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0일 금요일

역대하 1:1-12 솔로몬이 지혜와 지식을 구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솔로몬이 지혜와 지식을 구함
역대하 1:1-12

1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 가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사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 2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의 천부장과 백부장과 재판관과 온 이스라엘의 각 방백과 족장들을 명하고 3온 회중과 함께 기브온 산당으로 갔으니 하나님의 회막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것이 거기 있음이라 4다윗이 전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장막을 쳤었으므로 그 궤는 다윗이 이미 기럇여아림에서부터 위하여 예비한 곳으로 메어 올렸고 5옛적에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사렐의 지은 놋단은 여호와의 장막 앞에 있더라 솔로몬이 회중으로 더불어 나아가서 6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7이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8솔로몬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전에 큰 은혜를 나의 아비 다윗에게 베푸시고 나로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9여호와 하나님이
여 원컨대 주는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 주께서 나로 땅의 티끌같이 많은 백성의 왕을 삼으셨사오니 10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11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존영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로 치리하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12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너의 전의 왕들이 이 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 같음이 없으리라

1. 솔로몬이 두 번 기름부음을 받음

솔로몬이 두 번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전에 다윗이 정식으로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다고 했으니까, 솔로몬에게 두 번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세 번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먼저는 혼자서 몰래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어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또 7년 후에는 예루살렘에서 몇몇 사람 앞에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솔로몬도 전에 제사장 사독과 나단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담해서 솔로몬을 왕으로 모신다며 기름을 부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독은 그때까지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열왕기상 1장을 보면, 제사장 사독이 기름부음을 받기 전에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2장35절에는 사독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제사장을 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기름부음을 받기 전에도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이 언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까? 그는 기름부음 받기 전에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식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론의 아들도 제사장으로 정해놓지 않았습니까? 사독도 아론의 증손자입니다. 아론의 아들이니까 제사장으로 정해놓았던 것입니다. 아론의 자손들이 제사장직을 하도록 정해졌으니까, 사독이 아버지를 받들어서 보조 제사장을 하는 입장에 섰는지도 모릅니다. 정식으로는 기름을 안 부었지만 그래도 아론의 자손이 제사장이 되도록 정해졌던 것입니다. 하여간 사독이 기름부음을 받은 것은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제사장직으로 받은 것으로 보는데, 이것은 그전부터 정해놓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독이 아론의 증손자이니까 정식으로는 기름 부음을 받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보조하여 제사장 일을 어느 정도 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제사장직을 받은 것으로 해야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 왕이 두 번 기름부음 받은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세 번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혼자서 받고, 헤브론에서 유다 백성들끼리 받고, 예루살렘에서 몇몇 사람 앞에서 받았습니다. 이제 솔로몬은 온 예루살렘 전체가 모인 앞에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이 솔로몬을 기름 부은 왕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독에게 기름을 부어서 제사장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구약에는 왕과 제사장,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었는데, 오늘날 목사는 왕과 제사장 선지자로서 기름을 붓는 것과는 다르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기름을 붓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제사장, 선지자로서의 기름 부음이 아닙니까? 이미 교역자는 제사장, 선지자, 왕과 같은 직분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서 기름을 부어 세워놓은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기름부음 받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렇게 자꾸 토론하니까 성경이 밝혀집니다. 토론하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이제는 밝혀집니다. 

그러면 ‘사독이 언제 기름을 받았느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솔로몬이 왕 되기 전에 받았느냐, 아니면 후에 받았느냐가 문제인데, 솔로몬이 왕이 된 다음에 받았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을 때 제사장도 아닌데 어떻게 기름을 부을 수가 있습니까? 그래도 사독이 아론의 증손자로서, 제사장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자격으로 기름을 부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솔로몬이 왕이 된 다음에 정식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솔로몬이 왕이 된 다음에 사독에게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으니까, 그 순서를 바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름부음을 받기 전에도 어느 정도 제사장 노릇을 할수 있다는 것으로 알면 되겠습니다.

2. 솔로몬이 왕이 되어 일천 번제를 드림

본문 1절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 가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사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심히 창대케 해주셨습니다. 

본문 2-3절에 “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의 천부장과 백부장과 재판관과 온 이스라엘의 각 방백과 족장들을 명하고 온 회중과 함께 기브온 산당으로 갔으니 하나님의 회막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것이 거기 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브온은 예루살렘의 서북쪽, 6마일 지점에 있다고 합니다. 모세가 만든 회막이 있기 때문에 회당에서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그곳은 성전과 같습니다. 

본문 4-6절에 “다윗이 전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장막을 쳤었으므로 그 궤는 다윗이 이미 기럇여아림에서부터 위하여 예비한 곳으로 메어 올렸고 옛적에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사렐의 지은 놋단은 여호와의 장막 앞에 있더라 솔로몬이 회중으로 더불어 나아가서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장막을 치고 여호와의 전 위에 올렸습니다. 아마 그곳에 회막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보면 먼저 솔로몬이 하나님께 제사부터 드렸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어서 하나님께 제사부터 드린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또 ‘일천 희생 번제를 드렸더라’고 하였는데, 이 번제는 헌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몸 바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일천 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많은 것을 하나님께 바친 증거입니다. 

3.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함

겸손한 자리에서 구함

본문 7절에 “이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줄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밤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한 것은 솔로몬이 꿈을 꾼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은 보통 꿈이 아니고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 봐야 합니다. 특별계시의 한 방법으로, 보통 사람이 꾼 것과는 다릅니다. 

또 줄 것을 구하라는 것은 거저 구하라는 것이 아니고 줄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줄 것을 구하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구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네게 받을 것이 아니라 줄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 있는데 그 줄 것을 구
하라는 것입니다. 받는 것과는 다릅니다. 받을 것은 자기 생각이고 줄 것은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욕심대로 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네게 줘야 될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구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8-10절에 “솔로몬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전에 큰 은혜를 나의 아비 다윗에게 베푸시고 나로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원컨대 주는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 주께서 나로 땅의 티끌같이 많은 백성의 왕을 삼으셨사오니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라고 한 것은 자기 직무를 잘 감당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할 때에 성경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7장 13절에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또 열왕기상 3장 7-10절에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자신을 출입할 줄도 알지 못하는 작은 아이라고 한 것은 겸손함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믿음입니다. 자신이 항상 연약한 줄 알고 또 자신의 힘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 알았습니다. 모든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겸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해진 때에 사울도 왕으로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붙들어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겸손한 자리, 자기를늘 부인하는 자리에 있어야 되겠습니다. 

주의 마음에 맞는 것을 구함

열왕기상 3장 10절에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구한 것이 주의 마음에 맞았습니다. 이렇게 주의 마음에 맞는 것을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하라고 할 때에 욕심으로 구하면 안 됩니다. 솔로몬이 주의 마음에 맞는 것을 구했기 때문에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것까지 다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구하라고 하실 때 목표를 어디에 둔 것입니까? 자기 개인적인 부귀나 장수, 개인적인 원수를 멸하는 것에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하면 잘되어 나가겠는가에 목표를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언제나 제일로 둔 것입니다. 자기의 어떤 개인적인 문제를 첫째로 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나라 운동을 어떻게 해야 잘 해나갈 수 있는지가 첫째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라를 맡기셨는데 ‘어떻게 해야만 이 나라가 잘되어 나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첫째로 여기며 나아간 것입니다. 나 자신은 언제나 희생할 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만 번성해 나가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겠습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교회, 즉 생명 운동, 구원 운동을 어떻게 해야 잘 이루어 나갈 수 있는지가 목표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늘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복음 운동을 잘해나갈 수 있을지 생각하고, 거기에 원 목표를 두어야겠습니다. 개인 문제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부귀, 영화와 장수하는 것, 개인적인 성공, 원수를 멸하고 평안함을 얻는 것 등을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하
나님의 나라가 잘될까?’, 여기에 목표를 두라는 것입니다. 개인주의로 나가는 것은 이기주의로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기주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 전체를 살려나가는 일, 진리를 살려나가는 일,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어떻게 하면 잘 살려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목표가 잘되어 나가는 데만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바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어떻게 해야 잘되어 나갈 것인가를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삼십 억을 들여서 부처를 지었다는데, 기독교인이면 삼십 억이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삼십 억을 가지고 하나님의 진리 운동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신학교나 개척교회를 세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갈 것 아닙니까? 그 사람을 우리가 먼저 전도했으면 우리 교회로 왔을 텐데 그만 전도도 못했습니다. 

어떤 교회는 성도 이름을 써서 일천 번까지 연보를 내게 한답니다. 그것은 교인들에게 돈을 받아 내려고 수단을 쓰는 것입니다. 하여간 성경을 이용해서 돈을 벌겠다고 하는 것은 다 악한 일입니다. 모두 인본주의입니다. 돈 버는 방법을 악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 기도를
한다, 잘되게 한다’는 것은 돈을 잘 벌 수 있도록 수단을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악용하면 안 됩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아무리 연보가 많이 들어와도 교인들을 수단으로 썼기 때문에 성경에 위반된 것입니다. 아무튼 교회에서 돈이 많이 나오도록 방법을 쓰면 안 됩니다. 성경대로, 원리 원칙대로 해서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이고, 안 되면 하나님께서 안 되게 하신 줄로 알아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으로 교인들을 속여서 돈을 많이 빼앗는 악한 수단을 쓰면 하나님께 옳지 않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그의 나라와 의만 생각하여 구함

그리고 솔로몬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줄까, 하실 때, 먼저 하나님의 나라 위한 것을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어야 자기가 잘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어야 자기가 잘되는 것 아닙니까? 혼자만 장수하면 뭐합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면 왕이 자동적으로 잘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가 잘되면 우리도 자동적으로 잘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단이 잘되고 교회가 잘되면 우리가 잘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다른 사람들이 “그 계약 신학교가 진짜다. 그 사람들이라면 성경을 잘 알고, 진짜다”라고 우러러 보면 모두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교단은 잘 안 되는데, 자기 하나만 잘한다고 뽐내고 돌아다니면 뭐합니까? 전체가 안 되면 개인도 안 되는 것입니다. 교단이 잘되어야 개인도 잘되는 것입니다. 

어저께 인태교 목사님의 고향에 자동차가 열 대는 갔을 텐데, 아마도 고향 사람들이 인태교 목사님을 다 우러러보았을 것입니다. 고향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기 가는 사람이 누구냐?”, “태교 아니냐, 그런데 어디서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왔냐”, “계약 신학교라고 하더라”고 한다
면 우리 신학교를 우러러보게 되는 것입니다. 교단이 시시해지면 우리도 시시해 지는 것입니다. 하여간 우리가 하는 진리 운동 전체가 잘되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잘되는 것입니다. 전체가 안 되는데 자기 하나만 잘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면 그 나라의 왕은 자동적으로 잘되는 것이고, 또 그 나라에 속해 있는 장관들이나 국민들은 자동적으로 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나라 전체가 잘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잘 되어야 한국 사람이 잘되는 것 아닙니까? 외국 나가서 어디 사람이냐고 할 때 ‘코리안(korean)’리라고 하면 우러러본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한국이 약소국가이고 시시한 나라면, 코리안이라고 말도 못합니다. 이번에 노태우 씨가 6.29 만주화 선언을 발표했기
때문에 이제 외국에 나가도 코리안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우습게보면 안 되겠다, 위대하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부끄러워서 한국 사람이라고 말도 못했습니다. 보통 한국 사람이 지나가면 일본 사람이라고 속이고 다닙니다. 밤낮 독재나 하고 쿠테타나 일으키니까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민주주의를 하면서 끌고 올라간 것 같습니다. 이번에 노태우 씨가 아주 잘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목표를 두고 지혜와 지식을 구함

솔로몬이 두 번째로 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재판을 바로 하겠는가를 구했습니다. 재판을 바로 한다는 것은 사건을 바로 처리한다는 것이고, 의를 세워나간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도록 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의가 세워져 나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세워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이 계신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어 나가는 것과 하나님의 의가 세워져 나가는 데에 목표를 두어야 되겠습니다. 

어떻게든 바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정(人情)을 다 떠나야 합니다. 인정이 들어가면 바로 처리하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모든 일을 바로 처리하고 옳게 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나가도록 하는 것이 재판을 바로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한 가지를 하더라도 바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대로, 진리에 맞게,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한 후에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바로 하겠다는 마음과 정성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구하는 지혜와 지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에서는 솔로몬이 지혜만 구했는데, 본문에는 지혜와 지식 두 가지를 구하였습니다. 본문 10절에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나라를 잘 이루어나갈 지혜와 지식, 모든 사건을 바로 처리하고 판단할 지혜와 지식을 구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심

본문 11-12절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존영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로 치리하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너의 전의 왕들이 이 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 같음이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나라와 의만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것도 주십니다. 장수가 필요하면 장수도 주시고 존영이 필요하면 존영도 주시고 원수의 생명 멸하는 것이 필요하면 멸하게도 해주시고 부나 재물이 필요하면 부와 재물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와 의를 잘 세워 나가는 사람에게 왜 안 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그의 나라와 의만 잘 세워 나가면 됩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세워 나갈 때 자기를 돌보지 말아야 합니다. 낮아지든지, 고생하든지, 가난해지는 것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떠나서 ‘어떻게 하여야 구원 역사가 잘되겠는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사건을 바로 처리하겠는가’에만 목표를 두고 나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다른 것도 주십니다. 

어떤 일에 꼭 필요한 말을 하려고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주목을 받을까봐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기주의자입니다. 자기 몫만 챙기는 사람입니다. 정작 필요한 말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주목하든지 말든지 그것을 왜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필요한 말을 하라는 것
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겠거니 하고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목을 받으십니까? 자기가 주목을 받습니까? 자기라는 것을 다 죽여야 합니다. 죽일 것은 다 죽여야 합니다. 주목을 백 번 받으면 어떻습니까? 자기가 무슨 위대한 사람이라도 됩니까? 주목 안 받고 높아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가 백 번을 주목 받아도 하나님의 나라 일만 잘될 것 같으면 말하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말을 했다가 그 말이 성립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래도 일단 말한 것이 양심을 쓴 것이고, 또 안 되었어도 하나님의 나라를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따라가다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한다고 망신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라고 하다가 안 되면, 또 다른 방법으로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의견이 전부 세워져 나가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의견이 다 세워져나가면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안 됩니다. 인간이 다 결점이 있는데 어떻게 자기의 의견이다 세워지겠습니까? 그러니까 의견이 안 세워져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할 말은 다 해야 합니다. 나도 내가 얘기한 것이 잘못되면 고치려고 자꾸 물어도 보고 또 가서 참고도 해보고 여러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생각도 해봅니다. 그것은 내가 말하는 것에서 잘못된 것을 고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고칠 것은 여기서 다 고치고 가야지 일생 동안 고치지 않고 가면 내 책임이 얼마나 큽니까?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고칠 것은 고치고 나가려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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