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人子) 예수
히브리서 2:1-18
히브리서 2:1-18
1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2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3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5하나님이 우리의 말한 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6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7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8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9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0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11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12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16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18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2:1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들은 것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더욱 철저히 조심해야 한다.
2: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도 효력이 있어서 모든 범죄와 불순종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2:3 이 큰 구원을 무시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느냐? 이 구원은 처음에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며,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해 준 것이다.
2:4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표적들과 놀라운 일들과 여러 가지 기적들로 함께 증언해 주셨고, 또한 성령께서도 자신의 뜻을 따라 나눠 주신 것들로 증언해 주셨다.
2:5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하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신 것이 아니다.
2:6 그러나 누군가 어디에 이렇게 증언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분을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그분을 돌보십니까?
2:7 주께서 그분을 잠깐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2:8 만물을 그분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분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으므로 그분께 복종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은 만물이 아직 그분께 복종하는 것을 보지 못하며,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낮아지신 분, 곧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니, 그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마암아 모든 이를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다.
2:10 만물이 그분을 위하고 또 만물이 그분을 통해 창조되었다. 그분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구원의 주님을 고난으로 완전하게 하시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2:11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자들이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으므로 그분은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2:12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님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교회 가운데서 주님을 찬송하겠다." 하셨으며,
2:13 다시 "내가 그분을 의지하겠다." 하시며, 또 다시 "보아라,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주신 자녀들이다." 라고 하셨다.
2:14 자녀들은 피와 살을 함께 나눈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분 자신도 마찬가지로 피와 살을 가지셨다. 이는 사망을 통해 사망의 권세를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려는 것이며,
2:15 또한 죽음이 두려워서 평생 매여 있는 종들을 해방하시려는 것이다.
2:16 사실, 그분은 천사들을 붙들어 주시지 않고 아브라함의 씨를 붙들어 주신다.
2:17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일에 형제들과 똑같이 되셔야 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에 인애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다.
2:18 그분께서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와주실 수 있다.
2: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도 효력이 있어서 모든 범죄와 불순종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2:3 이 큰 구원을 무시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느냐? 이 구원은 처음에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며,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해 준 것이다.
2:4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표적들과 놀라운 일들과 여러 가지 기적들로 함께 증언해 주셨고, 또한 성령께서도 자신의 뜻을 따라 나눠 주신 것들로 증언해 주셨다.
2:5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하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신 것이 아니다.
2:6 그러나 누군가 어디에 이렇게 증언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분을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그분을 돌보십니까?
2:7 주께서 그분을 잠깐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2:8 만물을 그분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분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으므로 그분께 복종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은 만물이 아직 그분께 복종하는 것을 보지 못하며,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낮아지신 분, 곧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니, 그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마암아 모든 이를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다.
2:10 만물이 그분을 위하고 또 만물이 그분을 통해 창조되었다. 그분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구원의 주님을 고난으로 완전하게 하시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2:11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자들이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으므로 그분은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2:12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님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교회 가운데서 주님을 찬송하겠다." 하셨으며,
2:13 다시 "내가 그분을 의지하겠다." 하시며, 또 다시 "보아라,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주신 자녀들이다." 라고 하셨다.
2:14 자녀들은 피와 살을 함께 나눈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분 자신도 마찬가지로 피와 살을 가지셨다. 이는 사망을 통해 사망의 권세를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려는 것이며,
2:15 또한 죽음이 두려워서 평생 매여 있는 종들을 해방하시려는 것이다.
2:16 사실, 그분은 천사들을 붙들어 주시지 않고 아브라함의 씨를 붙들어 주신다.
2:17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일에 형제들과 똑같이 되셔야 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에 인애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다.
2:18 그분께서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와주실 수 있다.
1. 구원을 경히 여기지 말라
모든 들은 것을 흘러 떠내려갈까 삼가라
본문 1절에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들은 것을 흘러 떠내려갈까 삼가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귀한 생명의 말씀을 들은 것은 귀한 것입니다. 그것을 흘러 떠내려 보내면 자기에게 유익이 없고, 도리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흘러 떠내려 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좋은데 소화시키지 못하고, 그만 설사해 버리면 안 먹은 것만도 못합니다. 좋은 음식을 잘 소화해서 자기의 살과 뼈가 되게 하여야 하며, 자기의 힘으로 삼아야 합니다. 흘러 떠내려 보내면 손해가 막심합니다.
그래서 더욱 간절히 삼가서 모든 들은 것을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여 삼가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순종치 아니함으로 공변된 보응을 받았음
본문 2절에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라고 하였습니다. “천사들로 하신 말씀”은 율법을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서 3:19에 율법은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서 너희에게 베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사도행전 7:53에는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율법은 천사를 통해서 모세에게 주었고, 모세는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견고하게 되어”란 율법도 신적 권위로 견고하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범한 자들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습니다.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이란 율법을 순종치 아니한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공변된 보응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공변된 보응이란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을 말합니다.
2. 큰 구원은 어떤 구원인가?
주로 말씀하신 구원임
본문 3-4절에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라고 하였는데, 큰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피 흘리셔서 구속해 주신 구속의 복음을 가리키며, 이 구원은 율법보다 큰 구원입니다. 그러면 왜 복음을 큰 구원이라고 했습니까? 율법은 천사를 통해서 주었지만 복음은 천사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주셨고, 율법은 죄인들을 정죄하고 심판하나 복음은 죄인들을 구원하여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이 큰 구원은 처음에 그로 말씀하신 구원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구속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구원이시고, 이루어 놓으신 구원이시고, 우리에게 전달해 주신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거나 또 순종치 아니하거나 경홀히 여기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구원이 얼마나 큰 구원인 줄 알고 우리가 등한히 여기는 죄를 범치 말아야겠습니다.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구원임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라고 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들은 자들, 즉 사도들이 성령으로 인하여 확증하여 주었고, 그 내용을 성경책에 기록해 주었습니다. 이 큰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구원이고,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구원이고, 하나님도 표적과 기사와 여러 가지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고,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한 구원입니다. 이런 구원입니다. 얼마나 큰 구원이며, 얼마나 확실한 구원입니까?
하나님이 표적과 기사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임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표적과 기사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 가운데 제일 큰 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도성인신한 그리스도”입니다. 즉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 큰 이적이고, 또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이 큰 이적입니다. 제일 큰 이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제일 큰 이적이고, 둘째로 큰 이적은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이 둘째로 큰 이적과 기사입니다. 그 다음에 셋째로 큰 이적은 우리의 죽었던 영혼을 다시 살려주신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우리의 죽었던 영혼을 다시 살려주신 것이 셋째로 큰 이적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가지 표적과 기사로써 우리에게 이 큰 구원의 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큰 능력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주신 구원임
또 큰 능력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큰 능력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를 큰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큰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로써 확증하신 구원임
그 다음에는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고 하였는데,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로써 확증하신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도들과 여러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주셔서 복음으로 말미암는 큰 구원을 증거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구원입니까? 천사들 통해서 주신 율법도 범하고 순종치 않으면 하나님의 공변된 보응을 받는데, 하물며 독생자를 보내주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 큰 구원은 처음에 독생자를 보내 주셔서 구속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해 주신 구원이고, 이루어주신 구원이고, 또 사도들이 성경을 기록해서 확증해주신구원이고,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로써 우리에게 믿게 하신 구원이고, 또 하나님의 능력과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저희가 함께 증거하신 큰 구원입니다.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큰 구원이 너무 감사해서 언제나 감격에 넘치는 믿음을 가져야 되고, 이 큰 구원을 간절히 사모하여 거기에 삼키운 바 되는 데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시편 69:9에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2:17에 인용된 말씀으로,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또 주신 말씀, 성령으로 이루어 나가시는 구원에 대해서 너무 감사하여 주를 위해 몸을 바치고 희생하는 것을 단 마음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의 감격에 넘쳐서 자기가 죽는 데까지 나가도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3.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함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1:20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고 하는 것이 구속의 은혜에 감사해서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울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해 지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신앙입니다. 얼마나 구
원의 은혜에 감격했으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해지면 그것으로 만족하다”는 신앙을 가졌겠습니까? 그만큼 구원을 귀중히 여겼습니다.
사도행전 20:24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복음에 대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환난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생명을 내어놓고 나갔습니다. 이것이 큰 구원을 귀중히 여기면서, 복음을 위해 희생하며 나가는 정신입니다. 또 빌립보서 3:7-8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전에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로 여기고, 또 세상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을 얻으려고 달음박질하였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서 아주 크게 생각하며,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 큰 구원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왔고, 거기에 대해서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몸 바칩니다” 하며 죽도록 충성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우리도 주를 위해서 몸 바치고 죽도록 충성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안 됩니다. 모든 정성과 모든 생명을 다해서 우리가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해야 됩니다. 예배시간 늦어지는 사람은 어떤 교인이라고 하였습니까? “흠 있는 제물”이라고 했습니다. 예배시간에 늦지 말아야 흠 없는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흠 있는 제물이 되지 말고 흠 없는 제물 되시기 바랍니다. 이 큰 구원을 생각하면 예배시간도 등한히 여길 수 없습니다. 독생자를 주시고, 주님이 피 흘려 죽으시기까지 고난을 받으시며 이루어 주신 구원인데, 이구원에 대해서 정성이 없이 하나님을 섬기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자기일 다 보고 예배시간에 겨우 나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정성이 너무 없습니다. 이 큰 구원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큰 구원을 귀중히 여기며 이 구원을 위해서 내가 무엇으로 보답을 할까 하며 나가야 합니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길로 나갔습니다. 너무 구원의 은혜가 커서 그 큰 구원에 감격하여 자기의 몸이 죽는 데까지 나갈지라도, 즐거움으로 그 몸을 바치고자 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우리도 이 큰 구원을 귀중히 여기며 나가야 합니다.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긴 죄를 회개하여야겠습니다. 바울은 큰 구원에 감격하여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바치고 나갑니다” 하는 신앙으로 환난과 결박과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일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스도가 너무 보배로워서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겼고, 그리스도 한분을 얻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겼으며, 그리스도 한 분으로 생명을 삼고, 즐거움으로 삼고, 기쁨으로 삼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는 믿음을 갖고, 자기 몸이 죽음에 삼키워지는데까지 구원을 귀중히 여기며 나갔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긴 것을 회개해야겠습니다. 이토록 큰 구원을 귀중히 여겼는가? 얼마나 주일을 귀중히 여겼는가? 얼마나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귀중히 여기고 성경을 읽었는가를 생각해 보고,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 LA에 계시는 황 장로님은 금년에 83세이신데, 매일 성경을 1시간 이상씩 보신다고 합니다. 성경을 매일 1시간 이상씩 보아야 합니다. 성경 안보는 사람은 이 성경이 귀한 줄 모릅니다. 매일 성경을 보고 또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는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내가 보답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마음과 몸과 생명까지 바치고 나가야 합니다. 모든 것을 바쳐서 충성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겠습니다. 천사를 보내서 전해주신 율법도 범하면 하나님의 공변된 보응을 받습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물며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얼마나 큰 죄입니까? 모든 정성과 마음과 뜻과 힘과 생명까지 바쳐서 충성하지 못하고 등한히 여긴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주일 예배시간에 늦어지고, 주일 예배 끝난 후에 놀러 다닌 것은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긴 것입니다. 예배 끝난 다음에도 놀러 다니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예배 끝난 다음에 우리 기도원에 버스가 나가는데, 그것 타고 나는 기도하러 갑니다. 오늘도 기도원에 나가려고 합니다. 하여간 큰 구원을 어떻게 하든지
귀중히 여기며, 큰 구원의 즐거움을 찾아야겠습니다.
구원의 깊은 도리를 발견하여 그 구원의 세계에서 살고, 그 구원을 위해서 충성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겠습니다. 환난과 핍박과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일지라도 큰 구원에 감격하여 생명을 내어 놓고 올라가는 바울의 신앙을 우리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이러한 사람은 어떠한 희생이 와도 달게 받습니다. 또 항상 기도하기에 힘을 쓰며, 하나님의 말씀을 꿀 송이 보다 달게 여기며 매일 말씀을 읽고, 예배시작하기 전에 나옵니다. 나도 오늘 예배시간 한 시간 전에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겠으며, 이 큰 구원을 귀히 여기며, 복음을 전하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위해서 살다가 복음을 위해서 죽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해
야겠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내가 인도해야겠다”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희생, 충성하며 나가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4. 인자의 존귀와 영광
사람을 권고해 주시고 생각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5절에, “하나님이 우리의 말한 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케 함이 아니라, 아들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했습니다. 천사보다 그리스도가 얼마나 존귀하다는 것이 여기서 증명된 것입니다.
본문 6-8절에,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라고 했습니다.
시편 8장 4절에,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람이 무엇이관대 저께서 저를 생각하시며’라는 것은, 우리 인간 모든 사람이 무엇이관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각하여 주시고, 우리가 무엇이관대 권고해주셨나이까 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욥기 25장 5-6절에,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고 했습니다. 벌레와 같은 사람, 구더기와 같은 인간입니다. 인간이 구더기와 같이 더럽고 아무 보잘것 없지만, 하나님이 무엇이관대 이 인간을 생각해 주시고, 우리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권고해주시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생각해주시고 우릴 권고해 주시는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릴 생각해 주신 하나님, 우릴 권고해 주신 하나님, 벌레 하나만도 못한 인간인데, 구더기 하나만도 못한 인간인데, 이를 생각해 주시고 권고해 주신 그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감개무량하다는 것입니다. 감사하고 감개무량합니다.
본문 7-8절 상반에, “저를 천사보다 잠깐동안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고 하셨는데, 저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했다는 말에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베드로전서 2장 4절에,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1절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예수님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심을 입었는데, 그러다가 영화와 존귀로 관을 쓰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잠깐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된 것은 십자가에서 고난 받는 때입니다.
5. 성자의 낮아지심
본문 9절에,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잠깐 동안 이 죽음에 관해 천사보다 못해진 것입니다.
천사는 죽음의 고난을 안 당합니다.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됐지만, 하나님이 다시 부활시켜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워줬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셨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천사보다 잠깐 못하게 된 것은, 우리도 잠깐 천사보다 못하게 된 것을 모범 보인 것입니다.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은, 우리 모든 성도 위에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워주시는 것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도 영광을 주었고, 존귀를 주었고, 존귀의 관을 씌워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되었고,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 사신 것도 마찬가지이고, 예수를 통해서 존귀와 영광을 얻게 만들었습니다.
6. 성자의 체휼과 구속
하나님으로부터 난 성도들
본문 10절에,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라고 했습니다.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는 하나님입니다. 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께는 ‘많은 아들’ 즉,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들을 이끌어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택한 백성을 건져서 온전케 만드는 것에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는 성도들입니다. ‘다 하나에서 났다’는 것은 하나님 은혜에서 났다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에게서 났으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성도는 다 형제이기에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십니다. 다 하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독생자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다 하나님의 아들이되었습니다. 하나님에서부터 났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형제들에게 선포했다’는 것은 택한 백성, 택한 모든 성도들에게 주의 이름을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했습니다.
‘교회’는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여기서 찬송한다는 말이 구약성경 시편 22장 22절에 기록되었습니다.
본문 13절에,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찌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는 건 모든 성도들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자녀라는 말입니다. 이는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고, 예수님을 의지하여 사는 자들이고, 그로 말미암아 주신 생명을 나눠가지고 사는 성도들입니다.
예수께서 혈육으로 땅에 오셔서 사망을 이기심
본문 14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며’, 모든 성도들은 혈육에 속하였다는 것입니다. 육신가지고 났다는 것입니다. ‘그도 또한’에서 그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도 또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도 우리와 같은 몸, 우리와 같은 혈육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를 누른 자 곧 마귀’를 없이 하려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와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그리스도가 왔기 때문에 이 모든 사람을 대속할 수가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의 영으로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이십니다. 마귀는 사람을 사망으로 이끌어 나가는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데, 그 마귀의 세력을 깨뜨리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4-58절에,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이 죄를 가지고 우리를 사망으로 끌고 갑니다.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피로 모든 것을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5절에,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십니다. 자신의 피를 다 흘려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큰 그리스도의 구원,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자신의 피를 다 흘려서 생명을 다 희생하므로 우리를 건져내셨겠습니까?
그렇게 죄와 마귀에게서 해방시켜 주신 그리스도십니다. 우리는 죄와 마귀에게서 해방을 받은 자들입니다. 자유와 해방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죽기를 무서워말고 일생에 종노릇 말 것
본문 15절에,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일생에서 왜 종노릇 한다고 했습니까?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한다고 그랬습니다. 무슨 종노릇입니까? 마귀의 종입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마귀의 종노릇하고,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사람의 종노릇하고,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죄의 종노릇하고,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물질의 종노릇하고,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범죄의 종노릇합니다. 인간은 죽기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일생 동안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종노릇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그 상황에서 해방해주시러 오셨습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 동안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사람을 놓아주러 왔습니다. 우리가 해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젠 종살이하지 않습니다.
해방이 되었기 때문에, 남의 종살이 안 합니다. 이젠 우상의 종살이 안 합니다. 이젠 물질의 종살이 안 합니다. 죽이겠다고 해도 우상에겐 절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에 갖다 넣어서 죽인다고 해도 우상의 종살이를 하지 않았고, 많은 초대교회 성도들 가운데서도 로마 정권이 기독교를 대 박해할 때, 참 믿는 성도는 종살이 하지 않고 박해를 감수하였습니다. 그렇게 믿음 지키다 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순교 당한 사람이 많습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 동안 종노릇 하는 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줬기 때문에 이젠 종이 아닙니다. 자유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안 죽는 생명을 줬기 때문에 종살이 안 합니다. 죽는 생명, 육신의 생명 하나만 있으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종살이 할 것인데, 안 죽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죽어도 종살이 안 합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고, 신앙의 자유를 지키면서 직장에 나가야 됩니다. 신앙의 자유를 못 지킬 직장 같으면, 그건 하나님이 관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데 하나님께서 일자리 또 주십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종살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성경말씀에 옳은 데로 계속 나가야지, 성경을 양보하고 죽기를 무서워하는 그건 마귀의 종살이 하는 사람이고, 죄의 종살이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고난을 받으시고 피 흘려 주시고, 우리를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부활했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먼저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셨고, 또 예수님을 따라 가며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 지키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주십니다. 믿음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줬는데 믿음 지키고, 성경 말씀을 순종하십시오. 믿음 지키면 일시적 고난이 오지만 해방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해방시켜서 자유와 생명 얻게 되었고, 믿음 지키면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워 주십니다. 또한 죽어도 삽니다. 죽어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워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존귀하게 만들어 줬는데, 믿음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귀의 종살이 하지 말고 믿음을 지켜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과 존귀를 받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성경 말씀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맏아들이신 예수는 우리의 구속을 위해 도우심
본문 16절에,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붙들어 주려고 이렇게 주님이 고난을 받으셔서 구속해 주셨습니다.
본문 17절에,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맏아들이고 우리들 모두는 아들입니다. 로마서 8장 29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맏아들이 되게 했습니다.
히브리서 1장 6절에,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맏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아들입니까? 작은 아들입니다. 예수는 맏아들이시고 우린 다 형제입니다.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됐음을’이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께서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사하려 하심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서 우리의 죄, 백성의 죄를 구속해줬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시고 구속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제물로 당신의 몸을 바치시고, 우리를 위해서 제사장이 되어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여 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여 주고 계십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죄에서 성결케 해주시고, 사해주시고, 또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죄에서 구속받는 것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려고 우리를 위해서, 지금도 대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기도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 18절에,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시험받아서 고난당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시험을 받으시고 고난을 받았기에,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가 시험받는 사정을 다 아시고, 도와주셔서 승리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시험 받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가야 됩니다.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힘을 얻어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험 받는 자를 도와주는데, 그를 믿음으로 의지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 시험을 받을 때에, 회개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서면서,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 만능으로 그 시험 가운데서 건져주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여야 되는데, 회개할 게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전부 다 자기 눈에 들보가 다 있는 줄 알고 날마다 회개하여야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 말씀대로 바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고 그를 힘입어 나가면, 모든 시험 받는 자를 그리스도께서 도와주셔서 거기서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