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4일 화요일

전도서 3:1-13 세상 범사에 기한(期限)이 있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세상 범사에 기한(期限)이 있음
전도서 3:1-13

1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2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돌을 던져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 6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1. 세상 범사는 기한이 있고 변함

본문 1절에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기한이 있습니다. 그 기한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이 전개됩니다. 또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세워놓은 목적은 다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세상 만사가 발생하고 종결되는 것은 다 목적이 있어서, 그 목적을 이루어나갑니다. 본문에서의 목적은 하나님의 목적을 말합니다. 천하 만사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성취하시며, 소멸케 하시고, 심판하셔서 구원 운동의 목적을 이루어나가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게 세워놓은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본문 2-3절에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날 때에는 죽는 날을 정해놓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곡식도 심었으면 심은 것을 거둘 때가 있고, 나무도 심었으면 벨 때가 있습니다. 기한이 다 있습니다.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라고 하였는데, 살인자를 사형시킬 때가 있고, 전쟁으로 사람을 죽일 때가 있으며, 부상자나 병자를 치료시킬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전쟁 때에 사람을 죽이는데, 죽이기도 하지만 부상병이나 포로들을 치료해주기도 합니다. 이 세상은 죽이는 세상인 동시에 죽어가는 사람을 치료해주는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징계하실 때가 있고 싸매어주실 때가 있습니다(욥 5:17-18). 또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1장 10절에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건물을 허는 것은 더 좋은 건물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 모든 건물은 언젠가는 헐릴 때가 있습니다.

본문 4절에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슬픔이 지나가면 웃을 때가 옵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는데,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것입니다. 또 ‘울면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시 126:5). 그러므로 슬픔이 올 때에 자포자기하지 말고 할 일을 계속 해나가면, 반드시 웃을 때가 옵니다. 슬퍼할 때가 지나면 앞으로 춤출 때가 옵니다.

본문 5 에 “돌을 던져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못 쓰는 돌이나 걸리는 돌, 방해가 되는 돌은 던져버리나 쓸 만한 돌은 거둡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버렸던 돌을 얼마 후에 다시 거두어다가 쓸 때가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못 쓰겠다고 내버렸던 사람도 때가 되면 필요하여 다시 부를 때가 있습니다. 바울이 마가를 못 쓰겠다고 내버렸다가 다시 불렀고(딤후 4:11), 사사 가운데 기생의 아들 입다도 내버려졌다가 다시 부른 바가 되었습니다(삿 11:1-6). 모세도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척했으나 때가 되니까 모세를 다시 불러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또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버렸으나 예수님께서는 요긴한 모퉁이 돌이 되셨습니다. 물건도 못 쓸 것이라고 버렸다가 다시 찾아 쓸 때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라고 하였는데, 아이들도 어릴 때에는 안아서 키우지만 장성하면 멀리합니다.

본문 6절에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필요하여 찾아서 얻을 때가 있고 그것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것이 귀하다고 생각하여 잘 지킬 때도 있지만, 가다가 필요치 않게 되어 버릴 때도 있습니다.

본문 7절에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옷도 못쓰게 되면 찢어버립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는 또 입으려고 꿰매는 수가 있습니다. 또 잠잠할 때가 있지만 말할 때도 있습니다. 늘 잠잠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잠잠하다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됩니다. 잠잠한 사람도 말할 때가 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말은 해도 괜찮은 말을 해야 합니다. 또 때와 장소에 따라 잠잠할 때가 있고, 말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본문 8절에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는 처음에는 사랑한다고 하다가 얼마 있다가 보기 싫다고 하며 내어 쫓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사랑을 쫓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쫓아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불변합니다.

또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다’고 하였는데, 전쟁할 때는 서로 죽이지만 전쟁이 끝나면 평화하는 날이 오게 됩니다. 또 평화하지만 좀 있으면 전쟁할 때가 오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에 이 세상 만사에는 기한이 있고, 또 세상 만사는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변천하고 변천하는, 변화무쌍한 세상입니다. 언제나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꽃은 피는 날이 있지만 떨어지는 날이 옵니다. 사람이 사는 날도 있지만 죽는 날도 옵니다. 돈을 버는 날도 있지만 쓰는 때도 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질 것을 전제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의지할 바가 못 되고, 또 믿을 바도 못 됩니다. 출생하면 죽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사랑한다고 하면 언젠가는 사랑하지 못할 날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세운다고 하면 허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은 얼마 있으면 늙어질 날이 옵니다. 잠시 잠깐이면 지나가고 없어지는 허무한 세상입니다.
세상은 의지할 것도, 바라볼 것도 못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의, 그리고 영적 생명이 자라난 것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의지하며 즐거워 해야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수고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심

본문 9-10절에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일하는 자가 많은 수고를 하며 세상일을 해보았으나 결국에는 다 없어질 것이므로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생한 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고생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창3:19). 그러므로 세상은 애쓰는 세상이고, 고생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애써 땀을 흘려 수고하여야 먹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 11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는 것은 만물이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쓰여질 때에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이용될 때에 아름답습니다. 잠언 16장 4절에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없어질 것들이지만, 하나님께 쓰일 때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로 쓰임을 당하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물질도 하나님을 위해서 바로 쓰이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아름답고 귀중한 것이라도 죄악에 이용당하고, 욕심에 이용당하고, 이 세상에 이용당하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 못됩니다.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 됩니다.

솔로몬이 세계 일등 부자로 세계에서 제일 좋은 집과 많은 과수원과 포도원을 가지고 목축을 많이 하며 여러 종들도 많이 두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헛되다”는 말을 다섯 번씩이나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이용당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일을 한 것 밖에는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뭐합니까? 또 집을 크게 지었으면 뭐합니까? 잠시 있으면 자기도 죽을 것이고 다 내놓고 갈 것입니다. 다 잠시 잠깐이면 지나갑니다. 높은 자리 올라갔어도 얼마 있으면 내놓아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새 미국 사람들 가운데 “천국에 가면 이만큼 좋을까?”라고 하는 사
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불쌍한 자들입니다. 일생 동안 세
상에 도취되어서 향락주의로 나가다가 갑자기 죽으면 비참해집니다. 그
러나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바로 살아야겠다. 하나님의 일을 좀 하
다가 가야겠다’라고 하며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충성하려고 애를 쓰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하였는데, 이것
은 사람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에게 자기 형상과 같은 영을 두셔서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영원을 사모
하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계속해서 변천되어 내려가는 것도 세상을
믿지 말고 영원을 사모하라는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괴로움과 수고가
많은 세상에서 영원을 사모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이 너
무 편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영원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찬송가에도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
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라고 하며, 하늘나라를 바라본다
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환난과 고난 중에서 세상 줄
을 끊어버리고 하나님을 찾고 영원을 사모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영원을 사모하라고 여러 가지 환경을 주셨습니다. 평안하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또 좋은 것만 있으면 안 되겠으니까 자꾸 바꿔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잘될 때와 잘 안 될 때, 날 때와 죽을 때, 평화할 때와 전쟁할 때가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늘 심어서 잘되면 안 되겠으니까, 뽑아버릴 때가 오게 하셨습니다. 또 웃을 때만 있으면 영원을 사모하지 못하겠으니까, 슬퍼할 때가 옵니다. 세상이라는 것은 변해 내려가는 것이지, 늘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세상 일은 헛되고 하나님의 일밖에 유익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늘 영원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 만사를 운행해나가시는데, 그 궁극적인 원인과 목적을 사람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롬11:33).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언제 죽을지, 언제 전쟁이 날지, 언제 하나님의 심판이 올지, 사랑하므로 같이 살지만 또 언제 갈라지게 하실지 알 수 없습니다. 또 예수님의 재림의 날과 시간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 아십니다(마 24:36).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믿음으로 하나님께 이용당하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며,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늘 하늘나라에 갈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잠시 있으면 갈 것인데, 하늘나라 갈 생각을 하루 한 번씩만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 만날 생각을 하루에 한 번씩만 해도 좋을 것같습니다.

본문 12절에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무엇이 귀중합니까?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이 귀중합니다. 그러면 선이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9장 1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이는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내신 목적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선을 베풀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다가 오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상달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다 없어지고 맙니다. 따라서 헛된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수고 함으로 먹고 마시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고 먹게 하셨습니다. 놀고 먹는 것은 하나님의 원리에 어긋납니다(창 3:19).
그러므로 반드시 일하고 먹어야 합니다.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은 세상의 일로 수고하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찾고 믿음으로 낙을 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믿는 일을 하느라 수고하는 것이 복이며, 낙이라는 것 입니다(골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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