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6일 수요일

요한계시록 10:5-11 비밀의 성취와 구감복고(口甘腹苦).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비밀의 성취와 구감복고(口甘腹苦)
요한계시록 10:5-11

5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6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7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8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9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10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10:5 내가 보았던 그 천사가 바다와 땅을 밟고서서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들고, 

10:6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땅과 그안에 있는 것들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시고 영원 무궁토록 살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기를 "더 이상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10:7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어 소리 내는 날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 곧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것처럼 그분의 비밀이 성취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10:8 하늘로부터 내가 들었던 음성이 다시 내게 말하기를 "너는 가서 땅과 바다를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펼쳐져 있는 책을 취하여라." 하므로, 

10:9 내가 그 천사에게 가서 그 작은 책을 달라고 하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것을 가져다 먹어라. 네 배에는 쓰겠으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 것이다." 라고 하였다. 

10: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그 작은 책을 가져다먹으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달았으나, 먹은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되었다. 

10:11 그때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언어와 왕들에게 다시 예언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1. 비밀성취

재림의 때가 임박함

본문 5-6절에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 손을 들고 세세토록 살아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 하지 아니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지체하지 아니하리니”라는 것은 남은 때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남은 때가 없는 줄 알아야하고 예수님의 재림한 때가 임박한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말세지말에 대해 여러 가지 징조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특별히 이 시대가 노아시대와 같이 된다는 말씀과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시대가 된다는 말씀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노아시대와 같고, 소돔과 고모라와 같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과 흉년과 전쟁이 있고, 민족이 민족을 치고 나라가 나라를 치는 상황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는 징조입니다. 따라서 남은 때가 없는 줄 알고 정신을 차리고 “이런 일이 시작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고 했습니다(눅 21:28). 일어나서 깨어서 머리를 들고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짐

본문 7절에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에는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그 비밀은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고 죽은 자가 부활하는 것이며 산 자가 다 변화되어 올라가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51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마지막 나팔을 불 때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쫒아 강림하신다고 했는데, 그때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 공중에서 예수님을 맞아 올라가고 살아남은 사람도 변화돼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며 그 비밀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구감복고(口甘腹苦)

말씀을 영으로 먹으라

본문 8절에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라고 했습니다. 천사의 손에 책 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 책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책인데 지금으로 말하자면 성경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가지라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책인 성경책을 천사의 손에서 가져가라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천사의 손에 있던 그 책을 갖다가 먹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어떤 교인이 성경책을 매일 한 장씩 씹어서 먹었다고 합니다. 며칠 동안이면 다 먹을 수 있겠습니까? 신약은 260일이면 다 먹겠고 구약까지 합하면 1989장 정도 될 텐데, 한 3년 먹으면 다 먹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 말씀을 갖다 먹어버리라는 뜻은 영으로 말씀을 먹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입을 통해 먹고 배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의 양식으로 먹어야하는 것입니다. 영이 깨어서 이 양식을 사모해서 먹어야 하는데, 먹을 때에는 자기가 읽어서 먹을 수도 있고, 가르치는 말씀을 들어서 먹을 수도 있습니다.
곧 말씀을 읽을 때에는 자기가 스스로 신령한 양식으로 먹을 수 있고, 말씀을 들을 때에는 영의 귀로 받아서 신령한 양식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꿀처럼 달다

그런데 그 책을 먹을 때에 어떻다고 했습니까? 배에서는 쓰나 입에서는 꿀같이 달다고 했습니다. 입에서는 꿀같이 달다는 말씀이 시편에 있습니다. 시편 119:103절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 또 주의 말씀이 금보다 더 귀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시편 19:10절에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하였고, 119:127절에는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금보다 귀하고 정금보다 귀하고 또 꿀보다 더 단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입에서 꿀보다 달아야 합니다. 달지 않은 사람은 왜 안 답니까? 이 말씀을 영으로 먹을 때 달아야하는데, 왜 달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꿀을 먹어도 달지 않은 것은 병이 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꿀을 먹으면 달다는 것을 느끼지만 병이 난 사람은 꿀을 먹어도 단 것을 못 느낍니다.
또 배가 너무 부르면 꿀 먹어도 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보다 귀하고 꿀보다 달고 정금보다 귀한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책 가운데 제일 중요한 책이 성경 말씀입니다. 한문 공부를 많이 한 목사님이 계셨는데 말씀하시는 것이 생각납니다. 그 분은 논어, 맹자, 사서삼경 등 고서들을 많이 공부 하셨는데 성경말씀을 읽다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한문책들은 도덕을 배우는데 어느 정도 유익하지만 그 책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책에는 생명의 말씀이 들어있으니 읽을 때마다 즐거워서 아주 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책이 많지만 그 책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영이 사는 것은 하나님 말씀밖엔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는데 영이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영이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꿀 보다 달고 꿀송이 보다 더 단 말씀으로 받아야 됩니다.

말씀이 달지 않으면 자기가 병난 줄 알아야 합니다. 병이 나서 귀가 어두워지고 병이 나서 입에서 맛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죽은 믿음이며 조는 신앙입니다. 신앙이 잠자고 졸 때 단 맛을 모릅니다. 자는 아이 깨워서 먹으라고 하면 맛을 봐도 그 맛을 몰라 다 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됩니다. 깨어 있어야 맛이 있고 심령의 병이 나아야 맛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심령의 병이 나아야 됩니다. 육신이 병들었을 때에 심령의 병이 날 수 있습니다. 육신이 건강할 때는 나가서 죄만 짓고 세상에서 다니다가 하나님의 징계가 내릴 때 그제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때 영의 병이 낫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말씀을 사모하여 말씀이 꿀보다 달고 송이 꿀보다 더 달게 될 때가 옵니다. 이 말씀이 꿀 보다 달고 꿀 송이 보다 더 달면 그 사람은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산 믿음입니다. 산 믿음이 되려면 회개하고 심령의 병을 고치고 자기가 어디에서 병든 것인지 깨닫고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해서 심령의 병을 고쳐야 됩니다. 말씀이 금보다 귀하게 여겨지고 꿀보다 달게 여겨지면 병이 나은 것입니다.

단 말씀은 억지로 먹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모해야 먹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달지 않으면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내가 심령이 병 났고 귀가 어두워 졌고 육신적인 사람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영의 사람으로 회개하고 온전히 돌이켜서 이 말씀을 생명으로 받는 사람으로 변화 되어야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하고 회개하고 영의 세계를 발견하고 자는 심령이 깨어나야 되고 일어나야 됩니다. 자던 자리에서 일어나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말씀을 실행할 때 고통이 온다

1) 말씀을 실행할 때 쓰다

본문 10절에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고 하였습니다. 먹을 때에는 꿀같이 단데 먹은 후에는 배에서는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배에서 쓰다는 말씀은 말씀을 시행하려면 고통이 온다 는 뜻입니다. 말씀을 배에서 소화시켜 자기 살과 뼈로 돌리려면 쓴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쓰지 않습니다. 소화 시켜야지만 쓴 것인데, 이 말씀이 자기의 힘이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고자기 생명이 되려면 쓴 것입니다. 곧 말씀을 실행해야 하니까 쓴 것입니다.

2) 육체의 일과 싸울 때 쓰다 

또한 반대하는 세력과 싸우려면 씁니다. 쓴 것은 고난이 오는 것인데, 반대하는 세력, 곧 속에 있
는 것과 싸우려면 쓴 것이 생깁니다. 갈라디아서 5:19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두 열다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 것이 음행인데, 싸워서 다 쫓아내려니까 쓰다는 것입니다. 또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술수는 곧 점치는 것인데 사주팔자 보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원수 맺는
것인데 원수 맺은 것을 풀어야합니다. 풀지 못하면 그 사람은 헛 믿은 것입니다. 일생동안 못 푸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돈끼리 원수가 된 경우도 있는데, 왜 원수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캐나다 토론토로 어떤 부부가 이민 갔는데, 가서 남자쪽 부모를 먼저 초청해서 그 곳에 있는 평강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여러 해 후에 부인의 부모를 초청했습니다. 그래서 양가의 부모들이 만나게 되었으니 반가운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남편의 부모가 곧 바로 그 주일날부터 다른 교회에 나갔습니다. 왜 옮겼냐고 물어보니, 사돈이 보기 싫어서 다른 교회로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전부터 원수가 되었던 모양인데, 캐나다에 가서까지 안 풀어져서 다른 교회로 나가게 되었다니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며느리는 시부모가 다른 교회에 나가면 편안 하겠습니까? 자기들끼리 원수가된 것만 알았지 자녀들의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찾아가서 인사하고 원수 맺은 것을 다 풀고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원수 맺는 것 다음에 무엇이 있습니까? 서로 갈라져서 싸우는 분쟁이 있습니다. 끼리끼리 갈라져서 싸우는 것이나 자기 집안사람들 끼리 한패가 되어서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이 모두 다 분쟁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믿음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시기가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잘되면 배가 아픈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분내는 것, 혈기 내는 것 그것을 다 회개 하고 바로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당 짓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분내는 것이고, 그 다음은 갈라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이단, 투기하는 것, 술취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방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속에 있는 이런 열다섯 가지의 것들을 다 내쫓아야합니다. 속에서 전쟁이 일어남으로 얼마나 고난이 오겠습니까? 따라서 배에서 쓰다는 것은 말씀이 들어오면 모든 교만과 자기중심과 이기주의를 다 쫓아하기 때문에 쓴 것입니다. 배에서 쓰기 위해서 원수 맺는 것도 다 풀어야 됩니다.

3) 외부적으로 행하려면 쓰다 

또한 말씀대로 하려면 배에서 쓴 것은 외부적인 면에서도 행함이 있어야합니다. 이 말씀 대로 사랑해야 하고, 또 화목해야 하고, 이 말씀대로 주일을 잘 지켜야 되고, 이 말씀대로 십일조를 드려야 되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면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어떤 교회에 장로가 하나 있었는데 그 교회 목사가 교역자 수양회나 어디 갈 때 그 장로를 강단에 세운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장로가 나가서 자기는 십일조 제대로 못 드린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십일조가 적으면 드리지만 액수가 많아지면 십일조를 못 드린다고 장로가 나가서 말했다고 합니다. 그 행동이 겸손한 것 같습니까? 자기가 못하는 것을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했으니 겸손한 행동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과 행동은 교회를 다 망쳐 놓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생각할 때 장로가 십일조를 안 드리니자기도 안 드려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인들이 십일조를 못 드리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 장로가 혼자서 못 드린다고 회개하면 될 것인데, 교인들 앞에 광고해놓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 후 얼마 있다가 그 장로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는데, 교회에 안 나온다고 합니다. 얼마 있다가 다시 나온다고 말하며 떠났다는데, 내가 그 목사님에게 “다시 온다면 그런 식의 말을 또 할 것이므로 받아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 그 교회에 더 이상 출석하지 않으니 그 교회의 장로직에서 이미 사임된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온다 해도 장로로서 세우지 않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만일 또 받아서 장로로 세우게 되면 교회에 해가 되는 말을 할 것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십일조에 관한 말씀이 그 장로님에게 계속적으로 쓰게 들렸을 것입니다.

또한 주일날 제대로 안 지키는 것, 우상의 제물 먹고, 양심 안 쓰고 거짓말하며 속이는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가면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내 속에 들어가서 죄 된 것들과 더불어 싸우
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배에서는 쓰다고 하는 것입니다.


4) 불순종한 것을 회개하려면 쓰다

또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 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불순종하는 사람에게 불순종한다고 말하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책망을 받으면 쓰지만, “좋은 약이 입에 는 쓰나 병 낫는데 유익하다”는 말처럼 자기를 책망해 주는 말이쓰지만 자기를 바로 세우기에 유익한 것입니다. 그래서 책망해주는 것을 고맙게 알아야합니다.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배에서 쓰게 되어 약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행동에 대해 누가 이야기를 했는지 몇일 동안 밤새도록 연구하며 아무개로 예측하고 싸우려고 준비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윗사람에게 보고 한 것은 잘 한 것입니다. 교회에 보고한 것은 잘 한 것으로 아셔야 합니다. 교회에서 잘못 된 것을 알아야 바로 세울 것 아니겠습니까? 모르면 어떻게 바로 세우겠습니까? 그 사람을 바로 세울 목적으로 보고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보고한 사람은 잘 한 것입니다. 또한 전도부인이나 교회의 집사들 가운데 심방하는 집사들이 보고 안하는 것은 벙어리 개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보고하지 않는 것은 벙어리 개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책망을 받았을 때 자기가 책망 받기에 합당한지 아닌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될 것인데, 누가 보고했는지 자꾸 물어보고 보고한 사람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못 찾는 것입니다. 엉뚱한 사람을 괜히 의심해서 죄만 더 짖는 것입니다. 만일 보고한 사람에게 상 주려고 찾는다면 그것은 괜찮습니다. 앞으로 누구든지 책망을 받을 때에 보고 한 사람을 찾고 의심하는 생각은 하지 않아야합니다. 그것은 마귀의 생각입니다. 교회는 여러일들에 대해 보고해야 그 일들을 위해 목사가 기도해주고 심방할 사람에게 찾아가기도 하고 병난 것을 위해 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병이 나서 병원에 갔을 때 의사에게 보고 안하면 어디에다 말할 것입니까? 의사가 물어봐도 대답 안하고 가만히 있습니까?

말씀대로 하려고 힘쓰고 희생하자

말씀대로 하려면 배에서는 쓴 고난과 십자가와 환란과 방해하려는 세력이 다 오더라도 잘 참고 믿음으로 이겨야합니다. 또한 말씀을 잘 수행하려면 희생과 봉사가 있어야합니다. 남 장로님이 세상 떠난 다음에 내가 생각해 봤습니다. 남 장로님이 일생동안 얼마나 하나님을 봉사했고 그러면 그 상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9:18절에 “내가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고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상이라고 했습니다. 남 장로님이 일생동안 복음을 값없이 전한 것 얼마나 전했을까? 또 권리를 다 쓰지 않은 것 얼마나 될까? 권리를 다 쓰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남장로님은 원래 성품이 온순하니까 권리 쓴 것이 생각이 안 납니다. 그냥 잘 봉사하려고만 힘을 썼고 복음을 값없이 전했고 또 모든 복음 전하는데 협력하고 동참한 일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쓰다는 것은 성경대로 바로 서려니까 고난이 온고 환란이 오고 핍박이 오고 외부적으로 오고 또 속에도 방해가 일어납니다. 내가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희생하는데도 고난이 오고, 또 복음을 위해서 값없이 전해야 되겠는데 또 고난이 오는 것이 쓴 것입니다. 쓰기 때문에 힘이 들고 고난이 오지만, 그것 때문에 안 하려고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써도 해야 되고 고난이 와도 해야 합니다.

말씀을 받을 때 달게 받고 그 말씀대로 소화해서 나가려면 씁니다. 그 쓴 것들을 다 달게 받으면서 자기 속에 있는 반항심들, 곧 육신의 부패성들과 싸워서 이기고 물리치고, 외부적으로 오는 핍박과 환란을 다 말씀대로 이겨 자기를 바로 세워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 나가는 일에 전적으로 힘써 나가야겠습니다. 우리가 이 일에 전적으로 달라붙어서 믿는 일에 힘쓰고 하나님께 바쳐드리고 자기를 희생하며 달음박질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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