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랑을 찾으라
요한계시록 2:1-7
요한계시록 2:1-7
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1. 에베소 교회가 받은 칭찬
본문 1절에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라고 하였습니다. ‘일곱 별’은 교회의 사자를 가리키며 ‘일곱 금촛대’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고 교회의 사자를 친히 오른 손에 붙들고 촛대 가운데 다니시며 홀로 주장하십니다.
본문 2절에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행위가 좋았다고 했습니다. ‘네 행위와 수고와’라는 것은 에베소 교회에 칭찬받을 만한 일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수고를 많이 한 에베소 교회입니다. 또 ‘네 인내’라고 하였는데, 참고 견딘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행위가 좋고, 주를 위하여 수고를 많이 하고, 참고 견디는 것을 잘하였습니다. 그 다음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악한 자가 들어오고 교역자 가운데 악한 자가 있으면 교회를 다 부패시키기 때문에 용납지 아니한 것을 잘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라고 하였는데, ‘자칭 사도’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사도입니다. 그런 자들이 많이 생겼고 그 거짓된 것을 다른 사람 앞에 알지 못하게 했는데, 그것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다 드러낸 것이 잘한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잘 참고, 또 잘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과 열심히 모든 것을
잘한 것도 예수님께서 아신다고 했습니다. 인정해주신다는 것입니다.
2. 에베소 교회가 받은 책망
처음 사랑을 잃어버림
본문 4절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것 한 가지를 책망하셨습니다. 잘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책망은 한 가지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느니라”고 했습니다. 처음 사랑 잃어버린 것은 아주 중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촛대를 옮기는 죄입니다. 5절에는 “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였습니다. 촛대는 교회인데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교회의 영권을 다 옮
겨간다는 뜻입니다. 생명권을 옮겨가면 영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지고 껍데기만 남습니다. 처음 사랑 버린 것이 큰 죄가 되었습니다.
본문 5절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였습니다. 촛대 다 옮겨 간다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이 무엇인가?
1)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사랑
그러면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는데, 처음 사랑이 무엇입니까? 예레미야 2:2에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결혼 때의 사랑 …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기억하노라”고 한 것이 처음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사랑, 처음 은혜 받을 때의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처음 받았습니다. 씨 뿌리지 못하는 광야를 통과할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처음 은혜 받을 때의 사랑, 처음 하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이 귀한 것이 발견되고, 처음 그 은혜 받은 때 감격이 넘쳐서 하나님께 몸 바치고자 하는, 그 서약한 처음 사랑, 찬송가에 있는 말과 같이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는 사랑, 구속의 은혜에 감격해서 늘 눈물로 지내고 감격해서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는 하나님께 몸 바치는 사랑이 처음 사랑입니다. 그 처음 사랑이 아주 귀한 사랑입니다.
2) 물질을 초월한 사랑
그 다음에 무엇이 처음 사랑입니까? 사도행정 2:45-46에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는 유무상통이 처음 사랑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랑은 물질을 초월한 사랑입니다. 너무 감사해서,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 줄 알고, 이제는 하나님으로 살기 위해서 물질을 파는 것입니다.
재산과 소유가 있는 사람은 다 팔아서 사도의 발 앞에 갖다 주었습니다. 사도는 그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것은 물질을 초월한 사랑입니다. 물질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물질을 초월한 사랑이 처음 사랑입니다.
재산과 소유가 있는 사람은 다 팔아서 사도의 발 앞에 갖다 주었습니다. 사도는 그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것은 물질을 초월한 사랑입니다. 물질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물질을 초월한 사랑이 처음 사랑입니다.
3) 고난을 초월한 사랑
그 다음은 골로새서 1:24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고난을 초월한 사랑입니다. 고난을 기쁨으로 받는데, 교회를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을 자기 몸에 채운다는 것입니다.
4) 생명을 초월한 사랑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2:8에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목숨까지 주기를 즐겨하는 사랑, 생명을 바치는 사랑이 처음 사랑입니다.
처음 사랑은 물질초월, 고난초월, 생명초월하여 생명까지 주기를 즐거워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처음 은혜 받은 사람들은 그 때 다 생명 바치기로 하나님께 서약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생명 하나님께 바칩니다.” 하고 너무 감사해서 서약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처음 사랑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이유
그런데 이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너희가 잃어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랑, 처음 은혜 받을 때의 사랑, 물질을 초월한 사랑, 수고를 초월하는 사랑, 생명을 초월하는 사랑, 이것이 처음 사랑인데, “이것을 너희가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그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1)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않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림
어디서 떨어졌는가?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거짓 선지자들을 시험해서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은 다 잘했는데, 그렇게 하다가 처음 사랑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또 니골라 당을 미워했는데, 니골라 당을 미워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 떨어진 것 같습니다.
악한 자를 용납하면 안 됩니다. 또 거짓 선지자를 용납하면 안 됩니다. 거짓 선지자를 발견할 줄 알아야 되고, 그 거짓된 것을 발견하고 드러내서, 자기도 따라가지 않고, 다른 사람도 안 따라가게 해야 됩니다. 그것은 아주 잘한 것입니다. 또 니골라 당은 아주 악한 자들인데 그것을 미워하는 것, 그것도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악한 자를 악하다고 드러내는 일은 옳습니다. “악한 자도 다 괜찮다, 사랑한다,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한다”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사람 따라가면 안 된다”라고 한 것은 잘했는데, 그렇게 하다가 그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큰 문제입니다. 또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면서 사람들을 다 사랑하다가 그 다음에는 진리를 잊어버립니다. 신앙을 잃어버리는 교회도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나 악한 자나 니골라 당이나, 이것들의 잘못된 것을 시험해서 거짓된 것을 드러내서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여 못 따라가게 하고 안 따라가게 하는 것은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바람에 처음 사랑을 잃어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되 죄는 미워하라”고 하였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죄를 미워하다가 사람까지 미워하고, 사람을 사랑하다가 죄까지 사랑하는 교회도 잘못된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다가 사람까지 미워하면 안 됩니다. 에베소 교회가 죄를 미워해서 죄를 드러내고 다른 사람이 안 따라가게 한 것은 아주 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바람에 사람까지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2) 세상 사랑하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림
또 무엇을 하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까? 세상 사랑하다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야고보서 4:4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간음하는 여자와 같고 음행하는 여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사랑하다가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남편이라고 하였고 예수님을 남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남편이라고 한 곳이 구약에 여러 곳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남편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둘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도 남편이고, 세상도 남편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 두 남편 가운데 누구를 더 사랑합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이 진짜 남편, 그 다음에 세상도 또 남편이랍니다. 자, 우리에게 물어 본다면 뭐라고 답변하겠습니까? 세상과 예수님 둘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사랑하느냐고 하면
무엇이라고 답변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더 사랑합니다.” 진짜입니까? 속은 세상을 더 사랑하면서 괜히 예수님 앞에 가서 “예수님만 사랑합니다” 하는 것은 외식입니다.
하나님을 남편이라고 하였고 예수님을 남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남편이라고 한 곳이 구약에 여러 곳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남편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둘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도 남편이고, 세상도 남편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 두 남편 가운데 누구를 더 사랑합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이 진짜 남편, 그 다음에 세상도 또 남편이랍니다. 자, 우리에게 물어 본다면 뭐라고 답변하겠습니까? 세상과 예수님 둘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사랑하느냐고 하면
무엇이라고 답변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더 사랑합니다.” 진짜입니까? 속은 세상을 더 사랑하면서 괜히 예수님 앞에 가서 “예수님만 사랑합니다” 하는 것은 외식입니다.
예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돈을 더 사랑하고, 세상을 더 사랑하면서 외부적으로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외식입니다. 오늘 주일인데, 세상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에 갔겠습니까? 단풍구경 갔습니다. 단풍구경 하라고 텔레비전에서 자꾸 선전하는데, 우리교인들은 단풍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됩니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풍을 더 사랑하러 간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여간 세상 더 사랑하고,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를 더 사랑하는 바람에 처음 사랑을 다 잃어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으니까 그 다음에 예수님 믿는 것은 그저 형식적으로 합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은 다른데 다 가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3.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마리아의 사랑의 예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했는데, 마리아가 기름 붓는 행위가 처음 행위와 같습니다. 요한복음 12:3-6에 마리아가 기름을 예수님에게 가져다 부었습니다. 그리고 머리털로 닦았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값진 향유,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닦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었습니다. 향유가 삼백 데나리온입니다. 삼백 데나리온은 오늘날로 말하면 약 삼천만원짜리 됩니다. 다시 말해서 삼천만원 어치 향유를 예수님에게 붓고 머리털로 닦아서 다 없어진 것입니다. 아낌없이 갖다 부었습니다. 마리아는 남편이 있는 것 아닙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두 여자 형제가 나사로 오라비 한 사람과 함께 세 사람이 사는 식구인데, 생활이 넉넉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돈을 구해서 향유를 사다 부었는지 참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다 기울인 것 같습니다. 마리아가 결혼 하지 않았다고 하면 이 다음에 결혼할 때 쓰려고 일생동안 모아놓은 것을 다 갖다바친 것입니다. 자기의 값진 것을 다 팔아다 바친 것입니다. 아낌없이 기쁘고 즐거움으로,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무엇을 바쳐야 될까?’ 깊이 생각하다가 ‘가장 귀한 나드 한 근을 사다가 부어야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기쁘고 즐거움으로 아낌없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갖다가 붓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여자를 잘못했다고 책망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이 처음사랑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처음 사랑의 행위는 이렇게 모든 정성, 모든 재산,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갖다 바쳐서 향유를 사다가 예수님께 부은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열두제자보다 더 기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기뻐하지 않았지만 이 마리아의 행위를 예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처음의 행위를 가지라”고 하실 때, 처음의 행위를 가지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말로만 회개가 아니라 처음 행위를 가지는 것이 회개입니다. 처음 행위는 무엇입니까? 무슨 행위여야 됩니까? 그저 쉽게 말하면 마리아의 행위가 처음 행위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마리아가 나드 한 근을 갖다 부은 그 행위가 처음 행위입니다. 그 행위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주님의 구속사역이 점점 더 잘 되나갑니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촛대를 옮긴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교회는 그냥 있지만 영권이 다 옮겨지고 생명권이 다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남는 것입니다. 생명 없는 교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했습니다.
폴리갑의 사랑의 예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은 2세기경의 서머나 교회의 폴리갑 감독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다 잡아 죽이는 시대인데, 폴리갑 감독도 잡혀갔습니다. 로마 관리들이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그 위에 폴리갑을 올려놓고 이제 불을 놓으려고 합니다. 불 놓으면 죽는 것입니다. 장작에 불붙으면 타서 죽게 되었는데 로마 관리들이 보니까 폴리갑 감독의 얼굴이 너무 천사 얼굴과 같이 거룩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이제라도 예수를 한 번만 모른다고 하면 석방해줄 테니 한 번만 모른다고 하라”고 했답니다. 모른다고 한 번만 하면 놔준다는 것입니다. 그 때 폴리갑 감독이 “예수님께서 나를 86년 동안 사랑하시되 한 번도 나를 모른다고 하신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한 번이라도 모른다고 하리요”하고 거기서 화형을 받아서 순교 당했다고 합니다. 86세 때 순교당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86년 동안 나를 사랑하시되 모른다고 하신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한 번이라도 모른다고 하리요.” 자, 우리도 한번 해봅시다. 예수님을 몇 년 사랑했습니까? 자기나이를 다 불러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나를 몇 년 동안 70이면 70년, 30이면 30년 동안 사랑하시되 한 번도 나를 모른다고 하신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한 번이라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리요.” 다 같이 해봅시다. 예수님께서 나를 몇 년 사랑하셨다고 해야 됩니다. 자기 나이
로 합시다. 시작! “예수님께서 나를 82년 동안 사랑하시되 모른다고 하신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한 번이라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리요.” 다시 한 번 자기 나이대로 해야 됩니다. 시작!
그 다음은 순교입니다. 그 사랑이 처음 사랑인 것 같습니다. 이 다음에 이제 믿음을 못 지키게 될 때에는 이제 이것을 한 번 해봅시다. “나를 몇 년 사랑했다.” 주일날 시험 치러 가라고 할 때, “예수님께서 나를 몇 년 동안 사랑하셨는데 내가 어떻게 주일을 범하겠습니까?”주일날 범하는 것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죄 지으라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나를 몇 년 동안 사랑하셨는데 내가 어떻게 이런 죄를 짓겠습니까?” 하고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나가야됩니다. 그것이 처음 사랑입니다. 시험에 넘어가려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몇 년 동안 사랑하셨는데 내가 어떻게 이런 죄를 짓겠습니까?” 하고 순교의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아무리 시험이 커도 죽는 것보다 더 큰 시험 있습니까? 이것을 안하면 직장에서 떨어진다, 내 쫓는다, 어떻게 한다 해도 죽는 것보다 더 큰 시험은 아닙니다. 아무리 큰 시험이 와도 “예수님께서 나를 몇 년 동안 사랑하셨는데, 내가 어떻게 이런 죄를 범할 수가 있으리요” 하고 아예 죽을 각오하고 순교의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처음 행위를 갖는 참으로 회개한 회개로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해야 됩니다. 또 술 먹자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나를 몇 년 동안 사랑했는데, 내가 어떻게 한 잔이라도 먹을 수가 있으리요” 하고 아예 딱 끊어버려야 합니다. 또 주일 범하자고 할 때에도 생명 내어 놓고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였습니다. 촛대를 옮기면 껍데기만 남습니다. 껍데기는 알맹이가 다 빠져나간 것입니다. 생명 있는 신앙은 다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왔다 갔다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본문 6절에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고 하였는데 죄를 미워하는 것은 잘했다는 것입니다. 잠언 8:13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또 시편 97:10에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을 미워하는 것이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니골라 당은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데 신앙의 변질이 되어서 잘못된 곳으로 나간 사람입니다. 진리를 내버리고 탈선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미워하는 것은 잘 한다, 나도 이것을 미워한다” 하시며 죄를 미워하는 것은 잘했다는 것입니다. “나도 이것을 미워한다”고 하셨는데, 사람은 사랑하되 죄는 미워해야 됩니다.
4.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
본문 7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처음 사랑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가지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이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사랑을 가지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낙원에서 살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낙원에서 쫓겨난 사람이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을 수 없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다시 가지고,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잃어버린 사람은 다시 찾고, 처음 사랑을 가지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낙원에서 살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살지만 거기는 낙원입니다.
그 다음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생명나무의 과실을 이기는 사람에게 주어 먹게 합니다. 처음 사랑을 가지고 믿는 사람에게 생명나무의 과실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먹게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은 생명의 역사가 있는 생명의 역사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이기고, 처음 사랑을 가지고 믿는 사람은 낙원에서 살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고, 생명이 날마다 살아 나아가고, 산 역사가 있고, 열매가 맺힙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은 촛대를 옮기고, 낙원에서 쫓겨나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지 못합니다. 처음 사랑을 계속 가지고 나가는 사람, 또 잃어버렸다가 참으로 회개하고 처음사랑을 회복한 사람, 그 사람은 어디서 삽니까? 낙원에서 삽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찬송하지 않았습니까? 높은 산에서 살든지, 초막에서 살든지, 어디서 살든지, 거기가 하나님의 낙원입니다.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것입니다. 처음사랑을 가지고 살면 언제나 낙원에서 살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늘 먹습니다. 생명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의 결과를 먹는다는 것입니다. 생명 과실로 배가 부릅니다. 이렇게 이기는 사람에게는 낙원에서 사는 축복과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는 축복이 있습니다. 처음 사랑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은 낙원에서 쫓겨난 상태고 생명나무의 과실
은 없고, 쓴 과실밖엔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처음 사랑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에베소 교회가 거짓 선지자와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은 것은 잘했다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를 용납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 악한 자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거짓선지자가 많이 들어옵니다. 분별해서 안 따라가야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안 따라가게 해야 됩니다.
처음 사랑 잃어버린 것을 책망 하셨는데 우리가 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책망을 받아야 됩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니까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합니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돈을 더 사랑하고, 자기를 더 사랑하고, 이런 바람에 처음 사랑 다 잃어 버렸는데, 이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처음 행위는 뭐라고 했습니까? 마리아의 기름 붓는 행위, 그것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처음 행위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리아가 기름 붓는 행위입니다. 또한 폴리갑 감독의 사랑입니다. “86년 동안 예수님께서 한 번도 모른다고 한 적이 없으신데, 내가 어떻게 한 번이라도 모른다고 하리요”라고 하는 그 사랑 가운데 들어가야 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의 낙원에 살게 해주십니다.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가지면 생명나무의 열매가 늘 많이 맺히게 되고 그것을 먹게 됩니다. 그런 축복을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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