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랑을 다시 찾으라
요한계시록 2:1-7
요한계시록 2:1-7
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2:1 너는 에베소에 있는 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써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로 거니시는 분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2:2 나는 네 행위들과 수고와 인내와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사도가 아니라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과,
2:3 네가 인내하는 것과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낙심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2:4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있으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2: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하여라.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2:6 그러나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들을 미워하는구나. 나도 그것을 미워한다.
2:7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자,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겠다."
2:2 나는 네 행위들과 수고와 인내와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사도가 아니라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과,
2:3 네가 인내하는 것과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낙심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2:4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있으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2: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하여라.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2:6 그러나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들을 미워하는구나. 나도 그것을 미워한다.
2:7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자,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겠다."
금년에는 우리가 일곱 교회에 대해서 본받아서 그대로 금년에 이루어 나가는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일곱 교회에 대해서 차례로 한 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교회는 에베소 교회인데, 둘째는 서머나, 셋째가 버가모, 넷째가 두아디라, 그 다음에는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이렇게 일곱 교회인데,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다시 찾으라, 하는 주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것을 책망했습니다.
1. 처음 사랑을 잃어버림
본문 1절에,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별을 붙잡았다고 했는데, 별은 하나님의 교회의 사자, 즉 교역자이고, 일곱 금 촛대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금 촛대 사이에 다닌다는 것은 교회 사이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뜻이고, 별을 붙잡았다는 것은 교역자를 붙잡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뜻입니다.
본문 2절에,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잘한 게 많았습니다. 주를 위해 수고한 것, 인내, 참고 견딘 것, 또 악한 자를 용납지 아니한 것, 죄를 묵인하지 않고 드러낸 것, 또 자칭 선지자라고 하되 아닌 자를 드러낸 것 즉 거짓 선지자 드러낸 것, 다 잘한 것입니다.
본문 3절에는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고 했는데, 에베소 교회는 잘 참았고 열심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본문 4절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 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책망할 것은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처음 사랑을 잃었느니라” 하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었다는 것을 책망했습니다. 다른 것을 다 잘해도,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랑이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인데, 다른 것을 다 잘해도 신랑을 사랑하는 사랑이 없어졌다고 하면, 그건 전부 낙제 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책망하노라 하신 것입니다. 처음 사랑 잃어버렸으니까 신랑 되는 예수님에게는 낙제입니다. 낙제가 된 것. 그러면 처음 사랑이 무엇인가? 처음 사랑에 대해서 찾아보겠습니다.
2. 처음 사랑
결혼 때의 사랑
예레미아 2장 2절에,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혼 때의 사랑이 처음 사랑이라고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처음 만나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광야 씨 뿌리지 못하는 땅, 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으로 하나님을 따라갈 때에도, 끝까지 잘 따라갔습니다. 그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초월한 사랑
사도행전 2장 44-45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물질을 초월한 사랑. 사랑하면 물질은 가게 되어 있습니다. 물질을 초월한 사랑입니다.
고난을 초월한 사랑
골로새서 1장 24절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해서 받는 고난을 기뻐한다. 고난을 기쁘게 받는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있으면 모든 고난을 다 기쁘게 받으면서 나갑니다.
생명을 초월한 사랑
데살로니가전서 2장 8절에,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목숨까지 즐겁게 내놓으면서 주님을 따라가는 사랑. 또 데살로니가 교인을 위해서 바울은 목숨까지 내놓고 즐거움으로 교회를 위해서 봉사했습니다. 이것이 처음 사랑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했는데, 먼저 처음 사랑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처음 사랑,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4장 9-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그랬습니다. 얼마나 큰 사랑을 하셨나?그 아들 독생자를 우리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이면서 화목제물을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감격하고 감사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에게서 간절히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너무 감사해서,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고, 그 사랑에 감격하는 신앙, 그러므로 예수님을 또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앙, 그 다음에 사람을, 모든 성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앙, 예수님의 사랑 가운데 사랑을 먼저 알고, 그 사랑 가운데 들어가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이 진정한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성도가 참 성도입니다. 그 사랑의 세계를 잃어버렸다고 하면, 촛대를 옮긴다고 하셨습니다.
3. 처음 사랑을 다시 찾으라
어디서 떨어졌는가 생각하고 회개하라
본문 5절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촛대를 옮기리라. 네가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처음에 사랑한 그 사랑을 가지라 그 말씀입니다. 처음 사랑의 행위.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감사해서 이 몸 바칩니다 하는 그 처음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진정한 사랑이 있는 사랑. 이 사랑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떨어졌느냐? 그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회개치 아니하고 처음 사랑 잃어버린 채로 그대로 나가면, 어떻게 한다고 그랬습니까?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생명권을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생명권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촛대 옮기면 생명권이 옮겨지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남습니다. 생명권이 중요한 것인데, 교회는 생명이 중요한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는 생명권이 없습니다. 다 옮겨가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남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성도는 생명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껍데기만 남은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사랑을 다시 찾으라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떨어졌나, 그것을 찾아보고, 찾으라는 것입니다. 왜 떨어졌나. 뭘 하다가 떨어졌나. 대개는 다 어디서 떨어지나 하면, 세상을 사랑하다가 떨어집니다. 세상 사랑. 세상에 있는 것 사랑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요한1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세상과 짝하는 것은 간음하는 여자와 같다고 야고보서 4장 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다가 그만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신랑만 사랑해야 되겠는데 다른 것을 사랑하니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릴 것 아닙니까? 신랑되신 예수님만 사랑해야 되겠는데, 다른 것을 사랑하니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제 말세에 가서는, 쾌락을 사랑 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한다고 그랬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4절에,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이 세대가 말세가 될수록 쾌락주의로 나갑니다. 향락주의. 쾌락주의. 시대가 전부 타락이 됩니다. 앞으로 점점 더 쾌락주의로 나가다가 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교회도 쾌락주의로 나갑니다. 열린 예배라는 것은 쾌락주의가 교회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열린 예배가 교회에 들어와서 육신의 정욕주의, 오락주의, 쾌락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디서 떨어졌는가 한 번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쾌락주의로 나가다가 떨어졌나, 세상을 사랑하다가 세상주의로 나가다 떨어지지 않았나. 또는 죄를 미워하다가, 요한계시록 2장 2절에 보면,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라고 그랬는데, 죄를 미워하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에베소 교회는 죄를 미워하다가 사람까지 미워했다는 것이고 버가모 교회는 사람을 사랑하다가 사람의 죄까지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거짓 선지자를 발견해서 용납하지 않고 거짓된 것을 드러내고 진리를 세우는 일, 그것은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를 드러내서 그것을 제거시키는 것은 마땅히 해야 될 일인데, 그만 그 일을 하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무엇을 하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는지,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알고, 처음 행위를 다시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것은 이제 그 세상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또 향락주의로 나가고, 이것 하다가 떨어졌는가. 또 거짓 선지가 발견해서 죄를 미워하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또 시간을 많이 빼앗겨서, 이 거짓 선지자 발견하고 또 이제 다른 거 여러 사업 많이 하고 열심 있게 돌아가고 이 일을 하다가, 잘 한 것은 잘한건데, 그 일을 하다가 그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찾아봐야 됩니다. 또 한 가지는,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겨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찾아봐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 빼앗기면 다 빼앗깁니다. 기도하는 시간 빼앗기면 처음 사랑도 잃어버리고 믿음도 잃어 버리고 사랑도 잃어버리고 다 잃어버립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겼다가 그것 때문에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세상 따라가다가, 기도하는 시간 빼앗겨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또는 게을러서 기도하는 시간 빼앗겨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또 교만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잘못된 것을 발각시키고 하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찾아 봐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라고 한 것을 보면, 에베소 교회는 잘했습니다, 잘한 건 잘한 건데,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고 했어야 되는 건데, 그 일을 하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으니까, 잘한 것 때문에 망하게 생겼습니다. 그 잘한 것 때문에 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못한 것 때문에 망하는 사람보다 잘한 것 때문에 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만하다가 처음 사랑 잃어버리면 못한 사람보다 더 못한 겁니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지혜로 무엇을 하려다가 또 떨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지 않고 우상 따라가고, 자기 지혜 따라가고, 돈 따라가고. 또 집 따라가고. 그러다가 처음 사랑 잃어버려서 책망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회개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처음 행위. 처음에, 처음 사랑이 있을 때의 행위를 가지라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 가운데 깊이 들어가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항상 거하는 것을 다시 찾으라는 것입니다.
우선 기도 시간부터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되고,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알지 말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항상 자기가 부족한 줄 알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사모하고 진정한 처음 사랑을 가지고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물질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물질을 바치더라도 그러나 몸을 바치는 데까지 나가는 이 처음 사랑을 다시 찾으라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떨어졌는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왜 떨어졌는가. 기도하지 않다가, 세상 일에 바빠서, 육신의 나태함, 게으름, 그 모든 것을 찾아서 회개해야 됩니다. 잘 찾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어보십니다. 베드로에게,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느냐’ 이것을 여쭈어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하며 고백하는, 주님의 사랑 속에 깊이 들어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 그 사랑에 감격해야 됩니다. 감격에 넘쳐서 그 다음에는 회개도 하고 주님 앞에 바치기도 하고, 물질도 바치고, 마음도 바치고 몸도 바치고,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생각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촛대를 옮긴다고 했습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생명권을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껍데기만 남는다는 것입니다. 촛대를 옮기면 껍데기 교회가 됩니다. 껍데기 교회의 신자는 생명권이 없으니까. 생명의 알맹이가 다 빠져나갔으니까 껍데기 신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다 옮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6절에,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을 가지라고 하니까, 또 니골라당까지 사랑할까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즉 니골라당을 미워하는 것은 잘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는 것은 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죄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시편 97편 10절에,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가지라고 하니까 또 악까지 사랑할까봐, 죄까지 사랑할까봐. 처음 사랑을 회복한 사람은 죄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죄까지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니골라당은 진리에서 떠난 당파입니다. 그것을 미워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죄까지 사랑하고 분별 못 하고 나가면 안 됩니다. 잘못된 것은 책망해야 되고, 잘못된 것은 사랑하면 안 됩니다.
4.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자에게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심
본문 7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라는 것은 들을 귀, 신령한 귀가 있는 사람은 이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신령한 귀가 열려야 됩니다. 신령한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귀는 귀가 아닙니다. 신령한 귀가 없는 사람입니다. 신령한 진리의 말씀을 들을 줄 모르는 귀는 그건 귀가 아니고 귀때기입니다. 귀때기 압니까? 소 귀때기 같은 것, 당나귀, 토끼 귀때기 같은 것입니다. 신령한 말씀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귀라는 것입니다. 신령한 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했는데, 이기는 자라는 것은 처음사랑을 다시 가지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고, 잃어버렸다가도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다시 찾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거나, 잃었다고 해도 다시 찾으면 이기는 자가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무엇을 준다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낙원에서 살게 됩니다. 낙원, 이 세상에서 살지만 그 사람이 사는 세계는 낙원입니다. 또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습니다. 생명의 과실을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생명 과실을 먹으면 생명이 점점 자라납니다. 힘을 얻고 또 자라나고 생명나무 과실을 먹어야 자라납니다. 이겨야 먹습니다. 즉 처음 사랑의 세계가 생명의 세계니까, 처음 사랑을 가지면 벌써 생명의 세계에서 사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이 생명의 과실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에서 사니까 생명의 과실을 먹게 됩니다. 그 사람이 사는 곳은 낙원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그랬습니다. 거기가 낙원입니다. 처음 사랑을 가지고 사는 사람의 사는 곳은 낙원입니다. 하나님이 거기 같이 계십니다. 또 하나님의, 예수님의 사랑 가운데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생명나무의 과실, 이기는 자, 처음 사랑을 다시 가지는 자, 잃어버리지 않고 있는 자, 그런 사람은 생명의 세계에서 사니까 생명의 과실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과실이라는 것은 생명의 역사가 있는 그 행위, 생명의 역사가 있는 그 언행심사, 그것이 다 생명의 과실입니다. 속에 생명의 역사가 있는데, 그 생명의 역사가 입으로 나가고 행동으로 나가고 또 마음으로 나가고 생명의 과실,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즉 말해서 사랑이 나간다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이 나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가운데 살면서 그 사랑이 자기에게 역사하여 주님의 사랑 가운데 깊이 들어가면 자기도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사랑의 세계 속에서 사니까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꿀에다가 인삼을 오래 담가두면, 속에 꿀이 다 들어갑니다. 그거 먹으면 인삼도 먹고 꿀도 먹는 것이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깊이 들어가서 있으면, 자기 자체가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꿀에다 담가 놓았던 인삼을
몇 개 사왔습니다. 그래서 먹어보니까 인삼은 인삼인데 꿀과 같이 달았습니다. 전 인삼이 몸에 안 맞는다고 해서 조금 먹다가 누구 주고
말았습니다. 하여간 예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면 그 사람이 사랑의
사람이 될 것은 정해놓은 것 아닙니까? 사랑이 다 배어들어가니까 말입니다. 인삼에 꿀이 들어가는 것처럼 다 배어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 다음에 사랑의 역사,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그건 생명나무의 과실, 즉 그
사람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건 생명의 열매입니다. 그 생명의
열매는 먹으면 자기도 참 생명의 역사가 더 커지고, 다른 사람도 그
생명의 역사를 바라보기만 해도 상당히 약재료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처음 사랑, 금년에 처음 사랑을 가진 교회, 처음 사랑을 가진 성도,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저희들이 되어서 진정으로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생명나무의 낙원에서 사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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