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4일 월요일

유다서 1:1-6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
유다서 1:1-6

1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5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1. 문안 축복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본문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유다서를 쓴 유다는 가룟 유다가 아니고, 주의 동생 유다입니다. 기록한 때는 주후 66년경이고, 기록한 곳은 팔레스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자기의 형님이지만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기 때문에 자기는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하였는데,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이고 이도 주의 동생입니다.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고 했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하였는데, 성도들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나와서 예수 믿게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믿음을 주시고 교회에 나오게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가 하나님을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라고 하였는데, 성도는 사랑을 얻은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지키심을 입은 자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지키심을 입은 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었기 때문에 오늘까지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살아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오늘까지 나온 것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기 때문에 오늘까지 무사히 나왔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지켜주셨다고 하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켜주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이 지켜주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고, 자기를 위하지 말고 주를 위하는 생활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2절에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셨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켜주셨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았습니까? 하나님이 지켜주셨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다 죽을 자들인데 왜 지켜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라고 하나님이 지켜주셨습니다.


2.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

성도에게 믿음의 도리를 단번에 주심

본문 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라고 했습니다.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서 편지할 마음이 간절했었는데 이제 그것을 바꿔야 할 필요를 느꼈다는 것입니다.
일반으로 얻은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다 구원 받는다는 구원의 도리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그 구원의 도리를 들어서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했지만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하였는데,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해야 할 필요를 느껴서 편지를 한다는 것입니다.

“단번에 주신 도”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단번에 주신 도”라는 것은 단번에 우리 구원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피를 단번에 주셨고, 또 성령을 우리에게 단번에 주셨고, 믿음을 단번에 주셨고, 단번에 중생시켰습니다. 그렇게 단번에 다 주셨습니다. 반복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단번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단번에 다 주셨습니다. 단번에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를 자주 우리가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번에 믿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다 받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을 우리가 단번에 받았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단번에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서 구원을 단번에 받았습니다. 영생을 단번에 다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도를 빼앗기지 않도록 싸울 것

그런데 이렇게 단번에 주신 도를 빼앗기지 않도록 계속 싸우라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들은 단번에 주신 도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마귀 역사입니다. 그래서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워서 그 미혹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6에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단번에 드려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1:23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중생은 단번에 됩니다.

한번 중생한 사람은 지옥 가는 법이 없습니다. 중생은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인데, 한번 거듭난 사람은 절대 다시 타락되지 않고 죽지 않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범죄하지 아니하고 타락될 수도 없고, 단번에 구원을 다 얻어 놓았습니다. 중생한 영혼이 범죄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면 단번에 주신 것을 다시 또 받아야 되잖습니까? 거듭난 사람, 즉 중생한 사람이 타락해서 지옥에 가야한다고 하면, 다시 또 중생해야 됩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한번 중생한 사람에게 구원을 단번에 주셔서 다시 타락되지 않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중생한 사람도 타락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알미니안주의, 루터파, 모두 다 중생한 사람도 다시 타락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한번 중생한 사람은 다시 타락되지 않습니다. 구원을 벌써 얻어 놓았습니다. 장로교 교리는 한번 거듭난 사람, 즉 중생한 사람은 타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혼이 왜 타락되지 않느냐 하면, 범죄 하지 않기 때문에 타락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타락되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좀 더 지나보니까 범죄 하지 않기 때문에 타락되지 않는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영혼이 범죄 하면 타락되는 것이 아닙니까? 죄 값은 사망인데 영혼이 범죄 하면 죽어야 되고, 다시 중생해야 됩니다. 그러나 범죄하지 않기 때문에 타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서 힘써 싸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변경시키려고 하고 빼앗으려고 하는 여러 가지 반대 세력의 사이비한 주장들이 많이 있지만, 그로 더불어 힘써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서를 보낸다는 말씀입니다.

이리는 양의 탈을 쓰고 가만히 들어옴

본문 4절에 “이미 가만히 들어온 형제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만히 들어왔다는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이리인데, 이리가 이리라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양의 가죽을 쓰고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들어온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속은 이리인데 겉은 양의 가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만히 들어온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비밀스럽게 자기를 숨겨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처음에는 모릅니다. 겉모습은 양과 꼭 같습니다. 양의 가죽을 썼으니까 꼭 같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속은 이리입니다. 이리는 속에 있는 걸 좀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다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분명히 알고 미혹을 받지 않고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가만히 들어온 형제 몇이 있는데,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입니다. 그들은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입니다. 디도서 1:16에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말로는 시인하지만 행위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그런 비밀히 들어오는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만히 들어오는 자들은 경건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생활이 경건치 않습니다. 그 다음에 색욕거리로 바꿔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단들은 다 음란, 방탕입니다. 색욕거리로 바꿔나가고, 경건치 아니하고, 행실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3. 구약 시대의 멸망의 역사를 기억하라

본문 5절에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들어온 거짓선지자들은 성경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귀입니다. 마귀를 본래 천사의 일종으로 창조했는데 교만해졌습니다. 마귀가 교만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쫓으셨습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교만해졌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교만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습니다. 마귀를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었습니다.
에스겔 28:12-17에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너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교만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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