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바른 생활
잠언 25:1-28
1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의 편집한 것이니라 2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3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4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5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 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6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라 7이는 사람이 너더러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 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 8너는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 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9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10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수욕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11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12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13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14선물 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 15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16너는 꿀을 만나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하므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17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18그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살이니라 19환난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20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쏘다 위에 초를 부음 같으니라 21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22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23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 24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25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26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으니라 27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28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잠언 25:1-28
1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의 편집한 것이니라 2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3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4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5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 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6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라 7이는 사람이 너더러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 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 8너는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 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9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10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수욕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11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12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13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14선물 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 15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16너는 꿀을 만나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하므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17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18그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살이니라 19환난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20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쏘다 위에 초를 부음 같으니라 21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22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23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 24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25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26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으니라 27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28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1. 하나님과 왕 앞에 바로 하라
일을 숨기는 것과 살피는 것
본문 1절에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의 편집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솔로몬 왕 때에 기록한 것인데, 후대의 히스기야 왕 때에 성경을 편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절에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고 하였습니다. ‘일을 숨긴다’는 것은 은밀한 곳에 계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라고 하였는데,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하나님의 영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바로 하려고 하는 것도 일을 숨기는 것입니다. 갑자기 무엇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라고 하면서 그 뜻을 찾는 것이일을 숨기는 것입니다. 하여간 하나님 앞에 가서 의논하고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일을 숨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곳에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맡기고 의논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은 모두 은밀한 중에서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고 하였는데, 일을 잘 살피면 왕의 영화가 됩니다. 여기서 ‘살핀다’는 것은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왕이 나라의 일을 잘 다스려야만 나라가 잘됩니다.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가정 일이나 교회 일이나 직장 일이나, 일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을 잘 살피지 못하면 여러 일이 다 같이 안 됩니다. 수하(手下)에 몇 천 명의 사람, 혹은 천 명 이상의 사람을 데리고 일
하는 사업체 사장의 말을 들어보면, 다스리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한 사람도 제대로 일하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무엇이나 다 그렇습니다. 다스리기를 잘하면 잘되고, 다스리기를 잘못하면 잘못됩니다. 그만큼 일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도 잘 다스리면 바로 크고, 잘 다스리지 못하면 잘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잘 살펴야 합니다. 잘 살펴야 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가축을 키우는 사람들도 그것을 잘 살펴야 잘된다고 합니다. 닭이 계란을 낳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계란을 낳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닭을 잘 돌봐주며 잘하면 닭이 계란을 많이 낳고, 얼마 돌봐주지 못하면 계란을 많이 못 낳는다는 것입니다.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사가 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음
본문 3절에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보통 왕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왕의 마음이라고 하면 헤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무슨 왕의 마음인가 하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왕의 마음입니다. 그러한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대로 하는 마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왜 헤아릴 수 없습니까?
본문 3절에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보통 왕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왕의 마음이라고 하면 헤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무슨 왕의 마음인가 하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왕의 마음입니다. 그러한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대로 하는 마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왜 헤아릴 수 없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수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왕의 마음을 우리가 헤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같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하는 마음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과 같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해나가면 다른 사람이 잘 헤아리지 못합니다. 한 가지만 생각하는 사람은 헤아리지 못합니다. 열 가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일하는 것을 한, 두 가지만 생각하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장래까지 생각하는 사람을 현재만 생각하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멀리까지 생각하는 사람과 어느 정도 작은 범위만 생각하는 사람이 서로 다릅니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또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사람을 한 가지만 생각하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마음, 즉,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서 말씀대로 바로 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전혀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알 수 있습니까?
본문 4절에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은이나 금이나 쇠나 다 마찬가지로, 그것을 때리면 찌끼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찌끼를 다 버려야 깨끗한 은도 되고 금도 됩니다.
본문 5 에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 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고 하였습니다.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해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견고하게 선다고 하였습니다. 씻기지 않은 것들, 찌끼, 악한 자를 제하여야 그 위가 견고히 선다는 것입니다.
낮은 데에 처하라
본문 6절에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말라”고 하였습니다.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를 하면 왕의 미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대인(大人)에 자리에 서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낮은 데 처하여 겸손해야 합니다.
본문 6절에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말라”고 하였습니다.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를 하면 왕의 미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대인(大人)에 자리에 서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낮은 데 처하여 겸손해야 합니다.
본문 7절에 “이는 사람이 너더러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 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복음에 대한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4장 8-9절에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높은 자리에 가서 앉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와서 내려앉으라고 하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낮은 데에 처하라는 것입니다. 낮은 데에 처하면 내려앉으라고 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고, 자랑하지 말고, 낮은 데 처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2. 모든 사람들 앞에 바로 하라
본문 8절에 “너는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 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다툴 만한 일이 생겨도 급히 나가서 다투지 말고, 다툴 만한 일이 있어도 다투지 말고 참으라는 것입니다. 참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다투는 자는 복이 없습니다. 아무리 다툴 만한 일이 생겼어도 하나님께 맡기고 잘 참는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일을 바로 해주십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다툴 만한 일이 있을 때에 싸우지 말고 잘 참으라는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도 하나님께서 달려 있으니, 그것을 알고 잘 참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사에 잘 참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만 잘하면 되겠습니다.
본문 8절에 “너는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 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다툴 만한 일이 생겨도 급히 나가서 다투지 말고, 다툴 만한 일이 있어도 다투지 말고 참으라는 것입니다. 참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다투는 자는 복이 없습니다. 아무리 다툴 만한 일이 생겼어도 하나님께 맡기고 잘 참는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일을 바로 해주십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다툴 만한 일이 있을 때에 싸우지 말고 잘 참으라는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도 하나님께서 달려 있으니, 그것을 알고 잘 참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사에 잘 참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만 잘하면 되겠습니다.
본문 9-10절에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수욕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다툴 때에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의 은밀한 일을 누설하면 안 됩니다. 그 사건이 옳다든지, 그 사건이 옳지 않다든지, 그 사건만 가지고 변론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은밀한 잘못을 들춰서 그 사람을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작은 일 하나를 가지고 변론하다가 그 사람이 전에 잘못한 것을 들춰서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라고 해버리는 것입니다. 남의 은밀한 일을 상고시켜서 그 사람에게 막대한 손상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특정한 사건을 가지고 변론할 때에는 그 사건만 가지고 변론하여야 합니다. 괜히 예전에 잘못한 것을 꺼내서 상대방을 매장하려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 사람이 전에 백정 노릇을 해먹었다. 세리였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백정 노릇을 해먹었으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회개하고 바로 섰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현재
에 일이 잘됐느냐, 잘못되었느냐, 그것만 가지고 변론해야지, 예전의 일을 가지고 변론하지 말아야 합니다. 은밀한 것을 누설하면 안 됩니다.
듣는 자가 욕하며, 꾸짖습니다.
에 일이 잘됐느냐, 잘못되었느냐, 그것만 가지고 변론해야지, 예전의 일을 가지고 변론하지 말아야 합니다. 은밀한 것을 누설하면 안 됩니다.
듣는 자가 욕하며, 꾸짖습니다.
3. 경우에 맞는 말을 하라
본문 11절에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하였습니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말을 바로 해야 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해야 합니다. 경우에 합당치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은 못 씁니다. 언제나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고, 또 말을 하다가 경우가 밀리면 말을 안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말을 안 하는 것도 틀렸습니다. 왜 말을 안 하는 것입니까? 하려면 끝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말을 안 하는 사람은 많은 경우에 속에 불의가 있습니다. 말을 하다가 말이 막히면 회개하고 잘못했다고 하며 고쳐야지, 말해나가다 말이 막힐 때에 “나는 말 안 한다”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하여간 언제나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고, 경우에 합당치 않은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다가 막힐 만한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을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을 못하게 되면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자복을 하고 고쳐야 합니다. 항상 경우에 합당한 말만 하고, 경우에 어긋난 말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본문 11절에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하였습니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말을 바로 해야 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해야 합니다. 경우에 합당치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은 못 씁니다. 언제나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고, 또 말을 하다가 경우가 밀리면 말을 안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말을 안 하는 것도 틀렸습니다. 왜 말을 안 하는 것입니까? 하려면 끝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말을 안 하는 사람은 많은 경우에 속에 불의가 있습니다. 말을 하다가 말이 막히면 회개하고 잘못했다고 하며 고쳐야지, 말해나가다 말이 막힐 때에 “나는 말 안 한다”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하여간 언제나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고, 경우에 합당치 않은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다가 막힐 만한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을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을 못하게 되면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자복을 하고 고쳐야 합니다. 항상 경우에 합당한 말만 하고, 경우에 어긋난 말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요새는 경우에 어긋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 엉터리 같은 말을 거침없이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경우에 맞는 말, 성경말씀에 바로 된 말이어야 합니다. 경우에 바로 되지 못했는데, 어떻게 성경말씀에 바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경우와 이치에 맞아야 하고 사리에 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에 맞아야 합니다. 거기에 맞춰서 모든 말을 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12절에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의 책망이 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받는 사람이 복을 아주 많이 받습니다. 바른 책망을 해주는 것이 귀한 것이고, 그것을 잘 받는 것은 귀에다 금고리와 정금 장식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것들이 아주 보배로운 씨들입니다.
4. 충성된 자와 거짓 자랑하는 자
본문 13절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달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사람은 추수하는 날의 얼음 냉수와 같아서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충성된 사자의 노릇을 하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기뻐하시게 만들 수 있습니다.
본문 13절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달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사람은 추수하는 날의 얼음 냉수와 같아서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충성된 사자의 노릇을 하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기뻐하시게 만들 수 있습니다.
본문 14절에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좋은 것을 준다고 자랑하고 다니지만, 실제로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습니다. 실제에 가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만 속이는 것입니다. 바람과 구름이 몰려오면 비가 내리는 법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비가 오기를 고대하는데, 실제로는 구름에 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속이는 것밖에 안 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축복해준다. 선물을 준다. 복을 받는다”라고 하며 권면하지만, 그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비 없는 구름과 같아서 괜히 바람만 일으키고 다니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아무 생명이 없습니다.
5. 절제 생활을 하라
부드러운 혀가 뼈를 꺾음
본문 15절에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부드러운 혀가 뼈를 꺾습니다. 오래 참으면 관원이라도 감동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관원은 윗사람을 말합니다.
오래 참으면 왕과 같은 높은 관원이 용납할 수도 있습니다. 부드러운 혀, 온유한 말, 온유한 대답이 중요합니다. 부드러운 말이 뼈를 꺾지, 강한 말이 뼈를 꺾는 것이 아닙니다. 강한 것은 지고, 부드러운 것이 이깁니다. 강한 것은 부러지나 부드러운 것은 부러지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되며 최후에 성공하게 됩니다. 부드러운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부드러운 혀가 뼈를 꺾음
본문 15절에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부드러운 혀가 뼈를 꺾습니다. 오래 참으면 관원이라도 감동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관원은 윗사람을 말합니다.
오래 참으면 왕과 같은 높은 관원이 용납할 수도 있습니다. 부드러운 혀, 온유한 말, 온유한 대답이 중요합니다. 부드러운 말이 뼈를 꺾지, 강한 말이 뼈를 꺾는 것이 아닙니다. 강한 것은 지고, 부드러운 것이 이깁니다. 강한 것은 부러지나 부드러운 것은 부러지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되며 최후에 성공하게 됩니다. 부드러운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 참아야 합니다. 관원과 같은 윗사람과 싸우지 말고 오래 참으면 용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드러운 혀가 뼈를 꺾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이것을 잘 알고 무엇을 하면 실패가 없을 것입니다. 오래 참으면 관원이라도 용납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하고 또 너그러운 마음을 쓰며 오래 참으면 관원이 용납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강한 것이 부드러운 것을 이길 것 같아도, 사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부드럽게 나가면 강한 것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강한 것은 부러집니다. 언제나 강한 것은 부러지지만, 부드러운 것은 부러지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강한 것을 굴복시키는 일이 있게 됩니다.
소로 말하면 뿔은 강하고 코는 부드러우며 이는 강하고 혀는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이가 서른 두 개라도 강한 것이 모자라서 치과 병원에 백날 다닙니다. 그러나 혀는 한 개라도 일생동안 쓰고도 남습니다. 치과병원은 있어도 설과 병원은 없습니다. 설과 병원을 보았습니까? 그러니까 부드러운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혀가 뼈를 꺾는다’고 하였습니다. 온유한 성품, 온유한 말, 온유한 대답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여자가 남자를 이기는 법
여자가 남자를 이기는 법도 이런 맥락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싸우면 백발백중(百發百中)으로 다 집니다. 어떻게 하면 이깁니까? 부드럽게 하면 이깁니다. 부드럽게 해서 코를 꿰어 끌고 다니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도 아무 데나 다 끌고 다닐 수 있습니다. 부려먹을 수 있고 나가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드러운 것이 이기는 줄을 모르고, 강해가지고 이기겠다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절대로 못 이깁니다. 남자를 황소라고 하면 여자는 고양이인데, 황소와 고양이가 싸우면 황소가 고양이한테 지겠습니까? 덩치 큰 것이 한 번 받아 치면 고양이가 나가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로 밟으면 납작해집니다. 그러나 그래도 온유하게 나가면 고양이가 이깁니다. 온유하게 나가면 고양이는 집 안에 들어갈 수 있으나 황소는 집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 고양이는 주인이 잘해줍니다. 하여간 부드러운 것이 언제나 이기는 줄 알아야 합니다.
여자가 남자를 이기는 법도 이런 맥락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싸우면 백발백중(百發百中)으로 다 집니다. 어떻게 하면 이깁니까? 부드럽게 하면 이깁니다. 부드럽게 해서 코를 꿰어 끌고 다니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도 아무 데나 다 끌고 다닐 수 있습니다. 부려먹을 수 있고 나가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드러운 것이 이기는 줄을 모르고, 강해가지고 이기겠다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절대로 못 이깁니다. 남자를 황소라고 하면 여자는 고양이인데, 황소와 고양이가 싸우면 황소가 고양이한테 지겠습니까? 덩치 큰 것이 한 번 받아 치면 고양이가 나가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로 밟으면 납작해집니다. 그러나 그래도 온유하게 나가면 고양이가 이깁니다. 온유하게 나가면 고양이는 집 안에 들어갈 수 있으나 황소는 집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 고양이는 주인이 잘해줍니다. 하여간 부드러운 것이 언제나 이기는 줄 알아야 합니다.
절제할 것 세 가지
1) 먹는 것
본문 16절에 “너는 꿀을 만나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하므로 토할까 두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7절에도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라고 하였는데, 꿀을 만나면 족할 만큼만 먹으라는 것입니다. 꿀을 많이 먹어서 과식하여 토할까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언제나 절제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안 할 것은 안 하고 끊을 것은 끊으며 절제하는 생활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꿀이 달다고 해서 많이 먹으면 오히려 해가 됩니다. 꿀을 만나거든 적당하게 먹고 지나치게 많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식하여 토할까 두렵다’는 것은
너무 좋다고 해서 아무것이나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달다. 어떤 일이 좋은 일이다. 재미있다’라고 해도 그것을 지나치게 하면 만사에 손해가 납니다. 아무리 좋아도 적당하게 해야 합니다. 적당하게 하는 것은 괜찮지만, 지나치게 하는 것은 손해가 막심합니다. 도리어 역효과가 납니다. 토하는 역효과가 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뭐 좋은 것을 하나 만나도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도취가 되거나 거기에 그만 끌리어 가거나 지나치게 거기에 빠지면 여러 면에 손해가 생깁니다. 영적인 면이나 육신의 면으로 손해가 많이 납니다. 이 세상에 꿀과 같이 단 것이 많고 좋은 것도 많고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취미가
붙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1) 먹는 것
본문 16절에 “너는 꿀을 만나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하므로 토할까 두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7절에도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라고 하였는데, 꿀을 만나면 족할 만큼만 먹으라는 것입니다. 꿀을 많이 먹어서 과식하여 토할까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언제나 절제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안 할 것은 안 하고 끊을 것은 끊으며 절제하는 생활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꿀이 달다고 해서 많이 먹으면 오히려 해가 됩니다. 꿀을 만나거든 적당하게 먹고 지나치게 많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식하여 토할까 두렵다’는 것은
너무 좋다고 해서 아무것이나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달다. 어떤 일이 좋은 일이다. 재미있다’라고 해도 그것을 지나치게 하면 만사에 손해가 납니다. 아무리 좋아도 적당하게 해야 합니다. 적당하게 하는 것은 괜찮지만, 지나치게 하는 것은 손해가 막심합니다. 도리어 역효과가 납니다. 토하는 역효과가 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뭐 좋은 것을 하나 만나도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도취가 되거나 거기에 그만 끌리어 가거나 지나치게 거기에 빠지면 여러 면에 손해가 생깁니다. 영적인 면이나 육신의 면으로 손해가 많이 납니다. 이 세상에 꿀과 같이 단 것이 많고 좋은 것도 많고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취미가
붙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조금씩, 적당하게 해야 자기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또 신앙 생활도 할 수 있습니다. 구경도 구경하는 것에 빠져서 재미가 난다고 해서 많이 다니다 보면 그만 문제가 생깁니다. 노름하는 사람도 거기에 빠지는 것이고, 또 낚시 다니는 사람도 거기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는 정당하지 않은 것은 하지 말고 다 끊어 치워야 합니다. 또 합당한 것을 한다고 해도 지나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나 괜찮다 할 때에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 신앙을 유지할 수 있고 건강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모든 면에 져야 할 책임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로 할 수가 있습니다.
2) 다른 사람
본문 17절에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웃집에 다니는 수가 있는데, 자주 다니면 이웃 사람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절제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먹는 것을 절제해야 하고, 둘째로 이웃집에 다니는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아무리 가고 싶어도 자주 가지 말아야 합니다. 가고 싶다고 해서 매일 저녁마다 가고, 또 거기에 있고 싶다고 해서 밤 10시, 11시가 되도록 까지 그 집에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절제를 못하는 사람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는 자입니다. 그 집에서도 좀 자야 하고, 자기네들끼리 해야 할 것도 있는데, 거기에 떡 앉아가지고 자지도 못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혹시 이웃집에 갔더라도 금방 돌아와야지, 밤이 새도록, 잠이 들도록 앉아 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본문 17절에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웃집에 다니는 수가 있는데, 자주 다니면 이웃 사람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절제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먹는 것을 절제해야 하고, 둘째로 이웃집에 다니는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아무리 가고 싶어도 자주 가지 말아야 합니다. 가고 싶다고 해서 매일 저녁마다 가고, 또 거기에 있고 싶다고 해서 밤 10시, 11시가 되도록 까지 그 집에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절제를 못하는 사람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는 자입니다. 그 집에서도 좀 자야 하고, 자기네들끼리 해야 할 것도 있는데, 거기에 떡 앉아가지고 자지도 못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혹시 이웃집에 갔더라도 금방 돌아와야지, 밤이 새도록, 잠이 들도록 앉아 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남의 집에 가서 자고 오는 것은 어떻습니까? ‘밥은 열 집에서 먹어도 잠은 한 곳에서 자라’고 하였으므로, 다른 집에 가서 자고 오는 것도 못 씁니다. 이웃집에 가서 자고 오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집에 가서 자고 다니는 사람은 사람 구실을 못합니다.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들은 더욱 더 사람 구실을 못합니다. 하여간 이웃집에 자주 가지 말고 남의 집에 가서 자고 오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집에 가서 얻어먹고 오는 습관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런 행동을 다 절제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누가 이웃집에 다니면서 말썽을 일으킨다고 하였습니까? 디모데전서 5장 11절에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라고 하였고, 디모데전서 5장 13-14절에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젊은 과부들이 게으름을 일으켜서 집집에 돌아다니며 망령된 폄론을 일으키며 하지 아니할 말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젊은 과부는 할 것이 없습니다. 남편이 있어 남편에 얽매여야겠는데, 얽매이지 않으므로 할 것이 없으니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쓸데없는 말만 하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예 젊은 과부는 나가서 돌아다니지 말고, 심방을 하고 전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괜히 할 일 없이 이 집 저 집으로 돌아다니는 것보다 전도하는 일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3) 말
본문 18절에 “그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살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에 대해서 절제하라는 것입니다. 거짓 증거가 되지 아니하도록 진실한 말만 하고, 필요한 말만 하며, 쓸 데 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연히 쓸 데 없는 말을
돌아가면서 하므로 그것이 말썽이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일에 큰 손해를 주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진실한 말만 하고, 말을 과도히 많이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말에 덕이 있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고, 양심을 똑바로 써야 합니다. 진실한 말만 하고 합당한 말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살이라”는 것은 거짓말이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남을 망하게 만드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의뢰할 바가 아니라 사랑할 바임
본문 19절에 “환난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의 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부러진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부러진 이를 의뢰하면 먹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발목이 비뚤어진 발을 의뢰하면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것은 환난 날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항상 진실치 못한 사람을 의뢰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진실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며,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만 의뢰해야 합니다. 사람은 의뢰할 바가 아니고, 사랑할 바입니다. 사람을 의뢰하다가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더욱이 진실치 못한 사람을 의뢰하면 당장에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또 진실한 사람이라도 의뢰할 바가 못 됩니다. 왜 사람은 의뢰할 바가 못 됩니까?
본문 19절에 “환난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의 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부러진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부러진 이를 의뢰하면 먹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발목이 비뚤어진 발을 의뢰하면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것은 환난 날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항상 진실치 못한 사람을 의뢰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진실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며,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만 의뢰해야 합니다. 사람은 의뢰할 바가 아니고, 사랑할 바입니다. 사람을 의뢰하다가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더욱이 진실치 못한 사람을 의뢰하면 당장에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또 진실한 사람이라도 의뢰할 바가 못 됩니다. 왜 사람은 의뢰할 바가 못 됩니까?
그 사람이 아무리 진실하고 양심을 쓴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을 의뢰하여 무엇을 하다 보면 그 사람에게 사정이 있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진실한 사람에게 보증을 서주면서 ‘이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니까 보증을 서주어도 틀림이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진실하여 보증을 서도 잘라 먹을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어떻게 하든지 물어주려고 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사업이 안 됩니다. 사업이 어디 자기 마음대로 됩니까? 그런데 사업이 안 되면 돈을 못 물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빠서 돈을 못 주는 것이 아니고, 사업이 안 되어서 돈을 못 줍니다. 그런 때에는 아무리 진실해도 못 물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큰 사고가 납니다.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의뢰할 바가 아니고 단지 사랑할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만 믿으며 그 뜻에 순종해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본문 20절에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쏘다 위에 초를 부음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다’고 하였습니다. 추운 날에 옷을 벗으니까 더 춥습니다. 또 ‘쏘다 위에 초를 부음 같다’고 하였는데, 초가 시고 소다는 쓴데 쏘다 위에 초를 치니까 그 쓴 것이 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설상가상(雪上加霜)입니다.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면 손해가 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상한 자에게는 노래해주지 말고 가만히 놔두며 그냥 기도만 해주어야 되겠습니다. 가만히 두고 기도만 해주어야지,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서 노래를 해주다가는 더 손해가 납니다. 하나님께서 풀어주신 다음에 그때에 가서 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이 상해 있는 사람은 옆에서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그 말을 안 듣습니다. 그러므로 먼저는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상하면 은혜도 못 받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해줘도 그 사람에게 은혜가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마음을 상하지 않게 잘 다스려야겠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잘 지키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면 손해가 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상한 자에게는 노래해주지 말고 가만히 놔두며 그냥 기도만 해주어야 되겠습니다. 가만히 두고 기도만 해주어야지,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서 노래를 해주다가는 더 손해가 납니다. 하나님께서 풀어주신 다음에 그때에 가서 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이 상해 있는 사람은 옆에서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그 말을 안 듣습니다. 그러므로 먼저는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상하면 은혜도 못 받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해줘도 그 사람에게 은혜가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마음을 상하지 않게 잘 다스려야겠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잘 지키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6.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은혜와 상을 받음
본문 21-22절에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2장에 보면 이 말씀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원수가 배고파할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 말라 할 때에 물을 마시우면 핀 숯불을 그 머리 위에 놓는 것과 같아서 그 사람이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께서 상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원수를 사랑하는 자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면 하나님과 신령한 교통이 이루어지고 장차 상도 받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신령한 은사를 그 시간부터 받게 됩니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사이가 막힙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께 벌써 상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면 그 시간부터 상을 받습니다. 그 시간부터 하나님과 교통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적 교통이 임하게 됩니다. 벌써 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으므로 하늘나라에 가서도 그것에 대한 상급을 다 받게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무엇을 받겠습니까? 상 대신에 벌을 받되, 그 시간부터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 마음을 열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쓰지 못했으므로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지 않으십니다. 사람과 막힌 것은 하나님과도 막힌 것입니다. 사람과 풀어야 하나님과도 열립니다. 마태복음7장 1-2절에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남을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비판으로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면 자신이 하나님의 비판을 받고, 다른 사람을 헤아리면 자신도 하나님
의 헤아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면 자신도 하나님의 정죄와 판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의 헤아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면 자신도 하나님의 정죄와 판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하여간 원수를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을 더욱 더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그 시간부터 하나님과의 사이가 막힙니다. 왜냐하면 사람과 막힌 것을 열지 않았으니 그 시간부터 하나님과도 막히는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은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며, 하늘나라에 가서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있을 때에 아예 마음을 열고 사랑해야 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원수로 대하는데, 내가 먼저 사랑하자’라고 하며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인사도 먼저 하면서 적극적으로 나가면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그것이 긍휼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까? 그 시간부터 하나님의 긍휼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누리며 하늘나라에 가서도 그 상급이 큽니다. 구원을 잘 이루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가 있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으로 잡아먹으라
원수는 하나님께서 잡아먹고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원수를 잡아먹되, 사랑으로 잡아먹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으로 잡아먹으려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즉, 잡아먹는다는 것은 사랑으로 그 사람을 삼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긍휼이 오고 하나님과 교통이 되며 하나님의 것을 더 많이 받아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원수 때문에 영혼이 자라나고 마음이 넓어지고 긍휼이 커져서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을 많이 받게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수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유익이 큽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 그냥 원수로 사이를 맺고 나가면 다 믿은 것입니다. 그냥 껍데기만 믿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심령이 하나님과 막히고 하나님의 것을 더 받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도 심판 밖에는 받을 것이 없습니다.
원수는 하나님께서 잡아먹고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원수를 잡아먹되, 사랑으로 잡아먹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으로 잡아먹으려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즉, 잡아먹는다는 것은 사랑으로 그 사람을 삼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긍휼이 오고 하나님과 교통이 되며 하나님의 것을 더 많이 받아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원수 때문에 영혼이 자라나고 마음이 넓어지고 긍휼이 커져서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을 많이 받게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수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유익이 큽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 그냥 원수로 사이를 맺고 나가면 다 믿은 것입니다. 그냥 껍데기만 믿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심령이 하나님과 막히고 하나님의 것을 더 받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도 심판 밖에는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는 진정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인사를 안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따라가서 인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인사를 안 하면 안 한다고 하지 말고 따라가서 인사해야 합니다. 말을 안 하면 따라다니면서 말해야 합니다. 원수가 있으면 그저 갖다 주어야 합니다. 기도해주면서 맺힌 것을 풀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잡아 삼키면, 자기도 살고 원수도 삽니다. 다 살 날이 옵니다.
7. 참소(讒訴)하는 자와 다투는 자
본문 23절에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북풍이 비를 일으킬 때도 있고 동풍이 비를 일으킬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소하는 사람은 북풍이나 동풍과 같아서 사람 얼굴에 분만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참소’는 거짓말로 고해바치는 것, 거짓말로 남을 헐어서 고해바치는 일을 뜻합니다. 그것이 분을 일으키는 것밖에 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3절에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북풍이 비를 일으킬 때도 있고 동풍이 비를 일으킬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소하는 사람은 북풍이나 동풍과 같아서 사람 얼굴에 분만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참소’는 거짓말로 고해바치는 것, 거짓말로 남을 헐어서 고해바치는 일을 뜻합니다. 그것이 분을 일으키는 것밖에 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4절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살면 늘 다투다 보니 마음이 항상 상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마음이 상하면 무엇이 좋겠습니까? 차라리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투는 여인이나 다투는 남자와 이미 결혼한 사람은 움막에서 혼자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혼을 하고 움막으로 가야 합니까? 아니면 그냥 싸우면서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다투기 좋아하는 배우자와 결혼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말씀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까 상대를 내버리고 움막으로 가야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같이 싸우고 살아야 되겠습니까? 이때 움막으로 가라는 것은 움막에 기도하러 가라는 것입니다. 배우자가 다투자고 하면 움막으로 가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투는 여인이나 다투는 남자와 이미 결혼한 사람은 움막에서 혼자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혼을 하고 움막으로 가야 합니까? 아니면 그냥 싸우면서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다투기 좋아하는 배우자와 결혼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말씀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까 상대를 내버리고 움막으로 가야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같이 싸우고 살아야 되겠습니까? 이때 움막으로 가라는 것은 움막에 기도하러 가라는 것입니다. 배우자가 다투자고 하면 움막으로 가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은밀한 골방에 가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다투자고 하면 움막에 가서 기도하는데, 기도할 때에도 한 대 때리면 맞고 가만히 앉아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맛이 없어서 못 싸웁니다. 싸울 때에 맞장을 대야 싸우지, 싸우자고 하면 벌써 눈을 감고 엎드리는데 어떻게 싸웁니까? 한 대 때려도 가만히 “주여, 주여”만 하므로 싸우려고 해도 싸울 맛이 없습니다. 맞장을 떠야 싸울 맛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투는 사람과 결혼한 사람은 같이 싸우지 말고, 기도를 많이 해야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싸우자고 하면 아예 엎드리는 것입니다.
8.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본문 25절에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그렇다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면 안됩니다. 언제나 의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본문 25절에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그렇다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면 안됩니다. 언제나 의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9. 자신을 제어하라
본문 27절에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고 하였습니다. 꿀이 달다고 해서 많이 먹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단 것이라도 절제하여 먹을 만큼만 먹어야 합니다. 절제해 나가야만 모든 것이 바로 됩니다. 세상에 꿀과 같이 단 것이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나치게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예도 취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7절에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고 하였습니다. 꿀이 달다고 해서 많이 먹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단 것이라도 절제하여 먹을 만큼만 먹어야 합니다. 절제해 나가야만 모든 것이 바로 됩니다. 세상에 꿀과 같이 단 것이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나치게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예도 취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8절에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마음을 제어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마음을 잘 제어해서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을 지키는 자가 용사보다 낫습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성이
무너진 것과 같아서 마귀가 막 들어옵니다. 그래서 다 점령당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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