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7일 수요일

예레미야 9:1-26 예레미야의 눈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예레미야의 눈물
예레미야 9:1-26

1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2어찌하면 내가 광야에서 나그네의 유할 곳을 얻을꼬 그렇게 되면 내 백성을 떠나 가리니 그들은 다 행음하는 자요 패역한 자의 무리가 됨이로다 3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이 활을 당김같이 그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아니하느니라 4너희는 각기 이웃을 삼가며 아무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온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니라 5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혀로 거짓 말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기에 수고하거늘 6네 처소는 궤휼 가운데 있도다 그들은 궤휼로 인하여 나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7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8그들의 혀는 죽이는 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는 해를 도모하는도다 9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10내가 산들을 위하여 곡하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불에 탔으므로 지나는 자가 없으며 거기서 가축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며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음이니라 11내가 예루살렘으로 무더기를 만들며 시랑의 굴혈이 되게 하겠고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12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광포할 자가 누구인고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같이 타서 지나는 자가 없게 되었느뇨 13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14그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15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 16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열국 중에 그들을 헤치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17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하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보내어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되 18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 19이는 시온에서 호곡하는 소리가 들려 이르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우리가 크게 수욕을 당하였구나 우리가 그 땅을 떠난 것은 그들이 우리 주택을 헐었음이로다 함이로다 20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너희 딸들에게 애곡을 가르치며 각기 이웃에게 애가를 가르치라 21대저 사망이 우리 창문에 올라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와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 22너는 이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시체가 분토같이 들에 떨어질 것이며 추수하는 자의 뒤에 떨어지고 거두지 못한 뭇같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23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5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26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거하여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라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1. 이스라엘을 위한 예레미야의 애통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예레미야의 애통함

본문 1절에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유다 백성이 당할 환난을
생각하며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이 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까? 머리는 물통, 눈은 눈물의 근원이 되어 주야로 애통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해서 망하게 되었는데, 그 일을 생각하며 하는 탄식입니다.

본문 2절에 “어찌하면 내가 광야에서 나그네의 유할 곳을 얻을꼬 그렇게 되면 내 백성을 떠나가리니 그들은 다 행음하는 자요 패역한 자의 무리가 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는 것을 어떻게 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지 않게 피하여 광야에 나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나그네가 유할 곳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얼마나 안타까우면 이렇게 말하였겠습니까? ‘그들은 다 행음하는 자요 패역한 자의 무리가 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행한 죄악

본문 3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이 활을 당김같이 그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아니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악에서 악으로 지나가고, 활을 당김같이 혀를 당겨서 거짓말을 하여 남에게 손해 주는 말만 한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말로 다른 사람을 죽이고 말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는 것이 큰 죄입니다. 믿는 사람이 말 조심을 하지 아니하고 남을 비방하고 악평을 하고 나가는 것은 살인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말로 남을 비방하면 안 됩니다. 말로 남을 헐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헐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벌을 받습니다. 남을 도와줄 생각을 해야지, 왜 헐 생각을 합니까?

우리는 혀를 가지고 남을 죽이지 말고, 남에게 손해를 주지 말고, 혀로써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만약 다른 사람이 자신을 비방하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날 비방할 일이 있겠느냐? 비방 안 할 것이다”라고 하십시오. 진짜 비방을 했다고 해도 “잘못 생각해서 그렇지, 그 사람이 날 비방할 리가 없다”라고 조선 시대 황이정승처럼 그렇게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옛날 황이정승이 한 동네를 지나가다가 황이정승 못 쓰겠다고 하며 자신을 비방하는 말을 들었답니다. 그래도 그가 못 들은 체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지나가면서 저기서 황이정승을 비방한다고 하니까 그가 말하기를 “그 사람이 날 비방할 리가 있나? 비방할 리가 없다”고 하면서 갔답니다. 그런데 그래도 어떤 사람들이 황이정승의 이름을 부르면서 비방한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황이정승이 “아마 동명이인이 있나보다. 나와 같은 이름이 또 있는 모양이지”
라고 하면서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날 그 동네에 황이정승이 가니까,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르고 지나갈 때는 비방 했지만 실제 알게 하고 가면 온 동네가 모여서 황이정승을 맞이한다고 나와 설쳐댈 것입니다. 어제 싸움을 하고 왔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어제 모른 체하고 갔기 때문에 그 다음날 가서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모르는 체 하고 “그 사람들이 나보고 그럴 일이 있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실제로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잘못 전해서 그렇겠지.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얘기함으로써 나쁜 것을 좋게 만들고 살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언제나 두 가지가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좋게 할 수가 있고, 나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어디나 다 행복을 만드는 길이 하나 있고, 불행을 만드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하여간 어떻게 하든지 혀를 활을 당김같이 놀려서 사람에게 손해를 주고 이웃을 삼키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너희는 각기 이웃을 삼가며 아무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온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비방하는 것이 이렇게 나쁜 것입니다. 비방하고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같은 값이면, 좋은 것을 말해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본문 5-6절에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기에 수고하거늘 네 처소는 궤휼 가운데 있도다 그들은 궤휼로 인하여 나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궤휼하지 말고 진실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고 남을 도와주는 자리에 서며, 건설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소극적으로 나가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가고, 허는 자가 되지 말고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자가 되어야 복을 받습니다.

2. 입은 평화를 말하나 심중에서는 해(害)를 도모함

하나님께서 연단하시는 방법

본문 7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예 도가니에서 쇠를 녹이는 것처럼 녹여서 연단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환난을 보내셔서 환난 가운데에서 다 녹아지고, 깨지게 만드시고, 또 풀어지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고집, 교만, 완고한 마음을 다 깨뜨려서 연단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교만과 고집과 불순종과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큰 환난을 보내시어 다 녹이시고 다 멸망시키십니다. 그렇게 회개시키시고 연단하십니다.

본문 8절에 “그들의 혀는 죽이는 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는 해를 도모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혀’가 무엇입니까? ‘죽이는 살’이라고 하였습니다. 혀가 남을 쏴 죽이고 찔러 죽이는 화살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나온 것처럼 말로써 사람을 죽이고 비방하고 악평하며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얼마나 악한지 모릅니다. 뒤로 가서는 그 사람을 비방하고 악평하며 죽이면서, 만나서는 입으로 평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속에는 해를 도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앞에서는 안 그러는 체하다가 다른 데 가서는 혀로 사람을 죽이고 비방하는 자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러지 말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남을 헐지 말고 세워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사촌이 전답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하든지 남이 잘되면 배가 아파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고 그 사람을 매장하려고 하는 것은 참 악한 일들입니다. 서로 비방하고 악평하는 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것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을 회개하지 못하면 이제 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치할꼬 하시다가 녹여서 연단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다 녹이고 그만 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조그마한 것 하나 있는 것 가지고 교만하고 남을 멸시하며 남을 죽이려고 해도,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는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녹이셔서 연단하십니다. 쫄딱 망할 줄 아십시오.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겸손하게 나가면서 다른 사람을 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말과 혀로써 남에게 손해를 주고 남을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이 교역자를 비방하는 것은 아주 악한 일입니다. 교역자가 잘못할 때에 직접 말해주는 것이 좋지, 딴 데 가서 저희끼리 비방하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또 교역자들 중에서도 끼리끼리 모여서 비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저희끼리 모여서 다른 교역자를 비방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악한 것입니까? 이런 일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비방하는 일, 원망하는 일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멸망했던 죄이고, 또 예레미야 때에도 이렇게 하다가 망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원망하고 비방하면 그런 사람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원망은 신앙이 아니고 믿음을 다 팔아먹은 것인데, 남을 원망하다가 자기 믿음을 팔아먹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기는 벌써 망하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일로 인해서 벌하실 것이고, 그런 나라에 보수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원수를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보수(報讎)’라는 것은 원수를 갚는다는 뜻입니다. 남을 비방하고 악평하는 사람, 남에게 손해를 주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자입니다. 그런 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제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보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원수를 갚는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10절에 “내가 산들을 위하여 곡하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불에 탔으므로 지나는 자가 없으며 거기서 가축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며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벌써 앞으로 멸망당할 것을 눈으로 보고 이미 멸망당한 것과 같이 부르짖는 것입니다. 목장에 가축의 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 불에 탔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1절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무더기를 만들며 시랑의 굴혈이 되게 하겠고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다 무너져서 ‘시랑(豺狼)의 굴혈’, 다시 말해 이리와 타조의 굴혈이 된다는 것입니다. ‘유다 성읍들도 황폐케 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고 하였는데, 이 악한 무리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혀로써 남에게 손해 주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하고, 더욱이 비방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그렇게 잘못 나가면 하나님의 일에 손해가 납니다. 교역자를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 구원 운동에 손해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큰 죄가 됩니다. 마음으로는그 중심에 남을 해(害)하려고 하고 만나서는 좋은 체하며 평화를 말하는 것 때문에 다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목장이 불타고, 예루살렘이 무더기가 되고, 모든 유다 성읍들이 황폐케 된다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법을 버린 자는 애곡할 날이 옴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믿는 시대가 됨

본문 12-16절에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광포할 자가 누구인고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같이 타서 지나는 자가 없게 되었느뇨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 중에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열국 중에 그들을 헤치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 망했다고 하였습니까?

본문 13절에 보면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그대로 행치 아니하기’때문에 다 망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 15절에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열국 중에 그들을 헤치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열조가 알지 못하던 열국 중에 그들을 헤쳐서 포로로 잡혀가게 함으로 진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칼을 보내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입니까? 하나님의 복을 버리고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이 벌이 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버리면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법을 버릴 때에 가만히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은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을 다 버리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요새 십계명 지킵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하면서 계명을 다 집어치우고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며 나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믿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요새는 무슨 계명을 버리는 시대라고 하였습니까? ‘안식일을 지키라’는 4계명을 버리고 믿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 버렸습니다. 주일날을 제대로 지키는 나라와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요새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곳도 주일날에 점점 다 일하는 분위기가 되어 간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대형 백화점들이 주일날에 쉬었는데 요새는 쉬지 않고 가게 문을 연다고 합니다. 큰 기업체들에 취직한 사람들은 주일날에 안 나가면 회사에서 떨어집니다. 그래서 주일날 다 직장에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주일날을 지키기 아주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주일날 직장에 안 나가려면 취직하기가 아주 힘들게 되었습니다. 시험 치는 것도 문제입니다. 주일날 시험 치는 데가 많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시험을 안 쳐도 주일날 직장에 안 나가기가 아주 힘든 시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아주 힘이 드는데, 어느 시대나 환난과 핍박을 받아야 함을 알아야겠습니다. 환난과 궁핍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고 해도 다니면서 믿음을 팔아먹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천하를 다 준다고 해도 무슨 소용입니까? 하나님의 법대로 믿어야지, 법을 어기고 나가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벌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는 것입니다. 말씀은 다 제쳐놓고 그저 믿사오니 한다고 해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거저 믿는다고 ‘주여, 주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7장 21-22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라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며 여러 가지 능력을 많이 행했다고 해도, 예수님께서는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왜 모른다고 하셨습니까? ‘불법을 행한 자들아 떠나가라’고 하였는데, ‘불법(不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법대로, 말씀대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믿는 것은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율법주의는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야만 하나님께서 기뻐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가 복을 받고, 우리 영혼이 살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말씀대로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바른 신앙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버리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즉,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다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 하려고 하되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다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잘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믿으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안 됩니다. 말씀대로 다 행했다고 하는 사람도 안 됩니다. 그러나 다 하려고 노력하고, 바로 믿으려고 힘쓰고, 잘 믿으려고 애쓰는 것은 얼마든지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힘을 안 쓰는 사람은 썩어진 자입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힘 쓸 때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먹인다고 하셨습니까? 본문 15절 마지막에 ‘쑥을 먹이고 독한 물을 마시운다’고 하였습니다. 쑥을 먹이고 독한 물을 마시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속에 쓴 것이 생기고, 자기 모든 상태에 쓴 것이 생깁니다. 독한 것이 오고 독사가 와서 무는 것입니다. 독한 것에게 해독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리고 뒤로 칼을 보내셔서 열조가 알지 못하던 열국에 흩어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 진멸케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올 환난을 깨닫고 울라고 하심

본문 17-18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하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보내어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되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멸망할 것을 생각해서 울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올 환난과 심판, 앞으로 올 멸망을 생각해서 통곡하라는 것입니다. ‘네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라’고 하였는데, ‘지혜로운 부녀’는 환난이 올 것을 깨닫고 울어야 될 때 우는 사람을 말합니다. 본문 12절에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광포할 자가 누구인고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같이 타서 지나는 자가 없게 되었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라고 하였는데, 이 사람이 바로 환난이 올 것을 깨닫고 울어야 될 때 우는 사람입니다. 환난이 올 것을 깨닫는 자가 지혜로운 부녀이고, 그 환난을 인해서 울어야 할 때 우는 자가 지혜로운 부녀입니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는 자는 미련한 자이고, 울어야 할 때 우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또 환난이 왔는데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는 아주 미련한 자입니다. 멸망이 오는데 깨닫지 못하니까 얼마나 미련한 자입니까? 원수가 오는데 원수가 오는지 모르고 있으니까 그 사람은 아주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올 것을 알고, 멸망이 올 것도 알고, 울어야 될 때 우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음이 강퍅해서 울지 못하는 너희,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환난이 올 것을 보지 못하는 너희로 가서 배우라는 뜻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가서 환난이 올 것을 알고 곡하는그 지혜를 배우고, 우는 사람에게 가서 울어야 될 때 우는 것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환난이 올 것도 배우고, 울어야 될 것도 배워서 앞으로 올 환난, 앞으로 올 통곡, 그것을 미리 지금 당한 줄로 알라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이는 시온에서 호곡하는 소리가 들려 이르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우리가 크게 수욕을 당하였구나 우리가 그 땅을 떠난 것은 그들이 우리 주택을 헐었음이로다 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시온에서 호곡하는 소리가 들려 이르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우리가 크게 수욕을 당하였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벌써 된 것과 같이 “망했구나, 당했구나”라고 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앞으로 환난 때 “이제 다 망했구나”라고 하는 통곡 소리가 나기 전에 그것을 벌써 듣고 그 수치를 벌써 당하고 있는 것처럼 울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당할 수치를 지금 당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망할 것을 지금 망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겨다 놓았습니다. 앞으로 통곡할 것을 지금 통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부녀입니다. 그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울어야 할 때 울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아모스 6장 3-7절에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흉한 날, 요셉의 환난이 멀다 하여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상아 침상에서 기지개를 펴는 사람은 갑자기 멸망이 와서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환난이 멀다 하여 침상을 사왔는데, 상아 침상을 사왔답니다. 또 그 침상에서 늦도록 잡니다. 새벽 기도도 안 하고 늦도록 자면서 기지개를 폅니다. 또 어린 양과 송아지의 고기만 사다 먹는 것입니다. 고기 가운데서도 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비파입니다. 악기를 사와야 합니다. 음악을 듣습니다. 음악 듣는 것이 무엇입니까? 전축을 사다놓고 음악에 맞춰서 지절거리고 자기들도 따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기를 제조하고,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몸에다가는 귀한 기름을 바릅니다.
우리가 환난이 멀다 하여 이렇게 방종한 생활을 하면 안 되겠습니다. 방종, 방탕을 하지 말고, 울라고 하였습니다. 울어도 시원치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이 멀다 하여 이렇게 기지개 켜고 새벽 기도도 안 하고 기름을 바르고 돌아다니며 악기 소리에 맞춰서 지절거리는 사람은 다 갑자기 사로잡히는 자 가운데 앞서서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이제 앞서 사로잡혀가고 앞서 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리 애곡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다 애곡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레미야가 미리 애곡하지 않았습니까? 예레미야가 무엇 때문에 애통해 했다고 하였습니까? 첫째는 교회를 위해서 애통해 하고, 둘째는 앞으로 환난 올 것을 생각해서 애통해 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교회를 위한 애통, 앞으로 환난이 들어올 것을 위해서 우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해서 울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28-31절에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지시는 것 때문에 울지 말고 이 환난 때문에 울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앞으로 올 환난을 위해서 울라고 하셨는데, 우리가울어야 합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환난의 때가 갑자기 옵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때에 해산의 고통이 갑자기 아이 벤 여인에게 오는 것처럼, 급작스럽게 멸망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너희가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두 가지 애통을 늘 해야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앞 날의 환난을 위해서 울라고 하신 것처럼 ‘망했구나. 이제 우리가 아주 망했구나. 우리가 크게 수치를 당하였구나’라고 하면서 울어야 합니다. 앞에 올 것을 지금 당면하여 ‘벌써 망했구나’라고 하면서 울어야 합니다. 그 다음 둘째로 ‘수치를 지금 당했구나. 신앙의 실패를 벌써 했구나’라고 하면서 앞으로 실패할 것을 지금 실패한 것인 줄로 알고 울어야 합니다. 장래의 것을 당겨다놓고 ‘나는 신앙의 실패자로구나.
나는 믿음이 없구나’라고 하며 애통해야겠습니다.

본문 20-22절에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너희 딸들에게 애곡을 가르치며 각기 이웃에게 애가를 가르치라 대저 사망이 우리 창문에 올라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와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 너는 이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시체가 분토같이 들에 떨어질 것이며 추수하는 자의 뒤에 떨어지고 거두지 못한 뭇같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큰 환난이 갑자기 임할 때에
애곡하게 될 것인데, 그때에 할 애곡과 애가(哀歌)를 지금 딸과 이웃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뭇’은 베어놓은 곡식 단을 말합니다.

4. 세상 것을 자랑하지 말고 여호와만 자랑하라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 세 가지

본문 23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자랑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며,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1) 지혜를 자랑치 말라 

고린도전서 3장 18-19절에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자기 궤계에 빠진다고 하였습니다. 제 꾀에 제가 넘어 갑니다.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은 함정에 빠집니다. 또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은 자기 지혜를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잘 못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지혜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다 숨기십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순진하고 전적으로 믿고 전적으로 순종하며 배워나가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런데 자기가 지혜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지혜
대로 하기 때문에 자기 지혜가 우상이 되어서 모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는 다릅니다. 사람이 인간의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것을 겸손히 받아야만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가겠는데, 자기 지혜대로 무엇을 하려고 하니까 하나님의 지혜가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역자들도 지혜가 있어서 자기 지혜대로 교회를 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됩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교회를 잘할 것 같아도 교회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믿고 순종하며, 그저 일심정력을 다하고 충성하는 사람이 잘합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잘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지혜 있는 사람은 그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서 그저 하나님만 의뢰하고, 말씀을 그대로 믿고, 말씀대로만 하려고 해야 합니다. 인간의 수단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쓰면 안 됩니다.

2) 용맹(勇猛)을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힘을 자랑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용맹’이라는 것에는 힘이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힘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힘을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합니다. 어떤 실력이라도 자기 실력을 자랑하면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가다가 거꾸러질 날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힘이 진(盡)해진 다음에야 하나님의 도움이 옵니다. 자기의 힘으로 하려고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십니다.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하지 말고, 자신은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만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입니다. 자기의 힘을 자랑하고 돌아가면 가다가 그만 큰 죄를 범하고 맙니다. 모세가 자기의 힘, 자기 완력, 자기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해보려고 하다가 사람 하나를 죽이고 그만 두었습니다.
인간의 힘은 하나님의 앞에 도리어 하나님의 일을 막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야 되겠는데, 인간의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할 때에는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못 받으면 하나님께서 쓰시는 위치에 있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점점 멀어지는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용맹을 자랑치 말라는 것입니다.

전도서 9장 11절에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先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빨리 잘 뛴다고 해서 선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착하게 해주셔야 선착하지, 아무리 빨리 뛰어도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면 앞서지 못합니다. 그리고 유력자라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골리앗이 유력하였지만 승리하였습니까? 아무리 유력해도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면 승리하지 못합니다.

또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와세다 대학 나온 사람이 예전에 명동에서 지게를 져서 먹고 살았습니다. 와세다 대학에서 유학하고 와서 지게를 졌는데, 와세다대 안 나왔다고 해서 지게를 못 지겠습니까? 그 사람이 상당히 재간 있는 사람입니다. 와세다 대학에 보통은 못 들어갑니다. 거기에 한국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대학을 졸업 맞고도 오막살이 판자 집 같은 데 살면서 해먹을 것이 없어서
지게를 져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웬만한 사람은 지게 안 지고 실업자가 되어가지고 집에 떡 굶고 앉았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보다 낫습니다.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고,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라고 하였는데, 재간이 있고 여러 가지로 기능이 많이 있어도 그렇다고 해서 은총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하였는데, 시기와 우연이 다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기와 우연’에서 ‘시기’는 심판의 뜻이고 ‘우연’은 사건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건을 맞아 떨어지게 하셔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그것을 간섭해주셔서 도와주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간섭으로만 되는 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는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용맹을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3) 부함을 자랑치 말라 디모데전서 6장 17-19절에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대에 부한 자는 마음을 높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산은 정함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시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고 선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쓴 것만 남고, 세상에 쌓아놓은 것은 다 없어집니다. 좀이 먹고 동록이 쓸고 도적질을 당하는 등 세상에 쌓아놓은 것은 다 없어집니다. 주를 위해서 사용하고 선한 사업한 것, 그것만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장래에 자기를 위해서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장래에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하나님을 위해서 쓰고, 선한 사업을 위해서 쓰는 것, 그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하늘나라까지 가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쌓아둔 것은 다 없어집니다.

1923년에 시카고에서 세계 재벌대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재벌들 8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한국 재벌은 그런 곳에 가지도 못합니다. 하여간 큰 재벌가들이 모였다고 하는데, 그들이 25년이 지난 다음에 어떻게 됐는가 하면, 한 명은 파산하고 3명은 자살을 했답니다. 그리고 2명은 감옥에 갇히고, 또 한 명은 죽었는지 해서 7명이 쫄딱 망하였다는 것입니다. 25년 후에 한 명만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계 대 재벌이 25년 후에 다 절단이 난 것입니다. 그렇게 돈 많은 사람이 자살은 왜 3명이나 했습니까? 또 감옥에 두 사람이 들어갔습니다. 한 사람은 파산되고, 또 한 사람은 죽었는지 하여간 어떻게 되었습니다. 요새 세계에서 재벌되는 사람들이 25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25년 후에 그대로 있겠는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북에 큰 부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요새 그들이 다 어디로 갔습니까? 옛날 서울에 부자들이 있었는데, 그 서울 부자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양반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세상이라는 것은 그대로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산은 날개를 내어서 날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23장 5절에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독수리처럼 날아갑니다. 따라서 날아 가기 전에 하나님을 위해서 좀 써야지, 날아간 다음에는 못 씁니다.
날아가기 전에 선한 사업을 하면 그것은 영원히 자기를 위해 남아 있습니다. 이 땅에 좋은 터를 쌓아두는 것이 되고, 하늘나라에 쌓아 두는 것이 됩니다. 만약 하나님을 위해 써야 될 때 안 쓰고 가만히 붙들고 있으면, 좀 있으면 날아갑니다. 날아가는 것은 쉽습니다. 재물이 날아갈 때에는 재물만 날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만 없어지면 괜찮은데 폐가 망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바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쓸 때 바로 쓰고, 언제나 믿음으로 했야 합니다. 재물을 가지고 부자는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함을 자랑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바로 쓰라고 주신 것인데, 재산 때문에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죽인 경우도 있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하나님께서 재산을 왜 주셨다고 했습니까? 첫째는 먹고 살라고 주시고, 둘째는 그것을 가지고 믿는 일을 하라고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일을 위해서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쌓아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서 써야 될 때 쓰지 않으면 날개를 펴서 날아가고, 날아갈 때 가슴을 차고 날아갑니다. 사람을 하나 잡아가지고 날아갑니다. 거저 날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잡아가지고 날아갈지 모릅니다. 아들을 잡아가지고 갈지, 삼촌을 잡아가지고 갈지, 누구를 잡아갈지 모릅니다. 아내를 잡아가지고 갈지, 아버지를 잡아가지고 갈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부자는 부함을 자랑하지 말고 그것은 다 하나님의 것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뭐하라고 주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것이 자기를 위하는 것이 되고, 장래를 위하는 것이 되고, 현재 하나님을 위해서 믿음 쓰는 것이 됩니다. 또 자기 영적 일이 되고,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 됩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해야 될 것은 안 하고 쌓아두어야 그게 도리어 다 날개를 펴서 날아갈 날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환난 날에 어떻게 그것이 자기 것이 되겠습니까? 앞으로 환난이 오게 되겠는데, 환난 날에 그것이 무슨 자기의 것이 되겠습니까? 하나도 자기 것이 못 됩니다. 다 내놓고 가야 합니다.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

1) 하나님을 아는 것 

본문 24절에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자랑하라고 하였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생활,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 그 하나님으로 자랑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으로 살고, 그 하나님으로 자랑하는 사람이 되면, 그것이 아주 참 좋은 자랑입니다.

2)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시는 하나님을 깨닫는 것

그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으로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님으로 깨닫는 것을 자랑하라고 하셨습니까?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귀중합니다. 이것을 자랑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떠한 하나님이신 줄로 알아야 합니까? 먼저 ‘애’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셔서 사랑을 물 붙듯 우리에게 풍성하게, 한량없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으로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그 사랑 속에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 다음에 공평과 정직의 하나님이십니다. ‘공평’이라는 것은 심판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평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 심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만 알고 심판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또 ‘정직’이라는 것은 정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대로 약속을 이루셔서 정직하게 말씀을 실현시켜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계약을 실현시켜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악을 멸하시고 정의를 세워나가시는 하나님이신데, 이런 하나님을 믿고 깨닫는 사람,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
하시는 사람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진다, 반드시 의가 승리한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신다, 공평된 심판이 있다는 것을 믿고, 그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말고, 세상 것으로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혜 자는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용사는 자기 힘을 자랑하지 말고, 부자는 자기 재산을 자랑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한 것들은 다 자랑할 바가 못 됩니다. 다만 여호와를 아는 것, 인자의 여호와, 인애의 여호와, 사랑의 여호와, 공평하신 여호와, 정직하시며 약속을 지켜주셔서 당신의 그 약속을 실현시켜나가시는 여호와이신 줄을 아는, 그런 사람이 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렇게 믿고, 그 하나님을 모시고 “우리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시다”라고 나가서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됩니다. 그 사람은 아주 복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하려고 힘쓰고, 하나님을 높이려고 힘쓰고, 하나님의 일을 잘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자기 집의 일보다하나님의 일이 잘되게 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자기 일 잘하는 것은 자랑할 바가 못 됩니다. 하나님의 일 잘하는 것을 자랑하여야 합니다. 자기 집보다 성전을 중하게 여겨야 되므로, 자기 집 잘 짓는 것은 자랑할 바가 못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 지은 것을 자랑하여야 합니다. 자기 볼 장 잘 보는 것도 자랑할 바가 못 됩니다. 그것은 다 불의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잘되게 해서 자랑하면 그것이 참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하나님을 자랑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붙드시고, 그 사람을 보호해주시며, 인도해주십니다. 원수를 막아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통해서 약속을 실현시켜나가십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5. 여호와께서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않은 자를 다 벌하심

열방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벌을 받는 이유

1) 열방이 벌을 받는 이유 

본문 25-26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거하여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라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오는데, 이제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거하여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라’고 하였는데, 당시에 광야에 사는 사람들은 머리털을 모질게 깎고 산 모양입니다. 그런데 머리를 어떻게 깎고 살든지 하나님의 심판이 다 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모양으로 살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다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라고 하였는데, 할례 받지 못한 열방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할례를 받았지만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안 믿기 때문에 망합니다. 할례를 받지 못해서 망하는 것입니다. 또 믿는 사람은 할례를 받았지만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해서 망하게 됩니다. 다 망하게 생겼습니다.

2) 이스라엘이 벌을 받는 이유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하여 예레미야 4장 4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 4장 4절에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할례를 어떻게 받는다고 하였습니까? 마음의 정욕을 베어버리는 것이 마음의 할례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정욕을 싹 다 베어서 제거시켜버리고, 그 다음에 여호와께 속하는 것이 ‘할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는 것이 할례의 뜻입니다.

할례의 뜻이 세 가지인데, 정욕 제거, 하나님께 속하는 것, 언약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껍데기로만 할례를 행하면 그것은 참 할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껍데기로 할례를 행하고, 여전히 정욕대로 나가고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나가고 제 멋대로 행하는 것은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이 진짜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으려면 마음의 정욕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고, 하나님의 언약에 속하여 말씀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것입니다. 이제 껍데기로만 종교 생활을 하고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하며 나가는 사람은 이방 사람과 같이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이방 사람도 멸망하고,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도 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멸망시키신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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