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능력
로마서 1:16 -17
로마서 1:16 -17
1: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이고, 그리고 헬라인에게이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니,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니,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1.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이유
본문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의 도를 볼 때에 미련하게 봅니다. 고린도전서 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의 도를 아주 미련하게 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헬라 철학이 발달되어서 철학을 논하고 있는데, 나사렛 예수가 서른 세 살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사흘 만에 살아났다는 말이 당시 학자들이 볼 때에는 얼마나 어리석은 말로 들렸겠습니까? 그래서 헛된 말을 한다고 비방했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왜 부끄러워 하지 않는가?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살려내는 능력이 복음에 있기 때문에, 이 복음이야말로 가장 귀한 것이며, 영광스러운 것이며, 존귀한 것이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자랑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것으로 사람을 살려낼 수 없습니다. 복음으로만 사람을 건져내고, 살려냅니다. 아무리 철학자들이 훌륭한 철학을 논한다고 해도, 그것을 가지고 영혼을 구원해 낼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과학을 많이 연구한다고 할찌라도, 그것을 가지고 사람의 영혼을 살려낼수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원자탄을 만들었다고 해도, 원자탄으로 사람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이 복음으로만 살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멸시한다고 하여도 바울은 복음이 사람을 살려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철학은 헛된 말로 인간의 이론만 논하고 앉아 있는 것이며, 거기에는 영혼을 살려내는 것이 없다, 또 과학이라는 것은 물질에 대한 적용법만 논하는 것뿐이지, 영혼을 살려내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의 영혼을 살려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얼마나 존귀한 것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부
끄러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자랑하고, 도리어 이 복음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하였는데 복음의 내용을 바로 알면,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랑할 것입니다. 사실 복음은 자랑할 것이며,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복음의 직분이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복음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금이나 은보다 더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또 복음의 효과가 죽은 영혼을 살려내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보배중의 보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이 복음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복음의 능력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하였는데 능력이라는 말은 “다이나마이트”라는 말과 같습니다. 복음 자체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폭탄과 같이 정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폭탄을 갖다 던지면 폭탄이 터져서 다 정복하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하나님의 복음 자체를 갖다 던져 놓으면 거기서 폭발이 일어나서 사람을 정복해서 살려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소리로 전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큰 소
리를 안쳐도 복음을 말하는 것은 폭탄을 던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 있으면 꽝 하고 터져서 뒤로 나가 자빠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능력이 복음에 있습니다.
능력이 얼마나 있는가? 가 문제이지, 큰 소리로 해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재판소에서 판사가 판결문을 언도할 때에, 큰 소리 치면서 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써 가지고 내리 읽는 것입니다. 아무개는 무슨 죄, 법률 몇 조에 의해서 십년 징역에 처한다든지, 또 사형을 언도한다든지 이렇게 읽고 관두는 것입니다. 국가의 세력을 가지고 재판하는 재판장에도 권세가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얼마나 능력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저 복음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 속으로 복음이 들어갑니다. 복음이 들어가 놓으면 그 다음에는 밤잠을 잘 못 잡니다. 이것이 들어가서 터지므로 자꾸 고통이 생깁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해서 좀더 물어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진리에 대해서 좀 더 말해 주는 것입니다. 터지면 그 다음에는 끌려오게 됩니다. 복음의 능력이 이렇게 위대합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정복을 못합니다. 복음을 반대하기를 한정이 없이 하고, 성격이 천하에 없는 고집쟁이며, 완고하고, 사자 같다고 하여도 복음을 자꾸 전해 놓으면 터져 나가는 겁니다. “꽝” 하면 그 사람이 끌려 나오는 것입니다. 이만큼 복음의 능력이 큽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이런 능력을 믿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능력 있다”고 하며 능력의 복음을 전해주면 그 복음 자체 속에 능력이 역사해서 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있고, 구원해 낼 수 있습니다.
복음은 이런 능력입니다. 이런 큰 그 보배를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능력의 복음을 온 세상이 다 반대해도 한 번 던져 놓으면 세계가 다 깨져 나갑니다. 이 복음의 능력 앞에 세계가 당하지 못합니다. 반대할테면 반대하라는 것입니다. 바른 복음만 세상에 던져 놓으면 온 세계가 다 반대해도 괜찮습니다. 해볼테면 해보라는 것입니다. 수류탄 하나 던져 놓으니까 개들이 와서 서로 물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수류탄을 물어 찢겠다고 하는데, 찢을테면 찢어 보라는 것입니다. 큰 개, 작은 개, 수캐, 암캐 등 수백 마리가 와서 수류탄을 물어 찢으려고 서로 물고 가는데 마음대로 해 보라는 것입니다. 얼마 있다가 “꽝” 하면 개들이 다 넘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폭탄인데, 복음을 대적하는 개들이 이길리가 있겠습니까? 복음을 던져 놓기만 하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환영하든지, 반대하든지 그것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복음을 환영한 사람은 복을 받는 것이고,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은 터지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망할 길로 가는 것이고 또 자기가 복된 길로 가는 것입니다. 던져 놓는 것은 하나님의 심부름으로 던져놓는 것이므로, 그 다음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던져 놓으면 걱정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가 반대한다”고 하여도 반대 해보라는 것입니다. 반대하다가 그 결과를 자기가 먹게 될 것인데 무슨 걱정입니까?
그러므로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있는 줄 알고, 우리가 먼저 복음을 받아서, 내 자신에서도 복음의 능력이 역사해서 나를 움직이게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 능력이 나를 끌고 나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그 복음의 능력이 들어가서 복음으로 변화시키고, 정복을 시켜서 복음대로 만들어 나오는 역사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던져만 놓으면 하나님께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복음 자체 속에 능력이 있
고 또 하나님이 친히 역사 하십니다. 또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복음은 이기고 또 이기고 계속해서 이겨 나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실패가 없습니다.
복음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이 그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는 것은 큰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하였는데, 복음은 첫째는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둘째는 헬라인에게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먼저입니다. 왜 유대인이 먼저인가? 유대인들은 그 조상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미 다 받았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다 받았습니다. 또 유대인의 조상들을 통해서 내려오는 생활이 성경화 되어 있습니다. 즉 생활과 지혜가 다 성경화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유대인들은 외부적인 계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약속을 받아 있는 면, 구약성경의 생활화되어 있는 면,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받고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는 면 등 유대인의 특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게 되면 이미 진리가 있으므로 유대인이 먼저 예수를 믿게 되고, 또 먼저 깨닫게 됩니다. 또 형식적으로 먼저 행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먼저 받게 됩니다.
로마서 9장에 유대인의 특권이 나옵니다. 로마서 9:4-5에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라고 하였는데 이런 유대인의 특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양자, 영광, 언약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성경화 되어 있습니다. 생활 전체가 성경대로 되어 있습니다. 예배가 있고, 약속을 기다리고, 율법이 있고, 즉 외부적으로
율법을 지키고, 언약에 참여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게 되면 유대인이 더 빨리 믿게 되고, 또 더 많이 깨닫게 되고, 더 많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는 유대인에게라고 하였고, 그 다음에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헬라인, 약속을 바라보지 못하는 헬라인에게도하나님의 복음이 가게 되어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2.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
본문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의롭다는 말도 아니고, 또 하나님의 행한 의도 아니고, 하나님의 공의도 아닙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공의라고 열심히 해석하는 목사도 있는데 복음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의 행한 의도 아니고, 하나님 자신이 의로우신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하실 수 있는 의입니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언하실 수 있는 의, 그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완전무결한 의, 하나님이 인정하실 수 있는 의, 그 의가 복음에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는 완전무결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3. 복음은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함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하였는데, “믿음으로 믿음에”란 말은, 칼빈은 불완전한 믿음에서 완전한 믿음으로 나가는 것을 가르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믿음에서 완전한 믿음으로 나간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칼빈도 성경 해석을 잘못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부터 잘못 되었습니다. 믿음은 불완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믿음에서 완전한 믿음으로 나간다는 것은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3장의 물과 성령으로 중생한, 중생론에 있어서 물을 “정화”로 칼빈이 해석을 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은 정화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됩니다. 그 외에도 칼빈 주석을 보면 잘못한 것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칼빈을 전적으로 다 옳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칼빈이 훌륭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발견한 것과 칼빈의 5대 교리입니다.
칼빈의 5대 교리는 아주 훌륭한 것입니다. 칼빈의 5대 교리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택자로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의 전적 부패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제한적 속죄입니다. 즉 택한 백성만 위해서 속죄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넷째, 불가항력적 은혜입니다.
다섯째, 성도의 견인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며, 택한 백성은 반드시 끝까지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칼빈의 5대 교리는 아주 훌륭한 것입니다. 이처럼 칼빈은 위대한 진리를 발견한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런 것 때문에 칼빈을 우리가 훌륭한 선생으로 모십니다. 그렇지만 칼빈이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강조 하느라고 두 번 말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구약을 믿는 믿음에서 신약을 믿는 믿음이라고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어린 믿음에서 장성한 믿음으로”라고 해석해야 옳습니다. 처음에 예수 믿을 때에는 믿음이 어립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입니다. 그러다가 그 믿음이 점점 자라나서 장성한 신앙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는 것은 어린 믿음에서 장성한 믿음으로 자라게 한다는 말입니다.
바울 선생도 믿음이 어렸을 때에는 아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했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13:10-11에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하였고 또 고린도전서 3:1-2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아직도 신령한 신앙의 자리에 자라나지 못하고,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믿음이 처음에는 어리다가 그 다음에는 점점 자라나서 장성한 신앙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4.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삶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아주 귀한 요절이 되는 말씀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로마서 전체에 대한 요절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것은 요한복음 3:16과 동시에 신약성경 전체의 요절이 되며 또 신구약 성경 전체의 요절도 될 수 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성경에 네 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17, 하박국 2:4, 갈라디아서 3:11, 히브리서 10:38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네 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또 실제로 모든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신구약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다 믿음으로 산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 산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어야 믿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 수 없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학자는 학으로 살고, 상인은 상업으로 살고, 농민은 농업으로 살고, 기술자는 기술로 살고, 정치가는 정치로 산다고 하였습니다. 각각 자기의 것을 가지고 다 삽니다. 그러면 신자는 무엇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가? 신자는 믿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세상 사람은 돈으로 살고, 권세로 살고, 이 세상 것을 가지고 살지만, 예수를 믿는 성도는 믿음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참된 신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오직 의인”이라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을 가르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받아서 의인이 된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는 것은 “오직 예수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과 같습니다. 의인이라는 것은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참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과거의 성도들을 보면 돈이 하나도 없어도 믿음으로 살았고, 또 환난 가운데 처했어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귀향 갔어도 믿음으로 살았고,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사자굴과 풀무불이 와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독자를 바치면서라도 믿음으로 살았고, 다윗은 믿음으로 사자와 곰을 이겼고, 골리앗도 이겼습니다. 믿음으로 죽을 가운데서도 죽지 않고 살아 나왔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아주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또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의 모든 재물이나, 공주의 아들이나, 세상 부요와 향락에 빠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5:4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다 이기고, 모든 것을 초월해서 살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런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그저 “믿는다”라는 이름만 호적에 올려 놓았습니다. 세상 것으로 살려고 하고, 세상 것이 없으면 못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믿음을 다 내어 버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말로만 믿는 것이고 실제는 믿음을 버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성경말씀에 입각해서 믿음으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도구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로 더불어 산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입니다. 또 믿는 자에게는 자녀가 되는 권세가 그 사람에게 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산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그 말씀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4:4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으로 산다는 말과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환경과,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믿음으로 살아야 되겠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이겨야 되겠습니다. 또 현재 육신 가운데 살지만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야 되겠고, 아무 것도 없지만 믿음으로 모든 것을 부요한 가운데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풍성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고, 세상을 초월하는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받는 도구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을 받는 그릇인 것입니다. 믿음은 사람의 공로가 아니며, 믿음 자체가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받는 그릇으로 그 안에 주시는 선물이 귀중한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오면, 그 믿음 안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믿음으로 담아 가지고 올 그 내용이 아주 귀한 것입니다. 믿음의 그릇을 가지고 가면, 하나님께서 그 그릇에 담아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그릇 안에 담아 주시는 그것을 받는 것이 귀중한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받는 도구입니다. 무엇을 받는 도구인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도구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가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받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도구가 됩니다. 믿음은 말씀을 받는 도구가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도구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실상이 됩니다. 처음에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데, 그 다음에 믿음으로 살고 보니 그 말씀이 다 이루어집니다. 즉 그 말씀대로 성취, 실상, 건설, 실현이 되어 나갑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것을 건설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말씀을 받는 도구인데, 구체적으로 무슨 말씀이 왔습니까? 그 말씀의 내용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즉 믿음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믿음으로 우리는 영접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시겠다고 하셨고, 실제로 오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고, 또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영접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는 도구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영접하여 하나님과 같이 사는 생활입니다. 믿음 생활은 하나님을 영접해서 하나님과 같이 사는 생활이기 때문에 모든 것보다 귀한 생활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생활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고, 동거하고, 하나님과 거처를 같이하는 생활은 아주 위대한 생활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거처를 같이하는 것은 아주 위대한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느니
라” 하는 말은 “하나님과 같이 사느니라” 하는 뜻이고, 또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선물을 다 받는 도구가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도구가 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는 도구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크고도 많은 선물이 있는데 그것을 전부 다 믿음으로 받게 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도 하나님의 선물을 못 받습니다. 하나님이 선물을 많이 주시려고 하시는데, 거저 달라고 하면 안 주십니다. 믿음이라는 그릇을 가지고 가야만 하나님이 선물을 믿음의 그릇에 담아서 풍성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어떤 선물인가?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그리스도의 인격 등이 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창세전부터 우리에게 예비하신 여러 가지 선물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첫째, 사죄로,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둘째, 의롭다 하심으로 의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새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 즉 양자의 영을 주셔서 자녀의 명부에 올려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선물을 믿음으로 우리가 거져 다 받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현재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이 다음에 오는 미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무궁무진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우리가 받아 가집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받아 가집니다. 또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음으로 우리가 바라보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합니다. 또 믿음으로 신령한 나라인 천국, 영생, 미래에 대한 약속 등을 받아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현재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이 다음에 오는 미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무궁무진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우리가 받아 가집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받아 가집니다. 또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음으로 우리가 바라보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합니다. 또 믿음으로 신령한 나라인 천국, 영생, 미래에 대한 약속 등을 받아 즐거워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느니라” 하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과 그 가운데 한량없는 하나님의 선물이 충만하게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우리에게 와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우리가 거저 받았는데, 이제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는 것도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즉 그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믿으면 그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행하게 됩니다. 산 믿음은 역사가 있고, 역사가 있는 믿음은 반드시 행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속에 말씀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또 그것이 그 사람에게 순종을 하도록 역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그 사람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이 허락한 모든 것은 전부 그 사람에게 와서 이루어집니다. 또 이루어지는 능력이 그 말씀 가운데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 속에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와서 역사함으로, 그 말씀이 그 사람 속에서 이루어져 나가게 됩니다. 그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는 위대한 역사가 그 속에 나타납니다. 즉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는 미련한 자가 지혜 있게 되고, 약한 자가 강하게 되고, 무시 받고 멸시받는 자가 도리어 지혜 있고 통달한 자를 부끄럽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27-29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쓰면, 산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이렇게 약한 자, 미련한 자, 무식한 자, 멸시받는 자라도 하나님께서 쭉 끌어서 올리십니다. 그 사람에게서 건설을 하십니다. 그 사람을 지혜가 있게 만드시고, 강하게 만드시고, 모든 사람보다 위에 올라가도록 건설해 나가십니다. 그러므로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윗이 약하지만 강한 골리앗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또 사자와 곰을 다 이기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7-10에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무명한 자를 유명한 자가 되게 합니다. 근심하는 자가 예수를 믿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가 되며, 가난한 자가 예수를 믿음으로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리에 이르게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이며, 죽은 자 같으나 산 자이며, 징계를 받은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느니라” 할 때에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허락하신 모든 것을 다 그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 나가십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무엇을 이루어 나갈지 모릅니다. 예수를 믿고 산 믿음을 가지고 나가기만 하면 그 사람에게서 이루어질 것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클 수 있습니다. 최종에는 세상을 다 이기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집니다. 벌레와 같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그래서 썩어질 것이 썩지 아니할 영광의 형체로 닮아가고, 변화하여 가고,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큰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어져 나갑니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점점 모든 것이 이루어져서 없던 것이 있게 되고, 없던 것이 점점 생깁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였는데 없던 것이 점점 생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1-2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바라만 보고 있지만 좀 나아가다 보니 실상이 생겼습니다. 즉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모든 것을 이루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건설이며, 성취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바라고 있던 것이 점점 실현되어서 그 말씀대로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느니라” 하는, 이 믿음은 금보다 귀하고, 정금보다 귀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원수를 이기기도 하고, 세상을 이기기도 하고, 가나안땅을 정복하기도 하고, 슬픔과 괴로움이 많은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믿음이란 이렇게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을 받는 도구
또 믿음은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을 받는 도구이기 때문에 이 믿음을 가지면 만능입니다. 못할 것이 없습니다. 신앙은 만능입니다. 요즘 황금만능, 과학만능이 벌어지고 있지만 참으로 만능은 신앙 만능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요새 과학 만능을 부르짖으며 인공위성을 만들어서 우주여행을 한다고 하는 시대입니다. 이제 몇 년만 있으면 우주여행을 한답니다. 돈만 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우주여행
하고 오면 무슨 소용입니까? 한 번 높은데 올라가서 삥 돌고 오는 것인데 무슨 소용 있습니까? 높은 산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신앙이란 몇 억 배, 그 이상 위대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이처럼 큰 역사를 이루기 때문에 우리도 믿음으로 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다 승리하여야겠습니다. 영도 믿음으로 살고,육신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어디를 가나 믿음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고, 인격이 변화되고,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사망의 골짜기가 생명의 골짜기로 되고, 죽은 뼈들이 살아나고, 지옥과 같은 괴로운 것이 낙원과 같이 변화되고, 사자와 곰을 이겨야겠습니다. 믿음으로 화평을 이루어 놓는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불행한 환경을 행복스럽게 만들어 나가는 믿음, 건설해나가는 믿음, 자격이 없어서 미련하고 연약하고 무식하고 아무 보잘 것 없는 자들이 믿음으로 위대한 지혜와 인격을 이루어 나가는 역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 자신도 살고, 세상도 정복하고, 하나님의 것을 이루어 나가며, 믿음으로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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