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9일 월요일

요한복음 8:1-11 간음한 여자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간음한 여자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
요한복음 8:1-11
1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
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저희가 묻기를 마
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함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
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
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
르면 간음하다 잡히면 돌로 치라, 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22:22-24에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
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통간
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 죽
일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유부녀와 통간한 자는 돌로 쳐 죽이라
고 하였습니다. 또, 정혼한 처녀와 성읍 중에서 만나 통간하면 둘 다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모세 율법에 따르면 간음한 여자와 남자
는 둘 다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장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모세의 율법을 이야기하고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예수님
께 물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를 고소하기 위한 조건을 얻고자
하는 것이며, 예수를 시험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 여자를 예
수님을 시험할 도구로 끌고 온 것입니다. 얼마나 악합니까? 예수님께
서는 그것을 다 아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셨습니다. 두 번 쓰
셨습니다. 무슨 글자를 쓰셨는지 본문에 없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합당한 성구를 쓰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사건에 합당한 성구로는 첫째, 신․구약 성경의 대강령인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일 것 같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 여자가 범죄한 기회를 타서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끌고 온 것을 보면 그들에게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가 범죄한 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없이 이것을 이용하여 나를 시험하려 하느냐? 이
런 의미에서 쓰셨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계속 돌로 치렵니까, 말렵니
까? 라며 묻습니다. 이 자들은 예수님께서 돌로 치라고 하시면 모세와
다를 것이 없다고 예수를 정죄할 것이며, 치지 말라고 하면 모세를 거
역하는 자, 율법을 거역하는 자로 정죄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님께서 일어나시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
습니다. 그리고 또 땅에 글씨를 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쓰
신 글씨도 이 여자와 관계되는, 간음에 관한 성구였을 것으로 생각됩
니다. 마태복음 5:28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예수
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
니라”하는 말씀을 쓰신 것 같습니다.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여인
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너희는 음
욕을 품은 적이 없느냐? 너희는 과거에 음행한 일이 없느냐?”, 이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이 성구를 쓰셨을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
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 사람들 가운데 간음죄를 지은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고 간음죄를 안 지었다 하더라도 음욕을 품은 일이 있거나 여러 가지 깨끗하지 못한 것이 속에 많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치라”고 하시니 모두 자기
양심에 가책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 달아났습니다. 성경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죄를 범치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라고 하니 다 달아난것, 이 상황이 바로 그러한 경우입니다. 모인 사람들 모두 양심에 가
책을 받았습니다. 또, 능력 있으시고 참 빛 되시는 예수님 앞에 오니 자기들의 죄가 다 들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그 여자만 남겨두고 다 가버렸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여자가 “주여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기 때문에 돌에 맞아 오늘 당장 죽게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로 끌고 오는 바람에 그 
만큼 더 살게 된 것입니다. 

2.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예수님의 말씀에 가책을 받아 이 여자를 끌고 왔던 사람들이 하나
씩 다 달아났습니다. 본문 10-11절에 “여자여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
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자는 살아
났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끌려오지 않았다면 그 날 그 시간에 당장 죽
었을 텐데,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신 말
씀 한마디에 이 여자는 죽을 것에서 살아났습니다. 그럼으로 이 여자
가 바로 예수님을 믿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을 것을 살
려 주셨는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 예수님이 아니면 누가 살려주겠
습니까? 법적으로 보면 다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살려줄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를 살려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죄를 지어서 다 죽게 된 자를 살려 주시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한 사람은 의원이 쓸데
없고 병난 사람에게 쓸데 있나니 나는 의인을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
라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날은 틀림없이 자신이 죽을 날입니다. 살 길이 1%도 없습니다.
100% 죽을 것인데, 그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살려주신 것을 생각
하면 너무나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분이야말로 참으로 그리
스도이다, 나는 이제 주님을 믿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겠다”라는 결
심을 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죄가 있다는 것을 증거해 주셨습니다.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
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
다.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이 여자만 죽을 것이 아
니라 끌고 왔던 자들도 다 죄가 있으므로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
입니다. 죄 중에 간음죄가 큰 죄입니다. 또, 제일 많이 짓는 죄가 간음
죄인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도 이미 간음한 죄라고 하
였습니다. 야고보서 4:4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
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과 벗된 자는 간음하는 여자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세상과 벗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간음하는 여자와 같은 것입니다. 즉, 이 여자와
같은 것입니다. 음욕을 품은 일이 있거나 간음한 경험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이 여자와 100% 같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에 세상이 음
녀라고 하였습니다. 음녀와 더불어 간음한 왕들이 다 망한다고 하였습
니다. 그 다음으로 우상 섬기는 죄가 큰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만 신랑으로 삼
고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
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이 여자는 이 날부터 죽은 날입니다.
이 날은 이 여자가 죽은 날인 줄 알아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보
면 100% 다 죽었습니다. 살 길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날은
이 여자가 죽은 날이고 이 여자가 장사된 날이고 이 여자가 없어진 날로 알아야 합니다. 이 여자가 사는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산 것이지 제가 산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다 이 여자와 같이 과거에 죄 지은 것을 찾아 살펴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죄를 지었습니까? 요한복음 4장에 사마리아 여자는 남편이 몇이라고 하였습니까? 다섯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 다섯 사람이 정당한 남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지금 있는 남편도 정당한 남편이 아닙니다. 사마리아 여자와 같은 그
런 여자, 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 이 여자가 오늘 죽는 날
을 맞이한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에 죄 지은 것을 생각하면 다 죽는 날인 줄 알아야 합
니다. 과거에 죄 지은 것을 다 살펴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죄를 지었
습니까? 사마리아 여자가 남편 다섯하고 산 것을 생각해 보면 아마
남편 한 명에 2년씩만 살았어도 10년은 살았을 것 같습니다. 10년 살
면서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죄 값으로 오늘은 죽는 날입
니다. 죽어서 장사하는 날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모든 죄를 살펴보아
야 합니다. 우리는 그 죄 값으로 반드시 죽을 자들입니다. 살 자가 하
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실 때에 다
갔습니다. 우리도 음욕을 품은 일, 세상과 벗된 일, 이 모든 것을 돌이
켜보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인 줄 알아야 하겠
습니다. 오늘은 죽어서 장사하는 날이고 없어질 날입니다. 

이제부터는 자기가 산 것이 아닙니다. 자기는 죽었으므로 이제부터
는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 것입니다. 즉, 죽은 다음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전에 간음하던 세계는 죽음 저편의 세계이
고, 오늘 예수님과 만난 다음부터는 죽음 이편의 세계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죽음 어느 편 사람입니까? 죽음 이편에 살았
다고 합시다. 다 죽게 되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죽음 어느 편에 사는
것입니까? 죽음 저편, 이제 죽으면 건너가서 저편에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살려주셨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려 주셨기 때문에 사는 그러한 경험 없습니까?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100% 다 죽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살려주실 때가 더러 있습니다. 대개 다 있을 것입니다. 꼼짝 못하고 다 죽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살려주신 일 말입니다. 

한국 사람은 특별히 대동아 전쟁 때에 다 죽게 된 것을 하나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또, 6.25사변 때에 다 죽게 된 것을 살려주셨습니다.
죄 값으로 다 죽게 된 것을 살려놓았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교통사고
나 질병, 감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 등,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
때문에 다 죽게 된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다 죽게 되었을 때에 ‘한
번만 살려 주시면 일생 동안 주를 위해서 살겠습니다’, ‘이번만 살려
주시면 다시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주를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결
심하는 기도를 대개 해보았을 것입니다. 또, 자기가 아니라도 가족이
다 죽게 되었을 때에 ‘이번만 살려주시면 온전히 주를 위해서만 살겠
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결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이 여
자가 지금 잡혀온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잡혀 와서 죽게 된 때에 살려주시면 “예수만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라고 하게 됩니다. 간음하던 세계는 저편 세계이고 자기 세계가 아닙
니다. 지금 세계는 이편 세계라는 말입니다. 이제 이편 세계에서 보면
전에 살던 세계는 자기 세계가 아닙니다. 죽음 저편 세계이고 나는 죽
음을 건너서 이편에 왔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누가
죄 지었다고 하면 그것은 죽음 저편 세계 사람의 일인 것입니다. 또,
누가 죄 짓자고 하면 “그것은 죽음 저편 세계 사람하고 말해보세요,
나는 이편으로 건너왔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서약한 것이 있고 작정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지금 살았지 나는 진즉에 죽은 자입니
다, 살 수 없는 자입니다, 벌써 몇 십 년 전에 죽었을 자입니다, 서약
하기를 살려만 주시면 이제는 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생명까지도 다 바쳐 놓고 살겠습니다, 이렇게 서약하고 건너온 자입니다”라고 분명히 말해 주어야 합니다. 이제는 죽음 저편 세계 사람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너머 이제는 이편으로 건너왔습니다. 예수님 편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나도 너를 정
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해서 자주 범하면 안 됩니
다. 이제는 다 죽고 저편 세계로부터 건너와서 죽음 다음 세상에서 사
는 것인데, 어떻게 죽기 전 살던 세계의 것을 다시 할 수 있다는 말입
니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고 해서 회개하고 또 죄를 짓고, 예수님께
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해주신다고 해서 회개하고 또 죄를 짓는
것은 죽음을 건너지 못한 것입니다. 사선(死線)을 넘어서 살아야 합니
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어 우리를 죽음 건너편으로
인도해 주셨는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예수님께서 기적적으로 건져주셨습니다. 능력으로 건져주셨습니다.
이제는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주님
만을 위해서 주님만 바라보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놓고 ‘주
를 위해서만 살겠습니다’라고 결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여자도
아마 그렇게 결심했을 것 같습니다. 그 날 죽을 것을 예수님께서 건져
주시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을 때에 이 여자는 예수님께
서 구주이신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 때문에 자기가 사는
줄을 알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멸망 받아 죽었을, 그러한 자리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
니 이제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 은혜가 감사해서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하며 하나님께 몸 바쳐놓고 이제는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다 바치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하려고 작정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어디든지 가는 믿음을
이 여자가 이제부터 가지게 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3. 사선을 넘어 그리스도의 세계로 넘어 온 우리
우리도 죄로 말미암아 다 죽을 자인데, 죄를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죽음의 바다를 넘어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세계, 빛의
세계, 새 세계에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주를 위하는 세계에서
살아야 합니다. 자기를 위하는 세계는 다 죽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살던 세계는 다 죽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세계, 빛의 세계, 생명의 세계, 영의 세계, 하나님만 위하는
세계입니다. 이 여자가 이제 그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날 죽었
는데 무엇을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까? 죽은 여자가 되었는데, 다시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자기 집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이
들 생각을 하겠습니까? 또, 세상 부귀와 영화를 생각하겠습니까? 이미
다 죽었는데 말입니다. 

‘이제 나는 사선을 넘어서 하나님의 세계, 주님의 세계로 온 자이다,
죄 짓는 세계는 죽음 저쪽에서 하는 일들이고 나는 이제 죽음을 건너
서 예수님 쪽으로 왔으므로 새 사람이다, 새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사
람이다’하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다 떠나서
하나님만 위해서 사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순종입
니다.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여자가 무
조건 순종하겠습니까? 네, 예수님께서 시키시면 무엇이든지 다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살아났는데 못 할 것이 없습니다.

네게 있는 것 다 바쳐라, 하면 “네”하고 다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집’을 바치라고 하면 ‘집’도 바치게 되어 있고, 너는 가서 모든 사람에
게 종이 되라, 하면 종도 될 수 있고, 이 복음을 전하라, 죽도록 충성
하라, 하면 복음을 전하며 죽도록 충성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살려놓으신 다음에는 예수님의 세계에서 살아야
하며, 그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다 해야 합니다. 다시는
죄를 범치 않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죄 짓는 것
은 무슨 세계입니까? 죽음 저쪽 사람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예수님의
세계에 돌아온 사람은 저쪽 편과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이사야 1:18-20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
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
을 찌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
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
의 입의 말씀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
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
이요 진홍같이 붉을 찌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
와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이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
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고 하였
습니다. 죄 사함 받은 자들이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해서 다시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너희가 사함을 받아서 깨끗해졌으니 이제부터 어떻게 하라고 하셨
습니까?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라고 했
습니다. 우리는 즐겨 순종하여야 합니다. 죄 사함 받은 사람은 즐겨
순종하여야 합니다. 다시 죄 짓는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곳에서 죽어 예수님의 세계로 들어왔으므로,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되지만, 순종 안하면 칼에 삼키우는 것입니다. 즉, 다 망한다는 말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거역하면 하나님께서 다 망하게 만드십니다.

이제 세계가 말세가 되었습니다. 청황색 말이 나와서 사람을 죽이는
시대가 되었는데, 앞으로 이 세계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테러와의
전쟁, 아프가니스칸 전쟁 등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신무
기가 나와서 많은 사람이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3차 대전이 일어
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말세가 다 된 것입니다.

지금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순종해
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면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믿는
일을 하지 않고 세상과 짝하며, 하나님께서 죽을 것을 살려주셨는데
그것을 다 잊어버리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거역하고 나아가면 마지막에는 칼에 삼키우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탄저균 때문에 저렇게 고통 당할 줄을 누가 알았습니까?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많이 퍼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거역하
면 칼에 삼키우는 것, 전쟁이 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언제 전쟁이 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즐겨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다 지켜 주십니다. 그
러므로 믿는 일을 잘하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죽을 것을 건져주셨는데 간음한 여자와 같은 자리에서 건져주셨는데,
왜 믿음을 안 지킵니까? 왜 세상과 짝하고 돌아갑니까? 

오늘도 단풍 구경 간 사람들이 있겠지요? 주일에 단풍 구경 간 것
이 무엇입니까? 세상과 짝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짝하는 것
입니까? 세상과 짝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것입
니다. “즐겨 순종하면 너희가 살고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다, 그
러나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것을 건져주셨는데, 사선을 넘어서 예수님의 세계로 들어왔는데,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순종하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세계에서 떠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항상 빛 가운데서 행하고,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세계에서 살며,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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