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1일 월요일

요한계시록 19:11-21 예수 재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 재림
요한계시록 19:11-21

11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17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 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19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21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흰 말과 그 위에 탄 분이 계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신실과 진실이시다. 그분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신다. 

19:12 그분의 눈은 불꽃 같고 그분의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들이 있으며, 이름 쓴 것이 있으니 그분 외에는 아무도 아는 자가 없다. 

19:13 그분은 피로 물들여진 옷을 입으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정결한 고운 베옷을 입고 흰 말들을 타고 그분을 따르고 있었다. 

19:15 그분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는데, 그것으로 나라들을 치실 것이며,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시며 또 친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실 것이다. 

19:16 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님' 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19: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 있었는데, 그가 큰 소리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들에게 외쳐 말하였다. "너희는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9:18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들 위에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이나 종이나 작은 자나 큰 자 모두의 살을 먹어라." 

19:19 또 내가 보니, 그 짐승과 땅의 왕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말 위에 타신 분과 그분의 군대에 맞서 전쟁을 하기 위해 모였는데, 

19:20 짐승과 그 앞에서 표적들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가 함께 붙잡혔다. 이 거짓 선지자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의 우상들에게 경배하는 자들을 표적들로 미혹하던 자이다. 그 둘이 산 채로 유황이 타는 불못에 던져졌다. 

19:21 그 나머지는 말을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오는 검에 죽임을 당하였으며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를 채웠다.


1. 예수 재림

백마 타고 오심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11절에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백마를 타고 나오셨습니다. 흰색은 하나님께 속한 빛이고, 말은 전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있을 때,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는 나귀를 타고 가셨습니다. 나귀는 평화의 상징이고, 말은 전쟁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심판하기 위해서 오십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구름타고 오신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말 타고 왔다고 상징적인 표현을 하여, 세상 심판을 위해서 오신다는 나타냅니다.
말에 대해서, 열왕기하 6:17절에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고 하였습니다. 불말과 불수레가 엘리사를 둘렀더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전쟁으로 아람군대를 다 승리하게 해주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이사야 36:8절에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나는 네게 말 이천 필을 주어도 너는 그 탈 자를 능히 내지 못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천 필을 주어도 탈 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병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은 전쟁하는 데에 필요한 것입니다. 옛날부터 말을 타고 전쟁을 했습니다. 고려와 신라와 백제 전쟁할 때도 말을 타고 전쟁을 했고, 옛날 엘리야 때부터, 또 옛날 모세 때부터 말을 전쟁을 위해서 사용한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요새는 말 타고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 자동차, 이런 것을 타고 하는데, 옛날에는 비행기나 자동차가 없으니까 말을 타고 전쟁을 했습니다. 
모세 때는 주전 1500년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애굽군대가 마병, 또 특별병거를 가지고 따라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홍해바다에 다 따라왔다고 했습니다. 그 때도 벌써 말을 가지고 전쟁을 한 것입니다. 말 밖에는 타고 갈 짐승이 별로 없습니다.
소를 타고 가서는 전쟁이 안됩니다. 나귀를 타고 가도 말보다 못해서 전쟁에 승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부 말을 타고 한 것 같습니다. 또한 아람 군대가 와서 엘리사를 둘러쌓을 때, 사환 게하시가 벌벌 떠니까, 엘리사가 이 사환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불말과 불수레가 엘리사를 두른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아람 군대가 아무리 전쟁을 해도 하나님의 군대한테는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은 전쟁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또한 본문에 말 탄 자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말씀대로 심판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말 타고 오는 것이 아니고 구름타고 오시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쟁을 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흰 말을 타고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백색은 하나님께 속한 색 또는 빛이고 승리의 상징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흰 말을 타고 오신 것입니다.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신 이

본문 12절에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눈이 불꽃 같다는 것은 사람의 심령 골수를 다 통찰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골수까지 마음까지 다 들여다 보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눈입니다. 요새 X-ray로 들여다보면 다 보이지 않습니까? X-ray를 비추면 속의 내장을 다 볼 수 있습니다. 또 요새 MRI라는 것도 있고 CT라는 것도 나왔는데, 그것으로 찍으면 속에 있는 것을 다 찍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음파 촬영장비도 있는데, 그 초음파 장비로 찍으면 몸 속에 있는 것을 다 압니다. 간이 어떻게 되었는지, 담낭이 어떻게 되었는지 다 안다는 것입니다. 다 들여다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은 불꽃 같아서, X-ray나 MRI와 같은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사람의 전체를 다 들여다봅니다. 마음까지도 보십니다. X-ray나 MRI와 같은 것들은 사람의 마음은 들여다보고 찍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마음까지 다 통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는 이름을 가지심

예수님의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면류관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면류관을 받으실 일을 많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밖에는 아는 자가 없습니다. 성경에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도들도 믿음을 지켰으면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7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받는 자 밖에는 알 사람이 없습니다. 이기는 자에게 새 이름과 흰 돌을 주시는데, 그것은 자기 밖에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자기만 아는 것이지, 다른 사람은 잘 모릅니다. 믿음을 잘 지키고, 승리하는 생활하면 하나님께서 새 이름을 주시고 흰 돌을 주시는데, 그것은 자기만 안다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것은 자기만 안다는 것입니다. 또 새 생명의 역사가 있는 것도 자기만 압니다. 예수님께서도 승리하고 받은 것이 많이 있으실 것 아닙니까? 그러나 자기 밖에는 아는 자가 없는, 즉 자기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도적질 할 마음을 품고 다니면 다른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그것도 자기 밖에는 알 사람이 없습니다. 그와 같이 승리한 사람은 자기 밖에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비밀, 생명, 영적 능력을 다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승리하신 예수님께 자기 밖에 알 사람이 없는 하나님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다른 이는 모릅니다.

본문 13절에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피 뿌린 옷을 입었다는 것은 원수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심판하느라 피가 튀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로고스이십니다.
요한복음 1: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곧 예수님입니다.

하늘의 군대가 따라옴

본문 14절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군대라는 것은 천군입니다. 천군 천사가 있는데,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세마포는 의로운 것을 상징합니다. 성도의 세마포는 의로운 행실이라고 하였습니다(계 19:8). 이 천사들, 즉 천군도 이렇게 백마를 타고 예수님을 따라오는데, 세마포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깨끗한 천사들이 백마를 타고 예수님을 따라오는 것은 심판하러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예수님을 도와서 심판하기 위해서 하늘에 있는 군대도 백마를 타고 왔습니다.
성도들도 같이 온다고 그랬습니다. 유다서 14-15절에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칠 세 손 에녹이 수많은 천사와 같이 예수님과 함께 재림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천군천사도 같이 오는 것이고, 수많은 성도들도 함께 오는 것입니다.
와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백마를 타고 심판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심판하심

본문 15절에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온다고 하였는데,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국을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라고 하였는데, 만국을 심판할 때에 철장으로 다 때려 부순다는 것입니다. 철장으로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처럼 깨뜨린다는 것입니다. 철장은 쇠 지팡이와 같은 것입니다. 쇠로 때려 부수는 쇠망치와 같은 것입니다. 쇠 파이프도 단단하지만, 파이프는 속이 비어 있습니다. 그러나 철장은 속이 비지 않고 전체가 다 쇠입니다. 그런 것으로 질그릇을 깨뜨리면 질그릇이 어떻게 당하겠습니까? 한 번 툭 치면 다 깨질 텐데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는 철장으로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처럼 다 깨뜨려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 때 성도들도 같이 세상을 깨뜨립니다. 요한계시록 2:26-27절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자는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다 파괴시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권세를 가지고 계시고, 또 믿음 지키면서 이긴 성도도 철장을 가지고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처럼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만왕의 왕은 예수님이십니다. 만주의 주도 예수님이십니다. 세상에 왕이 많지만, 그 모든 왕 가운데 왕은 예수님이십니다. 왕을 통치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또 세상에 주라고 하는 자가 많지만, 모든 주의 그 통치하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2. 새의 잔치

본문 17-18절에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 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새들에게 잔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와서 고기를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고기 먹으라고 하는 것이냐면, 18절에 있는 왕들의 고기입니다. 말 타고 전쟁하다가 장군들과 말들이 다 죽었으니까 와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자유한 자의 고기도 먹고 종들의 고기도 먹으라는 것입니다. 새들이 와서 먹고 배부른다는 것입니다. 새 잔치입니다. 새 들이 그 때 아주 기뻐할 것 같습니다. 고기를 얼마나 많이 먹겠습니까? 다 죽었으니까, 그 고기를 여러 날 동안 먹어야 될 것 같습니다. 새들이 살찐 사람을 보면 기뻐서 짹짹하며 돌아갑니다. ‘요거 내 고기, 이거 잔치감이다’라고 살찐 사람들에 대해 새가 더 기뻐할 것 같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다 빼빼 마른 사람만 있었는데, 요새는 마른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다 살이 쪘습니다. 새들이 살찐 사람을 보고 기뻐합니다. 그것은 잔치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새의 잔치감들을 새들이 먹을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때 다 죽게 되면, 새들로 하여금 다 와서 그 고기를 먹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참해진다는 것입니다.

3.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산 채로 불에 던져짐

본문 19-20절에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라고 하였습니다.

19절에 “짐승이 잡히고”라고 하였고, 20절에는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운다는 것입니다. 짐승이라는 것은 적기독 국가입니다. 적기독 세력, 즉 기독교를 대적하던 그 짐승의 나라가 하나님께서 잡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는 타락된 기독교를 가리킵니다. 타락된 기독교가 적기독 국가 앞에서 앞잡이 노릇을 하고 선전하며 미혹하는 일을 합니다.

적기독 국가는 무신론 나라이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곳입니다. 신을 부인합니다. 귀신도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님도 부인하고, 사람의 영혼도 부인합니다. 사람을 물질과 같은 존재로 취급합니다. 바로 유물주의입니다. 오히려 사람보다 물질을 더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물질만 같이 나누어 주면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질 때문에 사람들이 죄를 짓는다고 유물론자들이 말을 합니다. 그래서 부자들의 재산을 다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죄를 안 짓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을섬기는 유신론입니다. 유물주의과 유신론은 합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는 사람들 하고 없다는 사람을 어떻게 합합니까? 유물주의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고, 기독교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이니, 합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절대 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목사들이 유물주의 국가에 가서 그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북에서도 김일성의 공산주의 국가인데, 많은 목사들이 가서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공산주의는 성경에 맞는다고 하면서 성경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공산주의가 성경적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하고 공산주의가 딱 맞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갖다 붙이면서 맞는다고 하느냐면, 초대교회의 유무상통을 예로 듭니다. 밭과 전장이 있는 사람이 팔아서 사도의 발앞에 두니까, 나눠줘서 물질을 다 같이 평등하게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산주의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초대교회의 유무상통과 같은 좋은 사상이라는 것이 맞습니까?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 안에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말씀하는 유무상통은 백성들이 다 팔아서 사도의 앞에 갖다 두고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 하나님께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는 그것과 반대입니다. 갖다가 바친 것이 아니라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빼앗아서 나누어 가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45절의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라고 번역된 개역성경을 표준새번역 성경에서는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나누어 주니라”고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나누어 가지니라.”로 표준 새번역 성경에서 번역을 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우리가 반대를 했습니다. 그것은 공산주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안에도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목사들 가운데서도 그러합니다. 요새 이북을 지지하고 이북을 좋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목사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북에서 공산주의는 기독교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 정부를 지지하고 받들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또 “이승만은 애국자가 아니고 나라를 팔아먹는 자다. 김일성은 애국자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이승만이 잘못되었다고 했느냐면, 대한민국을 갈라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갈라서 이남만 독립을 했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은 가르지 말라고 했다. 가르지 말라고 한 것이 진짜다. 솔로몬 재판 때 갈라달라고 한 것은 자기 아이 어머니가 아니고, 가르지 말라고 한 것이 진짜 아이 어머니이다. 그래서 김일성은 가르지 말라고 했으니까 진짜 애국자고,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독립한 것은 갈라놓은 것이니까 애국자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여간 목사들이 갖다 붙이는 데는 아주 능란합니다. 그것을 왜 또 솔로몬 재판에 갖다 붙여서 김일성을 애국자라고 하고 이승만 대통령은 애국자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또 백성들은 그런가보다 하고 속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이렇게 그 짐승 앞에서 백성을 유혹해서 짐승에게 복종시키는 자입니다.

본문 20절에 거짓 선지자들을 ‘미혹하던 자’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을 미혹시켜서 그 짐승을 따라가게 만든 것입니다. 참 희한한 것입니다. 목사들이 무신론 국가를 따라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 성경에 맞는다고 주장합니다. 요새도 한국 교회 목사들 가운데 그런 사람 꽤나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정신이 있는 것입니까? 정신없이 그저 정권에 아부하고, 그저 가서 붙어서 자기가 유익을 좀 보려고 하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거짓 선지자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성경을 바로 가르치지 못하고 성경을 거짓말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거짓말로 갖다 붙여서 짐승을 따라가게 만드는 것이 거짓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을 받지 않아야 됩니다.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적으로 미혹을 해서 짐승을 따라가게 하던 거짓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라고 하였는데, 산 채로 던진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유황불이라는 곳은 지옥인데, 산 채로 지옥에 갔겠습니까? 이것은 쇠퇴해서 점점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망한다는 뜻입니다. 점점 쇠퇴해서 약해지고 점점 세력이 없어져서 힘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고, 힘있게 생생하게 나가다가 갑자기 탁 망한다는 것입니다. 세력을 쓰고 권세가 있었는데, 갑자기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운다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고 하였습니다. 모두 다 새의 잔치감들입니다. 짐승과 그 앞에서 미혹하던 거짓 선지자는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죽입니다. 예수님께서 심판하시는데, 말씀으로 심판 하신다는 것입니다. 검으로 죽인다는 것은 말씀으로 심판한다는 것이고, 심판하매 모든 새가 그 고기를 먹고 배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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