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6일 금요일

예레미야 27:1-13 줄과 멍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줄과 멍에
예레미야 27:1-13

1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나 예레미야에게 이르시니라 2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얹고 3유다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붙여 에돔 왕과 모압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 왕과 시돈 왕에게 보내며 4그들에게 명하여 그 주에게 이르게 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같이 고하라 5나는 내 큰 능과 나의 든 팔로 땅과 그 위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나의 소견에 옳은대로 땅을 사람에게 주었노라 6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부리게 하였나니 7열방이 그와 그 아들과 손자를 섬기리라 그의 땅의 기한이 이르면 여러 나라와 큰 왕이 그로 자기를 섬기게 하리라마는 8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이나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내가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라 9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너희 복술이나 너희 꿈꾸는 자나 너희 술사나 너희 요술객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10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서 너희로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나로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하게 하느니라 11오직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서 밭을 갈며 거기 거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2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고하여 가로되 왕과 백성은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와 그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살리이다 13어찌하여 왕과 왕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에 대하여 하신 말씀같이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 하나이까

1. 예레미야가 줄과 멍에를 가지고 유다가 바벨론의 멍에 멜 것을 예언함

시드기야 왕을 여호야김이라고 기록했으나 시드기야 왕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함

본문 1절에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나 예레미야에게 이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야김’은 각주에 시드기야라고 되어 있는데, 시드기야 왕을 여호야김 왕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 여호야김은 시드기야 왕을 말한 것이 분명합니다. 본문 3절과 12절에 시드기야 왕이 나왔고, 20절에도 여고니야라고 나왔습니다. 또 예레미야 28장 1절에도 시드기야라고 나온 것으로 보아 이것은 시드기야 왕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여호야김이라고 나온 것은 시드기야 왕보다 2대 전의 왕으로, 시드기야 전에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고 여호야긴 전에 왕이 여호야김입니다. 이에 대하여는 성경을 옮겨 기록할 때, 즉 전사할 때에 잘못 기록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하여간 본문에서 여호야김은 시드기야 왕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시드기야 왕 때에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바벨론과 싸우기 위해 동맹한 여러 왕들에게 바벨론 왕의 멍에 멜 것을 고하라고 하심

본문 2-4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얹고 유다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붙여 에돔 왕과 모압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 왕과 시돈 왕에게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그 주에게 이르게 하기를 만군의 여
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같이 고하라”고 하였습니다.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얹고’라고 하였는데, ‘줄’은 멍에를 잡아매는 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멍에를 나무로 만들어서 그것을 목에다 얹고 그 멍에를 잡아매는 줄로, 그것을 몸에
다 얹고 유다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온 여러 나라 사신들에게 이것을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누구에게 말하라고 하였습니까? ‘에돔 왕과 모압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 왕과 시돈 왕에게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그 주에게 이르게 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같이 고하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나라에 이것을 고하라는 것입니다. 멍에를 만들어서 예레미야가 메고 시드기야 왕이나 예루살렘 백성에게, 또 시드기야 왕을 보러 온 여러 나라 사신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서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시드기야 왕을 보러 온 사신들은 유다 나라와 동맹한 모든 왕들이라고 합니다. 당시에 바벨론 나라가 침략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유다 나라와 여러 나라들이 다 동맹을 해서 바벨론 나라가 앞으로 쳐들어오게 되면 막으려고 그것을 의논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사신들이 모인 모양입니다. 무엇을 말하라고 하였습니까?

본문 5-8절에 “나는 내 큰 능과 나의 든 팔로 땅과 그 위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땅을 사람에게 주었노라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부리게 하였나니 열방이 그와 그 아들과 손자를 섬기리라 그의 땅의 기한이 이르면 여러 나라와 큰 왕이 그로 자기를 섬기게 하리라마는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이나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내가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입니다. 즉,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멍에를 나무로 만들어서 예레미야가 메고 가서 시드기야 왕이나 여러 나라에서 온 사신들에게 너희가 바벨론의 멍에를 메야 된다고 전하라는 것입니다.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면 그 왕의 손으로 너희를 진멸하게 한다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생명을 내놓고 전한 것이 분명합니다. 왕들은 바벨론의 침략을 무서워하여 그것은 막으려고 다 모여서 동맹하고 바벨론을 대항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바벨론이 그들을 종으로 부려서 이제 그 멍에를 다 메게 한다는 것입니다. 유다 사람도 바벨론 멍에를 메게 하고 유다나라와 동맹한 여러 나라 왕들과 백성도 바벨론의 멍에를 메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하나님을 섬기는 유다 사람에게 바벨론의 멍에를 메게 하시는 것입니까? 바벨론은 하나님을 안 섬기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고 점령을 당하고 그 멍에를 메고 살게 됐다는 것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그렇게 되겠는가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 바벨론 왕을 종으로 부려서 유다 나라를 점령하게
만드시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바벨론에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70년을 살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좋은 무화과가 되는 방법

그러나 남아 있는 사람들이 좀 있었는데, 유다 나라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악한 무화과이고, 바벨론에 포로 잡혀간 무화과는 좋은 무화과라고 하였습니다(렘 24:1-10). 얼른 생각하면 유다 나라에 남아 있는 백성이 좋은 무화과인 것 같은데, 그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곳에서 70년간 종 살이를 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좋은 무화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들을 좋은 무화과라고 하였습니까? 그 사람들은 바벨론 나라에 가서 거기 있는 동안에 회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바벨론 멍에를 메는 것이 왜 좋은 무화과입니까? 그들은 그 과정 속에서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높아지려는 것이 다 깨져나가야 합니다. 유다 나라 사람들이 교만과 자존심이 강했는데, 그것이 다 깨져나가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과거의 교만이 다 깨져나가고, 지극히 낮은 자리로 나가고, 하나님만 의지하려고 힘을 쓰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하나도 바라볼 것이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의지할 것도 없고, 하나님만 찾으며, 하나님께만 가까이 나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다 버리고, 과거에 예루살렘을 자랑하던 것이 다 깨져 나가고, 전통을 자랑하던 것이 다 깨져나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바벨론 멍에를 메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가서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고 바벨론 왕을 섬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까 바벨론의 멍에를 메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반대로 바벨론의 멍에를 메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해야만 좋은 무화과가 됩니다.

본문 6-7절에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부리게 하였나니 열방이 그와 그 아들과 손자를 섬기리라 그의 땅의 기한이 이르면 여러 나라와 큰 왕이 그로 자기를 섬기게 하리라마는”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의 멍에를
다시 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을 불신자이지만 종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느부갓네살 왕을 섬기고 살도록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그를 섬기지 않으면 못 살도록 만들어놓으신 것입니다.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부리게 하였나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여금 짐승까지도 주관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땅의 백성과 모든 나라, 그리고 들짐승들까지 느부갓네살 왕으로 주장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열방이 그와 그 아들과 손자를 섬기리라 그의 땅의 기한이 이르면 여러 나라와 큰 왕이 그로 자기를 섬기
게 하리라마는’이라고 하였는데, 다시 말해 나라들이 느부갓네살 왕과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 그리고 느부갓네살 왕의 손자까지 3대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나라들이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야 하는데, 언제까지 메야 하느냐 하면, 느부갓네살 왕의 손자 때까지 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은 그렇게 긴 기간이 아닙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의 손자 때까지 멍에를 메라고 정해놓으셨으므로 그때까지는 바벨론의 멍에를 메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또 느부갓네살 왕으로 볼 때에는 악한 왕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임시로 사용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중에 그의 손자 때에 가서는 다 멸망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악한 왕도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바로 왕은 악한 왕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강퍅한 바로 왕을 사용하셨습니다. 로마서 9장 17절에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왕을 세워서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고,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악한 왕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 나라도 하나님께서 쓰시고, 악한 왕도 쓰십니다. 느부갓네살 왕도 하나님께서 쓰셨고, 바로
왕도 하나님께서 세워서 쓰셨습니다. 당신의 일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을 어떻게 사용하십니까? 바로 왕은 더욱 강퍅하게 나가며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때에 온 백성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위엄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또 고레스 왕 같은 경우, 그도 바벨론 왕인데, 포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을 도리어 석방하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잡아가는데 사용하시고, 고레스 왕은 돌려보내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선한 왕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자도 사용하시고, 강퍅한 자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성도에게 잘해주는 자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이 신앙이 바로 되는데에다 사용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성도의 신앙이 바로 되겠느냐를 보시고, 교만할 때에는 그것을 낮추는 데 사용하시고, 세상 것을 의지할 때에는 세상 것을 다 깨뜨려 내버리는 데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면으로 세상 왕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어떨 때는 성도를 보호해주시는 데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다 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선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되지 않는 것은 주시는 법이 없고, 복이 되지 않는 것은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바벨론의 멍에를 메게 하시는 것도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시려고, 좋은 무화과를 만드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안
메면 안 됩니다. 안 메면 악한 무화과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메라고 하실 때에는 그것을 메는 것이 좋은 무화과가 되는 법입니다.

2. 바벨론 멍에를 메지 않으면 징계를 받게 됨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

본문 8절에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이나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내가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 왕의 멍에를 안 메면 하나님께서 진멸하시도록까지 하
여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멍에를 메라고 하실 때에는 그 멍에를 메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멍에를 안 메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면으로 생각할 때에는 멍에를 메는 것이 무엇이 좋습니까? 자유도 없고, 남을 섬기야 합니다. 하
나님의 백성이 이방 사람을 섬기는 것이 좋습니까? 자유가 좋지, 남의 수하에서 멍에 메고 나가는 것이 좋습니까?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멍에를 메야 바로 된다는 것입니다. 멍에를 메야 좋은 무화과가 됩니다. 낮아지고 다 깨져나가는 것입니다. 멍에를 메야 하나님께만 간절히 부르짖고, 그제야 하나님을 바로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멍에를 메지 않으면 여전히 교만하고, 여전히 세상 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여전히 자존심을 가지고 나가고,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전히 그렇게 나가다가 결국에 가서는 안 되겠기에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다 징벌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멍에를 메고 낮아져서 회개해야만 사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너희 복술이나 너희 꿈꾸는 자나너희 술사나 너희 요술객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를 말합니다. 바로 가르치지 못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가리킵니다. 또 ‘복술이나’라고 하였는데, ‘복술’은 점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또 ‘꿈꾸는 자나’라고 하였는데, 이들은 꿈을 꿔 가지고 그 꿈을 믿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술사나’라고 하였는데, 이들은 술수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여간 이러한 사람들이 너희
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않는다 라고 하면서, 그저 평안하다, 평안하다, 유다 나라가 잘된다, 잘된다 라고만 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언제나 유다 나라가 잘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므로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또 바벨론에 먼저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속히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7장 16절에 “내가 또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여호와의 집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이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바벨론에 이미 포로 잡혀간 사람은 속히 돌아오고, 또 지금 남아 있는 사람은 안 잡혀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이때는 1차 포로로 잡혀가고, 2차 포로로도 잡혀간 다음으로, 3차 포로가 잡혀갈 때입니다. 1차 포로는 주전 605년 여호야김 왕 때입니다(단 1:1-4). 2차 포로도 주전597년 여호야김 왕 때입니다(대하 24:14-16). 그리고 지금은 3차 포로도 잡아가려고 하는 때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2번이나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에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남은 사람들이 또 잡혀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남은 사람들은 안 잡혀가고 평안하다고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자꾸 잘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바벨론에 잡혀간 사람들은 속히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밤낮 좋게만 말하는 것입니다.

요새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순복음 교회로부터 흘러나온 기복 사상, 그것이 전국 교회에 다 퍼졌습니다. 합동 파나 고려파나 에큐메니칼 파나 다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신비주의인데, 기도하므로 병이 낫고 세상에서 잘 살고 소원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해주면 복을 받는다는 것으로, 그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잘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전부 현실주의입니다. 세상에서 잘되고, 세상에서 병이 낫고, 세상에서 돈을 벌고, 세상에서 출세하고, 소원성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복 신앙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한국교회를 망치는 것입니다. 육체주의, 세상주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뭐라고 했습니까? 성경에서는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는 것이 복입니다. 그 멍에를 메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또 포로로 잡혀가는 사람에게 복이 옵니다. 그러니까 기복 신앙과 성경은 반대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안 잡혀간다, 잘된다, 평안하다, 요셉이 잘된다고만 자꾸 말하고 복을 받는다고만 자꾸 말합니다. 죄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낮아지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바로 전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 선지자와 같은 종류들입니다. 여기에 보면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잡혀간다고 하셨는데, 안 잡혀간다고 하니까 거짓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야 잘되는데, 메지 않아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70년간 바벨론에 잡혀간다고 하셨는데, 속히 돌아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그것이 바로 거짓 선지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야 하고, 바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인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는 것이 섭리적인 인도 아닙니까? 섭리적인 인도에 우리가 잘 순종해야 합니다. 그 멍에를 잘 메고 나가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습니다. 멍에를 메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본문 10절에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서 너희로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나로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결국에 가서 백성들을 다 망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를 못하니까 하나님을 몰아내게 만들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만들고, 그 땅에서 쫓아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들은 너희를 멸하게 만드는 것밖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귀에 즐거운 말, 즉 잘한다, 잘한다, 평안하다, 평안하다만 하는 사람은 결국에 믿는 사람을 망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오직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서 밭을 갈며 거기 거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는 나라는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서 밭을 갈게
만드시고, 또 거기 거하게 해서 잘 살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멍에를 메지 않으면 반드시 가다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무화과, 심령이 잘되는 것

본문 12-13절에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고하여 가로되 왕과 백성은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와 그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살리이다 어찌하여 왕과 왕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에 대하여 하신 말씀같이 칼과 기근과 염
병에 죽으려 하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예레미야가 왕을 권면합니다. ‘시드기야에게 고하여 가로되 왕과 백성은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와 그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왕의 멍에 메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유다 나라 왕이 독립하고 자기가 왕 노릇하는 것이 좋지,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고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며 그와 그 백성을 섬기는 것이 좋겠습니까? 한 나라의 왕으로서 남의 나라에 항복하고 그 나라의 왕을 섬기며
그 나라 백성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수치입니까? 그러나 그렇게 해야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와 그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멍에를 메야 살 때에는 멍에를 메야 삽니다. 멍에 벗는 것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께서 멍에를 벗어라 하실 때에는 멍에를 벗어야 삽니다. 고레스 왕 때에는 멍에를 벗어야 살 때이고, 느부갓네살 왕 때에는 멍에를 메야 사는 때입니다. 느부갓네살 왕 때에는 멍에를 메야 살지, 멍에를 메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 다음에 고레스 왕 때에는 멍에를 벗어야 삽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여러 가지입니다. 언제나 육신적으로나 세상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또 자유적으로나 인권적으로나 다 잘되는 것으로만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는 것은 벌써 자유가 상실되는 것 아닙니까? 자유가 좋긴 좋지만, 이때에는 멍에를 메서 자유가 없어지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안 메겠다고 하면 그 사람은 죽습니다. 또 항복하는 것이 육신적으로는 얼마나 수치이고 얼마나 부끄러운 것입니까? 얼마나 손해입니까? 그렇지만 그때에는 멍에를 메야 삽니다. 항복해야 삽니다. 안 메면 죽습니다. 섬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때는 섬겨야 살지, 안 섬기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여러 면이니까 우리는 한 가지만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다. 자유가 좋다, 남 섬기는 것은 싫다, 안 섬겨야 되겠다, 이제 남 섬길 필요가 없다 라고 하며 그렇게 나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순종하면서 다 깨져나가고 회개해야 합니다. 지극히 낮은 자리에 내려가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과거에 자랑하던 것이 다 없어지고, 그저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때에 가서 그 심령이 바로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좋은 무화과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좋은 무화과로 만드시는 것에 목적을 두십니다. 또 우리 심령이 잘되는 것이 하나님의 표준입니다. 심령이 잘되어서 좋은 무화과가 되면 훨씬 더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큰 축복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거기에다 목표를 두고 이루어나가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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