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총론
요한계시록 1:1-10
요한계시록 1:1-10
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4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5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9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9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 계시 서론
하나님의 종들에게 반드시 될 하나님의 말씀을 주심
본문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란 가리워져 있던 것을 열어 보인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라고 하였는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라고 하였는데, 이 계시의 말씀은 반드시 속히 될 일입니다. 즉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이고 속히 될 말씀입니다.
한 말씀이라도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입니다. 속히 된다는 것은 성경 말씀대로 반드시 다 이루어지는데, 그 진행 속도가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속히 이루어져 나가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그 종들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주인의 위치에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합니다. 종은 언제나 겸손하고, 주인을 경외하고, 주인의 뜻에 절대 복종하고, 주인을 위해서만 삽니다. 이와 같은 종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순종하고, 낮아지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종의 위치에서 절대 복종하는 그런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교만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자기는 “무익한 종입니다”라는 위치에서 항상 겸손하고 복종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증거함
본문 2절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남기지 않고 다 증거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성경의 완전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다 증거했기 때문에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자라는 것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명백히 우리에게 증거해 주신 말씀입니다. 요한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증거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므로 다 증거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에게는 증거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0:9에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고 하였는데, 받아먹은 다음에는 나가서 예언하여야 합니다. 또 10:11에 “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면 나가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즉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만 알고 증거하지 않으면 이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서 책망을 받습니다. 하
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면 증거하여야 합니다. 요한은 다 증거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때에 다 증거하고 가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자기가 증거해야 될 책임을 다 하고 가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나가서도 가르치고, 집에서도 가르치고, 멀리 가서도 가르쳐야 합니다. 사도 요한과 같이 사명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2. 예언 삼복(豫言 三福)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음
본문 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됩니다. 신학생들과 교역자들은 하루에 10장 이상씩 성경을 읽어야 하고, 교인들도 성경을 매일 몇 장씩 읽어야 합니다. 열장을 못 읽겠으면 다섯 장이라도 읽어야 하고, 다섯 장도 못 읽는 사람은 최소한 석 장이라도 읽어야 합니다. 하루에 밥 세끼를 먹지 않습니까? 성경을 석 장 읽지 못하는 날은 밥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두 장 읽었으면 밥 두 끼 먹고, 한 장 읽었으면 밥 한 끼 먹고, 한 장도 못 읽었으면 먹지 말아야 합니다. 육신의 양식은 하루 세끼씩 꼬박 챙겨서 먹는데, 영의 양식은 먹지 못한다면 되겠습니까? 그런 신자는 생명이 없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배워야 됩니다.
요새 말세가 되어서 교회에 올 때에 성경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또 교회에서 성경을 안가지고 오도록 해놓았습니다. 강단 위에 큰 스크린을 만들어 놓고 예배 시간에 읽는 성경구절이 거기에 큰 글자로 다 나오게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면 되므로 성경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찬송가도 크게 나오기 때문에 찬송가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과 찬송가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말세입니다. 교회가 점점 타락되어 갑니다.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자기가 보아야지, 강단 뒤에 큰 글자로 스크린에 나오는 성경을 보고 무슨 신앙이 들어가겠습니까? 교회가 타락이 된 증거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하나님이 직접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읽어야 됩니다. 즉 “이 시간에 하나님이 내게 직접 주시는 말씀이다” 하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 심정으로 읽을 때에 큰 은혜를 받습니다. 사도행전 8:30-31에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병거를 타고 가면서 성경을 읽었는데, 성령께서 빌립을 내시에게 보내어서 그 성경의 뜻을 가르치게 하였고, 내시는 빌립에게 성경의 뜻을 배울 때에 믿음이 들어갔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하나님이 직접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알고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은 육신적으로 말하면 밥을 안 먹는 사람과 같습니다. 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의 영도 영의 양식을 날마다 먹어야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성경을 읽어야 됩니다. 교역자가 성경을 하루에 열장씩 읽지 않고, 교인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합니까? 가르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음
그 다음에 “듣는 자들과”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의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10:44-46에 “베드로가 이 말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께서 친히 거기에 임하셔서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내게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들으면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병도 낫고,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시간에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받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음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언 삼복입니다. 예언삼복의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자,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역사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실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떠났고, “가라”고 하셨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정처 없이 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지킨 아브라함을 큰 민족이 되게 해주셨고, 자손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또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하셨고,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셨고,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지키면 이와 같이 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의 말씀이 말씀대로 순종한 아브
라함에게 다 이루어졌습니다.
또 독자를 바치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실 때에도, 아브라함은 “예” 하고 바치려고 작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장작을 지고 멀리 삼 일 길을 가서 이삭을 제단 위에 놓고 번제를 드리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 네가 이 같이 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를 바치라고 하실 때에, 아브라함이 “예” 하고 바친 것처럼, 우리도 바치는 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시면, “예” 하고 떠나는 정신으로 지켜야 합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실 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지시하는 땅이 어디입니까? 동으로 가야 합니까? 서로 가야 합니까? 남으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예” 하고 갔습니다. 가면 하나님께서 지시해주십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 있다는 것은 아브라함을 생각하면 되고,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에디오피아 내시를 생각하면 되고,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고넬료의 가정을 생각하면 됩니다. 고넬료의 가정에서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에 성령이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했고(행 10:44), 말씀을 들을 때에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성전에 들어갈 때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도 베드로에게 구걸하다가,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할 때에 “예” 하고 일어서니까 앉은뱅이가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걸었다고 했습니다(행 3:6-10). 말씀을 들을 때에 일어섭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순종하면 일어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읽는 자,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하루라도 빠지면 안 됩니다. 매일 몇 장씩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지 않으면 밥 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3. 우리의 구원을 삼위 하나님께서 성취시키심
본문 4-5절에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란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에게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8절). “그 보좌 앞에 일곱 영”이란 성령을 말합니다. “일곱”은 완전수이며 완전하신 성령이시라는 뜻입니다. 또 완전감동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성도가 어디서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든지 완전한 감동을 시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즉 성령께서는 계시지 않는 곳이 없고 전면에 걸쳐 완전한 감동으로 성도를 감동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성도가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5:5에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또 성도가 종의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사도 요한과 같이 종의 위치에 있으면 성령의 감동을 받습니다. 또 마음속에 죄가 있으면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성도 사이를 가로 막아서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하지 못하게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면 예수와 함께 자기가 죽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순종한 것만큼 성령의 감동이 커집니다.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충성된 증인으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니까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된 것은 싸워서 된 것이 아니고, 죽기까지 복종해서 머리가 된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머리가 되는 방법은 싸워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도 서로 올라가려고 하고, 남을 깎아 내려서 머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이 죽기까지 복종하므로 머리가 됩니다.
4. 하나님 나라 건설
그 다음에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즉 죄 값으로 마땅히 죽어야 할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모두 치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성도를 하나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심
1) 하나님의 나라로 삼으심
본문 6절에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라고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즉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서 살라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삼으시고,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성도 가운데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진짜 자기를 위하는 것이 됩니다. 자기 위하는 것은 참으로 자기를 위하는 게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는 것 모두가 실제로는 다 자기를 위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면 전부 다 무효입니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자이므로,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하여야 됩니다. 우리는 자기를 위해서 있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중심해서 모인 성도들의 단체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예수님이 계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의 인도와 통치를 받아 하나님만 위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2) 제사장으로 삼으심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은 성도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15:16에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았는데,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제사장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를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였는데, 로마서 12:1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때에 피를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즉 성도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신 구속의 피를 힘입고 하나님께 나가야 됩니다. 피를 안가지고 가면 지성소에 못 들어갑니다. 지성소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성도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에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야만 합니다.
둘째,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였는데, 이 몸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값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하며 몸을 하나님께 바치고 나가야 합니다.
셋째, 우리가 제사장이 되어서 이방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즉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을 전도하여 하나님께로 돌아 서게 하는 것이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금년에 몇 사람을 전도했습니까? 먼저 자신부터 하나님께 바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것이 제사장 직무를 잘 감당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항상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제사장의 직무를 잘 감당해야겠습니다. 제사장 직무를 잘 감당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자기도 기쁩니다.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라고 하였는데,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하나님께 돌려지도록 하기 위하여 성도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
본문 7절에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라고 하였습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란 예수님이 구름을 타시고 오신다는 뜻이 있고, 또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 함께 임한다는 뜻입니다(유 1:14). 성부, 성자, 성령께서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나라, 성도들을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사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간 그 나라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라고 하였는데, 각 사람이 다 본다는 것입니다. 그를 찌른 자들이란 교회를 핍박한 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데 손해를 준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운동에 상처를 주고, 찌르고, 방해하고, 손해준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다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절대 손해를 주면 안 됩니다. 자기가 입힌 상처도 그 날에는 숨김없이 다 나타납니다. 그 날에는 자기가 순종하여 이룬 것도 그대로 타나나고, 자기가 구원 운동에 상처를 준 것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그 나라에 상처주고, 그나라를 위해서 충성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모든 족속이 다 애곡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자신의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손해를 주었다면 그 결과가 예수님의 재림 시에 다 나타납니다.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이 이루심
본문 8절에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알파”는 헬라어 첫째 글자가 알파이고, “오메가”는 헬라어 마지막 글자가 오메가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A자가 알파이고, Z자가 오메가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라는 것은 처음과 나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원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제도 있고”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이제도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성도의 구원운동을 현재에도 이루어 나가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있었고”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전에도 역사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전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 구원운동을 예정하시고, 계획하시고 설계하셨다는 것입니다. “장차 올 자”라는 것은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장래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구원의 시작과 진행과 성취를 모두 다 책임지시고 이루어 나가십니다.
5. 환난을 참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함
본문 9절에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라는 것은 요한의 겸손을 나타낸 말입니다. 요한이 대사도이지만 겸손하게 모든성도들의 형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란 사도 요한은 예수의 환난에 동참했고, 또 참음에 동참했습니다. “예수의 환난”이란 예수님을 위해서 받는 환난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으려면 환난이 옵니다. 성경대로 바로 믿고, 성경대로 바로 따라가려고 하면, 이 세상은 거스르는 세상이기 때문에 환난이 옵니다. 그것이 예수의 환난입니다.
시편 119:71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하였는데, 고난당하고 보니까 예수님이 발견됩니다. 즉 환난 가운데서 예수님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많은 고난을 당하는 중에서 회개하고, 세상과 자기를 부인하게 되고, 예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또 많은 환난 당할 때에 자기가 다 깨어져 나갑니다. 허영심, 교만이 다 깨어져 나갑니다. 세상 소망이 다 깨어져 나갑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고난이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환난과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귀향살이 가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까? 그 고난당하는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더욱더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나, 요한은 예수의 환난에 참여한 사람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의 환난에 참여하고 보니까 예수의 나라에 참여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멀리 보였는데, 예수님의 고난을 당하고 보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자기에게 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고난을 참는 데에서 연단이 됩니다.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 이 셋은 붙어 다니는데, 그 중에 참고 견디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참고 견디어야 됩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시험과 환난, 핍박, 마귀 역사 등이 많지만 잘 참아야 됩니다. 환난을 참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십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고, 예수의 환난에 참여하고, 참음에 참여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세가지에 참여했습니다. 즉 예수의 환난과 예수의 나라, 예수의 참음에 동참한 사람입니다.
6. 주의 날에 계시를 주심
본문 10-11절에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날”이란 주일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은 있어도 주일을 지키라는 말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있습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라고 한 것을 보면 주일을 지킨 것입니다.
주일 성수하라
구약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지만 신약 시대에는 날짜가 변경되었으므로 주일로 지켜야 됩니다. 히브리서 7:18에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월삭과 안식일과 또 절기 지키는 것 등은 다 그림자입니다.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히브리서 4:7에는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달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랜 후에 다시 어느 날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제 7일 안식일을 지켰지만, 신약시대에는 다시 어느 한 날을 정한 것입니다. 그 날이 주일입니다.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성령님이 강림하신 날, 성부께서 계시를 주신 날입니다. 즉 주일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합동해서 복 주시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지키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주일 어기면 말씀 내버린 것
토요일로 지키는 것은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로 하려면 다 율법주의로 해야 됩니다. 안식교에서는 토요일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율법을 다 안 지킵니다. 율법을 다 지킬 사람은 천하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 율법으로 구원받은 사람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율법으로 구원받으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집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요새 주일을 안 지키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일에 사고팔고 직장에 나가고 주일에 시험을 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어 버리고 믿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내어 버리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내어 버린 것은 믿음을 내어버린 것입니다. 이다음에 말씀으로 하나님이 심판하실 텐데, 말씀을 내어 버린 사람은 믿음을 내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주일에 “네 남종이나 여종이나 네 아내나 또 소나 나귀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문안에 유하는 나그네도 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일은 생명을 내어 놓고 지켜야 됩니다. 주일을 범하는 것은 말씀을 내어 버리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왜정 말단에 신사참배하면서 예수 믿은 것과 같습니다. 신사참배 하면서도 예수를 믿는 것이 정말 믿는 것입니까? 주일을 범하면서 예수 믿는 것은 말씀을 내어 버리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사람의 날이 아닙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로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주일성수는 하나님 섬기는 표징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표징”이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20:12에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고 하였고, 20:20에는
“또 나의 안식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라고 하였습니다. 표징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바로 섬기는지 안 섬기는지를 알려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보면 압니다. 주일을 안 지키는 것은 예수님을 안 믿는 표징이고, 주일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표징입니다. 주일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를 보아서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주일을 안 지키고 주일에 물건을 사고팔고, 또 나가서 음식을 사먹고, 무슨 자격시험을 치는 것 등은 제 4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지금 4계명을 범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우리는 4계명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주일을 안 지키는 사람에게 집사 직분을 줄 수 없습니다. 주일을 안 지키는 사람에게 장로 직분을 줄 수 없습니다. 주일을 안 지키는 사람 에게 세례를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바로 섬기는지 안 섬기는지를 알려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보면 압니다. 주일을 안 지키는 것은 예수님을 안 믿는 표징이고, 주일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표징입니다. 주일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를 보아서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주일을 안 지키고 주일에 물건을 사고팔고, 또 나가서 음식을 사먹고, 무슨 자격시험을 치는 것 등은 제 4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지금 4계명을 범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우리는 4계명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주일을 안 지키는 사람에게 집사 직분을 줄 수 없습니다. 주일을 안 지키는 사람에게 장로 직분을 줄 수 없습니다. 주일을 안 지키는 사람 에게 세례를 줄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타락되어 내려가는데 주일을 지키는 것부터 바로 지켜야 됩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드려야 됩니다. 십일조는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일조를 안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죄입니다(말 3:7). 주일을 철저히 지키고, 십일조를 바로 드리고,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것입니다. 기본적인 것 부터 먼저 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면에 있어서 성경대로 바로 섬기는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일날 범한 것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또 십일조 드리지 않은 것을 회개하여야겠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것은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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