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범죄
예레미야 2:1-37
예레미야 2:1-37
1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찌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쫓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3그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4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5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 하였도다 7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8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쫓았느니라 9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0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 같은 일의 유무를 자세히 살펴보라 11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12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찌어다 심히 떨찌어다 두려워할찌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13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14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15어린 사자들이 너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날려 네 땅을 황무케 하였으며 네 성읍들은 불타서 거민이 없게 되었으며 16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 17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18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또 그 하수를 마시려고 앗수르 길에 있음은 어찜이뇨 19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0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하고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 21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 22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찌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 23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히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을 좇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너는 발이 빠른 젊은 암약대가 그 길에 어지러이 달림 같았으며 24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가 그 성욕이 동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성욕의 때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자들이 수고치 아니하고 그것의 달에 만나리라 25내가 또 말하기를 네 발을 제어하여 벗은 발이 되게 말며 목을 갈하게 말라 하였으나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 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하도다 26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같이 이스라엘 집 곧 그 왕들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 27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치 아니하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28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29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너희가 다 내게 범과하였느니라 30내가 너희 자녀를 때림도 무익함은 그들도 징책을 받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31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연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 하느냐 32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33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34또 네 옷단에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음을 인함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로 너를 책망함을 인함이니라 35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치 아니하였다 함을 인하여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36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네가 앗수르로 인하여 수치를 당함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37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임이니라
1. 이스라엘이 처음 사랑을 버림
본문 1-2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찌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 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이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그것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네 소년 때의 우의(友誼)와 네 결혼 때의 사랑’이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광야로 나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고,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또 반석에서 내신 물을 마신 때를 가리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살며 하나님만 의뢰하였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처음 사랑입니다. 처음 사랑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에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라가던 초대 교회의 신앙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랑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다시 찾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책망하셨습니다(계 2:1-7). 촛대를 옮기신다는 것은 영권과 생명의 역사를 거두어간다는 뜻입니다.
본문 3절에 “그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통과하던 때, 처음 사랑을 가지고 나아가던 때는 하나님의 성물이었고, 처음 익은 열매였습니다. ‘처음 열매’는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출 23:19). 그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것이었으며,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인도가 있었습니다.
2. 처음 사랑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책망하심
본문 4-7절에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인도하여 아름다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고 기름진 것을 먹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무슨 불의함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허탄한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허탄한 것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와 광야와 사막, 구덩이 땅, 건조한 사망의 음침한 땅을 건널 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러한 곳들을 무사히 잘 건넜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땅이라도 처음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를 때는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처음 하나님을 따라갔을 때에는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따라가고, 사막과 건조한 사망의 음침한 땅도 따라갔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무사히 통과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갔는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처음 사랑을 가지고 나갈 때에 기름진 땅으로 인도해주시고, 아름다운 과실을 먹게 해주시고, 풍성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해주시니까 믿음을 안 지키고 하나님의 기업을 가증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들, 법 잡은 자들, 관리들, 선지자들이 타락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를 찾고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그들이 타락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고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법 잡은 자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재판하는 자들인데, 공의대로 재판하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유익을 따라 그릇된 재판을 하였습니다(미 3:11). 하나님의 법대로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인본주의로 처리하였습니다. 또 관리들은 이스라엘의 인도자요, 통치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을 인도해야 하는데, 하나님을 거역하고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만 전해야 하는데,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아갔습니다.
본문 9절에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서 하나님과 대적이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다투신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잘못된 길로 갈 때에 하나님께서 버려두지 않으시고, 회개시키기 위해서 다투신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징계하십니다. 또 ‘너희 후손과도 다툰다’고 하였는데, 믿음이 타락되면 자기만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후손까지도 대적이 됩니다.
본문 10-12절에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 같은 일의 유무를 자세히 살펴보라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찌어다 심히 떨찌어다 두려워할찌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란 깃딤과 게달 같은 이방 나라들도 자기가 섬기던 신을 내어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조상 때부터 섬기던 살아계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으로 망령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세상 나라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또 이 일은 모
든 만물이 놀랄 만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3. 두 가지 악과 그에 대한 징계
본문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한 터진 웅덩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두 가지악을 행하였습니다.
첫째는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둘째는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스스로 웅덩이를 팠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수를 버리고 자기 스스로 살 길과 행복을 찾으려고 무엇을 만들어놓은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물을 먹으려고 웅덩이를 팠는데, 그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라고 하였습니다.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목이 마르니까 웅덩이를 파서 먹으려고 했지만, 그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가 되어 물이 새어나가는 것입니다.
둘째는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스스로 웅덩이를 팠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수를 버리고 자기 스스로 살 길과 행복을 찾으려고 무엇을 만들어놓은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물을 먹으려고 웅덩이를 팠는데, 그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라고 하였습니다.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목이 마르니까 웅덩이를 파서 먹으려고 했지만, 그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가 되어 물이 새어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떠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입술로는 “주여, 주여”하지만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렘 29:13; 딛 1:16).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마음으로 떠나면 그 심령이 메말라 생명의 역사가 중단됩니다. 성도는 언제나 자기의 심령 속에 생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먼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를 마시고 그 생명의 역사와 하나님의 감동의 역사가 속에서 넘쳐 흘러 심령이 날마다 소생해 올라와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생수의 역사가 흘러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감동이 없고 속에 생명의 역사가 없으면,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떠난 줄 알고 회개하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으로 생명을 삼고, 그 생명의 역사가 자기 속에 흘러넘치고, 또 다른 사람에게 흘러나가서 생명을 살려내어야 합니다(겔 46:1-9).
그러므로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아야 합니다. 이사야 29장 13절에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만난다’고 하였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생수를 먹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입술로만 “주여, 주여”라고 부르짖지 말고, 참으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서 거기서 생수를 먹는 자리에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않고 외부적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면 생수를 먹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먹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생수의 근원을 떠나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입술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껍데기 신앙입니다. 그것은 물이 없는 샘물과 같습니다. 그런 신앙은 아무 생명이 없습니다.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찾아서 그 생수를 먹는 자리로 들어가야 참 생명이 있습니다.
둘째는 무슨 악이라고 하였습니까?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생수를 먹지 못하니까 목이 마를 것 아닙니까? 그래서 웅덩이를 파서 물을 먹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웅덩이를 팠지만 그 웅덩이는 물을 저축하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입니다. 웅덩이를 판다는 것은 자기가 살려고, 잘되려고, 무엇을 만들어놓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자기가 살 노력을 하고, 자기가 자기 행복을 누려보려고 여러 가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생수를 먹지 못합니다.
생수를 먹으려면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생수를 먹을 수 없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음란한 죄, 방탕한 죄, 호색하는 죄, 술 취하는 죄, 쟁투와 시기하는 죄 등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정욕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생수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 생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한 번 먹으면 목마르지 않습니다.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시원하고, 상쾌하고, 즐거운 생명의 역사가 약동하는 생수가 속에서 올라옵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려면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 생수를 먹는 사람이 제일 행복합니다. 세상 즐거움은 이 영원한 생수를 먹는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생수를 먹는 즐거움은 하늘의 즐거움이며, 하늘에 소망을 두는 가장 행복한 생활입니다.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정욕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생수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 생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한 번 먹으면 목마르지 않습니다.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시원하고, 상쾌하고, 즐거운 생명의 역사가 약동하는 생수가 속에서 올라옵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려면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 생수를 먹는 사람이 제일 행복합니다. 세상 즐거움은 이 영원한 생수를 먹는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생수를 먹는 즐거움은 하늘의 즐거움이며, 하늘에 소망을 두는 가장 행복한 생활입니다.
본문 14-17절에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어린 사자들이 너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날려 네 땅을 황무케 하였으며 네 성읍들은 불타서 거민이 없게 되었으며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죄로 인하여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종 살이하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어린 사자’는 힘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앗수르나 바벨론을 의미합니다. 앗수르 군대가 어린 사자처럼 부르짖으며 이스라엘을 침략하였습니다(주전 721년). 하나님께서 원수를 보내어서 멸하신다고 하면 그대로 됩니다. ‘놉과 다바네스’는 애굽에 있는 도시들로 애굽을 상징하며, 애굽도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이스라엘을 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떠나면 반드시 함정에 빠지고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고 분주하게 돌아다녔습니다. 웅덩이를 파느라고 부지런히 돌아다녔고,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서 살 궁리를 하느라고 분주하게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웅덩이를 아무리 많이 팠어도 그것은 터진 웅덩이입니다. 돈을 벌려고 해도 터진 웅덩이라 벌지 못합니다. 이렇게 나가면 결국 그 거처가 황무지가 되고, 그 땅은 불에 타서 거민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자취(自取)’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놓고 당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8-19절에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또 그 하수를 마시려고 앗수르 길에 있음은 어찜이뇨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시홀’은 나일강을 가리키고(사 23:3), 애굽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도시로 다니면서 살 길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또 ‘하수’는 유브라데 강을 가리키며 앗수르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이 거기서 물을 얻어 보려고 다녔는데, 그것이 악한 것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
외하지 않으면 그것이 악입니다. 그 이유는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고, 또 하나님께서는 악을 징계하시고, 거역하는 자를 책망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면 마음에 고통이 들어오고,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이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렘 17:6). 그러므로 이제는 회개하고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4.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으나 악한 열매가 맺힘
본문 20절에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나무 아래서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멍에’는 하나님의 계명과 사명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께서 메워주신 멍에가 다 있는데, 그 멍에를 꺾어버리고, 말씀의 결박을 끊어버리고, 육신의 자유대로 나아가며,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살려는 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란 높은 산과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을 섬겼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서도 사람과 돈과 직장이 우상이 되어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본문 21-22절에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찌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으실 때에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는데, 지금은 앗수르나 애굽과 짝하며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세상 사람들처럼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사
야 5장 2절에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극상품 포도나무로 심어놓으시고 좋은 포도 열매 맺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성도가 세상과 짝하여 선한 양심을 쓰지 않고, 돈을 사랑하며, 우상을 섬기며, 시기, 분쟁, 음행, 방탕, 쟁투, 술 취함, 방종으로 나아가는 것은 악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열매를 맺는 악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찍어 불에 던진다고 하였습니다(사 5:5; 요 15:6).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찌라도’라고 하였는데, 잿물이나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죄악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히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을 좇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너는 발이 빠른 젊은 암약대가 그 길에 어지러이 달림 같았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기는 더럽히지 않았고 바알을 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양심이 마비되었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죄 짓는 것이 습관이 되어 죄를 죄인 줄로 모르는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네 행위를 살펴보라고 하십니다.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은 우상을 섬기기 위해 산골짜기로 다닌 길을 말합니다. 우상을 섬기려고 자주 다녀서 골짜기에 길이 생긴 것입니다. 골짜기 속에 들어가서는 못된 짓을 하고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뒷골목에 가서 못된 짓했던 것을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좋게 세우지만 속에 들어가 보면 탐욕이 가득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강도의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가 그 성욕이 동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성욕의 때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자들이 수고치 아니하고 그것의 달에 만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의 달에 만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암나귀가 교미의 시기가 되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므로 수나귀가 암나귀를 찾으려고 수고하지 않아도 쉽게 만납니다. 이 말씀은 이와 같이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며 돌아다니다가 이스라엘을 잡으려고 하는 이방 나라의 손에 쉽게 잡힐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자기가 스스로 멸망의 그물에 들어가는 것이며,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본문 25절에 “내가 또 말하기를 네 발을 제어하여 벗은 발이 되게 말며 목을 갈하게 말라 하였으나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 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신을 주어 신게 하시고 생수를 주어 마시게 하셨으나, 이스라엘은 이방 우상들을 사랑하며 그것들을 따라갔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시고 (요 4:14), 복음의 신을 신고 걸어가야 합니다(엡 6:15). 그것이 제일 좋은 신이고, 제일 좋은 생수입니다. 세상이 주는 물을 얻어먹기 위해 벗은 발로 돌아다니며, 자유 방종하는 생활을 하는 것은 터진 웅덩이를 파는 것이며, 사망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때에 우상이 구원치 못함
본문 26절에 “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같이 이스라엘 집 곧 그 왕들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치 아니하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안할 때에는 나무와 돌의 우상을 자기의 부모와 같이 섬기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께 우리를 구원하소서 라고 하며 부르짖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주지 않으시고 환난 중에 내어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잠 1:24-33). 왜냐하면 환난을 통해서 회개시키려는 뜻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심한 기근으로 인하여 곡식을 사러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 요셉이 처음부터 형들을 알았으나 그들에게 자기를 드러 내지 않고 형들로 하여금 많은 고난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그것도 형들을 회개시켜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 후에 형들이 회개하고 바로 섰을 때에 요셉이 자기를 형들에게 알리고 모든 가족을 다 구원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범죄한 백성이 환난을 당하여 부르짖을 때에 즉시 도와주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바로 선 다음에 도와주시고 구원해주십니다.
6.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면 그로 인해 수치를 당함
본문 28-31절에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너희가 다 내게 범과하였느니라 내가 너희 자녀를 때림도 무익함은 그들도 징책을 받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연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백성이 범죄한 사실을 들어보면
첫째, 그들이 하나님과 다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과 다투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징책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로 인하여 자녀들을 때렸으나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지 못하고 불순종하며 나갔습니다.
셋째, 선지자들을 삼켰습니다. 즉, 잔인한 사자같이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넷째,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는 주께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지 않고 자유 방종하며 다시 멍에 메는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을 말합니다.
잠언 29장 1절에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고 하였고, 시편 49편 20절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매를 맞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나아갈 때에는 교역자부터 회개하여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 3장에 보면 요한이 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교회의 잘못된 것을 책망할 때에 그 교회의 사자를 책망하였습니다.
교회의 사자가 바로 나아가지 못하면 교인들도 그릇된 길로 가게 되고, 사자가 바로 서면 교인도 바로 섭니다.
‘자녀를 때림도 무익함은’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도 우연한 일 당하는 것으로 알고, 하나님의 징계인 줄 깨닫지 못하므로 징계가 아무 유익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때리시면 그 부모가 회개해야 합니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할례 받는 것을 반대하므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는데, 그때에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회개하여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징계를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매
를 맞으면 부모가 회개해야 하고, 남편이 매를 맞으면 아내가 회개하여야 합니다. 징계를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더 큰 징계를 내리십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가 된 것이 아니며 흑암한 땅이 된 것도 아니고 생명의 근원이 되어 주셨고 빛이 되어 주셨으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광야와 흑암한 땅을 떠나듯이 하나님을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
겠다’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의 제재를 받지 않고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육신적으로는 자유가 없으나 심령에 낙원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육신의 멍에만 생각하고 영의 자유와 영이 사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로 돌아 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멍에를 벗고 육신의 소욕대로 사는 것이 좋은 것 같으나 사실은 그것이 광야 생활이며 흑암에서 사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워주신 멍에를 메고 영의 자유
를 누리며 생명의 세계에서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본문 32-34절에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또 네 옷단에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음을 인함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로 너를 책망함을 인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처녀에게 패물이 귀하고 신부에게 고운 옷이 중요한 것처럼,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제일 좋고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생명이며, 보화이고, 영광이며, 복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서 인본주의 수단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 이방 국가들도 그 행위를 본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가 타락이 되면 그 부근에 있는 불신자들이 더욱 더 악해집니다. 빛이 없어지면 어두움이 깊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또 회개한 자가 예수님을 심중에 모시지 못하면 일곱 마귀가 들어옵니다(마 12:43-45). 그리고 교회에서부터 타락이 시작되어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교회가 타락되면 세상은 더욱 타락되고, 교회에서 당파를 만들어 싸우면 세상은 더욱 당파 싸움을 하게 됩니다. 교회가 혼란하면 세상이 더욱 혼란해집니다. ‘이 모든 일로 너를 책망함을 인함이니라’란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죄를 책망할 때에 달게 받고 회개하였더라면 살 길이 열렸을 터인데, 도리어 선지자를 핍박하고 대적하여 죽였으니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본문 35-37절에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치 아니 하였다 함을 인하여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네가 앗수르로 인하여 수치를 당함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여러 가지 죄를 짓고 그 죄를 책망하는 선지자를 핍박하고 죽이면서도 자신을 무죄하다고 변명을 했습니다. 요한일서 1장 8-10절에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죄 없다 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롬 3:10).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과 순종함에 부족한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다 순종한 사람은 예수님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하려고 부지런히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애굽에 수치를 당하였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면 의지하던 그것으로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의지하며 의뢰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제해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사3:1-3). 자기 유익을 보려고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어디에 있는 사람을 기뻐하십니까?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성도를 기뻐하십니다. 즉, 기도의 골방에 있는 성도의 음성을 들어주시고, 얼굴을 보아주시고, 은혜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뢰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해 은밀한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하며 부지런히 돌아다녔습니다.
성도는 하나님만 의뢰하며 하나님을 뜻을 순종하여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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