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첫날 하신 일
마태복음 21:1-22
마태복음 21:1-22
1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3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7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11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12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
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 15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16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18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1. 예수께서 나귀 타고 입성하심 (1-1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한 주간은 고난주간인데 그 때에 고난을 제일 많이 받으셨습니다. 그 고난주간 처음에 하신 일입니다. 첫째는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본문 1절에서 3절에 예수님께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셨을 때에 제자들을 보내시며 맞은편 마을에 가서 메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맞은편 마을에 가서 나귀를 끌고 왔습니다. 그때에 그 주인이 ‘나귀를 무엇을 하려고 끌고 가느냐?’ 말할 때에 제자들이 ‘주께서 쓰시겠다’ 하니까, ‘아, 그럼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단 마음으로 나귀를 주님에게 바쳤습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본문 5절에,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선지자가 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겸손하여 나귀를 타심
스가랴 9:9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고 했습니다. 겸손하여 나귀를 타고 시온에 왕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수살렘에 들어가신 목적은, 첫째, 여기 ‘겸손하여 나귀를 탔다’고 한 것으로 보면 ‘겸손’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가시기 때문에 나귀를 탔습니다. 말은 전쟁할 때에 타고 나가
서 전쟁을 하는 것이고, 나귀는 평화의 왕으로서 예수님께서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신 평화의 왕이십니다. 마태복음 18:2에,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라고 했는데,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갈 자는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이고 천진난만하고 순진한 자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평화의 왕이십니다. 이 세상이 싸움과 싸움이 가득 찬 세상에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서 오셨습니다. 환도과 몽치를 들고 온 무리들에게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말고의 귀를 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못 박히려 할 때에도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제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열두 영 열
두 사단이나 되는 천사를 보내서 이 무리를 다 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성경을 어떻게 응하겠느냐?’(마 26:53) 하시면서 평화의 왕으로서 싸울 수 있지만 싸우지 아니하고, 한번 기도하면 다 멸망시킬 수 있지만 멸망시키지 아니하고, 끝까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해서 평화적으로 나가신 예수님이십니다.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이 한 주간 후면 못 박히는 것입니다. 끝까지 평화의 왕으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한 후에도 우리에게 평강을 주신 예수님이십니다(눅 24:36).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나귀를 타심
왜 나귀를 타고 올라갔느냐?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나귀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스가랴 9:9에 평화의 왕인 그리스도께서 나귀를 타고 오신다고 했기 때문에 나귀를 타고 올라가셔야만 성경이 응해질 것이기 때문에 나귀를 타고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나귀 위에다가 자기 옷을 벗어 깔고 또 길에도 옷을 벗어 깔고, 나뭇가지를 손에 들었습니다. 종려나무가지는 승리의 상징입니다. 그렇게 앞과 뒤에 가면서 소리 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면서 찬송을 했습니다. 호산나 하는 것은 ‘구원하소서’ 하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구원하소서’ 하면서 찬송하면서 예수님을 앞과 뒤로 따라가고, 또 옷을 벗어서 나귀 위에도 얹고 길에도 펴고 예수님을 존경하고 우러러 받들면서 따라갔습니다.
그 나귀는 예수님을 태우고 가는 나귀이기 때문에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태우고 가지 않았다면 그 나귀를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저 예수님을 태웠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존경하고, 또 옷을 펴서 깔아주고, 또 등에도 옷을 펴주고, 호산나 불러주고, 모든 사람이 앞과 뒤로 가면서, 옹위하면서 갑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을 모시고 갈 때에, 이렇게 존귀해지고, 예수님께서 대접받으시는 바람에 우리도 예수의 이름으로 대접받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핍박받는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대접할 때에는 예수이름으로 예수를 태우고 갈 때에 대접을 받고, 예수를 핍박할 때에는 예수이름으로 핍박을 많이 받습니다. ‘내 이름으로 너희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을 터인데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아무리 핍박이 많이 와도 끝까지 견디고 믿음으로 그걸 통과하면 상급을 많이 받게 됩니다(마 24:9-13).
2. 성전을 정결케 하심 (12-17)
성전을 정결케 하심
본문 12절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라고 했습니다. 다 내쫓았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있었습니다. 또 돈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아주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소란하고, 소의 소리가 나고, 양의 소리가 나고, 또 돈 바꾸느라고 분주하게 돌아가고, 성전이 아주 문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차마 보실 수가 없어서 노하시고, 채찍을 해가지고 다 때려 내쫓았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 돈을 다, 상을 다 뒤집어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은 다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성전 안에서 소와 양을 팔았을까요? 왜 돈을 바꾸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그런 명목 하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판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서는 아무 소나 아무 양이나 비둘기 사다가 제사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할 양과 소는, 어렸을 때부터 특별히 구별해서 기르고 또 기도하며 기르고, 그렇게 특별히 기른 소와 양과 비둘기를 사다가,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이 잘 받으신다고 그렇게 바리새교인들이 가르쳤기 때문에 모든 백성은 그 말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성경에 안 맞습니다. 성경에는 양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는 양치는 사람은 막대기를 하나 건네 놓고 양을 거기로 몰아서 열 마리째 건너가는 양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지나가게 하다가 열 마리 째 지나가는 양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다음에 또 세기 시작해서 열 번째 지나가면 그것을 바치고, 또 지나가게 하다가 열 번째 양을 바치고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어렸을 때부터 특별히 잘 길러야 된다는 말이 없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돈을 가지고 와서 시장에서 소나 양을 사다가 제사를 드리라고 했고, 특별히 기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리새교인들은 성경보다 더 잘하려고, ‘어렸을 때부터 길러야 된다.’ ‘아무거나 갖다 바치면 안 된다.’ 이렇게 해서 성전에서 그 양과 소를 팔게 되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왜 성전 안에서 소와 양을 팔았을까요? 왜 돈을 바꾸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그런 명목 하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판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서는 아무 소나 아무 양이나 비둘기 사다가 제사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할 양과 소는, 어렸을 때부터 특별히 구별해서 기르고 또 기도하며 기르고, 그렇게 특별히 기른 소와 양과 비둘기를 사다가,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이 잘 받으신다고 그렇게 바리새교인들이 가르쳤기 때문에 모든 백성은 그 말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성경에 안 맞습니다. 성경에는 양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는 양치는 사람은 막대기를 하나 건네 놓고 양을 거기로 몰아서 열 마리째 건너가는 양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지나가게 하다가 열 마리 째 지나가는 양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다음에 또 세기 시작해서 열 번째 지나가면 그것을 바치고, 또 지나가게 하다가 열 번째 양을 바치고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어렸을 때부터 특별히 잘 길러야 된다는 말이 없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돈을 가지고 와서 시장에서 소나 양을 사다가 제사를 드리라고 했고, 특별히 기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리새교인들은 성경보다 더 잘하려고, ‘어렸을 때부터 길러야 된다.’ ‘아무거나 갖다 바치면 안 된다.’ 이렇게 해서 성전에서 그 양과 소를 팔게 되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돈 바꾸는 것도 사회에서 그 당시에 사용하는 돈, 로마에서 가이사의 화상을 그리고 로마글자를 쓴 ‘데나리온’이라는 돈은 하나님께 연보 바치기에 합당치 않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세겔’이라는 돈을 따로 만들어서 성전에서만 쓰는 돈을 만들어서 바쳐야 된다고 하며 데나리온 돈을 가져와서 성전에서 세겔이라는 돈으로 바꿔가지고 제사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쓰는 돈 바치지 말고 세겔이란 돈 바꿔서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잘 받는다고 하면서 돈 바꿀 때에 그 구전을 많이 받았습니다. 100 바꾸어 주는데 10원을 받는다던지 해서 그렇게 구전을 아주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양과 소는 시장보다 아주 비싸게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그 이면에는 그 성전 맡은 사람과 장사하는 사람과 바리새교인들의 당국자들이 그 이익 나는 것을 가지고 나누어먹으려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권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삼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장사하려는 속셈으로 했습니다.
요한복음 2:16에,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성전을 가지고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대의명분은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이렇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 잘 섬기는 법이다’ 하고 갖다 붙였지만, 그 이면에 들어가 보면 이익을 조금이라도 많이 남겨가지고, 자기네 이득 보려고 장사하는 집을 삼아놓은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분명히 알았습니다. 다 내쫓은 것입니다. ‘성경대로 해라.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왜 장사하는 집을 삼느냐’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집
본문 13절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고 하시는데, 하나님의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6:7에,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라고 했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런데 여기 하나님의 집을 가져다가 조금이라도 자기의 유익을 보려고 하고 이용하려고 장사하는 집을 삼는 것은 심판을 받을만한 악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심판주로서 노하여 채찍을 가지고 다 쫓아내신 것입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를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오늘날 이 교회가 다 성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하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단체,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이고 ‘기도하는 집’이라 하셨습니다. 교회를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으로만 삼아야합니다. 이것이 종교의 건물입니다. 만민이 들어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입니다. 뭐 어떤 사람이든지 부자나 가난한자나 남녀나 노소 어떤 인종이든지 어떤 계급이든지 다 같이 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다 같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문맹이나 차별이 없이 ‘아무나 와도 좋소.’ 아무나 다 나와서, 그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서, 모든 심령의 병을 고치는 이것이, 교회가 하여야 될 일입니다.
병자들을 고치심
본문 14절에,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라고 소경과 저는 자들이 나아오니까 예수님께서 고쳐주셨다고 했습니다. 심령의 병 고쳐주는 일 이것을 예수님께서 하셨다는 말입니다. 38년 된 병 고쳐주시는 일을 요한복음 2장에 하셨고, 소경 눈뜨게 해주시는 일, 요한복은 9장에 하셨고, 절름발이 고쳐주시는 일 하셨고(마 15:30-31), 문둥병자 깨끗하게 해주시는 일 하셨으며(마 8;막 1; 눅 5; 17), 또 중풍병자 병고쳐주시는 일 하셨습니다(마 4:24; 8:5-13; 9:2; 막 2:5; 눅 5:18-25). 이것은 육신의 병 고쳐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심령의 병들을 다 고쳐주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연약하여 쓰러진 심령을 교회에서는 일으켜 세워주고, 심령의 눈이 어두운 자들을 교회에서 밝혀주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 이것이 교회가 하는 일입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주린 심령이 하나님의 신령한 양식을 먹고 새 힘을 얻어서, 달음박질 하는 신앙을 가지게 하는 것, 이것이 교회가 하는 일입니다. ‘속죄구령’, 즉, 많은 죄인이 나와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이것이 교회가 하는 일입니다.
여기는 누구나 다 나와야 합니다. 죄인도 나와야하고, 왕도 나와야하고, 장관도 나와야하고, 사병도 나와야하고, 주인도 나와야하고, 장성도 나오고, 다 나와, 다 같은 죄인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엎드려서,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죄인이 나왔사옵니다’ 하고 모두 회개하며 하나님께 기도해야합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런 집이 되어야합니다. 여기에 나오면 원수가 다 없어져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원수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다 풀어지고, 다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는 교회
그런데 교회를 갖다가 장사하는 집을 삼으면 얼마나 진노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집, 영혼이 구원받는 집, 이런 집인데 이것을 갖다가 어떠한 사람의 이권문제로 사용한다면, 성전은 다 타락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이권문제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정치적 기관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로마의 정치적 기관으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헬라의 정치기관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유대나라도 교회를 정치기관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세계 어떤 나라도 여당의 정치기관으로
사용해도 안 되고, 야당의 정치기관으로 사용해도 안 됩니다. 교회에 들어올 때는, 유대인, 헬라인,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여당, 야당,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다, 하나입니다. 다, 하나님을 우러러 존경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 죄인이 나온 것이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심령이 다 나음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이러해야하는데, 어떤 특수계급에서 교회를 장사하는 집으로 삼았단 말입니다. ‘이권을 좀 얻어야겠다’고 합니다. 교회를 자기 이익을 얻는 기관으로 삼으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자기 이익 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용하려고 해도 안 되고, 이용당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이용하려는 사람도 잘못됐고, 이용 당하려는 사람도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정치기관으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절대, 정치기관으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자기의 어떤 이권문제로 이용해도 안 됩니다.
교회는 아예 세상에서 나와서 따로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의 것이지 세상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8:36-37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고 하시는데, 예수님께서 왕이십니다.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나라에 속한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저 세상에
속한 줄 알고, 왕이라 하니까 가이사의 반역자라고 말하고, 빌라도는 진짜인가 싶어서, ‘네가 왕이냐?’하고 묻습니다. 다른 왕이 될 것 같으면 가이사 황제의 반역자가 될 것 같아서 몰아치려고 물어봤습니다.
예수님은 ‘왕은 왕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나와서 따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은 만국에서 불러내서 따로 있는 것이니까, 세상 어느 세력도 이용하면 안 되고, 이용당하면 그 종교는 완전히 타락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다 나와서 회개를 하고, 누구나 다 나와서 상처를 고침을 받고, 위안을 받고, 평강을 얻고, 생명이 살고,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하고, 영적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나라하고는 딴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종교를 정치적 이용기관으로 삼는 것은, 그 나라도 망하고 그 교회도 망하는 것입니다. 일본제국이 왜정말단에 기독교를 일본기독교단으로 다 통합을 시켜놨습니다. 장로교, 성결교, 감리교, 여러 교단을 통합을 시켜서, 대일본기독교단으로 해 놓고, 한국은 대일본기독교단 조선지부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하고선 그 교단을 누가 주장했냐하면, 일본국가에서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나라의 어용기관으로 삼아놨습니다. 그러다 일본이 망하고 교회도 다 타락이 되고 만 것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기독교 교단이라는 것을 조직합니다. 교도연맹, 기독교도연맹을 조직합니다. 교도연맹에서는 교회를 다 주장합니다. 이전에 교도연맹 위원장이 강나옥씨였는데, 강나옥씨는 공산당 서기장입니다. 이북의 교도연맹이 들어오면서, 그 교도연맹에서 교회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국가의 어용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유주의에서는 정치적 단체가 이용하려고 합니다. 정치적 단체들이 야당에서 이용하려고 하고, 여당에서 이용하려고 하고, 국가에서 이용하려고 하고, 교회를 이용하려고 하고 합니다. 거기에 이용당하면 안 됩니다. 교회가, 이 정치적 단체에 이용당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인데 저리 가서 한편에 붙으면 기도 못할 것이 아닙니까? 이편, 저편을 만들어, 세상 싸움마당에 끼워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게 됩니다. 기도하는 집은, 누구나 다 나와 치료하는 집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생명이 사는 집인데, 이 세상기관으로 전락이 되고나면 다 타락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다 끝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해방신학을 주장하는 곳의 사람들은 교회를 기독교 사회주의라 해서 사회주의 기관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회를 해방시키는 것을 교회가 해야 한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 해방시켜라.’ ‘자본주의 사람들 정치적으로 행방시켜라.’ 교회를, 해방시키는 어떤 기관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사회기관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교회를 갖다가 정치적 기관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는 다 나와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다 나와서, 가난한 자나 부자나, 다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 종이나 주인이나, 다 나와서 기도하는 집입니다. 다 나와서 하나님을 찾고, 다 나와서 자기 죄를 자복하고, 다 나와서 심령의 병을 고치고, 소경과 절름발이 다 고치고 나음을 얻어서, 새롭게 나가는 것이 이것이 교회입니다. 세상과 상관없습니다. 교회는 그런 세상 것 다 떼어 놓고 들어와야 합니다. 그렇게 교회에 들어와서, 모든 사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심령의
병을 고치고, 심령이 살고, 하나님을 찾고, 영생을 얻고, 생명 길 걸어가고, 그리스도의 세계에 들어가고, 그리스도의 빛을 발견하고, 빛 가운데 살며, 세상가운데 빛을 비추어내는, 그런 역할을 교회는 해야만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예수님께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책망하십니다. 다른데 이용하면 절대 안 됩니다.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하고 노를 품으시고 와서, 채찍으로 때려 다 내쫓고, 다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왔습니다. 이다음에 심판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18-22)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본문 18-19절에,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고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는데, 무화과나무를 보고 열매가 있는가 보러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구하는 예수님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유대를 상징하는 것인데, 유대나라가 무화과라고 했습니다. 유대나라 국화가 무화과이고 성경에도 상징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24:2 -6에 유대백성이 무화과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4:5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잎사귀만 왕성하고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이건 예수님이 저주할만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찾으십니까? ‘열매가 있는가?’ 열매가 있는가 하고 찾으시는 예수님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도 무화과나무에 속하는데, 무화가 나무가 잎사귀만 왕성한 것처럼 교회가 숫자만 많고 모든 것이 왕성하지만, ‘열매가 있는가?’ 예수님은 숫자 많은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니고 열매를 찾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열매를 맺으라
그 열매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열매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 믿는 사람은 빛 가운데로 다녀야겠는데,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맺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24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의와 진리와 거룩입니다. 의와 진리와 거룩해지는 것이, 진실해지는 것이 열매입니다. 거룩,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진실해야 됩니다. 거짓말하고 속이면 마귀종입니다. 마귀의 자녀가 거짓말하고 속인다고 했습니다. 과거에 거짓말하고 속였으면 회개하고 다시는 거짓말하지 말란 말입니다. 진실하란 말씀입니다. 그리고 의로워야하고 그리고 거룩해야 됩니다. ‘이 열매가 있는가?’ 예수님은 찾아보시고 열매를 구하는 예수님이십니다.
갈라디아서 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무화과나무의 열매, 오늘날 교회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여기 열매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제일 큰 열매가 사랑입니다. 교회의 제일 큰 열매가 사랑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고전 13:13). 사랑이 제일 큰 열매입니다. 진실, 사랑과 진실입니다.
진실해야 됩니다. 진실하지 못한 것은 이 열매가 아닙니다. 포도나무 열매도 아닙니다. 무화과나무 열매도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가 맺혀야겠는데,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입니다. 첫째가 사랑, 사랑이 제일 큰 것입니다. 사랑해야 됩니다. 그 다음 둘째는 희락, 항상 기뻐해야합니다. 세 번째는 화평해야 합니다. 넷째는 오래 참습니다. 오래 참고 하나님이 일해주신 것을 기다려야합니다. 다섯째는 자비, 여섯째는 양선, 일곱째 충성, 여덟째 온유, 아홉째는 절제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맺히는 열매가 되어야합니다. 화평해야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랬습니다(마 5:9). 오래 참아야합니다. 하나님이 해주시기를 오래 참아야합니다. 참지 못해서 일 다 틀어버리면 안됩니다. 안될 것 같아도, 좀 있으면 되고, 참으면 좋은 열매를 맺힐 수 있습니다. 참으십시오. 자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모든 것에 절제해야 됩니다. 시간도 절제하고, 쓸 데는 쓰고 안 쓸데 안 쓰는 것이 절제입니다.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절제해서 돌아가면, 한꺼번에 다 쓰고 나중에 쓸 것이 없습니다. 모든 면에 절제하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육신의 열매
갈라디아서 5:19-21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십니다. 육신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와 반대입니다.
악한 열매입니다. 열다섯 가지 육체의 열매는 악한 열매인데 이런 열매 맺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열매 맺히는데 빠지지 마십시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이거 다 성적 죄입니다. 우상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다 악한 죄입니다. 원수 맺으면 안 됩니다. 분쟁, 싸우고 다투는 것 안 됩니다.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당파를 맺어 싸우는 것 이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당파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수 맺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됩니다.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하는 것, 술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술 취하고 방탕하는 것은 다 악한 열매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열매 없는 나무를 저주하심
‘열매가 있는가?’ 찾아보시다가, 잎사귀만 있고 열매가 없으니까 저주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까 무화가 나무가 그 이튿날 말랐다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즉시 마른 것 같지만 다음날 보니 말랐다고 했습니다(막 11:12-21).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 저주하신 예수님은 열매 없는 교회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말세교회도 좋은 열매를 맺지 않고 이렇게 악한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다 찍어서 불어 던진다’고 했는데(마 3:10),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런 좋은 열매 맺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란하고 난리와 난리가 가득 찬 세상이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교회만은 무화과나무 열매 맺히는 교회, 성전이 정결한 성전, 빛의 열매, 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혀야 합니다. 의와 진실과 거룩, 이런 열매가 교회에서 맺혀 나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보시고 이 세상을 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진노의 채찍을 들었다가도, 그 진노의 채찍을 거두시고 용납해 주십니다. 교회가 바로서야 됩니다. 성도가 바로 서야 됩니다. 오늘날 이 말세를 당한 시대에, 성도가 어떻게 하든지 믿음에 서고, 교회가 바로서고, 열매 맺는 이런 성도가 되어야만, 하나님께서 진노의 채찍을 거두어 주실 것입니다.
믿고 구하는 것을 다 받으리라
본문 21-22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은 다 받는다는 말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서 순종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말씀대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면, 다 준다는 말입니다. 다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순종을 하면, 산이라도 옮겨갑니다. 말씀을 바로 순종하면, 산이 옮겨갑니다. 말씀대로 바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바른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다 준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하기를 힘을 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순종하는 그 믿음을 가지면, 산도 옮겨가고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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