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0일 목요일

아모스 6:1-14 안일한 자들의 멸망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안일한 자들의 멸망
아모스 6:1-14

1화 있을찐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 2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 3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4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5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7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8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9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 10죽은 사람의 친척 곧 그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내실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아직 너와 함께한 자가 있느냐 하여 대답하기를 아주 없다 하면 저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일컫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 11보라 여호와께서 명하시므로 큰 집이 침을 받아 갈라지며 작은집이 침을 받아 터지리라 12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공법을 쓸개로 변하며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변하여 13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의 뿔은 우리 힘으로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자로다 14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저희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

1. 시온의 안일주의자들을 책망하심

안일주의자들이 받을 벌

본문 1절에 “화 있을찐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라고 하였습니다. 안일한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안일한 자’는 안일주의에 빠진 자로, 안일주의에 빠진 자에게 화가 있습니다. 이사야 32장 9-11절에 “너희 안일한 부녀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찌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찌라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이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여 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기한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니라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찌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하여 할찌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
를 동일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때에도 그렇고 아모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일주의에 빠진 자들에게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시온이나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열국 중에 우승한 자가 되어서 유명함으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안일주의에 빠진 자들이 이렇게 마음이 든든하고, 우승하여 열국 중에 유명하더라도 갈레에 가보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라고 하였습니다. ‘갈레’는 앗수르의 영토입니다. 그리고 ‘대 하맛’은 수리아의 영토입니다. 즉, 앗수르나 수리아, 그리고 블레셋 나라의 가드 같은 영토에 내려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전에는 상당히 번성했지만, 그들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다 망해서 형편없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그 땅이 넓었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동시에 땅이 좁아져서 이스라엘 백성의 땅만 못하게 되었습니다. 앗수르나 수리아나 블레셋 나라도시들이 전에는 많이 번성하고 창성해서 그 땅이 넓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심판해서 다 망하고 영토도 좁아지고 형편없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들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그렇게 비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안일주의자들의 상태

본문 3절에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흉한 날이 멀다 하여’라고 하였는데, 흉한 날이 오지 않을 줄 알고 늘 평안하고 잘될 것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점점 마음이 강퍅케 진다는 것입니다. 흉한 날이 멀다 하여 마음이 점점 강퍅해지고 강포한 행동을 하며 완악해지고 교만하게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 받을 날이 멀 줄로 알고 이렇게 강퍅하게 나가고 있습니다. 완악하게 나갑니다. 또 남을 학대하고 멸시하면서 나갑니다.

본문 4절에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침상은 상아 침상입니다. 상아 침상이면, 당시에 아마 최고급 침상일 것입니다. 상아 침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를 켠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낮잠 자다가 기지개 켜는 모양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양 떼에서 어린 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먹습니다.

본문 5절에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라는 것은 방탕과 도박과 노는 취미를 가리킵니다.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라고 하였는데, 다윗이 악기를 많이 제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제조한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와 시온에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서 악기를 만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서 만들었는데,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악기를 만들었습니다.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악기를 계속하여 많이 만듭니다.

본문 6절에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라고 하였는데, 한 컵씩 마시는 것으로는 취하지 않으니 아예 대접으로 마신다는 것입니다. 대접은 잔으로 한 열 잔이 더 될 것 같습니다. 언제 한 잔씩 마시겠습니까? 아예 대접으로 쭉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또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라고 하였는데, 몸에 귀한 기름을 바릅니다. 요새도 몸에 기름을 바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무슨 기름을 바릅니까? 예전에는 오이와 계란을 발랐습니다. 그런데 먹을 계란도 없는데, 왜 몸에다 계란을 바릅니까? 내가 모르지만 요새 희한한 기름이 많이 나왔을 것입니다.

요셉의 환난

이렇듯 여러 가지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의 환난은 다 잊어버리고 나갑니다. 믿는 사람은 요셉의 환난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이 포도주를 많이 마시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악기를 많이 갖다놓고 방탕합니다. 또 상아 침상에 눕고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의 환난’은 믿음을 지키다가 당한 환난을 말합니다. 믿음을 지키면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안 지키면 환난을 안 당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고 말씀을 지키며 바로 믿으려고 하면 반드시 환난이 옵니다. 그런데 믿
음을 지키면서 환난 당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안 지키니, 환난 당할 것도 없습니다.

요셉의 환난은 무슨 환난이라고 하였습니까? 믿음 지키면서 당한 환난입니다. 요셉이 믿음을 지키고 아버지한테 순종하다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종으로 팔렸습니다. 그 다음에 애굽에 가서도 믿음을 지키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요셉의 환난은 믿음을 지키다가 당한 환난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믿음을 지키려고 하면 환난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다 집어내어버리고 안일주의에 빠져서 방탕하고 술 취하고 강포하면, 결국은 환난이 옵니다. 또
한 가지는 요셉이 총리가 되어서 7년 동안 풍년이 올 때에 곡식을 모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흉년이 들 때에 내다 팔았습니다.
요셉의 환난은 앞으로 오는 흉년을 준비하는 환난입니다. 풍년이 들 때에 풍년이 들었다고 풍성히 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7년 흉년을 위해서 준비하면서 당하는 환난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환난이 올 것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앞으로 환난이 올 것을 내다보아야 합니다. 늘 풍년인 것이 아닙니다. 요새 풍년이 드는 것과 같이 풍성한데, 앞으로는 환난이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난이 올 것을 알고 거기에 대한 준비를 늘 해야 하겠습니다.

2.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을 예고함

안일주의자들의 결과

본문 7절에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방탕하고 안일주의에 빠져서 나가다가는 사로잡혀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로잡혀 갈 때에 우승하여 유명한 자들, 든든한 자들이 앞서 사로잡혀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내 기지개를 켜고 방탕하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8절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방탕하고 연락하며 안일주의에 빠지고 요셉의 환난은 생각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싫어하시고 그 궁궐들을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그 성에 가득한 것을 다 대적에게 붙이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집에 열 사람이 산다고 해도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죽은 사람의 친척 곧 그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내실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아직 너와 함께한 자가 있느냐 하여 대답하기를 아주 없다 하면 저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일컫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사람의 친척, 곧 그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내가는 사람이 그 집 내실에 있는 자에게 “아직 너와 함께한 자가 있느냐?”하고 물어보니 대답하기를 “아주 없다.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죽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저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일컫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형식적으로, 명목적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러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운 줄로 알고 과거와 같이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 망한 다음에야 하나님이 두려운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 망한 다음에 두려운 줄 알면 뭐하겠습니까? 망하기 전에 하나님이 두려운 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합니다.

본문 11절에 “보라 여호와께서 명하시므로 큰 집이 침을 받아 갈라지며 작은 집이 침을 받아 터지리라”고 하였습니다. ‘큰 집’이라는 것은 왕궁을 위시해서 부자들을 가리키는데, 이 큰 집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치시니 다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작은 집’은 서민의 집들인데, 백성들의 집도 하나님께서 치시기 때문에 다 터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에는 큰 집, 작은 집 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쳐서 갈라지게 하시고 무너지게 하십니다.

3.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여호와의 징벌이 임함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제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안 됨

본문 12절에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공법을 쓸개로 변하며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변하여”라고 하였습니다.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 밭 갈겠느냐’라고 하였는데, 말이 바위 위에서 달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굽이 다 닳아 말이 발병이 납니다. 그 다음에 다리를 못 쓰게 됩니다. 말은 땅에서 달려야지, 바위 위에서 달릴 수 없습니다. 또 소가 바위 위에서 밭을 갈 수 있습니까? 바위 위에서 밭을 갈려고 하면 갈아지지 않고 연장만 다 부러지고 맙니다. 소의 발도 그만 병이 나서 일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공법과 정의를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이와 같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서 ‘내가 달려보겠다. 밭을 갈아 보겠다’고 하는데, 말
씀을 떠나서 하는 것은 바위 위에서 달리는 말과 같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제가 잘하겠다고 하는 것은 소가 바위 위에서 밭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떠나서 밭을 갈아 농사를 짓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위 위에서 어떻게 밭을 갈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공법을 쓸개로 여기고 정의의 열매를 인진(쓴 것)으로 여깁니다. 공법이나 정의는 다 아예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달고 꿀송이보다 달아서 사모해야 하겠는데, 쓰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쓰게 생각해서 성경을 잘 읽지 않고, 말씀대로 권면하면 그것을 달게 받지 않습니다. 인진으로 생각해서 잘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잘해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의 뿔은 우리 힘으로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라고 하였는데, ‘허무한 것’은 우상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우리의 뿔은 우리 힘으로 취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였는데, ‘뿔’은 세력을 말합니다. 자신들의 세력을 자기네가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세력을 자기가 이룬 것을 가리킵니다. 또 공법은 어떻게 만듭니까? 쓰게 만들고, 정의는 인진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달고 꿀송이보다 달면 생명이 있는 때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쓰면 그것은 벌써 생명에서 떠난 때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말씀이 쓴가? 단가?’를 생각해보아서 말씀이 꿀보다 달고 꿀송이보다 달면 생명이 있는 때인 줄 알면 됩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쓰게 여기고 듣기 싫어하며 말씀대로 권면할 때 달게 받지 않고 쓰게 받으면, 그 사람은 소가 바위 위에서 밭을 가는 갈며 말이 바위 위에서 달리는 것과 같은 상태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우리의 뿔은 우리 힘으로 취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무엇을 잘해서 그런 줄로 아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저희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라고 하였는데, 이제 원수를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고 하였는데, ‘하맛 어귀’는 북방이고 ‘아라바 시내’는 남방입니다. 북방에서 남방까지 다 치신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일으켜서 너희를 학대하게 하신다고 하였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그 나라가 와서 북방에서 남방까지 너희를 학대하고 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일주의에 빠지는 것이 큰 죄입니다. 그것은 방탕과 안일주의와 연락에 빠져서 강포한 대로 나가고, 말씀을 쓰게 듣고, 우리의 뿔은 우리가 취했다고 하면서 상아 침상을 갖다놓고, 낮에 기지개를 켜고,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송아지를 취해서 잡아먹고, 비파에 맞추어서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고, 악기를 많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신다고 하였는데, 포도주를 마시지 않아야 합니다. 포도주는 보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23장 31절에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포도주는 보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술을 먹고 취하여 돌아가고, 거기에다가 술을 대접으로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악기는 다 자기를 위해서 만들고 요셉의 환난은 근심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요셉의 환난을 언제나 내다보면서 안일주의에 빠지면 안 되겠습니다. 반드시 환난이 옵니다. 반드시 흉년이 옵니다. 늘 풍년이 될 수 없습니다. 환난이 올 것인데, 그 환난이 올 때에 믿음을 잘 지키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생명을 내놓아야 지킬 수 있습니다. 앞으로 환난이 올 때에는 생명을 내놓아야 믿음을 지키지, 생명을 내놓지 못하면 못 지킵니다. 늘 생명을 내놓고, 말씀을 달게 받고 쓰게 먹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쓰게 생각하는 것은 믿음에서 다 떨어진 것입니다. 말씀을 달게 받아 먹고 순종하고, 제가 한 줄
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서 해주신 줄로 알고, 항상 감사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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