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9일 토요일

요한계시록 14:1-8 십사만 사천이 새 노래를 부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십사만 사천이 새 노래를 부름
요한계시록 14:1-8

1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2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3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6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14:1 또 내가 보니 보아라, 어린 양께서 시온 산에 서시고, 그분과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섰는데, 그들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14:2 또 내가 하늘로부터 많은 물소리 같고 큰 우레소리와도 같은 소리를 들었는데, 내가 들은 그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거문고소리 같았다. 

14: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데,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 밖에는 그 노래를 배울 수 없었다. 

14:4 이들은 여자들로 더불어 더럽혀지지 않고 정절이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어린 양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는 자들이며, 사람들 가운데서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첫 열매로 드려진 자들이다. 

14:5 그들의 입에는 거짓말이 없으니, 그들은 흠이 없는 자들이다. 

14:6 또 내가보니, 다른 천사 하나가 공중에 날아가고 있었는데, 그 천사는 땅에 사는 자들, 곧 모든 나라와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었다. 

14:7 그 천사가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너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이는 그분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다. 너희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분을 경배하여라." 라고 하였다. 

14:8 두 번째 다른 천사가 그 뒤를 따르며 말하기를 "무너졌다, 큰 성읍 바빌론이 무너졌다. 이 바빌론이 자신의 음행으로 빚은 진노의 포도주를 모든 나라들로 마시게 하였다." 라고 하였다. 


1. 십사만 사천

구원 받은 모든 사람들

본문 1절에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온산은 하늘나라의 산입니다. 어린 양은 예수님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시온산에 서신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양과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같이 서 있다고 했습니다. 또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십사만 사천 명은 구원 받은 성도들
입니다. 요한계시록 7:4절에서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라고 하는 데, 이것은 예수 믿어 구원받은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십사만 사천은 하나님의 내정수입니다.
열둘을 열두 배하고 천 배한 것이 십사만 사천입니다. 12 숫자는 만수(滿數)이고, 또 열두 배한 것도 만수입니다. 그리고 천 배 한 것은 많은 숫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천은 많은 숫자입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것도 딱 천 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숫자를 뜻하는 것입니다. 또 시편 90:4절에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천 년은 많은 숫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사만 사천 명이라는 것은 우리가 헤아리는 숫자로 십사만 사천 명이 아니고, 하나님의 내정수로서 많은 숫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의 수가 많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4절의 십사만 사천과 달리, 본문 14장에 나온 십사만 사천 명은 특별히 믿음 잘 지킨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고 간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 새 노래를 부른다고 하였고, 정절이 있다고 하였고,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했다고 하였으니, 믿음을 특별히 잘 지킨 십사만 사천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십사만 사천이라는 것은 많은 숫자라는 것입니다.

그 이마에 무슨 이름이 있다고 하였습니까?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 심령 속에 예수님과 하나님을 모시고 산 사람이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형상이 많이 이루어지고 아버지의 형상도 많이 이루어진 사람입니다.

새 노래를 부름

본문 2절에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났습니다. 뇌성도 같고 거문고 타는 소리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3절에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여기 하늘에서 많은 물소리 같은 소리, 뇌성 같은 소리, 거문고 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이 십사만 사천 명이 부르는 새 노래인 것 같습니다. 십사만 사천 명이 새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이와 같이 굉장히 크게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거문고 타는 것과 같이 아름답습니다. 십사만 사천 명이 새 노래를 그렇게 큰 소리로 부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새 노래’라는 것은 하늘나라에서 부르는 새 노래입니다. 은혜를 받아서 은혜 가운데서 부르는 노래가 새 노래입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 세상에서 늘 부르는 찬송을 불러도 은혜를 받아 심령이 새롭게 되어서 부르면 새 노래가 됩니다. 늘 부르던 찬송도 새 노래가 됩니다. 은혜를 받아서 성령으로 부르면, 늘 부르던 찬송도 새 노래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같은 예전부터 있던 찬송을 불러도, 새로운 노래가 됩니다. 새로운 은혜가 됩니다. 또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심령이 살아서 부르니까 새로 소생함을 얻는 노래가 됩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아서 부르는 찬송은 새 노래입니다.

물론 하늘나라에 가서 부르는 찬송은 새 노래입니다. 다 은혜를 받아서 성령으로 심령이 새롭게 되어서 부르니까 새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도 우리가 교회에서 부르든지 개인이 혼자서 부르든지 은혜를 받아서 은혜 가운데서 성령으로 심령이 소생하면서 부르는 찬송은 다 새 노래가 됩니다. 새 노래 부르는 자, 즉 세상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면 거기서도 새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성령으로 부르지 못하고 육신으로나 부르는 것은 새 노래가 아닙니다. 아무리 새로운 찬송을 지어서 새로운 곡조를 넣어 아름다운 음성으로 부른다고 해도 그것은 새 노래가 되지 못합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서 부르는 찬송, 은혜 가운데서 성령으로 부르는 찬송, 그것이 새 노래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새 노래를 부르기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도 새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21세기 찬송가’라는 찬송이 지금 나온다고 하는데, 그 찬송가에는 한국 사람이 지은 곡이 약 100곡이 포함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찬송가보다 곡목이 많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도현재 부르는 찬송가보다 약 150곡이 새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거기에 어떤 곡들이 들어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단에서는 지난 총회에서 그 새로운 찬송가를 안 쓰기로 하고, 또 개역개정판 성경도 안 쓰기로 했다고 합니다. 통합 측에서는 보류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찬송가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한 번 검토해 봐야 하겠습니다. 웬만하면 쓰는 것이 좋겠고, 정 한심하면 안 써야 될 것 같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한국 사람이 지은 것이 한 100곡 들어갔다고 하는데, 한국의 어떤 사람이 지은 것인지 알수 없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새 노래를 지었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믿음 없는 사람들이 괜히 명예 영광심으로 돈이나 벌려고 자기 이름이나 내려고 지은 곡이면 거기에는 신령한 뜻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알 수가 없습니다. 한번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정절이 있는 자

그 다음 본문 4절에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십사만 사천 명이 어떤 사람들이라고 했습니까?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세상과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했다는 뜻입니다. 음녀는 세상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17:1절에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이 여자는 세상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이 사람들은 세상과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 즉 참 믿음을 잘 지킨 자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한 자라고 했습니까? ‘정절이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의 정절을 지킨 사람입니다. 정절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신앙의 정절을 생명 내놓고 잘 지켜나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정절도 지켰고 신앙의 정절도 잘 지킨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특별한 자리에 나갈 자입니다. 우상에게 절한 것은 정절 지킨 것이 아닙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것은 정절 지킨 것이 아닙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짐승에게 표를 받지 아니하고 신앙을 양보하지 아니하고 생명 내놓고 신앙을 지켜 나간 사람, 다니엘과 같은 자가 정절이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에 있는 십사만 사천 명이 정절을 잘 지킨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인도를 따라가는 자

또 그 다음에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는 자입니다. 아마나 꼭대기, 스릴, 헤르몬산 꼭대기로 인도해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소돔 고모라나 아골 골짜기나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신앙입니다.
헤브론 산골이나 어디나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입니다. 험산준령, 험한 골짜기, 환난과 핍박 속으로 인도해도 잘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

그 다음에는 “사람 가운데서 구속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는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므로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23:19절에 “너희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는데, 처음 익은 열매는 하나님께 바쳐놓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몸을 바쳐 놓았고, 모든 것을 다 바쳐놓고 나가는 것입니다. 목숨도 다 바쳐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라 하시면 갈 예산하고 순교의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몸 바쳐놓고 순교의 신앙을 가지고 따라간 사람입니다.

거짓말과 흠이 없는 자들

본문 5절에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고 하였습니다. 흠이 없이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말이나 흠이 없이 하라는 것이 아니고 이미 없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이 없다는
것이고 또 흠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니 믿음을 잘 지킨 사람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믿음을 잘 지키고 구원을 많이 이루어나 가서 순교자의 신앙을 가진 자들인 것 같습니다.

입에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진실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지켰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어긋나는 말을 안했다는 것입니다.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닌 것을 옳다고 하면 그것이 거짓말입니다. 옳은 것을 옳지 않다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옳은 것을
바로 분별해서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바로 분별해야 하는데, 분별하지 못해서 그른 것을 옳다고 하고 또 옳은 것을 아니라고 하는 가운데 빠지면, 입에 거짓말이 있고 흠이 있는 자입니다. 모든 것을 바로 판단해서 ‘이것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다’, ‘이것은 옳다’, ‘이것은 흰 것이다’, ‘이것은 검은 것이다’, 또 ‘그것은 죽는 길이다’, ‘이것은 사는 길이다’라고 바로 분별해야 하고 또 바로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나가는 사람이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입니다. 거짓말이 없고 흠도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신앙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죽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죽어도 옳은 것은 옳다고 해야 합니다. 성경에 옳은 것은 옳다고 해야 합니다. 제 고집대로 하면 안 됩니다. 제가 한 번 고집 세운 것을 죽어도 양보 안 하는 것은 못 씁니다. 성경대로 주장을 해야지, 자기 고집대로 나가면 안 됩니다. 디도서 1:7절에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분내는 것 어떻습니까? 분내는 것도 흠입니다. 분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1:20절에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성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 참아야 합니다.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고집 부리지 말고 양보해야 합니다. 제가 한 번 주장했다고 해도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양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제 고집만 부리면 자기 혼자 나가야지 다른 사람과는 같이 나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고집부리지 마십시오.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양보하고, 그 다음에 성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참고 견뎌야 합니다. 에베소서 4:26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 번 분내면 며칠을 갑니다. 한번 화가 나면 며칠 동안씩 풀지 않습니다. 또 말도 안 한다고 합니다. 어떤 집은 한 번 분을 내면 부부간에도 말을 안 한다고 합니다. 아예 소 닭 보듯 한답니다. 소가 닭 보면 통하는 것이 있습니까? ‘저것은 닭이다, 소가 들어온다, 닭이 나간다’ 하면서 산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 열흘 동안씩 말 안 하는 집이 있고, 또 한 달 동안 말 안 하는 집도 있다고 합니다. 분을 풀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 해 동안 사돈하고 틀어져서 분을 풀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전에 캐나다 차주성 목사에게 갔다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부부가 캐나다로 이민갔는데, 사돈끼리 틀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자쪽 사돈이 먼저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 다음에 여러 해 있다가 부인쪽 부모가 또 온 모양입니다. 사돈이 온다고 하면 얼마나 기쁩니까? 여러 해 만에 만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오는 날 비행장에도 안 나가고, 그 주일에 교회도 안 나왔다고 합니다. 왜 안 나왔냐고 물어보니까, 사돈 보기 싫어서 안 나왔다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 사돈은 죽을 사(死)자 사돈입니다. 사돈이 오는데 그 전의 것은 다 풀고 서로 만나는 것이 옳지, 이런 경우가 무슨 일입니까? 그 다음에는 교회를 안 나옵니다. 차주성 목사님 교회에 나오지 않더랍니다. 아주 영영히 다른 곳으로 간 것입니다. 영영히 안 보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마귀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아니고 마귀 따라 가는 것입니다. 실수해서 분을 내도 그 다음에는 해 지기 전에, 즉 그 날이 다 가기 전에 다 풀어야 합니다. 자기는 실수 안 합니까? ‘하나님께서 내 꼴을 보고 참았겠네’ 하고 참아야 합니다.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성내지 아니하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고집이 센 사람은 그것이 문제입니다. 온유 해야 합니다. 여자들은 온유해야 합니다. 또 남자들도 고집 세면 안 됩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신부인데 고집 부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양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진리 문제는 죽어도 양보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지키다 죽어야 합니다. 진리 문제는 끝까지 지켜야 하고, 다른 것은 고집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고집부릴 필요가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아닌 것인데 말입니다. 손해를 좀 봐도 고집부리지 않고, 서로 용납하고 화목하면 좋아집니다. 서로 화목을 해야 합니다. 화목하지 않고 서로 싸우고 물고 찢고 재판하면 안 됩니다. 재판하면 쌍방이 다 망합니다.

성도 간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세상 법정에 가서 재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고전 6:1). 교회에 와서 판단 받으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 교회에 와서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목
사가 판결해 주는 대로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 뜻대로 안됐어도 좀 손해가 나는 것 같아도 순종하면 살 길이 생깁니다. 순종하지 않고 끝까지 재판하고 나가면 둘 다 망합니다. 갈라디아5:15절에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물고 먹으면 둘 다 망합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 교회에 와서 판결을 받아서 그대로 순종하십시오. 교회에서는 뇌물을 받거나 한편만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입각해서 화평하게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므로, 조금 자기 맘대로 안 되고 손해를 봐도 그대로 순종하면 큰 복을 받습니다. 재판을 끝까지 하다가 망한 사람이 많습니다. 형제간에 재판하다가 둘 다 망한 사람이 많습니다. 재판을 몇 년 하게 되면 그 비용이 자기 집을 다 팔아도 모자라게 됩니다. 집 한 채 있던 것을 가지고 재판하다가 몇 년 하게 되면 마지막에는 집 다 없어지고 맙니다. 재판 비용으로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변호사 비용으로 다 들어갑니다. 몇 천 만원, 몇 억 대까지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 팔아서 해도, 집 다 없어지도록 해결이 안 날 수 있습니다. 재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판결 받아서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2. 영원한 복음

본문 6 에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고 하였습니다. 천사가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날아
가면서 전한다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복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복음이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복음은 영원합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4복음이 있고, 성경이 다 복음입니다. 복된 소리라는 말씀입니다. ‘복된 소리’,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기쁜소식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은 헬라어 원어로 ‘유앙겔로스’라고 하는데 기쁜 소식이란 뜻입니다.

한연옥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자기가 지은 책을 ‘영원한 복음’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요한계시록에 있는 이 영원한 복음을 자기가 발견해서 책에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선전을 합니다. 그가 장로라고 합니다. 한 번은 삼각산에 가니까 천막을 치고 한연옥 장로가 부흥회를 인도한다고 합니다. 한 4, 50년 전의 일입니다. 그래서 ‘한연옥 좀 만나자’ 하고 갔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쓴 것이 무슨 영원한 복음이냐? 영원한 복음은 우리 성경이 복음이지.” 하면서 제가 몇 가지 따졌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말 듣게 생겼습니까? 한연옥 장로의 부인이 그 아들하고 봉원동에 살았습니다. 그 아들이 자기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는데 몇 년 전까지 살아서 대문간에 나와 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한 1, 2년 전부터 안 보입니다. 아마 세상 떠난 것 같습니다. 자기가 기록한 것이 영원한 복음이라고 한 것이 다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에 영원한 복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계시를 받아서 영원한 복음을 기록을 해 놓았다고 하면 자기가 기록한 책이 성경과 같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얼마나 잘못됐습니까? 하여간 잘못된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런데 미혹을 받으면 안 됩니다. 또 기도하면 병 다 낫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기도하면 병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낫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또 자기가 스스로 기도해도 나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기도해도 병 나을 수 있고, 또 사경회 때 병 낫는 기도 안 해도 하나님 말씀 받을 때에 병 낫는 사람도 많습니다. 말씀 받을 때에 육신의 병이 낫는 사람이 많습니다.

영원한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복음이라는 것은 복음인 성경책이 영원불변의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책이 영원한 복음입니다. 그런데 왜 천사가 날아가면서 전하느냐 하면,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아마 많은 사람이 다 순교 당하고 복음 전하는 사람이 없는 때에 천사가 복음을 전하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됩니다. 천사가 복음 전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큰 핍박이 일어나서 교회가 다 없어지고 전도할 사람이 없는 때에 혹시 천사가 어떤 사람에게 나타나서 복음을 전할 수도 있습니다. 천사의 전한 복음을 듣고 믿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는 전도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복음은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여간 여기에 대한 심부름을 바로 해서 여러 나라에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 일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천사도 전하고 우리도 전하고 복음 전하는 데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7절에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기한이 이제는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심판하실 기한이 옵니다.
정해놓은 것이 옵니다. 정해놓은 시간이 반드시 올 것인데, 여기서는 벌써 왔다고 했습니다. 여러 족속에게 대한 심판의 날이 왔다는 것입니다.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으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경배해야 합니다. 다른 것을 경배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만 경배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합니다. 세상과 더불어 더럽히지 않아야 합니다.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야 합니다.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바친 바 된 성도가 되어서 이 세상을 이겨야 하겠습니다.


3. 세상의 심판

본문 8절에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 가서는 이 세상이 다 하나님을 떠나서 음행하는 가운데로 빠집니다. 모든 나라가 음행하는 가운데로 빠지고 하나님을 떠납니다. 세상과 음행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이 세상 나라가 무너졌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나라가 진노의 포도주를 먹였습니다. 취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하는 길로 이 세상 나라가 다 나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심판을 받아 다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이 큰 성 바벨론인데,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다 무너질 날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무너질 날이 가까운 줄을 알고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십사만 사천 명처럼 준비를 잘해야 하겠습니다. 무슨 노래를 부릅니까? 새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했습니까?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신앙의 정조를 잘 지키고, 그 다음에는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것입니다. 자기 좋은 데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이나 골고다나 따라가는 것입니다. 심판하는 자리까지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바쳐 놓고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몸과 생명과 모든 것을 다 바쳐놓고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세상 나라가 심판을 받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 앞에 가서 칭찬과 영광과 상급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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