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9일 일요일

욥기 29:1-25 욥이 지난 시절의 은혜를 동경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욥이 지난 시절의 은혜를 동경함
욥기 29:1-25

1욥이 또 비사를 들어 가로되 2내가 이전 달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날에 지내던 것같이 되었으면 3그때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취었고 내가 그 광명을 힘입어 흑암에 행하였었느니라 4나의 강장하던 날과 같이 지내었으면 그때는 하나님의 우정이 내 장막 위에 있었으며5그때는 전능자가 오히려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나의 자녀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6뻐터가 내 발자취를 씻기며 반석이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흘러내었으며 7그때는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를 거리에 베풀기도 하였었느니라 8나를 보고 소년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9방백들은 말을 참고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10귀인들은 소리를 금하니 그 혀가 입 천장에 붙었었느니라 11귀가 들은즉 나를 위하여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위하여 증거하였었나니 12이는 내가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줄 자 없는 고아를 건졌음이라 13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인하여 기뻐 노래
하였었느니라 14내가 의로 옷을 삼아 입었으며 나의 공의는 도포와 면류관 같았었느니라 15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16빈궁한 자의 아비도 되며 생소한 자의 일을 사실하여 주었으며 17불의한 자의 어금니를 꺾고 그 잇사이에서 겁탈한 물건을 빼어내었었느니라 18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선종하리라 나의 날은 모래같이 많을 것이라 19내 뿌리는 물로 뻗어나가고 내 가지는 밤이 맞도록 이슬에 젖으며 20내 영광은 내게 새로와지고 내 활은 내 손에서 날로 강하여지느니라 하였었노라 21무리는 내 말을 들으며 나의 가르치기를 잠잠히 기다리다가 22내가 말한 후에 그들이 말을 내지 못하였었나니 나의 말이 그들에게 이슬같이 됨이니라 23그들이 나 바라기를 비같이 하였으며 입을 벌리기를 늦은 비 기다리듯 하였으므로 24그들이 의지 없을 때에 내가 함소하여 동정하면 그들이 나의 얼굴빛을 무색하게 아니하였었느니라 25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고 으뜸으로 앉았었나니 왕이 군중에 거함도 같았고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도 같았었느니라 

1. 욥이 과거의 은혜를 동경함

본문 1-2절에 “욥이 또 비사를 들어 가로되 내가 이전 달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날에 지내던 것같이 되었으면”이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많은 복을 받았던 때를 회상하며 그때를 동경하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그때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취었고 내가 그 광명을 힘입어 흑암에 행하였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등불은 하나님의 권고와 축복이 임한 것을 가리킵니다. 즉, 욥이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의 광명을 힘입어 흑암을 헤치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흑암은 불의의 세력을 가리킵니다.

본문 4절에 “나의 강장하던 날과 같이 지내었으면 그때는 하나님의 우정이 내 장막 위에 있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강장하던 날’은 절정에 달한 때를 가리키는데, 지금 욥은 과거의 그때를 회상하며 다시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우정이 내 장막 위에 있었다’는 것은 욥이 과거에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욥이 가정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던 때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그러한 때가 다시 오기를 고대하는 것입니다. 욥은 고난 중에서도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대개 현재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보통은 미래의 더 나은 희망을 가지고 삽니다. 심을철 목사님께서 신사참배 문제로 감옥에 오랫동안 계셨을 때에 ‘사람은 우연히 나와서, 희망으로 살다가, 불만에 죽는다’는 글을 쓰셨는데, 사람은 현재에 대해서 다 불만을 품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 다음에 생각해보면, 그때가 좋았다는 마음이 들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욥이 지나간 일을 동경하면서, 한 번 더 그때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2. 욥이 과거의 형통했던 가정생활을 동경함

본문 5-6절에 “그때는 전능자가 오히려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나의 자녀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뻐터가 내 발자취를 씻기며 반석이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흘러내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과거의 전성시대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열 자녀들을 주셨고, 양이나 젖소가 많아서 우유와 뻐터가 넘쳤습니다. 많은 기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참한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3. 욥이 과거에 존경 받은 것을 동경함

본문 7-10절에 “그때는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를 거리에 베풀기도 하였었느니라 나를 보고 소년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방백들은 말을 참고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귀인들은 소리를 금하니 그 혀가 입 천장에 붙었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과거에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 받던 때를 동경합니다. 욥이 전성기 때에 성문에서 재판을 하면 모든 소년들과 노인들이 그를 존경하였습니다. 당시에 욥은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바로 판결하였는데, 방백들과 귀인들도 욥의 덕과 권위에 눌려 그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의 결과입니다. ‘귀인들은 소리를 금하니 그 혀가 입 천장에 붙었었느니라’는 것은 귀인들도 욥이 공의로운 재판을 할 때에 그 입을 열어 욥을 막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귀가 들은즉 나를 위하여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위하여 증거하였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선행으로 존경을 많이 받았던 때를 동경하는 것입니다.

본문 12-17절에 “이는 내가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줄 자 없는 고아를 건졌음이라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인하여 기뻐 노래하였었느니라 내가 의로 옷을 삼아 입었으며 나 의 공의는 도포와 면류관 같았었느니라 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비도 되며 생소한 자의 일을 사실하여 주었으며 불의한 자의 어금니를 꺾고 그 잇사이에서 겁탈한 물건을 빼어내었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망하게 된 자나 과부까지 욥을 기뻐하며 축복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욥이 빈민(貧民)을 도와주고 고아와 망하게 된 자를 건져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의로 판단하며 빈궁한 자의 아비가 되고 불의한 자의 행위를 단속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의로 옷을 삼아 입었다’는 것은 욥이 의와 공의로 모든 것을 행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욥의 공의로운 재판이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4. 욥이 과거에 품었던 욕망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선종(善終)하리라

본문 18-20절에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선종하리라 나의 날은 모래같이 많을 것이라 내 뿌리는 물로 뻗어 나가고 내 가지는 밤이 맞도록 이슬에 젖으며 내 영광은 내게 새로와지고 내 활은 내 손에서 날로 강하여지느니라 하였었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선종하리라’는 것은 일생을 평안히 마치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욥은 전에 부요하여 모든 일이 잘되고 선을 행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 받을 때에 그 생활이 일평생 계속되고 죽을 때에도 그와 같은 좋은 환경에서 죽을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자녀들이 죽고 재산은 도적이 와서 다 빼앗아 갔으며, 자기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병이 나서 성한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러한 상황이 되었어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잘 통과해나갔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은 사람이 풍부함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함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빌 4:12). 즉,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거기서 믿음을 지켜나가는 비결을 배우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풍부할 때에만 “주여, 주여”하고 궁핍할 때에는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마귀에게 다 먹히는 것입니다. 풍부할 때에도 믿음을 지키고 비천할 때에도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은혜로 계속 창성하여나가고 모든 것이 잘될 줄 알았으나 하루아침에 환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일평생을 잘 살아 삶을 편안히 마치겠다는 생각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과거의 일을 자랑하지 말고 오늘의 신앙을 잘 지켜나가야 함

이와 같이 장래 일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오늘 현재의 믿음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에 잘 믿었던 것을 자랑하는 신앙은 ‘거지 이 잡는’ 신앙입니다. 거지들이 눈 오는 날, 양지에서 옷을 벗어 이를 잡으면서 “우리 아버지 때는 몇 천석, 우리 할아버지 때는 몇 만석
타작을 했다”고 하며 이를 잡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 아버지 때에 천 석을 타작하고 할아버지 때에 이천 석을 타작했어도 지금 거지로 이 잡는 신세가 되었으니,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것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신앙이 중요 합니다. 이 시간에 믿음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밖에 남을 것이 없습니다. ‘이 다음에 잘 믿겠다. 이 다음에 잘하겠다’는 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오늘이 자기의 날이지, 내일은 자기의 날이 아니므로 오늘 믿는 일을 하지 않으면 영영한 실패인 줄 알아야겠습니다. 욥이 과거를 동경했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과거에 욥은 장차도 늘 잘될 줄로 생각하였으나 사람이 항상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다가 환난도 오고, 궁핍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에 처할 줄도 알고 궁핍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 믿음을 잘 지켜나가면 연단된 믿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환난을 주신 것은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지 못하다가 환난이 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인 줄 알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야 합니다. 욥은 현재의 고난을 잘 참았습니다. 과거에 잘하던 것만 생각하고, 지금의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나가지 못하면 그것은 완전 실패입니다. 다 실패하고 낮아졌을 때에 믿음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현재를 믿음으로 잘 통과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현재를 믿음으로 통과하지 못하면 일생 실패하는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 ‘이 다음에 보자는 사람은 무섭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서우려면 오늘 무서워야 하는 것이지, 이 다음에 보자는 사람은 실력이 없고 그 사람은 이 다음에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바로 해야 합니다. 오늘의 환난을 잘 참고, 오늘의 환난을 믿음으로 잘 이기고, 감사하며 나가야 욥과 같이 배나 더한 복을 받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 믿음을 안 지키고, 이 다음에 잘하겠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욥과 같이 모든 것을 다 잃었어도 거기에서 믿음을 잘 지키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또 아무리 재산이 많고 좋은 환경일지라도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거두어가시면 모든 것들이 새와 같이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들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해야겠습니다. 믿음으로만 나가야겠습니다.

5. 과거에 누렸던 욥의 지도적 위치

현재 내게 주신 환경 속에서 믿음을 잘 지켜나가야 함

본문 21-22절에 “무리는 내 말을 들으며 나의 가르치기를 잠잠히 기다리다가 내가 말한 후에 그들이 말을 내지 못하였었나니 나의 말이 그들에게 이슬같이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전에는 욥이 한 마디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잠잠히 듣고 실천하였습니다. 그것은 욥이 바
른 말, 유익한 말, 참 말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3-24절에 “그들이 나 바라기를 비같이 하였으며 입을 벌리기를 늦은 비 기다리듯 하였으므로 그들이 의지 없을 때에 내가 함소하여 동정하면 그들이 나의 얼굴빛을 무색하게 아니하였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의지할 데 없어 외로워하는 자와 절망 중에 있는 자들을 함소(含笑)로 동정해주었으며, 그때 그들은 위로를 받고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함소하여 동정하였다’는 것은 웃는 얼굴과 기쁨으로 그들의 의지가 되어주며, 그 앞 길을 열어준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들은 욥이 말 한마디를 하면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그들이 나의 얼굴빛을 무색하게 아니하였다’는 것은 욥의 동정을 받은 자들이 욥의 동정을 잘 받고 욥을 축복해주므로, 욥의 얼굴빛이 더욱 빛났다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고 으뜸으로 앉았었나니 왕이 군중에 거함도 같았고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도 같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욥이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길, 살 길을 열어주었으므로, 욥이 어디를 가나 그들이 욥으로 하여금 윗자리에 앉게 하였습니다. 욥이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에는 그가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형편없는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욥은 낙심하지 않고 거기에서 믿음으로 모든 것을 참고 나갔습니다. 이것이 욥의 위대한 신앙입니다. 잘될 때에 “주여, 주여”, 누가 못합니까? 그러나 형편없이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다 없어졌을 때, 곤궁에 빠졌을 때, 그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믿음으로 모든 것을 승리적으로 통과하는 신앙이 위대한 신앙입니다. 우리도 앞으로 어떠한 환경을 당할지 모르겠는데, 거기에서 믿음을 잘 지켜나가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이 세상은 구름이 떠다니는 것처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현재 내게 주신 환경 속에서 믿음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장차 환난이 오면 과거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거기에서 믿음을 잘 지켜나가야겠습니다. 미래에 잘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오늘에 잘하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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