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9일 수요일

아모스 5:1-27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아모스 5:1-27

1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2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3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 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6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 7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8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9저가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 10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
는도다 11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12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13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14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찌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찌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16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오호라 오호라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17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8화 있을찐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19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20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 21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23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찌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찌로다 25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26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너희 우상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27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이는 만군의 하나님이라 일컫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 이스라엘 백성이 엎드러질 것을 슬퍼함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범죄하면 패망함

본문 1-2절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 족속아’라고 부르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엎드러질 것을 슬퍼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이지만, 범죄했기 때문에 앞으로 다 엎드러지며 거기서 일으킬 자가 없게 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범죄하면 이렇게 가다가 엎드러지고 패망하게 됩니다.

본문 3절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때에는 천 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습니다. 그러니까 십 분의 구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서 멸망하고, 십 분의 일만 겨우 남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오면 비참하게 됩니다. 십 분의 일만 남으면 얼마나 많이 죽은 것입니까? 이러한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2. 악을 버리고 여호와를 찾으라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본문 4-6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는 말이 두 번 나왔습니다. 4절에 한 번 나오고 6절에 한 번 나왔습니다. 여호와를 찾으면 너희가 살게 될 것이고, 여호와 이외에 다른 것을 찾으면 살지 못하고 반드시 다 거꾸러지며 엎드러지겠다고 하였습니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여호와 이외에 다른 것을 찾으러 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것은 다 우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하나님이라고 하며 섬겼고, 또 길갈에도 우상을 만들어놓고 섬겼으며, 브엘세바에도 그런 우상을 만들어놓고 섬긴 모양입니다. 이렇게 너희가 벧엘이나 길갈, 브엘세바에서와 같이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고 다른 것을 찾으면, 가다가 반드시 거꾸러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찾지 말고 여호와만 찾으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만 찾고 여호와 앞에서만 바로 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서면 너희가 살 것이라는 뜻입니다.

살려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 밖에 우리를 살려 주실 존재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하나님만 우리를 살려주시는 분이시고, 하나님만 우리의 구원이시며, 우리의 살 길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 돈, 권세, 공부 등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살 길이 아닙니다. 살 길은 오직 여호와를 찾는 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 가야 산다. 아르헨티나에 가야 산다. 캐나다에 가야 산다. 어디에 가야 살 수 있다’라고 하지만 그런 것이 살 길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를 찾으면 어디 있더라도 살고, 여호와를 찾지 못하면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찾으라 그러면 살리라’하는 말이 두 번 나왔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곤궁에 빠지고 환난과 고통 속에 빠지고 어려운 시험에 빠지고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해도, 여호와를 간절히 찾으라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여호와께 부르짖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을 찾으면, 살 길이 생깁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살 길을 찾아보려고 하면 반드시 가다가 거꾸러질 날이 옵니다.

본문 7절에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라고 하였습니다. ‘인진(茵蔯)’은 쓴 풀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법을 달게 여기지 아니하며 쓰게 여기고,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하나님 앞에 화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공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바른 진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바른 진리를 쓴 것으로 여겨서 성경을 보기 싫어하고, 세상 것만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양심을 쓰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버리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을 쓴 것으로 여기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사람들은 어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습니다.

본문 8절에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라고 하였는데, ‘묘성(昴星)’과 ‘삼성(參星)’은 별의 이름입니다. 그런 별을 다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닷물을 불러서 지면에 쏟는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해일과 홍수를 일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닷물을 많이 불러다가 지면에 쏟아 홍수를 내시는 위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또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백주로 어두움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아무리 사망의 그늘이라 하더라도 아침과 같이 소망이 있게 하시고
아무리 낮이라고 해도 어둡게 하시는 오묘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절대 주권을 가지시고 어두움과 빛을 주관하시며, 바닷물을 불러다 공중에 쏟아 홍수가 나게 만드시며, 별들을 만드신 능력의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런 능력의 하나님을 찾으면 너희가 살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회개와 함께 이 능력의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면 너희는 반드시 패망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9절에 “저가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하고 여호와를 찾지아니하면 반드시 패망이 와서 망하고 맙니다. 성읍과 산성과 그 거처도 다 패망을 당하고 만다고 하였습니다.

3. 이스라엘의 죄와 불 형통

이스라엘의 패망할 죄 여섯 가지

본문 10-12절에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죄가 몇 가지입니까? 
첫째 죄는 책망하는 자를 미워한 것입니다. 
둘째 죄는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한 것입니다. 
셋째 죄는 가난한 자를 발로 밟은 것입니다. 
넷째 죄는 밀에 부당한 세금을 취하는 것입니다. 부당한 세금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의인을 학대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것입니다.
뇌물을 받고 남을 억울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벌을 받아 망할 죄 6가지가 나왔습니다.

첫째가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자기를 책망하는 자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책망하는 자는 자기의 선생이고 자기에게 가장 유익을 주는 사람입니다. 칭찬해주는 자는 자기에게 손해를 주는 자이고 도적입니다. 자기를 책망해주는 자가 참으로 자기 선생이요, 자기를 유익하게 해주는 사람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때에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책망을 안 해주면 누가 바로 서겠습니까?
말해줄 때 바로 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알지 말고, 무엇을 고치라고 말해주면 즉시로 고치고 회개하며 바로 서야만 합니다. 그래야 살 길이 생깁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나가면 반드시 가다가 패망하고 맙니다. 책망을 달게 받는 사람이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책망을 달게 받지 않고 싫어하는 사람은 망할 자입니다. 책망을 해주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첫째 죄인데, 망하려고 하니까 책망해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둘째 죄는 무엇입니까? 정직히 말해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바른 말을 해줄 때에 그 말을 싫어합니다. 

셋째 죄는 자기 세력을 의지하고 가난한 자, 약한 자를 발로 밟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큰 죄입니다. 

넷째 죄는 밀에 부당한 세금을 취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밀은 곡식이 아닙니까? 곡식에 부당한 세를 취해서 그것을 받는 것, 이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됩니다. 세를 정당하게 받아야지, 부당하게 받는 것은 망할 죄입니다. 

그 다음 다섯째는 의인을 학대하는 것입니다. 옳은 사람을 학대하고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벌 받을 죄입니다. 옳은 사람을 학대하면 안 됩니다. 의인을 존경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여섯째는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케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 남을 억울하게 하는 자인데, 자기의 조그마한 유익을 위해서 남을 억울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을 억울하게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망할 죄입니다.

본문 11절에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은 다음에는 아무리 다듬은 돌로 집을 지었어도 거기에 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농장을 꾸미고 포도원을 많이 심어놓았어도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악한 때에 지혜자가 잠잠해짐

본문 13절에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지혜자가 말하여도 도리어 손해만 남기에 지혜자가 잠잠한 것입니다. 지혜자가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들을 만해야 말을 하지, 너무 완강하게 버티고 나갈 때에는 바른 말을 해주어도 쓸 데가 없습니다. 피차간에 손해만 봅니다. 배우려고 하고 바로 서려고 하며 책망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말을 해주어야지, 너무 완강하며 고집만 세고 자기 의견만 옳다고 하는 자에게는 말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계획에 어긋난 것은 다 틀렸다고 하며 완악하게 나가는 사람에게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을 하면 그 사람을 더 죄 짓게 만드는 것
입니다. 더 강퍅하게 되고, 싸우자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말해 주는 사람은 공연히 효력도 없는 것을 말하여 괜히 손해만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혜자가 잠잠하게 되면 상태가 얼마나 완악해졌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 고집대로 나가며 자기 의견에 틀린 것은 대적하고 정죄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4. 살기 위해 선을 구하고 악을 행하지 말라

선이신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겠다고 하심

본문 14절에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찌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살기 위해서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면 산다고 하였습니다.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바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서는 것이 선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다 떠나서 악한 상태에 빠졌는데, 이제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고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고 하였는데, 선만 구하면, 즉 너희가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만 서면 하나님께서 너희와 같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선을 구하여 하나님께 바로 서서 좋은 사람, 선한 양심을 쓰고 선한 마음을 쓰는 선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서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너희와 같이 하신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셔서 범사에 도와주시고 보호해주십니다. 생명 길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찌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을 사랑하고, 또 사람도 사랑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되, 죄는 미워해야 합니다. 성문에서 공의를 세운다고 하였는데, ‘성문’이라는 것은 재판석, 재판하는 자리를 뜻합니다. 예전에는 재판을 성문에서 하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재판하는 자리에서도 공의로 재판하고 범사에 공의를 세워나가라는 뜻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고 하였는데, ‘요셉의 남은 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남은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심판 받고 남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신다고 하였습니다.

5. 회개하지 않으면 애통이 옴

하나님께서 농작물에 심판을 내리심

본문 16절에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오호라 오호라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오호라 오호라 하겠으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때문에 전부 다 오호라 오호라 하면서 통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라고 하였는데, 농작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기 때문에 농부들이 다 애곡하게 되었습니다.

또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옛날에는 울음꾼이 있었다고 합니다. 울음꾼에게 삯을 주고 울어달라고 하면 삯을 받고 잘 울어주곤 했다고 합니다. 상갓집 같은 데에서 울음꾼을 불러 온다고 합니다. 울음꾼을 불러다가 하루 얼마씩 삯을 주면 대성통곡을 하면서 크게 울어준다는 것입니다. 울음이 잘 안 날 때 울음꾼이 와서 울어주면 한결 울기가 나은 모양입니다. 즉, 울음꾼은 우는 데 기술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잘 우는 울음꾼을 불러다가 통곡하게 한다는 것은 ‘이렇게 너희 통곡함이 심할 것이다’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울음꾼을 불러다가 통곡할 만큼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염병이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지나가신다는 것에는 염병을 보내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너희에게 전염병을 보내서 너희를 징벌할 것인데,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통곡하고 애곡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6. 불의한 자는 사모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환난이 연속됨

구원의 날이 아니라 도리어 환난의 날이 올 것임

본문 18절에 “화 있을찐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날을 사모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구원의 날을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여호와의 구원의 날을 사모하고 있지만, 그 사모하는 여호와의 날은 오지 않고 그날은 도리어 빛이 아니라 어두움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그날이 안 온다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해야 그날이 오지, 회개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날만 사모한다고 해서 여호와의 구원의 날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는 것은 너희가 여호와의 좋은 날, 구원의 날을 사모하고 있지만, 너희에게 좋은 날이 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환난의 날이 닥칠 것이라는 뜻입니다.

본문 19절에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곰을 피해서 집으로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자 뱀에게 물렸습니다. 사자를 피해서 달아나니 곰을 만나고, 곰을 피해서 집에 들어가 바람벽에 손을 대니 뱀에게 물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올 때에 어떻게 해도 그 징계를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바다에서 놀란 뱃사공이 배를 팔아서 말을 샀다고 합니다. 바다에서 파도가 너무 심하고 물결이 너무 심해서 이러다 빠져 죽겠다 싶어 배를 팔아 말을 사서 육지에서 말이나 먹여야 되겠다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에게 또 물렸다고 합니다. 환난과 고통이 연속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 지나가서 좀 나아졌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것이 생기고, 그 환난과 고통이 지나가자 또 다른 고통이 생기고, 그것이 지나가면 또 다른 고통이 또 생기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환난과 고통이 연속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로 서지 않으면 연속적인 환난과 고통이 옵니다. 하나가 지나가면 또 오고, 산 하나를 넘어가면 또 산이 있고, 또 산 하나를 넘어가면 또 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지 않으시면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을 열어주셔야 형통한 길을 가지, 하나님께서 안 열어주시면 어려운 난관이 닥쳐오게 됩니다. ‘이것만 하나 지나가면 좀 낫겠다’라고 생각해도 또 하나가 생깁니다. 또 ‘이것만 지나가면 낫겠다’라고 해도 또 하나가 생깁니다. 또 ‘이것만 넘어가면 낫겠다’ 싶으면 또 하나가 생깁니다. 첩첩이 산입니다. 강을 건너가도 ‘하나 지나가면 낫겠나?’하고 건너가면, 또 강입니다. 계속 연속해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피할 길이 없습니다.

오른쪽으로 가다가 사자를 만나서 왼쪽으로 피하자 곰을 만났습니다. 곰을 만나서 앞쪽으로 피해 달아나다가 집 안으로 들어가니 뱀이 있습니다. 갈 데가 없습니다. 가면 무엇이 또 있습니다. 집에서 나와서 또 달아나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호랑이가 있든지, 또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계속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로 서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이시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 앞에 바로 서서 주님의 인도와 주님의 말씀대로 바로 걸어가면 형통하게 되고, 바로 서지 못하고 제 고집대로 걸어가면 가면 갈수록 산이고 건너면 건널수록 강입니다. 계속하여 연속적으로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말씀에 바로 서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바로 서지 않으면 한 가지를 면해놓으면 다른 것이 옵니다. 또 한 가지를 면해놓으면 다른 것이 또 옵니다. 그것이 해결되더라도 다른 것이 또 생깁니다. 못 당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로 서야 하며,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회개하고 바로 서라는 것입니다.

좋은 날이 오게 하는 법

본문 20절에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바라고 사모하던 그날, 여호와의 날, 구원의 날이 빛이 없어서 캄캄하다는 것입니다. 38선이 열리기를 사모했는데, 38선 열리는 날이 환난의 날입니다. 6·25 사변이 나기 전에 38선이 열리기를 다 사모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38선이 6·25 때 열리기는 열렸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환난의 날이요, 어두움의 날이었습니다. 그와 비슷합니다. 좋은 날 오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날은 캄캄한 날이요, 빛이 없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로 서야지, 회개하지 않고 좋은 날이 오기를 아무리 바라도 안 됩니다.

며느리를 얻어오면 팔자를 좀 고칠까 했는데, 며느리를 얻어오자 도리어 짐이 하나 더 되었습니다. 어느 목사님 사모가 늘 병 때문에 앓아서 그 목사님이 ‘며느리를 얻어오면 팔자를 좀 고치고 편할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의사이고 의사 며느리를 얻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아침에 밥을 먹고 병원에 출근을 해서 저녁에 들어오니, 며느리 빨래까지 해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얻어오기 전에는 자기 빨래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며느리 빨래까지 해주어야 합니다. 또 저녁에는 며느리 밥까지 해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있으면 좀 나아지겠나? 아이가 하나 생기면 낫겠나?’하고 있다가 아이가 태어나니, 이제는 아이까지 봐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차라리 며느리가 없을 때에는 자기 빨래만 하고 자기 밥이나 해먹으면 되었었는데, 며느리를 얻어오니 며느리밥, 며느리 빨래, 손자까지 봐줘야 하므로 더 죽을 고에 빠졌답니다. 그러므로 ‘며느리 얻어오면 낫겠거니’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제가 바로 서야 합니다. 제가 바로 서고 회개해야지, 며느리를 얻는다고 나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손자를 보면 낫겠습니까? 손자를 보면 일이 하나 더 생깁니다. 그러므로 바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날이 왔거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감이 괴롭게 할 때에는 ‘영감이 죽으면 좋겠다. 언제나 죽겠나?’하다가 영감이 죽으니 좋은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음에도 ‘아, 살아있으면 좋겠다’라고 한답니다. 영감이 십자가 노릇을 했어도 영감이 있을 때에는 그래도 허전하지 않았었는데, 죽으니 허전해졌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안 쓰면 영감이 있어도 걱정이고 죽어도 걱정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날이라는 것은 자기가 믿음에 바로 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앞에 복을 받도록 해야 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면 좋겠다. 또 어떻게 되면 좋겠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어떻게 되면 좋겠다’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7.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의 제사를 받지 않으심

본문 21-23절에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찌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바로 서지 못하고 제사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찬송하는 비파 소리와 노랫소리도 듣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로 서지 않고 회개하지 아니하며 아무리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받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절기를 지켜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절기를 미워하고 멸시하며 성회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또 소제와 번제도 받지 않으시고 희생의 화목제도 돌보지 않으시며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도 듣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바로 서는 것을 기뻐하시지, 제사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8.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로 인하여 포로로 잡혀갈 것임 

공법과 정의를 베풀라

본문 24-26절에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찌로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너희 우상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고 하였습니다.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찌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공법과 정의를 많아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공법을 물 같이 많이, 정의를 하수같이 풍성하게 베풀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희생의 소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어도,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너희 우상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식굿’
이라는 우상은 몰록의 장막이라는 뜻이고, ‘기윤’은 별을 섬기기 위한 우상인데, 이스라엘이 40년 동안에 이런 우상을 많이 섬기다가 망한 것처럼 너희가 그런 자리로 들어가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7절에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이는 만군의 하나님이라 일컫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고 우상 숭배만 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로 다메섹 밖 이방 나라로 사로잡혀 가게 만드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회개하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잘 섬기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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