋은데, 뿌리가 썩어지면 안 됩니다. 얼마 안 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몽둥이가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뿌리를 견고하게 하고, 그다음에 위의 것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고, 어떤 것이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합의 아들들처럼 아무리 잘되는 것 같아도 마지막에 비참하게 됩니다. 결과가 비참하게 되고 맙니다. 길어야 몇 십 년 잘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공부 많이 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돈 많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성공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화려하고 아름답게 잘 지어놓은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영원한 삶에 비추어 보면 다 일시적일 뿐입니다. 그리고 영이 살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아무 유익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맙니다.
본문 11절에 “예후가 무릇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자를 다 죽이고 또 그 존귀한 자와 가까운 친구와 제사장들을 죽이되 저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예후가 아합의 집에 속해 있던 사람들을 다 죽였습니다. 또 그 존귀한 자와 가까운 친구와 제사장들을 죽이고 저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죽였습니다. 그들은 아합이 우상 섬길 때에 같이 섬긴 자들입니다. 찬동하고 도와준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명령대로 심판 받았습니다.
2. 아하시야의 형제 사십이 인이 죽음
아하시야의 집이 망함
본문 12-14절에 “예후가 일어나서 사마리아로 가더니 노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에 이르러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가로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 인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예후가 일어나 사마리아로 가는데, 노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에 이르렀습니다. 가는 길 중간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이 하나 있는 모양입니다. 거기 이르렀는데, 마침 그때에 유다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하시야의 형제 사십이 명이 길에서 오는 것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스르엘에서 요람 왕이 죽고 또 왕자들이 죽은 소식을 듣고 문안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여기서 태후는 이세벨을 가리킵니다.
유다 나라는 남쪽 나라인데, 본래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북쪽 나라 이스라엘은 요새로 말하면, 타락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락한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지만 성경대로 섬기지 않습니다. 북쪽 나라는 성경을 조금씩 어기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나라입니다. 다 어기는 것은 아니고 약간만 어기며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나라입니다.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다 같은 신자들입니다. 처음에는 두 나라가 하나였는데 갈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시기 이후로 남쪽 나라와 북쪽 나라가 서로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남쪽 나라 왕의 아들이 북쪽 나라 왕과 혼사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지금 아하시야 왕이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또 아하시야 왕의 형제 사십이 명이 요람 왕과 그 아들들의 죽은 소식을 듣고 문안하러 북쪽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북쪽 나라와 서로 통하고 있으니 어떻게 문안을 안 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다 친척이니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에 예후가 그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였습니다. 결국 아하시야의 형제들도 다 죽은 것입니다.
한편 역대하 22장 1절에 “예루살렘 거민이 여호람의 말째 아들 아하시야로 위를 이어 왕을 삼았으니 이는 전에 아라비아 사람과 함께 와서 영을 치던 부대가 그의 모든 형을 죽였음이라 그러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루살렘 거민이 여호람의 말째 아들 아하시야로 위를 이어 왕이 되게 했습니다. 아하시야는 여호람 왕의 말째 아들, 막내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아하시야의 모든 형을 다 죽이고 맨 말째 아들로 왕을 삼은 것이 바로 아하시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하시야의 형제가 여기 사십이 명이나 또 있는 것입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본문에 나오는 사십이 명의 사람들은 아하시야의 형제가 아니라 손자라고 판단합니다. 즉, 여호람 왕의 손자로서, 아하시야의 형제들의 아들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십이 명의 사람들은 아하시야의 조카라고 했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아들이라고 했으므로, 조카라고 하지 말고 아들로 보아야겠습니다. 아하시야의 형이 전에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사십여 명의 형제가 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마도 이 사십이 인은 서자(庶子) 출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아하시야의 모든 형을 다 죽이고 맨 말째 아들로 왕을 삼은 것이 바로 아하시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하시야의 형제가 여기 사십이 명이나 또 있는 것입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본문에 나오는 사십이 명의 사람들은 아하시야의 형제가 아니라 손자라고 판단합니다. 즉, 여호람 왕의 손자로서, 아하시야의 형제들의 아들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십이 명의 사람들은 아하시야의 조카라고 했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아들이라고 했으므로, 조카라고 하지 말고 아들로 보아야겠습니다. 아하시야의 형이 전에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사십여 명의 형제가 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마도 이 사십이 인은 서자(庶子) 출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여호람 왕에게 본 아들들이 있는데, 그 중 맨 막내아들이 아하시야입니다. 그가 왕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람의 서자 가운데 사십이 인이 있는데, 그들이 서자이긴 해도 아하시야 왕의 형제입니다. 아무튼 사십이 인의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이번에 다 죽었습니다. 결국 아하시야의 집 안도 다 망한 것입니다. 아하시야는 남쪽 유다 나라의 왕입니다. 유다 나라는 보수이고 하나님을 정통으로 믿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아하시야의 집이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타락한 교회와 타협하지 말라
그러면 남쪽 나라의 왕과 왕자들은 왜 죽었습니까? 왜 다 망했습니까? 북쪽 나라는 이세벨의 죄 때문에 망했습니다. 아합 왕의 죄 값으로 망했습니다. 그런데 남쪽 나라는 왜 망한 것입니까? 아하시야는 벧엘의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성경대로 7월 15일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레위 사람으로 제사장을 삼았습니다. 성경대로 바로 해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남쪽 나라 아하시야 왕과 그 형제들이 왜 다 죽었습니까? 그것은 북쪽 나라, 즉 타락한 교회와 교류하며 타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경을 떠나, 진리에 어긋나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왔다 갔다 하면서 교류하고, 혼사했습니다. 또 서로 타협했습니다. 북쪽 나라에 하나님께서 징벌을 내리실 때에도 같이 다 묻어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왕도 죽고, 왕자도 죽은 것입니다. 전부 다 몰살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면 남쪽 나라의 왕과 왕자들은 왜 죽었습니까? 왜 다 망했습니까? 북쪽 나라는 이세벨의 죄 때문에 망했습니다. 아합 왕의 죄 값으로 망했습니다. 그런데 남쪽 나라는 왜 망한 것입니까? 아하시야는 벧엘의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성경대로 7월 15일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레위 사람으로 제사장을 삼았습니다. 성경대로 바로 해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남쪽 나라 아하시야 왕과 그 형제들이 왜 다 죽었습니까? 그것은 북쪽 나라, 즉 타락한 교회와 교류하며 타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경을 떠나, 진리에 어긋나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왔다 갔다 하면서 교류하고, 혼사했습니다. 또 서로 타협했습니다. 북쪽 나라에 하나님께서 징벌을 내리실 때에도 같이 다 묻어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왕도 죽고, 왕자도 죽은 것입니다. 전부 다 몰살을 당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겠습니다. 북쪽 나라와 교류하며, 타락한 교회와 잘못된 것을 알면서 서로 어울려 다니면 안 됩니다. 같이 일을 하고, 같이 전쟁에 나가고, 혼사도 했습니다.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말들은 당신의 말들과 일
반이라’고 하면서 남쪽 나라와 북쪽 나라가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어울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바로 믿는 남쪽 나라 왕이 죽고, 왕자들도 죽었습니다. 전부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남쪽 나라가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북쪽 나라와 타협하다가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대로 바로 믿지 않는 교회와 타협하다가, 그들을 용납하다가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다 죽었습니다. 이렇게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세벨을 용납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비 진리와 더불어 타협하지 말고 말씀대로만 서나가야겠습니다.
반이라’고 하면서 남쪽 나라와 북쪽 나라가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어울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바로 믿는 남쪽 나라 왕이 죽고, 왕자들도 죽었습니다. 전부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남쪽 나라가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북쪽 나라와 타협하다가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대로 바로 믿지 않는 교회와 타협하다가, 그들을 용납하다가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다 죽었습니다. 이렇게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세벨을 용납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비 진리와 더불어 타협하지 말고 말씀대로만 서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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