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심
마태복음 14:22-33
마태복음 14:22-33
22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25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27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28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 대 29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1. 예수께서 피하여 기도하러 가심
마태복음 14:15-21에 보면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 떡을 먹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삼
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으니까 그랬던 것입니다.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것을 보니, 자기들의 경제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여러 병자들을 다 고치시는 것을 보니, 모든 질병문제가 다 해결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예수님을 잡아서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요 6:15).
본문 22-23절에,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자,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기도 하시러 올라가고자 하셨습니다. 이때에 사람들의 뜻처럼 왕이 되면 완전히 실패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위험한 시험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만들고 세상 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시험입니다.
2. 풍랑가운데 고난당하는 제자들을 찾아오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배타고 건너가라’ 그렇게 배를 태워 보내시고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본문 24절에,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數里)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고 했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려고 제자들이 탄 배가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 바다 가운데 가게 되었고 거기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이 많이 쳤습니다. 바람은 거슬려 불고 물결은 거슬려 치고, 그렇게 가지를 못하고 많은 고난 가운데 빠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을 다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 다 아십니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는 것도 다 아셨고, 제자들이 물결을 인해서 고난당하는 것을 다 아셨습니다.
본문 25절에,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만히 두어두실 수가 없으셔서 그 제자들을 건져 주시려고 찾아 오셨습니다. “밤 사경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라고 했는데, 밤 사경이라는 것은 새벽 3시에서 6시 입니다. 밤새도록 제자들이 새벽이 되기 전에 건너가려고 애를 썼지만 바람과 물결을 인해서 건너가지 못하고 밤새도록 애만 썼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건져 주시려고 밤 사경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다 위로 걸어가실 수 있는 주님이십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이십니다. 바다도 창조하시고 바닷물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하실 때에 바닷물에 사람이 빠지게끔 만드셨는데, 안 빠질 수 있도록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을 발로 밟고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점점 가까이 오시게 되었습니다.
본문 26절에,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오는 것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빠져갑니다.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이다’, ‘귀신이 났다’, ‘밤새도록 우리가 바다에서 물결 때문에 죽게 되었는데 여기다가 귀신까지 났으니 아주 다 죽게 되었다’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의 오시는 것은 제자들을 살려주시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건져주러 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은 자기를 죽이러 오는 유령인줄 알고 놀랐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건 믿음이 없는 증거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본문 마지막에 가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며 책망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죽이러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살려주러 왔다는 말씀입니다. 그 물결 속에서 고생하며 죽게 된 것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다 아시고, ‘가서 살려 줘야 되겠다. 가서 건져 줘야 되겠다.’ 그런 마음으로 바다 위로 걸어오신 것입니다. 인간 생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다를 밟고 예수님께서 걸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늘 사랑하십니다. 제자들을 사랑하십니다. 고생당하는 것을 다 아시고, 물결을 인해서 가지 못하는 것을 다 아시고, 다들 죽을까봐 벌벌 떠는 것도 다 아십니다. 다 아시고는 가만히 두어 둘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가서 건져주어야 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사정,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생, 모든 당하는 위험성, 곤란, 함정, 모든 풍파, 당하는 것, 모든 물결치는 것, 당장이라도 집어 삼키려고 하는 바다 물결, 그런 것 예수님께서 다 아십니다. 자기 혼자 당하는 줄 알면 안 됩니다. 다 아시고 아신 다음에는 가만히 두어두지 아니하시고 예수님께서 이제는 건져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 무서운 바다에 그 캄캄하고 험악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바다에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단 말씀입니다.
찾아 오셨는데 예수님인지 몰랐습니다. 무엇인 줄 알았습니까? 유령인줄 알고 ‘이젠 다 죽었다’, ‘꼼짝 달싹 못하고 이젠 죽었다’라고 했습니다. 바다 물결이 집채와 같이 높이 올라갔다 내려오고, 바람이 거슬려 불어서 갈 수도 없고, 당장이라도 배가 침몰 당할 것 같고,배가 뒤집혀 엎어질 것 같다고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는데, ‘아 저기서 무엇이 바닷물을 발로 밟고 절퍼덕 절퍼덕 하면서 온다’ 이것입니다. 멀리서 보니까 ‘그 바다에서 누가 오겠냐?’ 이것입니다. ‘분명히 귀신이다. 귀신 났다’, 놀라서 무서워서 더욱 더 ‘이젠 다 죽었다’, ‘이제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설상가상, 그렇지 않아도 죽게 되었는데 또 귀신까지 났으니까 ‘이젠 꼼짝 못하고 다 죽게 되었다’ 무서워서 소리 지른단 말씀입니다. 설상에 가상은 눈 위에 서리 온다는 것입니다. 눈 위에 눈을 갖다놓는 것입니다. 찬 데 거기다 서리까지 오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 가운데 더 어려운 일, 죽게 된 가운데 더 죽게 된 것, 험한 고난 가운데 더 험한 고난이 온다고 야단이 났습니다.
3.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본문 27절에,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그렇게 말씀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안심하라’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실 때에 제자들이 그 말씀을 받아들여서 안심했습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인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구나. 귀신이 아니고 주님이시구나.’ 죽이려 하는 것이 아니고 살리러 오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심하라.”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면 안심이 됩니다. 안 받아 들이면 안심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안심하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만 가지고 나가지 않았습니까? 죽을까봐 걱정만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죽겠나, 좀 있다 죽겠나, 다음 물결 들어올 때에 배가 침몰 되지 않겠나?’ 하는 초조한 고통스러움 가운데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실 때에 ‘예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믿습니다’ 하면 됩니다. 안심하라는 말씀을 믿고 안심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안심이 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심을 주시는 예수님이시고, 구원하러 오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근심걱정 하는 것은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근심 걱정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와 같이 한다. 내가 너희를 건져 주러 왔다. 안심하라’ 그런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심 걱정하는 것은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근심 걱정하는 것입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는 말씀을 안 받아들이니까 그렇게 근심 걱정만 생기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것은 물결만 바라보고 있고, 생각은 ‘죽을 것만 같다’는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물결이 잡아 삼킬 것 같은 것입니다. 또, 유령이 나온 것과 같고, 지금 다 죽게 될 것만 같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언제나 받아 들여야 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근심 걱정이 다 뚝뚝 떨어져 나가고 참된 안식이 들어옵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 도와주러 오시는 것, 건져주러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사정을 다 아시고 건져주러 오시는 예수님인 줄을 믿어야 됩니다. 그런 예수님이십니다.
4. 만일 주시어든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본문 28-29절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 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라고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라하소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주시어든” 하는 것은 의심해서 하는 말이 아니고 감탄사입니다. ‘많은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이라면 나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오라 하소서’라는 뜻입니다. 물위로 오시는 그런 예수님이신 줄 이전에 몰랐으나, 이제는 베드로가 알았다는 말입니다.
열왕기하 1:10에, “엘리야가 오십 부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 인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 인을 살랐더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를 잡으러 온 그 오십 부장과 군대 오십 명 보고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어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너와 네 오십 명을 사를 것이라” 하고 말하니까 불이 내려와서 살랐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어든” 할 때에 엘리야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의심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의심했으면 불이 내려왔겠습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 의심하면 무슨 불이 내려오겠습니까? 열왕기하 1장 9절에 오십 부장과 그 오십 인이 엘리야에게 와서 “하나님의 사람이여”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라고 그들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엘리야에게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하고 말을 꺼낸 것입니다. 엘리야가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희를 사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도 “만일 주시어든”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바다위로 걸어 오시는 예수님이라고 하면 나도 걸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전에는 그런 예수님이신 줄 모르고 믿었습니다. 지금까지 바다 위로 물을 밟고 걸어오실 수 있는 예수님이신 줄 모르고 믿었는데, 베드로가 오늘 봤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이런 주님이라면 나를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소망의 사도인데 예수님께서 평소에 “내가 하는 건 너희도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건 너희도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신앙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베드로가 그런 소망의 사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건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니까 나도 걸어갈 수 있다’ 이런 신앙입니다. ‘만일 주시어든’, ‘아, 이런 주님이시라고 하면 날 좀 오라 하소서 내가 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소망이 견고한 베드로가 되어 용기가 넘칩니다.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왔으면 나도 걸어갈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는 건 너희도 다 행한다고 하셨으니까’라며 용기백배 했습니다.
5.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요한복음 14:12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했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것을 저도 할 것이요”라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또 이보다 더 큰 것도 할 수 있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구속운동을 내내 해 나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기초만을 해놓으셨는데 거기에다가 건설해 나가는 것을 너희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물위로 오라 하소서 제가 할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오라 하소서” 하니까 “오라!” 그랬단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시니까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걸어갔습니다. 예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사모하고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예수님 말씀대로 다 될 것을 믿고 바다위로 한 참 걸어갔단 말씀입니다. 조금 전에는 빠져 죽을까봐 배안에서 벌벌 떨었는데, 이제는 배에서 뛰어내려 바다 위로 걸어서 예수님에게로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노한 물결을, 산더미같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바닷물 그것을 타고서 예수님에게로 걸어갔습니다.
걸어갈 때에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즐거움으로 걸어갔습니다.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즐거움으로 갔습니다. 처음에 갈 때는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무서워했다면 내려 뛰자마자 '쏙!’ 들어갔을 텐데 한참 걸어갔단 말씀입니다. 그것을 보면 처음엔 무서워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오라 했으니까 갈 줄을 믿었습니다. 바다위로 걸어갈 것을 믿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바라보고 한참 걸어갔습니다. 걸어갈 때에 무엇 하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죽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면서 감사하면서 기쁨이 충만하여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참 걸어갔다는 말씀입니다.
기쁨이 충만해서 걸어간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거기가 낙원이 된 것입니다. 낙원이 되었습니다. 사망의 바다가 이제는 낙원이 되었고 사람을 삼키는 바다가 살려주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또 물결을 타고 가니까 잔잔한 바다를 걸어가는 것보다는 물결이 이렇게 높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요새 아이들이 바다에서 물결 타기 파도타기하지 않습니까? 파도타기 하는 아이들에게는 잔잔할 때 타는 것보단 파도가 일어날 때 타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재미가 있지, 잔잔하게 아무 바람도 없을 때는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기쁘고 즐거움으로 거기가 낙원이 되었습니다. 바다에 물결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한참 올라갔다가 쑥 내려가고, 쑥 내려가고 빠지진 않으니까, 이렇게 즐거움으로 예수님을 한참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가니까 좋은 세상을 만난 것입니다. ‘다 죽게 되었다. 이젠 죽었다. 큰 일 났다’했던 곳인데,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만 믿고 따라가고, 그 말씀대로 걸어가고, 안심하라 하는 말씀을 받아들이니까 기쁘고 즐거움이 충만함으로 그곳이 낙원이 되었습니다. 물결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이렇게 즐거움으로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갔습니다. 좋은 세상을 만난 것입니다. 다 죽게 되었다고 할 만한 상황인데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고 예수님의 말씀만 바라보고 나가니까 기쁘고 즐거움이 충만했습니다.
‘안심하라’ 하신 말씀 받아들이니까 안심이 쑥 들어왔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다 달아났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말씀 받아들여서 안심해야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해야합니다. 아무리 물결이 심하고 아무리 요란한 세상이라고 해도 안심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니까 우리를 살려주러 오셨으니까 바다가 우리를 죽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죽이는 권세가 바다에게 있습니까? 사람의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주권이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이시면 죽는 것이고 살리시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절대적인 대 주제이신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 받아서 그 말씀대로 걸어 나아가야 합니다.
6. 바람을 보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자
본문 30절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바다를 밟고 걸어가야겠는데 발이 쏙쏙 빠져 들어갑니다. 발도 빠지고 무릎까지 빠집니다. 왜 빠졌습니까? 바람을 보고 무서워해서 빠졌습니다. 누가 바람을 보라고 했습니까? 조금 전에는 바람 봤습니까? 아닙니다. 바람을 보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갔었습니다. ‘주의 말씀만 내가 믿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승리했었습니다. 그렇게 근심 걱정이 다 떨어져 나가고 예수님만 바라봤었는데, 그만 바람을 봤습니다. 바람을 보니까 바람이 너무 세고 물결이 아주 높이 일어나고 ‘아이쿠 이걸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면 빠집니다.
예수님 바라보던 눈이 바람 바라보는 데로 돌아갔습니다. 눈방울이 비뚤어졌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되었었는데 왜 옆으로 곁눈질을 했습니까? 옆으로 비뚤어지니까 발이 빠지는 것입니다. 언제 빠지냐 하면 눈방울이 비뚤어질 때 빠집니다. 마귀가 와서 눈방울이 비뚤어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예수님 바라보던 눈을 바람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나선 빠집니다. ‘아이쿠 큰 일 났다. 얼마나 바람이 큰가’ 하며 무서워하니까 바다에 빠졌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면 무서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안 무섭겠습니까? 바다 안 보고 예수님만 바라볼 때에는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이젠 예수님을 보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니까 무서워졌습니다.
물결이 오고 또 오고, 하나 지나가면 또 오고, 크게 파도치고 자꾸 오는데, 어떻게 안 무서워 할 수 있겠습니까? 바람을 바라보면 다 무섭습니다. 다 속상하고 다 걱정이 생기고 다 낙망이 됩니다. 바람을 바라보면 희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살 가망이 없습니다. 다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쏙쏙 빠져들어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물결이 또 온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이렇게 ‘어떻게 할까?’ 하다가 발이 쏙쏙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누가 바람 바라보고 무서워하라고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아라 걸어와라” 이러셨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고 걸어와라” 이렇게 말씀하
셨고 그대로 하니까 그렇게 되었는데, 그런데 왜 가다가 바람을 바라봅니까? 바람을 바라보고 무서워하니까 빠졌습니다.
베드로가 바다에 빠지니까 김현봉 목사님 말씀에, 베드로가 일생 배타고 고기잡이하던 실력으로 헤엄을 치고 한참을 자기의 노력으로 나오려고 노력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쏙쏙 들어갑니다. 물에 빠질 때에는 인간의 방법으론 안 됩니다. 인간의 기술, 인간의 실력, 인간의 모든 방법 이런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아무리 해도 못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가만히 두고 보시겠지요. ‘네가 네 힘 가지고 나오려고 하느냐? 한 번 해봐라’ 하실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기술을 부리고 물장구를 치고 그래도 물만 먹습니다. 살 소망이 다 끊어졌습니다.
바람은 바라볼 바가 못 됩니다. 바라보고 무서워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 풍파, 세상 환란, 세상 모든 어지러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세상, 이것을 바라보다가는 물에 빠집니다. 무엇만 바라보라고요?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만 따라서 걸어가십시오. 바다가 아무리 잡아먹을 것 같아도 예수님만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바다가 다 정복이 됩니다. 바다 위로 걸어가니까 바다가 다 정복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물결 많아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만 기도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 말씀만 순종하고 이렇게 나아가면 바다가 삼킬 것 같아도 못 삼키고 도리어 그것을 밟고 정복하면서 나갈 수가 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면 속상한 것이 많습니다. 요즘 우리 한국도 세상 바라보면 얼마나 어지러운 것이 많고 얼마나 죄가 많이 있습니까? 얼마나 뇌물이 많고 어지러운 것이 많은지 모릅니다. 서로 잡아먹고 속이고 사기횡령하고 뇌물 받고 불의한 자를 도와주고 이런 세상입니다. 요즘 국회의원들도 지조가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지조 다 팔아 먹고 반대하던 편으로 가고 얼마나 지조가 없는지 모릅니다. 지조가 없으면 안 됩니다. 돈 많이 받고 팔려가고 얼마나 어지러운지 모릅니다.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움 가운데 있는데 우리는 세상을 보고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물결이 사람 삼키지 못합니다. 사람 삼키는 것이 물결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권한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물결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 죽을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안 죽이시면 안 죽을 것이고, 다 살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죽이시면 죽습니다. 생사권이 하나님께 있고, 문을 열어주고 닫는 것도 하나님께 있고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예수님의 손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본문 31-33절에,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한참 따라가다 보면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 만나서 배에 올라가자 하시면 올라가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 말씀만 순종하면 됩니다. 바다는 ‘무서워할 바’가 아니라 예수님 말씀만 ‘순종해나갈 바다’입니다. 세상에 여러 가지 일이 많지만 예수님 말씀만 순종해 나가라는 말입니다. 예수님 말씀만 순종해 나가십시오. 따라가도 예수님만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바다 위에서 예수님 말씀대로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해결됩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손을 내밀고 이제야 소리를 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손을 붙잡으시며 배에 올려주셨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부르짖는 것이 제일 상책입니다. 자기 것으로는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자기의 기술, 수단, 지위, 용맹, 자기 돈, 재물, 별것을 다 갖다가 기울여도 그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구원해 주실수가 있습니다. 그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부르짖는 것이 제일 상책이라는 말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부르짖으라는 말입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백번 하면 됩니다. ‘주여!’라는 말만 백번 하지 말고,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한 백번, 이백 번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건져주십니다. 배에 올려주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는 두려워할 바가 아니고, 세상은 우리를 갖다가 삼킬 수도 없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생사권을 가지고 계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만 보고 예수님만 따라가면서 세상에 대해서는 예수님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가라!” 하시면 가고 “오라!” 하시면 오고 “이거 하라” 하시면 하고, 세상에 대해서는 예수님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일은 누가 합니까? 일은 예수님께서 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일을 하시는 것이고, 예수
님께서 시키시는 대로만 이 세상에서 순종하면 다 됩니다.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날아만 다니면 다 먹을 것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주여!’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주여!’ 하고, ‘주여!’ 하면서 예수님 말씀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만능이 나타나서 죽을 것 같아도 살고, 안될 것 같아도 되고, 망할 것 같아도 안 망하고, 쓰러질 것 같아도 안 쓰러집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사모하고 예수님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대해서는 주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것입니다. “이거 하라” 하시면 이거하고 “저거 하라” 하시면 저거하면 됩니다. “날아라!” 하면 날면 됩니다. “하늘을 날아다녀라!” 하시면 날아다니면 됩니다. “시냇가로 가라” 하면 가면 되는 것이고, 어디든 “가라”하면 가면 되는 것이고,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면 옮겨놓으면 됩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는 예수님 명령대로만 순종을 하고,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순종하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이 다 됩니다. 살아 날 자는 살아나고 건져낼 자는 건져내고, 먹을 것 하나님께서 주셔야 될 자는 먹을 것을 주시고, 말씀대로만 하면, 앞길이 환하게 열립니다.
배에 올려야 될 사람을 배에 올려주셨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저절로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같이 배에 타니까 저절로 바람이 다 그치고, 물결이 잔잔해지고, 그 때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책망하셨습니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 하였느냐?” 왜 의심 해서 죽을까봐 걱정했느냐는 말입니다. 주님이 다 하시는데, 주님이 건져주러 오시는데 왜 주님이 안 건져줄 알고 의심하였느냐? 왜 죽을 줄 알았느냐?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하고 건져주러 왔는데 왜 죽을 줄 알았느냐? 왜 안 될 줄 알았느냐? 왜 실패할 줄 알았느냐? 왜 의심하였느냐? 왜 걱정했느냐? 예수님께서 다 해주시는데 왜 두려워했느냐? 의심이 들어왔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걱정했단 말씀입니다.
만능의 주님이십니다. 만능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만 따라가야겠습니다. 주의 명령만 받아서 따라가면 다 해결됩니다. 이제 세상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심부름만 하면 됩니다. “가라”하면 가면 되고 “이거하라” 하면 하면 됩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하면 옮겨 놓으면 되는 것이고, 세상에 대해서는 “날아다니라” 하면 날아다니면 되는 것입니다. 날아다니는 것은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노력. “네가 노력해라” 하시면 노력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것은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됩니다. 속에 즐거움이 충만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대해서는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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