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6일 목요일

전도서 6:1-12 무익(無益)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무익(無益)
전도서 6:1-12

1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폐단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2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3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찌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4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 이름이 어두움에 덮이니 5햇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 이가 저보다 평안함이라 6저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찌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7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 8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뇨 인생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는 무엇이 유익한고 9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의 공상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0이미 있는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 이름이 칭한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11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12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1. 존귀와 풍성한 재물이 헛됨

본문 1절에 “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폐단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중한 것’이란 공통적인 것, 보편적인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당하는 폐단이 많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부족함이 없으리만큼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받은 사람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의 소원대로 많은 재물과 부요와 권세를 부족함이 없으리만큼 많이 얻었어도 그것을 다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많은 재물과 부요와 권세를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들의 죄 값 때문에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로 갑니다. 다시 말하는데 죄가 있기 때문에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업을 잘해서 부요하고 존귀하게 되었다고 해도 병이 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을 누리지 못합니다. 또 세상을 떠나면 다른 사람이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악한 병폐라는 것입니다.

전도서 5장 11절에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고 하였습니다. ‘재산이 많으면 먹는 자도 많아진다’는 것은 자기가 일을 다 해놓았어도 다른 사람이 그것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옛날에도 부자들이 집을 잘 지어놓았지만, 그 부자들이 얼마 못 살고 다른 사람이 그 집에 가서 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음의 소원대로 돈을 많이 벌고 권세를 많이 가졌지만, 그것을 자기가 다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주에 양지라는 데가 있는데, 양지에서 국도로 조금 올라가면 99칸 짜리 송병준 씨의 집이 있습니다. 1907년 구한말 때에 이완용 내각이들어서면서 송병준 씨가 내무대신을 했는데, 지금은 이완용과 함께 친일파, 매국노의 수괴(首魁)로 대표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 권력을 앞세운 재산 강탈로 부를 축적하면서 99칸짜리 집을 굉장히 잘 지어놓았습니다. 거의 산(山) 일대를 다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어놓은 집에서 얼마 누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누리게 되었습니다. 요새는 그 집을 누가 사서 기도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일은 자기가 다 해놓았다고 해도 헛된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누렸어도 얼마 못 누리고 죽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짧고 헛된 것입니다.

2. 많은 아들과 장수함이 헛됨

본문 3-6절에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찌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 이름이 어두움에 덮이니 햇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 이가 저보다 평안함이라 저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찌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일백 명의 아들을 낳고 장수하여 오래 살아도 그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심령의 낙을 누리지 못하면 그 많은 자녀와 오래 산 보람이 무엇이며, 또 자녀가 백 명이라고 해도 자신
의 생명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날 때에는 다 내려놓고 갈 것뿐입니다. 또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낙태된 자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즉, 낙태된 자는 이 세상에서 고생을 하지 않고 갔으니 더 낫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백 명이나 기르려면 얼마나 고생과 염려가 많았겠습니까? 또 오래 살면 욕도 많이 받을 것이고, 자녀가 많으면 걱정도 많을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일도 많은 법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하나도 복이 못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적 낙을 누리다가, 세상을 떠날 때에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복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평안과 영적 안식을 누립니다. 또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과 더불어 즐거워하다가 세상을 떠나면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그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이 낙을 누리지 못하면, 백 세를 살면서 부요하여 존귀를 누리고 자녀가 백 명이라고 해도, 소용이 없고 다 헛된 것뿐입니다.

3. 지혜자의 경영도 헛됨

본문 7-8절에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뇨 인생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는 무엇이 유익한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그 입을 위해서 수고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생활비를 버느라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한다’는 것은 심령에 만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다 입을 위해서 수고하지만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욕심이 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뇨’라고 하였는데,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면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 앞에서 행한 줄을 아는 가난한 자’라는 것은 가난한 자라도 지혜롭게 행하여 사람 노릇을 바로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라도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로 사는 자는 유익이 많습니다.

본문 9절에 “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의 공상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지나친 공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현재에 만족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 현재에 자기가 할 일을 바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현재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현재 있는 것도 믿음으로 이용하지 못하면 다 헛됩니다. 그러므로 현재 있는 것을 잘 이용하고, 지나친 욕심이나 공상을 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 분수에 맞아야 합니다.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지나친 공상이나 계획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현재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그 환경에 만족하며, 그 환경을 잘 이용하여 믿는 일을 바로 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바로 사는 신앙이 가장 귀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지나친 욕심이나 포부를 갖는 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됩니다. 바람을 잡으려고 하루 종일 손을 벌리고 다녀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있는 것을 가
지고 만족하고 믿음을 지키며 충성해야겠습니다.

4.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음

본문 10절에 “이미 있는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 이름이 칭한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그 이름이 칭한 바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장래를 예정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이미 다 아신다는 뜻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예정해놓으셨습니다. 또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다툴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다투면 누구나 실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일 강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보다 강한 자가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정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 지나친 욕심으로 자기가 잘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하나님과 다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다투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다 실패입니다. 하나님께서 뱁새로 내셨으면 뱁새로 살아야 합니다. 뱁새 걸음으로 살면 잘 살 수 있으나, 황새의 걸음을 하면 다리가 찢어져서 죽습니다. 또 개구리 배는 개구리 배만큼 부르면 잘 살 수 있으나, 개구리가 소의 배만큼 부르겠다고 하면 배가 터져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신 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대로, 그것을 가지고 충성하면서 믿음을 지키면 그러한 삶이 하나님 앞에 옳은 것입니다.

되지 못한 것들이 된 체하다가 다 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자기의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분수에 지나치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며, 도리어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너는 이 세상에 나가서 몇 살을 살고, 무엇을 하다가 오너라. 또 너는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해라’ 등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벌써 다 예정해놓으셨습니다.
따라서 그 예정하신 대로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대로 하면 잘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직분을 잘 감당하며 순종을 잘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싸워서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낮아져서 남은 바라보지 말고, 자기 할 일만 충성스럽게 하면 됩니다. 영적 안식을 누리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5. 그림자와 같은 일평생을 산 것이 헛됨

본문 11-12절에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분수를 넘어서 더 많은 부귀와 영화, 장수와 안락을 얻으려고 계획하는 것은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인간의 일생은 그 날이 그림자와 같이 헛되며,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림자와 같이 지나가는 일평생에 심령의 낙을 누리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면 심령의 낙을 누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고,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주님과 동거동행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은 그림자와 같이 지나갑니다. 잠시 잠깐이면 하나님 앞으로 갑니다. 그러므로 영이 구원을 받아서 심령의 낙을 누리고, 영적 평안을 가지고 살면서 하늘나라에 가서도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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