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초월하여 복음을 전하라
고린도전서 9:1-17
고린도전서 9:1-17
1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4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5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6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 7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다른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13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찌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17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찌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9: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내가 사도가 아니냐? 내가 예수 우리 주님을 뵙지 못하였느냐? 주님 안에서 내가 행한 일의 열매가 너희가 아니냐?
9:2 다른 이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주님 안에 있는 너희는 나의 사도직의 표시이다.
9: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것이다.
9:4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느냐?
9:5 우리에게 다른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느냐?
9:6 또는 나와 바나바에게만 일하지 않을 권리가 없느냐?
9:7 누가 자신의 비용을 쓰며 군인으로 봉사하겠느냐? 누가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면서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9:8 내가 사람의 관례를 따라 말하고 있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고 있지 않느냐?
9:9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어있기를 "곡식을 타작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마라."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염려하시는것이냐?
9:10 아니면, 전적으로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냐? 이것은 참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을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고, 곡식을 타작하는 자는 함께 나누어 가질 소망을 가지고 타작하는 것이다.
9:11 우리가 너희에게 영적인 것을 뿌렸다면, 우리가 너희에게서 육신의 것을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 되겠느냐?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다면, 우리는 더욱 그렇지 않겠느냐? 그러나 우리는 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참고 있으니,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떤 지장도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9:13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맡아 보는 자들은 제단의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9: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복음으로 살아가라고 명령하셨다.
9:15 그러나 나는 이것들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또 나에게 그렇게 해 달라는 뜻으로 내가 이것을 쓰는 것도 아니다. 누가 나의 자랑을 헛되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9:16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도 내게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내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이다. 내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
9:17 내가 자발적으로 이 일을 하면 나는 상을 받을 것이나, 내가 자발적으로 하지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다.
9:2 다른 이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주님 안에 있는 너희는 나의 사도직의 표시이다.
9: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것이다.
9:4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느냐?
9:5 우리에게 다른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느냐?
9:6 또는 나와 바나바에게만 일하지 않을 권리가 없느냐?
9:7 누가 자신의 비용을 쓰며 군인으로 봉사하겠느냐? 누가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면서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9:8 내가 사람의 관례를 따라 말하고 있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고 있지 않느냐?
9:9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어있기를 "곡식을 타작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마라."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염려하시는것이냐?
9:10 아니면, 전적으로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냐? 이것은 참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을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고, 곡식을 타작하는 자는 함께 나누어 가질 소망을 가지고 타작하는 것이다.
9:11 우리가 너희에게 영적인 것을 뿌렸다면, 우리가 너희에게서 육신의 것을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 되겠느냐?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다면, 우리는 더욱 그렇지 않겠느냐? 그러나 우리는 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참고 있으니,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떤 지장도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9:13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맡아 보는 자들은 제단의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9: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복음으로 살아가라고 명령하셨다.
9:15 그러나 나는 이것들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또 나에게 그렇게 해 달라는 뜻으로 내가 이것을 쓰는 것도 아니다. 누가 나의 자랑을 헛되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9:16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도 내게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내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이다. 내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
9:17 내가 자발적으로 이 일을 하면 나는 상을 받을 것이나, 내가 자발적으로 하지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다.
1. 사도직의 변명
본문 1-2절에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가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란 율법의 종에서 벗어난 자유자라는 겁니다. 또 “사도가 아니냐”란 사도라는 것입니다.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란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란 바울이 주 안에서 복음을 전하고 사도직을 행한 결과로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사도란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직접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은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비방 하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전도해서 고린도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또 바울이 성경을 가르쳐서 고린도 교인의 영을 살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영을 살려나가는 것이 신앙의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2. 전도자의 권리
하나님의 일꾼이 먹고 마시는 권이 있음
본문 3-5절에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힐문은 따져 묻는 것입니다. 바울을 힐문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무엇이 틀렸다, 사도의 자격이 없다, 예수님 때에는 따라다니지 않았다, 바울은 공교하게 교인들의 돈이나 빼앗으려고 다니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바울이 말합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일꾼이 먹고 마시는 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에서 사례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란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도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6-7절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란 군사로 다니는 사람은 자기의 식량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국가에서 먹여 준다는 것입니다.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란 포도나무를 심으면 그 실과를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란 양떼를 기르는 사람은 그 양떼의 젖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8-9절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에도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한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소를 위해서 한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 하는 사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꾼에게 먹지 못하게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입에 망을 씌우면 못 먹지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꾼에게 먹을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여야 함
본문 10절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곡식 떠는 사람은 곡식 떤 것을 좀 준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으면 육신의 것을 거두는 것이 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6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하였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람과 물질 면에 있어서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여야 합니다.
로마서 15:27에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방 사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서 신령한 것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방교회들은 예루살렘 교회에 물질로 즉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을 그 종을 통해서 받았으면 물질로 그 종을 대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권리를 쓰지 않은 것은 복음에 장애가 없게 하려 함
본문 12절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고 하였습니다.
사도가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가 물질의 것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또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있습니다.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권을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쓰지 않았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고 이 권을 쓰지 않았습니다.
본문 13절에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은 백성들이 제물을 가지고 온 것으로 제사 드려주면 그 제물의 일부를 제사장이 차지했습니다. 제단에서 일하는 사람은 제단에서 나는 것을 먹었고,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었습니다.
3. 복음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삶
어느 집에 가든지 그 집에 내내 머물라
본문 14절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가 복음으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10에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고 하였고, 누가복음 10:7에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집에 전도하러 가든지, 거기서 차려주는 것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한 집에 갔으면 거기서 내내 있으라는 것입니다. 좀 고생스러워도, 다른 집에 가면 대접을 잘 받을수 있고, 평안함을 누릴 수 있지만,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들어간 그 집에 내내 있으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각오하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또 그 집에서 잘해주든지, 못해주든지 그 집에서 차려주는 것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이 먹는 것을 먹으면서 선교했습니다. 평안북도 박천에 매봉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가 윤할머니 고향인데, 최의선(Chason) 선교사가 거기에 전도하러 왔답니다. 최의선 선교사는 의학 박사이고 선천 미동병원 원장으로 굉장한 분입니다. 그런데 거기 전도하러 와서 움막집 같은 데서 자고, 또 강냉이를 삶아 먹으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 때 한국 사람들이 상당히 가난했는데, 그래도 더럽다 하지 않고, 이불 주는 대로 덮고
자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와 같이 어느 집에 가든지 그 집에서 주는 것을 먹고, 그 집에서 주는 것을 덮고, 다른 집에 가지 않고, 거기에 있으면서 복음을 전해야 전도가 잘 됩니다. 그러므로 대접 잘 받으려는 생각은 그만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지팡이를 가지고 나가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복음 전하러 나갈 때에 주머니, 전대, 지팡이, 신, 두 벌 옷 등을 가지지 말고 그저 하나님만 믿고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성경에는 지팡이를 가지라는 곳이 있고, 어떤 곳은 가지지 말라고 하는 데도 있는데, 안 가질 지팡이가 따로 있고, 가질 지팡이가 따로 있습니다. 안 가질 지팡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전도하러 나갈 때에 무엇을 의지하고 나갈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선교하러 나갈 때에 무엇을 의지하고 갈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지라는 것은 권능의 지팡이는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권능의 지팡이를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 물질, 단체 등을 의지하는 지팡이는 다 집어 치우라는 말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먹을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은 물질로 전도자를 공경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공경할 의무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는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교역자 대접할 줄 알아야 합니다.
4. 바울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복음을 전함
대접 안 받기로 작정함
본문 15절에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물질로 대접받을 권리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또 무슨 권리가 있다고 했지만 이 말을 쓰는 것은 그렇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에서 차라리 죽을지언정 하고 점을 여러 개 찍었는데, 그것은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절대 대접은 안받기로 작정했다는 말입니다.
즉 죽을지언정 대접을 안 받기로 굳게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대접을 안 받기로 굳게 결심하고 나간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대접 안 받기로 결심하고 걸어간 길이 사도 바울이 걸어간 길입니다. 바울이 대접 받을 권리가 있지만, 또 말 한 마디만 하면 교인들이 대접을 다 해줄수 있지만, 대접을 안 받기로 굳게 결심하고 나갔습니다. 교인들은 대접 하는 것이 마땅하고, 교역자는 대접 안 받으려는 것이 마땅합니다.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절대 대접은 안받기로 작정했다는 말입니다.
즉 죽을지언정 대접을 안 받기로 굳게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대접을 안 받기로 굳게 결심하고 나간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대접 안 받기로 결심하고 걸어간 길이 사도 바울이 걸어간 길입니다. 바울이 대접 받을 권리가 있지만, 또 말 한 마디만 하면 교인들이 대접을 다 해줄수 있지만, 대접을 안 받기로 굳게 결심하고 나갔습니다. 교인들은 대접 하는 것이 마땅하고, 교역자는 대접 안 받으려는 것이 마땅합니다.
교역자가 대접 받을 생각을 가지고 나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십니다. 심방 가서는 “봉투를 내 놓아라, 양복 해 달라, 또 뭐 해 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어떤 목사가 양복 한 벌해주니까 두 벌 해 달라고 했답니다. 아니 한 벌 해 주겠다고 데리고 갔으면 한 벌만 받을 것이지 왜 두 벌 해 달라고 합니까? 대접 받으려는 정신은 잘못된 것입니다.
공산당은 삼대 각오를 하고 나갑니다. “굶을 각오, 얼어 죽을 각오, 맞아 죽을 각오”입니다. 공산당도 이와 같이 굶어 죽을 각오, 매 맞아 죽든지 총에 맞아 죽든지 하여간 맞아 죽을 각오, 그 다음에는 얼어 죽을 각오를 하고 나가는데,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가 대접 받으려는 정신을 가지고 나가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또 월급이 적어서 못 간다는 것도 신앙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주시면 먹고, 안주시면 먹지 않을 각오를 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왜 안주시겠습니까? 사람도 소를 일 시켰으면 먹을 것을 주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일을 한 사람에게 왜 안주시겠습니까?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대접을 안받기로 결심하고 나가는 길이 전도자의 가는 길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고,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으려고 하고, 교인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하려고 하여야 합니다.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 하였는데, 자랑하는 것은 오직 복음이며, 복음이 헛된 데로 안돌아가게, 즉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삯꾼이다, 남의 재산이나 빼앗으러 다닌다”는 말을 들으면 복음이 헛된 데로 돌아갑니다. 또 복음에 장애가 많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초월해서 그 물질 문제 때문에 교인들이 시험 받지 않도록 하고, 물질 문제 때문에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고, 물질 문제 때문에 복음이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게 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음
본문 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은 자기 혼자 먹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나눠 먹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상부에서 동회에 밀가루 배포해 주면서 나누어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동회장이 혼자 다 먹었다면 화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상부에서 알면 감옥에 가야 됩니다. 이와 같이 복음은 혼자 먹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다 같이 나눠 먹으라고 주셨는데, 이것을 안 나누어 주면 화가 있습니다. 즉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또 개척 교회를 세워야 되며, 선교사도 보내야 됩니다. 선교 가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에 가야지 안가면 화가 있습니다. 또 다른 데로 가도 화가 있습니다. 요나는 다른 데로 가다가 화 받지 않았습니까? 니느웨로 가라고 하면 니느웨로 가야 합니다. 다른 데로 가면 화를 받습니다.
특별히 중국 선교는 선교사가 가서 상주해서 일하기가 힘듭니다. 공안당국에서 알게 되면 내쫓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은 교역자들을 보통은 한 달에 한 번씩, 목사 네 사람씩 파송을 해서 한 세 주간쯤 가르치고 돌아오게 합니다. 또 얼마쯤 있다가 또 다른 목사 네 사람을 파견해 가르치고 돌아오게 합니다. 어떤 때는 두 사람을 파견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여섯 사람을 파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역자가 몇 주간 씩 중국선교 가게 될 때, 그 교회에서 목사에게, “강단이 비
게 되고, 차비를 주려니 교회 돈이 없는데 어떻게 다 해주겠습니까?” 하며 “가지 마십시오, 못갑니다”하면서 막을 때 목사가 전도하러 가지 않으면 받을 것은 무엇입니까? ‘만일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화’를 받습니다. 교회나 개인이나 있는 것을 내놓아서 복음을 전하면 복을 받고, 상을 받을 것이나 복음을 전하는데 안 내어 놓으면 화를 받습니다. 안 내어 놓는다고 그것이 다 자기 것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는 힘들어도 가야 되고, 비용이 좀 들어도 가야 됩니다.
이제 알마타에 9월 달에 가서 목사안수를 하려고 합니다. 저도 가려고 합니다. 비용이 들더라도 가야 되고, 힘들어도 가야 됩니다. 알마타는 카자흐스탄 수도입니다. 거기에 우리 신학교를 세웠는데 그 신학교 졸업생 중에서 안수 받을만한 사람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작년에 한국에 나와서 우리 신학대학원에서 특강도 받았고 강도사 고시에도 합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가서 안수하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고 하였는데 안 가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안 가면 편안한 게 아닙니다. 도리어 안 가면 평안이 오는 게 아니라 화가 옵니다. 안 가면 돈이 남는 게 아니라 화가 남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부득불 할 일임이라”고 하였는데, 부득불이란 아니할 수가 없어서 한다는 것입니다. 즉 복음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부득불 전해야만 되게 되어 있습니다. 부득불 개척교회를 세워야만 되게 되어 있습니다. 부득불 선교사를 보내어야만 되게 되어 있습니다. 부득불 가서 가르쳐야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이북이 열리면 부득불 이북에 가서 교회를 세워야 됩니다. 안 세울 수 없습니다. 안 세우면 뭐가 옵니까? 화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세우라고 문을 열어주셨는데, 안 하면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찌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내가 임의로 복음을 전하면 상을 받으나,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직분을 맡은 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또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기 때문에 부득불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바울이 임의로 행한다는 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하는것도 자원해서 기쁨으로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시키셔서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직분을 맡기셨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셨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에 해야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임의로 기꺼이 하는 것입니다. 또 자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셔서 가는 것이고 또 성령에 매인바 되어서 가는 것입니다. 또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으므로 부득불 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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