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6일 목요일

전도서 7:1-29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지혜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지혜
전도서 7:1-29

1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3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4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5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6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7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 8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
으니 9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10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11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12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13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4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15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16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17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 18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19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20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21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22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23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 24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25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26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 27전도자가 가로되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28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29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1.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음

아름다운 인격

본문 1절에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하였는데, ‘이름’은 명예와 영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인격을 가리킵니다. 명예 영광을 구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인격이 이렇게 아름다운 인격이 되면 그것은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보배로운 기름이 귀하지만 그것보다 자기의 인격이 아름답게 만들어지면 그것이 더욱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몰라주어도 자기의 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잘 이루어나가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도 알아줄 날이 옵니다. 또 특별히 사람이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자기 인격만 하나님 앞에 잘 자라나서 아름답게 만들어지면 그것은 영원히 아름다운 것입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은 이유

그리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라고 하였는데, 보통은 출생하면 기뻐하고 죽으면 슬퍼합니다. 아이를 하나 낳으면 온 집안이 기뻐하고, 사람이 하나 죽으면 온 집안이 슬퍼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출생하는 날보다 죽는 날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죽는 날이 왜 낫습니까? 간단합니다. 그날이 천국 가는 날이기 때문에 더 낫습니다. 죽는 날은 하늘나라 아버지의 집에 가는 날입니다. 천국에 가서 아버지와 같이 사는 날인데, 얼마나 좋은 날입니까? 신부로 말하면 신랑을 맞이 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신랑이시고 우리는 신부인데, 신부가 신랑을 맞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신랑을 맞으러 가는데 울며 갑니까? 아닙니
다. 뒤도 안 돌아보고 간다고 합니다. 자기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딸을 보내는데, 신부는 신랑을 맞이하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난다고 합니다. 이렇듯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러 가는 날, 사모하는 아버지의 집에 가는 날, 하늘나라에 가는 날이 얼마나 좋은 날입니까? 그 나라에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나 눈물도 없습니다. 영생복락을 누리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어떤 나라입니까? 눈물과 한숨과 고통과 질병과 죽음과 환난과 핍박과 괴로움이 가득한 곳입니다. 하지만 하늘나라는 그런 것이 다 없는 영생복락을 누리는 낙원입니다. 그 낙원에 가는 날이 얼마나 기쁜 날입니
까? 감옥과 같은 이 세상에 살다가 낙원에 가는 날, 그날이 말로 할 수없는 기쁜 날입니다. 그러므로 출생하는 날은 죄와 환난과 고통과 한숨과 눈물과 질병과 죽음이 가득한 세상에 고생하러 나오는 날입니다. 고생하기 시작하는 날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날 때에 첫 마디가 ‘악’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울며 난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고생하게 생겼구나. 아이고’라고 하며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늘 천국 가기를 사모하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1-23절에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22절 생략)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라고 하였습니다.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있을 욕망을 가지는 것이 더 좋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는 신앙에 늘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있을 욕망을 가지는 것이 더욱 좋다’라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라는 신앙 고백을 할 수가 있고, 기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나갈 수가 있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음

본문 2절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잔칫집에 가는 것은 사람들이 좋아서 가지만, 초상집에 가는 것은 끔찍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습니다. 잔칫집에 가면 얻어먹고 희희낙락해서 다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잔칫집에 가서 얼마 얻어먹고 즐겁게 놀다 온다고 해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 이튿날에 가면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초상집에 가면 ‘사람의 결국이 다 이와 같구나’라고 하면서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도 이제 정신 차려서 바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생기고, 자기도 언젠가 떠날 것을 재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무엇을 하겠다는 결심이 생깁니다. 얼마나 유익입니까? 그래서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자기의 되지 못한 것을 슬퍼하고 죄로 인해서 슬퍼하는 것이 웃음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는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상갓집에 가서 자기의 죄를 깨닫고 자기가 준비하지 못한 것을 깨닫고 근심하면, 마음이 좋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준비하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바로 서게 되니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즉, 자기 죄와 자신의 되지 못한 것과 하나님 앞에 갈 준비를 하지 못한 것으로 인한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준비는 하나도 하지 못하고 죄는 그냥 놔두어서 결국 망하겠는데, 웃으면 뭐합니까? 웃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를 준비하는 사람이 지혜자임

본문 4절에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언제나 연락하는 집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 번 놀까, 어떻게 하면 한 탕 먹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에는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먹자주의에 빠져 연락하는 집에 가있지 않고, 초상집에 가 있습니다. 초상집에 가 있다는 것은 늘 죽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항상 내세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좀 손해를 봐도 하늘나라에 가서 유익을 보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자가 초상집에 가 있는 사람입니다.

2. 책망을 듣는 것이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음

책망과 우매자(愚昧者)의 웃음소리

본문 5 에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매자의 노래를 들으면 뭐합니까? 듣고 지나가면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책망을 들으면 자기가 바로 설 수 있게 됩니다. 에베소서 5장 13절에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책망,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책망을 듣는 것은 다 빛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노래는 아무리 들어도 지나가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귀에나 즐거운 것이지, 심령에 유익이 되지는 않습니다.

본문 6절에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매자는 어리석은 자인데, 그의 웃음소리가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가시나무가 타는 것은 지끈지끈, 턱턱턱턱 하면서 무질서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탑니다. 우매자의 노래하는 것이 그만큼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시나무는 다 타면 재밖에 안 됩니다. 지끈지끈 타지만 다 타고 난 다음에는 재밖에 없습니다.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재도 한 움큼 밖에 안 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모든 일을 참으며, 오늘의 할 일을 바로 하라

욕심을 버리고, 일을 시작했으면 끝을 맺어야 함

본문 7절에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탐심(욕심)이 지혜자를 멍청하게 만들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한다고 하였습니다. 욕심이 들어와 꾀면 지혜가 다 없어지고, 뇌물을 받게 되면 명철이 다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을 버려야 지혜가 있게 되고, 무엇을 바로 보게 됩니다. 바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바로 보지 못하고 바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에 대한 탐심, 더욱이 뇌물은 사람을 어둡게 만들어서 일을 바로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뇌물과 탐심은 사람을 망하게 만들고 일을 바로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욕심이 들어오면 눈이 어두워져서 바른 길을 가지 못합니다.

본문 8절에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시작하고 중간에 그만 두는 것보다 끝까지 참아서 그 일을 성공하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시작하면 중도에 끝내지 말고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그 일을 계속해내라는 것입니다. 끝을 맺으라는 것입니다. 시작하는 사람에게 끝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일을 한 번 시작했으면 어떠한 고난이 와도 잘 참고 계속해서 그 일을 끝맺어서 졸업장을 타는 것이 중요합니다. 끝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작만 하고 끝을 맺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노를 잘 다스리라

본문 9절에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고, 노하기를 참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나가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잠언 16장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노할 일이 생겨도 노하지 말고, 섭섭한 일이 생겨도 노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노할 만한 일이 생겼을 때에 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차례 차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노할 일이 생겼을 때, 마귀 역사가 일어났을 때, 무엇인가 나를 격동시켰을 때, 어떠한 죄가 드러났을 때에 그것을 가만히 놔두면서 노하지 말고 잘 참고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면 노를 일으키는 것을 잡을 수 있습니다. 마귀를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분이 나서 잡으려고 하다가는 일이 다 잘못되고 맙니다.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4. 돈보다 지혜와 지식이 귀중함

지혜 있는 자가 되려면 현재에 자족을 배우라

본문 10절에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낫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옛날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늘 불만에 살고, 장래는 늘 좋게 생각합니다. 믿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지난 세월은 다 좋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한 것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잘해준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감사할 줄 모르고 늘 불만에 삽니다. 그런데 그것이 미련한 자입니다.
현재에 자족을 배우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감사하고 자족을 배우며 현재에 바로 살아야 합니다. 지나간 세월을 아무리 자랑해봤자 소용이 없고, 지나간 세월에 누가 잘해줬다고 해도 쓸 데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현재에 감사하고, 현재에 자족을 배우며, 현재에 자기가 바로 해야 합니다. 옛날만 사모하고 현재에 불만을 가지고 나가면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현재에 제일 좋은 것을 주신 줄로 알고, 현재에 감사하고 살아야 합니다. 가장 은혜되는 것, 가장 자신에게 유익할 것을 현재에 주신 줄로 알아야 합니다. 쓴 것이나 단 것이나 다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감당치 못할 시험은 안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시험을 통해서 연단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연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지혜’는 신앙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햇빛을 보는 자’라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을 가리킵니다. 믿음으로 사는 지혜, 영적 지혜, 그것이 ‘유업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라고 하였는데, 그러한 지혜가 세상에 사는 동안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6장 12절에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헛된 생명으로, 그림자같이 지나가는 일평생입니다. 그래서 지혜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성경말씀의 지식이 믿는 자의 생명을 보존함

본문 12절에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지식’은 성경말씀에 나타난 지식입니다.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성경말씀의 지식이 믿는 자의 생명을 보존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11장 4절에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의리는 죽음을 면케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재물은 하나님의 진노하는 날에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전도서 6장 2-3절에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찌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많이 받은 사람이 그것을 누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백 자녀를 낳고 장수해도 영적 생명의 낙을 누리지 못하면(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귀와 영화가 아무리 많고, 장수하며, 일백 자녀가 있어도 그 사람이 자기의 영적 낙을 누리지 못하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5.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사람이 고칠 수 없음

본문 13절에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부러뜨려놓으신 것을 사람이 곧장 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사람이 곧게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굽게 만들어 놓으신 것은 굽은 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펴주시면 감사하고, 굽게 만들어놓으신 것은 사람이 곧게 할 수 없는 줄로 알고, 그저 굽은 대로 거기서 자기가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잘 이용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곧게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곧게 하려고 하다가 속만 상하고 도리어 사고만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구부러졌다고 해서 속상해 하지 말고, 첫째로 하나님께 기도해주면서 바른 말을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손해를 안 받도록 해야 합니다. 구부러졌다고 손해를 보고 안타까워하며 걱정하고 탄식하면, 그 사람은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바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부러진 대로 두고 자기도 손해를 안 보면서 거기서 자기 믿음을 지켜나가면, 구부러진 것도 언젠가 한 몫 쓸 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가는데, 그러한 것들을 다 이용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구부러진 것을 바른 것을 쓸 곳에 가져다놓으면 일이 틀어집니다.

하여간 구부러진 것을 사람이 억지로 고치려고 하면서, 그것 때문에 속상해서 안타까워하고 걱정하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사람이 죽습니다. 그대로 두고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잘 사용할 수있습니다. 싸움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속상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사람이 힘써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힘써서 하려다가는 괜히 자기만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사람이 곧게 할수 없는 줄 알고, 하나님께서 바로 세워주시면 혹시 될 줄로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이 두 가지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방탕하지 말고 거기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곤고한 날에도 낙망하지 말고 거기서 믿음을 지켜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형통하고 잘될 때에 타락하기 쉽고, 곤고할 때에 믿음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를 다 사람에게 겸해서 주실 때에 사람이 연단을 받습니다. 그리고 연단을 많이 받은 사람이 쓸 만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장래 일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장래 일을 모르게 해주셨기 때문에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형통하다고 해서 늘 형통할 줄 알지 말고, 곤고하다고 해서 늘 곤고할 줄로 알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상황 속에서 자기를 연단시키시는 줄 알고, 연단을 잘 받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6. 지나치게 의인이나 지혜자가 되지 말라

성경말씀보다 더 나가도 망하고, 덜 나가도 망함

본문 15절에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의’라는 것은 인본주의의 의를 가리킵니다. 인본주의의 의를 행하다가 망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교만해서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의가 합격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의는 낡은 옷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4장 6절에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
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더러운 옷과 같은 의를 가지고 있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또 악한 사람도 악을 행하다가 망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6절에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지나치게 의인’이라는 것은 성경말씀보다 지나친 의인이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더 잘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라는 것은 성경말씀보다 더 못한, 성경말씀에 미치지 못하는 악을 범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것도 망하는 것입니다.
즉, 성경말씀보다 더 나가도 망하고, 덜 나가도 망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라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서라는 데에 가서 서야 합니다. 성경보다 더 잘하겠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의인이 되는 것인데, 그런 사람도 망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 있는 것을 못한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지나치게 악인이 되겠다고 하는 것으로, 기한 전에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하여간 성경이 가라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서라는 데에서 서서, 모든 것을 성경에 표준하여 해야 합니다. 성경보다 더 나가도 죽고, 덜 나가도 죽습니다. 패망하고 기한 전에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끝까지 충성하며 참으라

본문 18절에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잡으려고 저것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저것을 잡으려고 이것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어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내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것을 잡으려고 저것을 놓지 말고, 저것을 잡으려고 이것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저것이 좀 더 좋을까 하고 이것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버리고 저것을 잡아야 되겠다고 하여 저것을 잡으면 또 시원치 않다는 것입니다. 다 비슷합니다.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비슷한 줄 알면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둘 다 주셔서 연단시키시려고 하는데, 이것을 잡으려고 저것을 내놓으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쓴 것과 단 것을 다 주셔서 두 가지를 통해 연단시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잡으려고 저것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 필요하기 때문에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어디 좋은 것을 붙잡으려고 가지고 있던 것을 내버렸습니까? 그저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하였습니다. 자기 아버지네 집에 있을 때에도 일을 맡기면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형한테 심부름을 가라고 하면 심부름을 가고, 애굽에 팔려가서도 보디발에게 가서 종살이를 하라고 하면 종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또 감옥에 들어가서도 옥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였고, 그 다음에 꿈 해석할 일이 생겼을 때에는 꿈 해석하는 일에 충성하였습니다. 바로 앞에 가서 꿈 해석을 하라고 할 때에는 그 일에 충성하였습니다. 또 총리를 맡았을 때에는 그 일에 충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현재 주시는 그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입니다. 옮겨주실 때에 옮겨주시는 곳에서 충성하고, 옮겨 주지 않으시면 거기서 늙어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주시는 대로 충성하면서, 이것을 잡으려고 저것을 놓지 말고 저것을 잡으려고 이것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다 필요합니다. 둘 다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충성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대로 충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사람이 좋은 길을 찾아가려고 해도 세상에 좋은 것이 없습니다. 자기 팔자에서 도망치려고 새벽밥을 지어 먹고 멀리 가려고 하는데, 앞에 어리어리 하는 것이 있더랍니다. 그래서 “너 누구냐?”라고 물어보니까 “네 팔자다”라고 하더랍니다. 팔자가 앞서 가는 것입니다. 팔자를 도망 치려고 하면 팔자가 앞서갑니다. 앞서 앉았다가 “너 왜 이제 오느냐? 나와 살자. 나는 네 팔자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좋은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현재 있는 곳에서 믿음을 지키면, 그곳이 좋은 데입니다. 그것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현재 있는 데에서 믿음을 지키라고, 하나님께서 그곳을 제일 좋은 곳으로 골라주신 것입니다. 바로 거기서 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7. 사람의 저주하는 말을 경히 여기라

본문 19-22절에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고 하였는데,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롬 3:10). 하나님의 의의 표준에 도달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말을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였는데, 다른 사람이 나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지 않는가 하며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실 것인지, 이 다음에 주님의 심판대에 설 때에 어떻게 판단 받을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8. 모든 것을 통달한 자가 없음

본문 23-24절에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참된 지혜를 알고자 하여 많은 애를 썼으나 지혜가 더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연구에 연구를 하여도 지극히 작은 부분만 알 뿐입니다.

본문 25절에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전심으로 지혜를 써서 깨달은 바에 따르면,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악의 결과는 멸망이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것은 미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9. 여인의 올무

본문 26절에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인’은 인본주의 세상을 말합니다. 음녀와 같은 이 세상이 성도를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믿음으로 바로 사는 자로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시어 음녀의 올무와 결박에 걸리지 않게 해주십니다. 성도가 평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힘을 쓰며 바로 믿으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음녀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니다.

10. 그리스도의 출생과 인간의 꾀

본문 27-28절에 “전도자가 가로되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다는 뜻입니다(사 9:6; 갈3:16; 계5:5).

본문 29절에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는데, 사람이 많은 꾀를 내어 스스로 구렁텅이에 빠져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지혜를 버리고, 먼저 하나님을 믿고 양심을 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구원을 받고 살 길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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