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9일 토요일

요한계시록 13:1-18 육백육십육을 이기고시온 산에 서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육백육십육을 이기고 시온 산에 서라
요한계시록 13:1-18

1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2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4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7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11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12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13:1 또 내가 보니, 바다에서 짐승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 짐승에게는 열 뿔과 일곱 머리가 있었고 그의 열 뿔에는 열 왕관이 있었으며 그의 머리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었다. 

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였는데, 그의 발은 곰의 발 같았고, 그의 입은 사자의 입 같았다. 용이 그 짐승에게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 

13:3 그의 머리들 가운데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았다. 그의 죽게 된 상처가 나으니 온 땅이 놀라 그 짐승을 따르고, 

13:4 짐승에게 권세를 준 용에게 경배하였으며, 그들이 또 그 짐승에게 경배하며 말하기를 "누가 이 짐승과 같겠느냐? 누가 이 짐승과 싸울 수 있겠느냐?" 라고 하였다. 

13:5 또 짐승에게 큰소리 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입이 주어졌고 마흔두 달 동안 활동할 권세가 주어지니, 

13:6 짐승이 입을 열어 하나님을 향해 모독하되,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모독하였다. 

13:7 또 그가 성도들과 싸워 이기도록 허락을 받았으며, 모든 족속과 백성과 언어와 나라를 다스릴 권세가 그에게 주어졌다. 

13:8 땅 위에 사는 모든 이들, 곧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그 짐승에게 경배할 것이다. 

13:9 누구든지 귀 있는 자는 들어라. 

13:10 "누구든지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떠나갈 것이고 누구든지 검에 죽임을 당할 자는 마땅히 검에 죽임을 당할 것이다." 여기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있다. 

13:11 또 내가 보니,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어린 양처럼 두 뿔을 가졌고 용처럼 말하였다. 

13:12 그가 처음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그 안에 사는 자들로 그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된 상처가 나은 자였다. 

13:13 또 그가 큰 표적들을 행하는데,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게 하였으며, 

13:14 그 짐승 앞에서 받은 표적들을 행하므로 땅에 사는 자들을 미혹하여 말하기를 "칼에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해 우상을 만들어라." 하였다. 

13:15 또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말하게 하고 또 그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다 죽임을 당하게 하였다. 

13:16 그가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자나 종이나 모두에게 그들의 오른손이나 그들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3:17 그 표,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숫자를 갖지 않은 자는 누구든지 사거나 팔수없게 하였다. 

13:18 여기에 지혜가 있으니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숫자를 세어보아라. 그것은 사람의 숫자이니 육백육십육이다.


1. 가장 발달한 인본주의의 상징인 육백육십육

본문의 마지막 절인 18절에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육은 지상만수, 인본주의의 숫자입니다. 하나님의 숫자는 칠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 하실 때에 엿새 동안에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안식하시고 그날을 하나님의 날로 정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은 하나님의 숫
자가 없는 지상만수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인본주의 숫자인 육이 발달이 되면 칠이 되는 것이 아니고 육이 하나 더 올라갑니다. 내내 육만 더해집니다. 하나님의 숫자가 들어오면 칠이 되겠는데 신본주의가 안 들어왔기 때문에 육백육십육은 인간의 최고 발달된 숫자입니다. 인본주의 최고 숫자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쌓는 것과 같습니다. 바벨탑을 쌓을 당시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앞으로 오는 홍수와 같은 재난을 면하자”하면서 인간끼리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 바벨탑도 육백육십육 가운데 들어갑니다. 이 육백육십육은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고 인간의 힘으로 이 세상을 보존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도 보존하고 세상도 보존하자고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평화를 이루고 정의사회를 이루자고 하는 것이 육백육십육입니다.

이들은 비진리와 타협하고 평화를 이루자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검을 주러 오셨다고 했는데, 진리로써 비진리와 싸우고 마귀역사와 싸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육백육십육은 마귀도 용납하고 비진리도 용납해서 ‘서로 화평을 이루자’고 하는 인본주의의 화평운동입니다. 인본주의 정의, 인본주의의 보존, 이 세상 보존, 그리고 인본주의 천국입니다.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려고 하는 이런 육백육십육 운동이 어느 시대나 있는데 오늘날에도 이 육백육십육 운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회 밖에도 있고 기독교 안에도 있으면서 참 진리에 속한 성도를 대적하고 진리를 파괴시키려고 합니다.


2.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하나님을 대적함

본문 1절에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짐승’은 다니엘 7:23절에서 세상나라와 왕들을 가리키고, 요한계시록 17:15절에서는 ‘바다’를 세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이런 인본주의적인 적기독국가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일곱이라는 것은 일곱 나라들을 뜻하고, 뿔이 열이라는 것은 열 세력, 즉 세상 모든 세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와서 세력을 상당히 많이 쓰는데 그 모양은 2절에 나옵니다.

본문 2절에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머리는 일곱이요 뿔은 열개인데, 표범과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 같은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 7장에 나오는 네 짐승을 합해놓은 것입니다. 그 적기독 국가들은 짐승과 같이 잔인하고 서로 물고 찢고 잡아먹는다는 것입니다. 사자나 곰처럼 또 표범처럼 아름답게 단장을 하고 나오지만 내용은 다 같이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3절에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적기독 국가들이 강한 세력을 가지고 세상을 호령하며 세상을 다 점령할 기세를 가지고 나가다가 머리 하나가 깨져서 다 죽어가는 상태에 빠집니다. 그래서 다 죽을 줄로 알았는데 다시 살아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이따금씩 머리가 깨집니다. 중요한 세력들, 또는 가장 강한 종주국과 같은 나라의 머리가 깨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죽어가는 상태에 빠졌다가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날 공산주의 국가들도 다 깨져나갔습니다. 남미에서도 깨져나가고 다 깨진 것 같은데, 그래도 진짜 깨진 것은 아닙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냥 있습니다. 그 정권만 깨진 것이고 그 안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은 다 그대로 있습니다.

본문 4절에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용은 마귀이고 짐승은 국가인데, 마귀가 그 국가에 권세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나으니까 온 세상이 다 짐승을 따라갑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한, 내내 하나님을 대적하는 국가로 또 다시 재편성됩니다. 어떠한 세력 또는 국가가 권세를 잡더라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짐승의 세력으로 계속 나올 것을 가리켰습니다.

본문 5절에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참람된 이름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고 겸손하지 못한 주제 넘는 이름과 주장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훼방합니다. 계속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3. 세상을 의지하려고 하면 세상에 사로잡힘

본문 7절에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온 백성과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다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계가 됩니다.

본문 8-9절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온 세상이 이 적기독 세력, 적기독 국가를 다 따라가고 경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의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는 뜻입니다.

본문 10절에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는 무엇을 하나 잡으려고 하면 오히려 마귀에게 잡힙니다. 또 혈육으로 대적하다가는 자기도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세상 것을 잡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를 잡으려고 하면 세상에 잡혀서 마귀 종살이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성도는 세상 것을 다 내놓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난 것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까지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무엇을 하나 잡으려고 하면 도리어 그것에 자신이 잡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마귀에게 잡히는 것입니다.

마귀는 내가 어떤 사람을 잡으려고 하면 그 사람을 마귀가 잡아서 결국은 내가 마귀에게 잡히고 맙니다. 내가 어떤 직장을 하나 잡으려고 하면 마귀는 직장을 이용해서 나와 내 신앙을 박탈합니다. 그러니까 그저 직장에 있다 못 있게 되면 다른 직장에 갈 예산하고 하나도 잡지 말아야 합니다. 잡지 않아야 내가 안 잡힙니다. 다 내놓고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나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야 합니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4. 기독교의 모습을 가장하여 성도를 미혹하는 둘째 짐승

본문 11절에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새끼 양 같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탈을 쓰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양이니까 기독교가 아닙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기독교에서 짐승 하나가 나오는데, 두 뿔을 가졌으니 세력이 둘입니다. 또 땅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땅은 도덕적인 면을 가리킵니다. 처음 짐승은 바다(세상)에서 나왔고, 이 짐승은 땅에서 나왔습니다. 즉 속화된 기독교에서 나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용처럼 말한다는 것은 세상에 속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주의, 물질주의로 모든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 나온 세력이 아까 바다에서 나온 처음 짐승하고 서로 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땅에 거하는 사람을 다 미혹시킵니다. 기독교에서 나온 세력이 공산주의와 합하고 세상주의와 합한다는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세계교회협의회(WCC)가 기독교에서 나왔는데 내용은 공산주의와 같습니다. 용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본주의로 나가는 것이 아니고 전부 다 인본주의로 나갑니다. 이 사람들은 정의, 평화, 창조보존, 이런 것들을 주장하고 나오는데 다 좋은 말들입니다. 다 기독교에 있는 말들을 가지고 나옵니다. 새끼 양같이 두 뿔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기독교의 모양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겉만 같지 내용은 다릅니다. 내용은 전부 세상적이고, 마귀적이고, 정욕적입니다. 성경의 평화는 예수님께서 검을 주러 오셔서 비진리와 싸워서 이기고 누리는 영적인 평화를 일컫는데, 그 사람들은 반대입니다. 마귀도 용납하고 비진리도 용납하여, 평화를 하자고 합니다. 양과 이리가 어떻게 평화할 수 있겠습니까? 이리를 다 물리치고 양끼리 평화해야 진짜 평화가 되겠는데 그들은 ‘아무거나 좋다’는 평화를 하자는 것입니다.

성경에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다 부패시킨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비진리를 용납하면 결국 진리가 다 썩어집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신신학, 해방신학, 공산주의 다 좋다. 전부 포섭해서 같이 평화적으로 나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과 반대되는 평화입니다. 창조보존도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회개하고 바로 설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존해주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라는 것입니다. 주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하였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임하게 돼 있는데, 기독교가 이 심판을 경고하고 회개를 재촉하지는 않고 ‘창조한 것을 우리 힘으로 보존하자. 그러려면 전쟁을 안해야 한다. 무기를 다 없애자.’ 이런 식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되겠습니까?

이제 내일부터 세계교회협의회가 한국에서 모인다고 합니다. 몇 천 명 모여서 하는 것이 그 정의, 평화, 창조보존입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하자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힘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벨탑 쌓는 것과 똑같은 것이고, 그것이 육백육십육입니다. 성경에 있는 것을 다 갖다 나열을 해놨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미혹을 받지만 내용은 전부 마귀의 말입니다. 마귀역사입니다. 정의가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정의는 자본주의를 때려 부숴야 정의가 온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망해야 정의가 온다는 것입니다. 순전히 미혹시키는 세력들입니다. 여기에 미혹을 받으면 안 되겠습니다.

본문 13절에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큰 이적을 행한다는 것은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 내려오게 했는데 참 선지자와 같은 큰 역사들을 많이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진짜 불이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깜짝깜짝 놀랄만한 큰 이적을 많이 행한다는 것입니다.


5.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서야 함

본문 14-15절에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우상입니까? 자기가 주장하는 이상, 이념, 사상, 그것이 우상이고, 그 책임자가 우상이 됩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그 사상이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또 책임자가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책임자가 말하지 않습니까? 그 주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큰 핍박이 옵니다.

본문 16절에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마에 표를 받았다는 것은 사상을 그들과
통일시키는 것을 가리키고, 손은 행동을 그들과 통일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상과 행동이 자기네와 통일되지 않는 자는 다 죽인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고 하였습니다. 매매 못하게 한다는 것은 생존권을 박탈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상, 그들의 행동, 그들과 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생존권을 박탈하고 종교 자유권을 박탈합니다.

본문 18절에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지혜, 영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영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육백육십육인지 아니면 칠백칠십칠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육백육십육은 아무리 기독교에서 한다고 해도 인본주의입니다. 신본주의가 아닙니다. 칠백칠십칠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께 은혜받고, 하나님의 심판을 연기해달라고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평안, 즉 진리 안에 있는 평안을 찾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됐는데 죄는 회개할 생각 안하고 ‘우리가 이것을 보존하자. 전쟁하지 말고 보존하자’라고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입니다. 죄가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전쟁 일으키셔서 심판하시게 돼 있는데 ‘우리끼리 전쟁하지 말자’라고 하기만 하면 전쟁 날 것이 안 나겠습니까? 그러한 것이 육백육십육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됐을 때, 니느웨 사람들처럼 다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바로 서서 심판을 면하게 하자’라고 하며 회개 것이 진짜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하지 않고 인본주의적인 생각으로 ‘우리끼리 서로 합해서 전쟁나지 않게 하고, 핵무기 다 철수하고, 서로 평화조약을 맺고, 무기 다 없애고, 전쟁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육백육십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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