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7일 화요일

시편 81:1-16 절기(節期)의 회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절기(節期)의 회복
시편 81:1-16

1우리 능력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찌어다 2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찌어다 3월삭과 월망과 우리의 절일에 나팔을 불찌어다 4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로다 5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가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6이르시되 내가 그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7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뇌성의 은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셀라)
8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9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신에게 절하지 말찌어다 10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11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12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13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 14그리하면 내가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내 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리니 15여호와를 한하는 자는 저에게 복종하는 체 할찌라도 저희 시대는 영원히 계속하리라 16내가 또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저희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케 하리라 하셨도다

1. 여호와의 절기를 즐겁게 지킬 것

신약시대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때임

본문 1-2절에 “우리 능력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찌어다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의 비파를 아우를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절기를 즐거이 지키라는 것입니다. 소고와 수금 등의 여러 가지 악기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즐거이 소리 지르면서 절기를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구약시대 의식의 하나입니다. 그 시대에 속한 방식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되었기 때문에, 지나간 시대의 낡은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낡아진 방법을 쓰지 않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해야합니다. 요즘에 예배당에서 북을 치는 등,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강단에 악단을 만들어놓고 나팔 부는 사람, 피아노․전자 오르간․바이올린․첼로를 연주하는 사람, 제금을 치는 사람 등 여러 종류의 악기를 가진 사람들이 강단에 올라가 함께 연주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의식주의 시대에 하던 방법이기 때문에, 신약시대에는 합당치 않습니다. 구약시대대로 하려면 소와 양을 잡아서 제사를 해야 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구약시대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시대는 구약시대의 의문과 제도를 다 도말한 때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 드릴 때에 구약의 제도대로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요즘 신비주의자들이 북을 치고 손뼉을 치며 열광적으로 예배 드리는데, 그것은 감정주의의 하나입니다. 영적으로 나가는 주의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러한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에 여러 가지 악기로 하나님을 찬송한 것처럼, 우리는 영적으로 즐거워하면서 영적 악기, 하나님의 거문고로 찬송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5장에 보면, 하나님의 거문고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거문고는 영적으로 하나님께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즐거워하고, 구원을 감사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라

본문 3절에 “월삭과 월망과 우리의 절일에 나팔을 불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월삭(月朔)은 초하루에 지키는 것이고, 월망(月望)은 보름날에 지키는 것입니다. 보름날 지키는 절기가 일 년에 두 번 있는데, 유월절과 그 다음날인 무교절입니다. 정월보름날을 지킵니다. 그 다음에
7월 15일, 나팔절입니다. 나팔절은 무슨 날과 같습니까? 초막절, 수장절과 같습니다. 그리고 수장절은 추수감사절과 같은 것입니다. 15일에 지킵니다. 성력으로 7월은 양력으로 10월 쯤에 해당이 됩니다. 그리고 초하루 날은 매 달 초하루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월삭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보름날에 지키는 것은 월망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절기에 나팔을 불찌어다’라고 하였는데, 모든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유월절 양도 예수 그리스도, 맥추절도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강림을 나타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여러 가지 절기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즐거워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즐거워하고, 구원을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오늘날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말한 것들이 이스라엘의 율례,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규례라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멍에와 짐을 벗겨주신 하나님

본문 5절에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가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이르시되 내가 그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일어나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의 족속은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킵니다. 요셉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고, 애굽에서 구원 받은 백성들이 나왔기 때문에, 지금 요셉을 대표로 들었습니다. ‘애굽 땅을 치러 나가시던 때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시던 때를 가리킵니다. 애굽에서 인도하시는 때가 애굽을 치시는 때인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알지 못하는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과거에 듣지 못하던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진리를 들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진리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알지 못하던 역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시내 산에서 십계명과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알지 못하던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이르시되 내가 그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종의 짐을 벗게 해주셨습니다. 종살이하던 광주리를 다 벗겨주심으로, 자유와 해방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들에 여러 가지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마귀에게 종살이하던 것, 마귀가 이 세상의 것들로 얽매이게 해서 여러 가지로 종살이 시키던 것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적 자유와 해방을 허락하셨습니다. 죄와 마귀에게 억눌려
서 종살이하던 우리들에게 영적 자유와 해방을 주셔서, 생명의 세계로 인도해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마귀와 죄의 종이었던 우리들을 해방시키시어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3. 므리바 물에서의 시험

본문 7절에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뇌성의 은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셀라)”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건지셨다는 말입니다. ‘뇌성의 은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라는 것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에 뇌성과 번개와 불과 흑암 속에서 나타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께서 10계명과 여러 가지 율법들을 주셨습니다.

또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므리바 물가에서 물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시험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시험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시험을 하셨습니까? 물이 없을 때에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있는가를 시험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시험에 그만 낙제를 하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이 므리바 물가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불평, 불만을 하였습니다.

성도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가 하나님께서 그 성도를 시험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는가, 말씀을 그대로 믿나 안 믿나, 또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나 안 믿나 등을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그때에 우리가 시험에 낙제를 안 하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주시고, 앞으로 가나안 땅까지 인도해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며 철저히 믿고 의뢰해야 합니다. 물이 없어도 안 죽을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물이 없어도 어떻게 해서든지 안죽게 해주실 것을 믿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실 줄을 믿고, 원망과 낙심과 불평을 하지 아니하며, 하나님만 붙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물이 없어도 하나님만을 믿고 의뢰하며 참고 견디면서 끝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합격 장을 따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원망을 하였습니다. 죽겠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를 시험하였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그 시험에서 낙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므리바 물가에서 모세와 아론도 낙제를 하였습니다. 왜 낙제되었습니까? 그들이 “우리가 너희를 위해서 물을 내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신다고 하지 않고, 자기가 낸다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지팡이로 그것을 두 번 쳤습니다. 반석에서 물 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애굽에서 나온 다음 얼마 후입니다. 그때에도 하나님께서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는 어디서 물을 냈습니까?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 므리바입니다. 그런데 서로 본래 이름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7장 6-7절을 보면 맛사 또는 므리바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민수기 20장 8-10절에 나온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가데스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39년 후에 가데스에서 두 번째 물을 내셨습니다. 그런데 그곳도 므리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므리바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다투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 다 므리바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두 번 다 시험에 넘어가서 다투었기 때문에, 두 번 다 므리바라고 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에, 첫 번째는 어떻게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까? 반석을 치라고 하였습니다.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고 하셨고, 39년 후에는 어떻게 해서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까?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만 모세가 바위를 두 번 치고 말았습니다. 말씀을 어겼습니다. “반석아 물을 내라”고 명령만 했으면 됐을 것인데, 전에 한 번 쳤던 생각이 나서, 이번엔 더 많이 나오라고 두 번을 쳤습니다.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물을 내랴”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낙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도 낙제되고, 다 낙제입니다.

그러면 낙제가 안 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후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거기서 죄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모세보다 낫습니까? 나은 것이 아니고, 거기서 일선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나섰다면 모세보다 얼마나 나은 행동을 했겠습니까? 그들은 사건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곳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안 걸린 것이지, 나갔다면 그보다 더 할 사람들이 대부분인 줄 알아야 합니다. 무슨 사건이든지, 앞장 선 사람들이 사건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안 나가서 안 걸린 것은 사실 큰 것이 아닙니다.

4.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라

본문 8-10절에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신에게 절하지 말찌어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여 들으라’고 하신 후에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우상, 즉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너를 구원해주실 분은 하나님뿐이니까,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입을 넓게 열라는 것입니다. 입을 넓게 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받아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입을 넓게 열면, 내가 네게 말씀을 다 먹여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입을 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많이 넣어주실 것인데, 그 말씀을 믿고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말씀을 많이 받아서 그 말씀대로 믿고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게 많은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입을 넓게 열어서 말씀을 많이 배우고, 많이 받아서 그 말씀을 소화하고, 말씀대로 살면, 네게 한량없는 복을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입을 열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우상은 무엇 때문에 섬기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즉, 우상은 다 철폐하고, 하나님 외에 다른 따라가던 것들은 이제는 다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다 포기하고, 하나님만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만 넓게 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말씀을 많이 배워서 그 말씀으로 생명을 삼고, 말씀대로 자기의 구원을 바로 잘 이루어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풍성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인간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풍성한 복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는 눈을 들어서 바라보는 것을 다 주시고, 걸어가는 것을 다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3장 15-17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는 땅을 다 네게 주고, 종과 횡으로 걸어가는 땅을 다 네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에서는 무엇을 다 네게 주신다고 하였습니까? ‘입을 벌리고 받아먹은 것을 다 네게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입을 벌려 받아먹는 말씀을 다 네게 주고, 또 바라보는 땅을 다 네게 주고, 네가 종과 횡으로 걷는 땅을 다 네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참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주십니다. 그러니까 입을 얼마나 벌려야겠습니까? 넓게 벌려야 합니다. 그리고 잠시만 벌리지 말고 오랫동안 벌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받아먹으라는 것입니다. 늘 받아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시는 때에 많이 받아먹어야 합니다. 이 다음에 후회하지 말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은 다음에는 그 말씀을 소화해야 합니다. 창세기 13장에서 말했듯이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세계를 얼마든지 넓게 바라보고, 그 말씀대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 땅을 전부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참 좋은 세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외모를 보시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는 더 봐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상후하박(上厚下薄)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입을 넓게 열고 말씀을 받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서 말씀의 세계를 소망하는 자는 그 세계가 자기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세계를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 말씀의 세계에서 말씀대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종과 횡으로 걸어가면, 그 모든 것을 전부 너와 네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입을 열고 말씀 받기를 힘쓰고, 그 말씀의 세계 바라보기를 힘쓰고, 그 다음에 그 세계를 걸어가기를 힘쓰면, 많이 받습니다. 조금 걸어가면 조금 받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세상입니다. 걸어가면 다 자기 것이 되는데, 왜 안 걸어가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에 중국에서 오신 분이 나오는데, 성함은 왕세락 씨입니다. 그 분이 대만에 자주 다니면서 사업을 하였습니다. 그 분이 얼마 전에 중국 본토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북경에서 조금 더 가면 자기 삼촌네집이 있어서 그곳에 다녀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말을 해주었는데, 한 가지는 토지는 세만 물면 소출을 자기가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제는 자기가 농사해서 많이 거두면 많이 갖게 되는, 그러한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나라에서 30년인가 세를 받고 땅을 빌려준다고 합니다. 많이 벌면 많이 갖게 되니까, 이제는 중국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다고 합니다. 부지런히 일해서 돈을 많이들 번다고 합니다. 하면 자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장사도 잘해서 많이 벌면, 그것이 자기 것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택동 집권 당시에는 사람들이 나라에서 월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농사해서 많이 거두어도 월급을 받고, 조금 거두어도 같은 월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월급은 농사가 잘되나, 안 되나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농부들이 시간만 때우고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세만 물고, 많이 벌면 많이 가질 수 있으니까, 예전보다 상당히 농사를 잘한다고 합니다. 다 자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공산주의가 다 깨진 것입니다. 많이 벌어서 많이 가지고, 많이 거둔 사람은 더 갖는 방식입니다.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공산주의는 많이 번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같이 나누어 먹자는 주의인데, 이제 공산주의 몇 십 년을 해보니까 안 되는 것을 그들도 안 것입니다. 점점 뒤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중국이 한국보다 몇 년이나 뒤떨어졌는가?”하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이 한 20년쯤 뒤떨어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답니다. 그런데 거기 사람들은 20년이 아니라, 50년 뒤떨어졌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큰 민족이지만, 대만 보다도 50년은 뒤떨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공산주의가 얼마나 안 되는 것인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공산주의를 한 30년 동안 하는 바람에 50년이 뒤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더 하다가는 자꾸 뒤떨어지니까 입장을 수정했는데, 등소평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자꾸 뒤떨어지니까 자본주의로 돌아서자고 한 것
입니다. 그래서 토지를 개인 소유로 준다고 하면 반발이 너무 심하겠으니, 30년 동안 빌려주는 것 같습니다. 거저 주는 것과 세금 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다 자기 것이 되니까 같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그 다음부터 올라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소련의 고르바쵸프도 본을 받았습니다. 이제 돌이켜서 소련이 개인 재산을 인정합니다. 고르바쵸프는 더 많이 자본주의로 돌아선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종주국들이 공산주의에서 돌아서고 있으니, 이제 공산주의를 하자고 하는 것은 아주 뒤떨어진 사상이 된 것입니다. 이미 결말이 훤히 다 보인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 공산주의밖에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북에도 많이 있습니다. 자꾸 뒤떨어지는 데도 그것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하여간 많이 하면 많이 가진다는 것이 원리인 것 같습니다. 많이 벌면 많이 갖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세계도 영적으로 많이 받으면 많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을 많이 벌려서 많이 받고, 또 많이 바라보고, 넓게 소망을 가지며, 진리의 세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많이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고, 다 같이 가지려고 하다가 공산주의가 자꾸 뒤떨어진 것입니다. 많이 받으려고 힘을 쓰고, 많이 바라보고, 많이 걸어가려고 하는 사람이 자꾸 올라가는 것입니다. 계속 앞서 나가는 것입니다. 아무튼 입을 넓게 열라는 것입니다. 배우려고 자꾸 힘을 쓰고, 말씀 받으려고 자꾸 힘을 쓰라는 것입니다. 안 배우면 자기 손해이지, 다른 것 있습니까? 또 배워주는 사람은 하나라도 더 배워주려고 힘을 쓰라는 것입니다. 힘을 자꾸 써야 합니다.

5.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버려두시는 하나님

내버려둠을 당하는 것보다 매를 맞는 것이 복됨

본문 11-12절에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입을 벌리고 말씀을 받는 대로 다 주신다고 해도, 그들이 순종치 아니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로 그 마음에 강퍅한 대로 버려두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임의대로 행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죄 짓는 사람들이 받는 벌이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임의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고, 한 가지는 징계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도 간섭하지 않고, 못 본체하고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큰 벌입니다. 두 번째는 매를 때리는 것입니다. 때리는 것이 벌입니다. 그러면 둘 가운데 어느 벌이 더 큽니까?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더 큰 벌입니다. 매 맞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이들도 다니면서 달구 덩어리를 주워 먹든지 양잿물을 주워 먹든지, 가만히 내버려둔다고 하면 다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달구 덩이는 왜 주워 먹느냐? 이것은 왜 주워 먹느냐”라고 하면서 때리는 부모가 있는 집의 아이는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는 아이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지어도 일이 잘되면 내버려둔 자식인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잘되는 것이 큰 벌입니다. 즉시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합니다. 아무 짓을 해도 난 잘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믿으려는 사람은 저렇게 매를 맞는구나. 우리는 너처럼 믿지 않아도 일이 잘되고, 돈도 잘 번다. 집은 큰 것으로 사고, 생활만 잘된다. 너는 바로 믿는다고 하면서 매일 꼴이 그 꼴이냐?”라고 비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기가 벌 받는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여간 성경에 어긋나면 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내버려두시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잘되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매 맞는 것이 복입니다.

6. 말씀을 행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복

본문 13-15절에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 그리하면 내가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내 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리니 여호와를 한하는 자는 저에게 복종하는 체 할찌라도 저희 시대는 영원히 계속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내 도 행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내 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한하는 자’라는 것은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 자는 강제로라도 복종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징계를 하셔서라도 복종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는 강제로라도 성도에게 복종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시대는 영원히 계속하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도의 세대가 영원히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본문 16절에 “내가 또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저희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케 하리라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꿀과 아름다운 양식으로 만족케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에게 달고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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