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되는 근심과 손해되는 근심
고린도후서 7:1-16
고린도후서 7:1-16
1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2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가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3내가 정죄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로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4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5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6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8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하나님의 뜻대로 하는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2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다 13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 14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의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5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
7:1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을 가지고 있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이루어 육과 영의 모든 더러운 것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7: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여라. 우리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고, 아무도 망하게 하지 않았으며,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지 않았다.
7:3 내가 정죄하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말하였듯이, 너희가 우리 마음 속에 있어서 함께 죽고 함께 살기 위한 것이다.
7:4 나는 너희에 대한 신뢰가 크고 너희에 대한 자랑도 많으니,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나에게는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고 있다.
7:5 우리가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 우리 육체는 조금도 편안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여러 가지 면에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싸움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다.
7:6 그러나 낮고 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 디도를 돌아오게 하셔서 우리를 위로하셨다.
7:7 그가 돌아온 것뿐 아니라 그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였으며, 나에 대한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너희의 열심을 우리에게 보고할 때에 나는 더욱 기뻤다.
7: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하였더라도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 편지가 잠시 동안 너희를 근심하게 했다는 것을 알고 내가 후회하기는 하였으나,
7:9 지금은 기뻐하고 있다. 이는 너희를 근심하게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근심함으로 너희가 회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였기에 결국 너희는 손해를 본 것이 아무것도 없다.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가져오기 때문에 후회할 것이 없으나, 세상 근심은 사망을 가져온다.
7:11 보아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이 근심이 너희를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변호하게 하며, 얼마나 의분을 느끼게 하며, 얼마나 두려워하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정 있게 하며, 얼마나 처벌을 하게 하였느냐? 너희는 모든 면에서 너희 자신이 그 일에 대하여 깨끗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7:1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편지를 쓴 것은, 불의를 행한 자나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다.
7:13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다. 또한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이 더해져서 우리가 더욱 기뻐하였으니, 이는 디도의 마음이 너희 모두로부터 새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7:14 내가 그에게 너희에 대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나는 부끄럽지 않으니 우리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이 다 사실이었던 것과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진실한 것이 되었기때문이다.
7:15 그는 너희 모두가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를 영접하고 순종한 것을 생각하면서 너희를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졌다.
7:16 내가 너희를 모든 면에서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한다.
7: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여라. 우리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고, 아무도 망하게 하지 않았으며,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지 않았다.
7:3 내가 정죄하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말하였듯이, 너희가 우리 마음 속에 있어서 함께 죽고 함께 살기 위한 것이다.
7:4 나는 너희에 대한 신뢰가 크고 너희에 대한 자랑도 많으니,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나에게는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고 있다.
7:5 우리가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 우리 육체는 조금도 편안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여러 가지 면에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싸움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다.
7:6 그러나 낮고 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 디도를 돌아오게 하셔서 우리를 위로하셨다.
7:7 그가 돌아온 것뿐 아니라 그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였으며, 나에 대한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너희의 열심을 우리에게 보고할 때에 나는 더욱 기뻤다.
7: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하였더라도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 편지가 잠시 동안 너희를 근심하게 했다는 것을 알고 내가 후회하기는 하였으나,
7:9 지금은 기뻐하고 있다. 이는 너희를 근심하게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근심함으로 너희가 회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였기에 결국 너희는 손해를 본 것이 아무것도 없다.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가져오기 때문에 후회할 것이 없으나, 세상 근심은 사망을 가져온다.
7:11 보아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이 근심이 너희를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변호하게 하며, 얼마나 의분을 느끼게 하며, 얼마나 두려워하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정 있게 하며, 얼마나 처벌을 하게 하였느냐? 너희는 모든 면에서 너희 자신이 그 일에 대하여 깨끗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7:1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편지를 쓴 것은, 불의를 행한 자나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다.
7:13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다. 또한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이 더해져서 우리가 더욱 기뻐하였으니, 이는 디도의 마음이 너희 모두로부터 새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7:14 내가 그에게 너희에 대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나는 부끄럽지 않으니 우리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이 다 사실이었던 것과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진실한 것이 되었기때문이다.
7:15 그는 너희 모두가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를 영접하고 순종한 것을 생각하면서 너희를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졌다.
7:16 내가 너희를 모든 면에서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한다.
1.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라
본문 1-2절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라고 하였습니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은 성도의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성도의 밖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가리킵니다. 즉 고린도후서6:14에서 말한 벨리알, 불법, 우상, 어두움 같은 것을 말합니다. 벨리알이나 우상은 영의 더러운 것이고, 불법과 어두움은 육의 더러운 것으로 음행, 호색, 술취함, 연락, 사치 등을 말합니다. 자신을 깨끗케 하자는 것은 이 세상에는 육의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한데 그것들과 싸워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거기에 물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악을 이겨서 점점 자라나고, 점점 거룩해지고, 점점 의로와져야 합니다. 이것이 완전에서 완전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2. 일꾼 영접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교역자를 통해서 이루어짐
본문 2절에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가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과 바울의 일행을 마음으로 영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교역자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생명의 말씀이 교역자를 통해서 전파되기 때문에 교역자를 마음으로 영접을 해야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종을 마음으로 영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으로 영접하지 아니하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또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면 자기 심령이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 종을 통해서 인도하시는데, 그 종을 영접하지 아니하면 인도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손해가 막심합니다. 자기 구원도 안 되고, 교회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는 것은 복을 받는 법입니다. 교역자는 복의 기관인데, 복의 기관
을 영접하면 그 복이 다 임합니다. 그러나 복의 기관을 영접하지 아니하면 복이 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는 것은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바울에 대해, “불의를 행했다, 속여 빼앗아 먹는다, 사도가 아니다”라고 하며 비방하는데, 바울은 거기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즉 양심이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또 비방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의를 행
한 일이 없다”는 것을 너희가 알고 영접해야만 너희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교역자의 마음에 교인들이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삶
본문 3절에 “내가 정죄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로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정죄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과 바울의 일행을 영접하라고 한 말을 고린도 교인들이 오해하여, 자기들을 정죄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로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고 하였는데, 교인들이 교역자의 마음에 있어서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다는 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자랑하는 것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높이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바울을 멸시하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자랑하는것입니다. “불의를 했다, 속여 먹는다, 떼 먹는다”는 등으로 바울을 비방하기 때문에 자기 자랑을 한다는 것입니다.
3. 비천한 자를 위로 하시는 하나님
본문 5절에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고 하였습니다. 마게도냐는 고린도 위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마게도냐에 있을 때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무슨 병으로 인해서인지는 몰라도 육체는 편치 못했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했습니다. “밖으로는 다툼이요”란 반대하는 사람들이 계속 바울을 대적 하였기 때문에 밖으로는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고, “안으로는 두려움이라”란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시험이 있기 때문에 안으로는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대적하는 자들은 무너뜨리려고 밖에서 공격을 해서 들어오고, 안에서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단결하여 나갔으면 좋겠는데, 고린도 교인들도 바울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영접하지 못하고 나아가므로 안으로는 두려움입니다. 어려운 지경을 당한 것입니다. 왜 어려워졌습니까? 육체는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는 환난을 당하고, 밖으로는 다툼이 있고, 안으로는 여러 가지 시험으로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에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십니다. 존귀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부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낮고, 천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밖으로는 환난이 심하기 때문에 낮아졌습니다. 또 안으로는 여러 가지 시험이 많기 때문에 낮아졌습니다. 낮고 천한 자리에서 부르짖는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줄로 알았을 때에(고후 1:8-9)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의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비천한 가운데 내려가서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본문 7절에 “저의 온 것 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비천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누구를 보내 주셨습니까? 디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때문에 염려하며 비천해지고 두려워하는 중에 있었으나 하나님이 디도를 보내어 위로하게 하였습니다. 디도가 바울에게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를 잘 영접해 주었다는 것과 그들이 바울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며 애통하는 가운데 바울을 사모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 주므로 바울이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즉 고린도 교회에 많은 시험과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고린도 교인들이 처음엔 시험에 들었지만, 이제는 회개하고, 또 “우리가 바울에 대하여 잘못 생각했다” 하며, 바울에 대해 잘못 생각한 것에 대하여도 회개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사모하고, 바울을 위하여 열심이 있다는 사실을 디도가 바울에게 보고를 해주었을 때, 바울이 이것을 듣고 심히 기뻐했습니다.
비천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누구를 보내 주셨습니까? 디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때문에 염려하며 비천해지고 두려워하는 중에 있었으나 하나님이 디도를 보내어 위로하게 하였습니다. 디도가 바울에게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를 잘 영접해 주었다는 것과 그들이 바울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며 애통하는 가운데 바울을 사모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 주므로 바울이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즉 고린도 교회에 많은 시험과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고린도 교인들이 처음엔 시험에 들었지만, 이제는 회개하고, 또 “우리가 바울에 대하여 잘못 생각했다” 하며, 바울에 대해 잘못 생각한 것에 대하여도 회개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사모하고, 바울을 위하여 열심이 있다는 사실을 디도가 바울에게 보고를 해주었을 때, 바울이 이것을 듣고 심히 기뻐했습니다.
4. 바울의 근심과 기쁨
본문 8-9절에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하였다고 했는데, 바울이 편지로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했을 때에 바울은 책망을 해 놓고도 근심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책망을 잘 받아 회개하면 좋으나 도리어 낙심할까 하여 근심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책망을 듣고 진정으로 회개하여 바로 섰다는 소식을 들었으므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큰 유익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함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해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룸
본문 10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근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망하는 것이며, 마귀의 올무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하게 하고 구원에 이르는 큰 유익이 있습니다. 자기도 유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됩니다.
로마서 9:1-5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예배와 약속과 양자됨과 율법
과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라고 했으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위한 애통입니다. 그들이 끊어진 것은 자기가 끊어진 것인 줄로 생각을 하고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큰 근심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를 위한 애통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애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교회를 가르칩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바로 세우기 위해서 큰 애통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하시려다가도, 성 무너진 데를 막는 사람이 있는가? 찾아 보시다가 막는 사람이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막는 사람이 없으면 멸망시킨다고 하셨습니다. 에스겔 22:30-31에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다 망하게 되었는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하나님의 심판을 막는 자가 있는가를 찾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얻지 못하면 멸망시키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들이 타락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하고, 또한 택한 백성들이 아직도 교회에 돌아오지 못한 것과 믿음에서 떠나는 것을 볼 때에, 성 무너진 데를 서서 막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막는 사람들이 있는가?, 즉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통하며 근심하는 자가 있는가? 하나님이 찾아보십니다. 찾아보시다가 그 사람이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고, 그 사람이 없으면 멸망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바로 되기 위하여 늘 근심하고 애통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 한국교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 늘 근심하며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이북에 있는 교회들이 다시 재건되어서 무너졌던 성전을 다시 세우게 되기를 늘 근심하며 기도해야겠습니다. 그것이 회개함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룸
그러나 세상 근심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근심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근심이 생기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너희 모든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겨 버리라(벧전 5:7)고 하였으니까, 모든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처리해 주십니다. 그리고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긴 다음에 자기는 지극히 낮은 자리로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좋습니다, 되도 좋고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좋은 것이 되도 좋고 좋지 않은 것
이 되도 좋습니다”하며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가 낮아지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십니다. 낮아져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 맡겨놓고 큰 것을 달라고 기도 하면서 큰 것이 왔나? 하고 바라보면 안 됩니다. “작은 것도 됩니다” 하고 하나님께 맡겨 놓아야 합니다. 또 많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겨 놓았는데, 많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면 안 됩니다. “조금 주셔도 좋습니다, 주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하며 낮아져야 합니다. 또 경제문제로 걱정이 생긴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도 낮아지면 됩니다.
빚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은 “빚 잔치 하라”고 합니다. 다 팔아서 낮아지라는 말입니다. 있을 때가 없으면 천막이라도 산에 가서 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내 말을 듣고 “빚 잔치” 하고 지극히 낮은 자리에 내려간 사람들은 걱정이 다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낮아지지 않고 언제나 자기 현상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내내 걱정해도 안 됩니다. 일이 커지게 되었는데 어떻게 유지 할 수 있겠습니까? 다 팔아서 “빚 잔치” 하고 낮아져야 합니다.
어떤 교인이 내 말을 듣고 “빚 잔치” 했습니다. 그래서 다 팔아서 빚쟁이가 몇 십 명 되는데, 다 불러놓고 “이것이 전부다”라고 하며 빚잔치를 했더니, 그 사람들이 당신은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 하며, 빚쟁이들이 이 사람이 길 바닥에 나 앉으면 되겠느냐? 하며 셋집이라도 얻어 주자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돈 받은 사람들이 사글세방을 하나 얻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빚 다 없어진 것 아닙니까? 이제 이 사람은 근심이 다 없어졌습니다. 이제 나가서 일만 하면 됩니다. 하루 나가서 일을 하면 먹을 것을 못 벌어먹겠습니까? 그 날, 그 날 벌어서 먹고 살다가 차차 나아지면 전세를 얻고, 그러다가 조그마한 집을 사게 되면서 나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낮아져야 합니다.
세상 근심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길 것, 그 다음에는 낮아질 것,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해달라고 할 것,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그저 아무것이나 받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 그러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근심이 없어지고 살 길이 생깁니다. 괜히 큰 것을 가지려고, 많은 것을 가지려고, 높은데 올라가려고 근심하다가 마지막에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빚 많이 지고 도망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 내놓았으면 될 것 아닙니까? 다 내놓았으면 살 길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세상 근심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교회를 위한 근심, 자기 죄로 인한 근심입니다. 즉 자기가 되지 못한 것을 붙들고 애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의 죄를 끊어 버리려고 하는 애통, 자기가 만들어져야 되겠는데 만들어지지 않아서 하는 애통, 즉 만들어지려고 애쓰는 애통, 교회를 위한 애통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5. 근심의 효과
본문 11절에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간절한 마음이 있게 함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했기 때문에 믿음에 바로 서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라고 하였는데, 우리에게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기 위한 간절한 마음, 자기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간절한 마음, 복음전도 하기 위한 간절한 마음,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를 소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변명하는 마음이 있게 함
그 다음에 둘째는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라고 하였는데, 변명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변명하게 한다는 것은 나쁜 변명이 아닙니다. 바울이 “도적질했다, 떼어 먹었다, 불의한 자다, 남을 해롭게 하는 자다”라고 하니까 바울이 거기에 대해서 변명을 했습니다. “불의한 것이 없다, 해롭게 한 것이 없다, 속여 빼앗은 일이 없다”고 변명했습니다. 오해한 것은 풀어 주는 변명이 필요합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아는 것은 오해입니다.
분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게 함
“얼마나 분하게 하며”란 자기 죄에 대하여 분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 지은 것을 분하게 생각하며 “내가 그런 죄를 짓지 않으려고 했는데 내가 또 죄를 지었다”고 하며 자기 잘못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야 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게 함
“두렵게 하며”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지은 죄로 하나님께서 큰 징계를 내리시지 않겠는가? 하며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있게 함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라고 하였는데,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열심 있는 마음이 있게 함
또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라고 하였는데, 죄를 책망 받고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 바로 서는 열심히 있어야 됩니다.
벌하는 마음이 있게 함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라고 하였는데, 죄를 벌하는 마음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자기가 벌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일곱가지입니다. 책망을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첫째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변명해야 하고, 셋째는 분하게 여겨야 합니다. 즉 죄를 분하게 여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분하게 여기면 안됩니다.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서 발견하고, 자기가 잘못한 것을 생각해서 분하게 여기고, 넷째는 하나님의 심판이 올까봐 두려워하고, 다섯째는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여섯째는 열심 있게 해야 하며, 일곱째는 벌하여야 합니다.
6. 바울이 책망한 것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함
본문 12절에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불의를 행한 자가 있고, 불의를 당한 자가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6:7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불의를 당하는 사람이 있고,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남의 돈을 잘라 먹은 사람이 있고, 잘리운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책망한 목적은, 불의를 당한 사람이나 불의를 행한 사람을 특별히 책망하기 보다는,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불의를 당한 자, 불의를 행한 자가 문제가 아니라 너희 전체가 바로 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전체가 바로 되지 못해서 불의를 당한 자도 생겼고, 불의를 행하는 자도 생겼습니다.
즉 너희 전체가 바로 서지 못하고, 너희 전체가 믿음으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바울이 책망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7. 위로와 기쁨
본문 13절에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고 바로 서서 나가는 것을 볼 때에 디도가 안심하고 큰 기쁨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위로와 기쁨을 얻었습니다.
본문 14절에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의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디도가 고린도 교회에 갈 때에 바울이 디도에게 고린도 교회를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디도가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 고린도 교인들이 불순종 하는 것을 보게 되면 바울의 자랑이 부끄럽게 되었을 텐데, 디도가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에 고린도 교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바로 섰기 때문에 과거에 고린도 교회를 칭찬한 것이 이제는 참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만일 디도가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 고린도 교인들이 불순종 하는 것을 보게 되면 바울의 자랑이 부끄럽게 되었을 텐데, 디도가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에 고린도 교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바로 섰기 때문에 과거에 고린도 교회를 칭찬한 것이 이제는 참되다는 말입니다.
본문 15-16절에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디도를 어떻게 영접했습니까? 두렵고, 떪으로 디도를 영접하고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복 받는 비결입니다. 즉 교역자를 두려워하고 떪으로 영접하고 순종하는 일은 복 받는 일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일시적 시험에 들었지만 하나님의 종을 두려워하고 떪으로 잘 영접하고 순종하니까 다 바로 서게 되었습니다. 또 디도도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심정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담대히 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전에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 때문에 근심하며 연약해졌으나 지금은 바로 섰기 때문에 담대하며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교역자를 잘 순종하고 존경하면 교역자가 담대해집니다. 교역자가 담대하면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나가고 교회가 창성해지며 구원운동이 힘 있게 잘 되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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