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과 하나님의 나라
요한계시록 21:1-14
요한계시록 21:1-14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12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이더라 13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그 성의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 말세의 될 일
말세 징조
말세에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고, 마태복음 24:7-8절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고 하였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4:32절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는 여름이 온다는 것은 유대 나라가 독립될 것을 상징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유대나라를 가리키는데, 유대나라 민족이 굳건히 회복되고, 그 민족이 여러 나라에서 자기 나라로 모여 들어서 독립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임박한 줄 알라는 것입니다. 주후 70년에 망한 유대나라는 1948년도에 독립을 해서 오늘날까지 그 민족이 세계 각국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독립했습니다. 이 말세는 노아 시대와 같고 소돔 고모라 시대와 같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을 짓습니다. 성경에서 이와 같이 현실주의, 음란방탕주의, 죄악이 관영한세대가 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천국 복음이 온 세계에 다 전파되고, 세계 어느 나라나 하나님의 복음이 다 들어갈 때에 세상 끝이 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대로 오늘날 천국 복음이 온 세계에 다 전파됐고, 유대나라는 독립이 됐고, 처처에 난리와 난리,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이 때를 당했는데, 이때가 과연 말세입니다.
말세의 때에 대해서, 디모데후서 3:2-4절에는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돈만 알고, 자기만 알고, 부모를 거역하고 배반하여 팔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세가 다 됐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이젠 말세가 됐다”고 말하고, 이종교에서도 “이젠 말세가 됐다”고 말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 재림
이때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 끝에 가서는 대환난이 있고, 대환난 중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끝에는 큰 환난이 있습니다. 그 환난 중간에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시고 이 세상에 재림을 하십니다. 전반기 환난과 후반기 환난이 있는데, 환난을 절반 나눠서 앞에는 전반기로서 처음에 당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오는 것을 후반기 환난이라고 합니다. 전반기 환난에 일곱인 떼는 것, 일곱 나팔 부는 환난, 즉 일곱 나팔 재앙이 옵니다.
요한계시록 6장은 일곱 인 떼는 재앙이고 8장은 일곱 나팔 재앙입니다. 삼분지 일이 피가 되고 삼분지 일이 죽는, 그와 같은 전반기 환난이 있고 그 중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을 요한계시록11:9-1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9-12절에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 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성도들에게 올라오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그때 성도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러 올라갑니다.
이미 예수를 믿고 세상 떠난 성도는 무덤에서 다 부활해서 공중으로 예수님을 맞으러 올라갑니다. 그때 우리 살아 남아있는 성도들도 변화되어서 신령한 몸으로 다 예수님을 맞으러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마지막 재앙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후에는 마지막 재앙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6장에서부터 일곱 대접 재앙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중 재림하시면 성도는 다 들리어서 공중으로 올라가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성도들은 공중에 올라가 있고, 땅 위에는 후반기 환난인 일곱대접 재앙이 옵니다. 그때 세상에서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납니다.
큰 환난이 있어서 많은 이 세상 사람들이 독창의 고난도 당하고, 흑암의 고난도 당하고, 강과 물샘이 피가 되어서 피를 먹는 고난도 당하고, 해가 뜨거워져서 타져 죽는 고난도 당하는 등의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성도는 그때 공중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후반기 환난은 당하지 않습니다. 전반기 환난은 성도가 받아야 되지만, 후반기 환난은 성도가 공중에 올라가서 예수님과 같이 세상을 심판하는 기간입니다.
2. 천년왕국
그리고 후반기가 다 끝난 다음에는 마귀를 잡아 가둡니다. 아마겟돈 전쟁으로 사람이 거의 다 죽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사람이 희귀하게 됩니다. 사람이 희귀하게 됐을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마귀를 잡아다가 무저갱에 던져 잠급니다. 그래서 마귀는 무저갱에 일천 년 동안 갇혀 있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1-3절에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일천 년 동안 마귀를 결박해서 무저갱에다 던져 잠궈 놓습니다. 그때 이 세상은 일천 년 동안 마귀가 없는 세상이 됩니다. 또 죄도 없습니다. 마귀가 없으니까 죄가 없게 됩니다. 악이 없습니다. 모든 악은 다 마귀에게서 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도 다 마귀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짓게 되는데, 그 죄악과 악의 근본이 되는 마귀를 잡아다가 무저갱에다 가두어 놨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악이 없고 죄가 없는 세상이 일천 년 동안 계속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천년왕국 이라고 하는데, 천년 동안 사람이 죽지 않는 시기입니다.
이사야 65:17-22절에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 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의 건축한 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라고 하였습니다. 25절에는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이 천년왕국에 될 일들입니다. 마귀를 잡아 가두었기 때문에 천년왕국에서는 이리가 양과 같이 사자가 소와 같이 풀을 먹고, 뱀이 어린아이가 가지고 놀아도 물지 아니합니다. 그 짐승들에게까지 악이 빠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라고 했는데, 사람이 천 년 동안 산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백 세에 죽는 사람이 혹시 있는데, 그것은 저주받아 죽은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사람은 천년 왕국이 되기 전에 죄 지은 자입니다. 그 죄 값으로 저주 받아 죽은 것입니다. 백 세에 죽었다고 하면 ‘그 애가 왜 죽었는가’ 하고, 백 세에 죽는 것을 ‘애가 죽었다’고 말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평화가 가득합니다. 전쟁이 다시 없고,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화평이 충만한 시대가 됩니다.
평화가 넘쳐 흐릅니다.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 평화롭고, 말방울에까지 다 평화라고 쓰고 다니고, 포도원을 심고 타인이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에서는 자작농을 해 먹는 것입니다. 포도원 가꾸고 그 포도나무 열매를 먹고 살고, 이렇게 천 년 동안 죽지 않습니다. 또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왕 노릇 하시는 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 노릇 하시는 나라, 성도가 같이 왕 노릇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천년이 다 찬 다음에 마귀를 잠깐 놔 준다고 했습니다. 마귀를 놓아 주니까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또 전쟁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천년왕국이 다 찬 다음에 왜 마귀를 잠깐 놓아 주겠습니까? 택자와 불택자를 가르려고 놓아 주는 것입니다. 마귀가 없어서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섬기니까 누가 불택자인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귀를 놓아 주면 그 불택자는 마귀에게 싹 가 붙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대적하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지옥에 보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년왕국이 없다고 합니다. 이 천년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이지 실질적인 숫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는 실질적인 숫자가 많이 있습니다. 다 상징이 아닙니다. 일곱 교회, 열두 지파, 열두 사도와 같은 것은 다 실질적인 숫자입니다. 상징적인 숫자가 아닙니다. 천(千)도 실질적인 숫자로 봐야 합니다.
무(無)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천년왕국은 영적세계다’라고 주장합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가서 사는 나라를 가리킨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천년 후에 마귀를 놓아 준다고 했는데, 영적세계도 마귀를 놓아 줍니까? 또 하늘나라에도 곡과 마곡이 있습니까? 그것들이 맞지 않습니다. 영적세계나 구원세계에서는 마귀를 놓아 줄 수가 없습니다.
또 거기에는 곡과 마곡이 없습니다. 미혹이 없고, 전쟁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년왕국 끝에 가서는 곡과 마곡이 나오고 마귀가 나오고 전쟁을 일으키고 핍박을 하고 성도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천년왕국이 분명히 있고, 그 다음에 이 세상이 끝이 납니다.
천 년이 실질적인 숫자라고 믿는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 쉬신 것과 연결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8절에 하루가 천 년 같다고 하였기 때문에, 천지 창조의 하루가 실제 역사의 천 년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으로 지구의 역사를 따져보면 예수님 초림하시기 전 4천 년, 예수님 후 2천 년이 지났으므로, 지금 6천 년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5:17절에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일해 오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6일 동안 창조하시고 하루 쉬신 것처럼, 6천 년이 지나면 마지막에 천 년 동안 안식하는 천년 안식 세계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경의 원리에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6천 년이 되면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날짜를 계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연대를 계산하여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짜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정확한 연대를 계산하려는 사람들은 전부 다 비성경적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입니다. 거기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36절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몇 년도 몇 월 몇 일에 예수님이 온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을 떠난 행동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겟돈 전쟁으로 죽고 천년왕국에는 남은 사람만 들어갑니다. 전쟁 때에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육체 가진 사람들이 많이 죽고 희귀하게 남아 있는데, 마귀를 잡아 가두니까 그 사람들과 이 세상도 천년왕국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천년 동안 살면서 생산합니다. 즉 아이를 많이 낳게 됩니다.
3. 새 예루살렘 성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 성이 내려옴
그런데 본문에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옵니다. 본문 1절에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천년왕국이 되면 하늘에서부터 새 예루살렘이 내려옵니다. 사방이 단정하고 네모난 새 예루살렘이 쭉 내려와서 공중에서 성도들을 다 그 안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난 후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그것이 땅 위에 내려앉습니다. 그 때 세상은 현재 있던 세상에서 죄악만 없어진 세상인데, 여기에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와서 앉는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앉을지는 모릅니다. 그 새 예루살렘 안에는 변화된 성도만 살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문이 열둘입니다.
전부 진주와 보석으로 꾸몄습니다. 금과 진주로 꾸며놓았습니다.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인데 성도가 거기서 삽니다. 새 예루살렘성 밖에는 육신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그 성 안에는 예수님과 변화된 성도가 살면서 밖에 나가서 왕 노릇 하다가 들어오고 또 나가서 왕 노릇하다가 들어옵니다. 육체를 가진 사람은 못 들어옵니다.
본문 10절에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이더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의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전부 금으로 꾸미고 보석으로 꾸미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 새 예루살렘은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이 다음에 갈 하늘나라인 영원 천국을 가리키기도 하고, 문자적으로 천년왕국에서 왕들이 거하는 새 예루살렘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또한 신령한 세계를 가리키기도 하고, 오늘날에는 우리의 영적세계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성도들의 영적세계는 오늘날에도 새 예루살렘입니다. 우리는 새 예루살렘에서 삽니다. 이 다음에 천년왕국 때에는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예루살렘에서 삽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영원한 하늘나라가 새 예루살렘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이다음에 천년왕국에 가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은 정해져 있고, 또 하늘나라에 가서 살 것도 정해져 있습니다. 남은 것은 오늘날의 영적 세계인데, 우리가 영적으로 새 예루살렘 생활을 날마다 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할 자
그런데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있습니다. 어떤 자가 못 들어갑니까? 분문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 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은 새 예루살렘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못 들어갈 자는 두려워하는 자, 믿지 아니하는 자, 흉악한 자, 살인자, 행음하는자들, 술객들, 우상 숭배자들,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거기에 못 들어갑니다. 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한다고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이런 죄 값으로 지옥에 갑니다.
갈라디아서 5: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열다섯 가지입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은 다 성적인 죄입니다. 또 우상 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내는 것, 당 짓는 것, 분리함, 즉 갈라지는 것, 이단, 투기, 술 취하는 것, 방탕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술 취하는 죄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한 잔 먹는 것은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석 잔까지는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잔에 안 취하는 사람은 백 잔에도 안 취해야 합니다. 만 잔에도 안 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잔에 하나도 안 취하는데 또 한 잔 먹었으니까 또 하나도 안 취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또 한 잔 먹었으니까 또 하나도 안 취해야 되고 백 잔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백 잔도 한 잔부터 올라 가니까, 한 잔에 하나도 안 취하면 백 잔도 안 취해야 됩니다. 백 잔 먹어서 취하는 사람은 한 잔에서부터 취해 올라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술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한 잔부터 아예 안 먹는 것이 바로 된 것이지, 한 잔은 괜찮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술 취하지 말라’고 한 이 성경에 의해서 한 잔이라도 먹으면 안됩니다. 먹으면 취한 것이고, 성경 위반입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 성경 말씀을 가지고 심판하실 것인데,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취했느냐?’라고 하시면 무엇이라고 답변하겠습니까? 아예 안 먹는 것이 성경대로 바로 된 것입니다. 만약 먹었다면 이 다음에 심판대 앞에 서서 이 성경 말씀으로 심판 받습니다. 술을 안 먹어야 됩니다. 술 먹는 사람들 다 끊으십시오. 술 취하는 것 다음에 방탕하는 죄인데, 방탕한 자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4. 새 예루살렘 성에 합당한 자
영적 실력 있는 자
예수 믿는 사람도 지옥에 들어갈 죄를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 즉 믿음 쓰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세가 므리바 물가에서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을 쓰지 않은 것을 가리킵니다. 또 흉악한 자, 살인한 자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남을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음행하는 자,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음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술객, 사주팔자 보고 손금 보고 뭐 궁합 보고 이런 것들이 다 술객에 속하는 죄입니다. 우상 숭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고 더 지배를 받는 것이 다 우상입니다. 또 거짓말 하는 것, 예수 믿는 사람도 거짓말 합니다. 물론 안 믿는 사람은 이 죄 값으로 지옥에 갑니다. 당연합니다. 불 붙는 못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죄를 지으면 유황불 못에 참예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다음에 지옥은 안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지옥에는 안갑니다. 그런데 현세에서 지옥 고통을 당합니다. 심적으로 지옥 고통을 당합니다. 시편 32장에 다윗이 범죄한 다음에 지옥 고통을 당했습니다. 시편 32:3절에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노라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믿는 사람이고 성자입니다. 다윗이 구원을 얻어 놓았지만 범죄한 다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고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내리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옥 고통입니다.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당장 현세에서 지옥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죄 짓고 나가면 하늘나라에 가도 실력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갑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거저 갑니다. 하늘나라는 참으로 아주 영광이 충만하고 아주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는 신령한 나라인데, 그 나라에 가도 실력이 없습니다. 사용할만한 능력도 없고, 알만한 지혜도 없고,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일할 만한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그저 하늘나라에 가서 좋아서 즐거워 하긴 하지만, 하늘나라의 좋은 것들이 무용지물이 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사명도 없습니다. 그러니 하늘나라에 가서 즐거워 하긴 하지만, 하늘나라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어린애와 같은 것입니다. 나라에 들어가긴 들어갔지만 하늘나라에 가서 능력 있는 자, 필요한 자, 무엇을 제대로 할 자가 되지 못합니다.
가령 예를 들면, 아버지가 세계 일등 부자이고 그 아버지의 집에 아들이 많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아들들이 다 아버지의 집에서 즐거워하고 다 같이 잘 누립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아이의 능력 정도를 봐서 자동차도 하나 주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부릴만한 정도가 되어야 자동차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타고 다닐 수 있습니다. 또 비행기를 타고 다닐 만한 기술이 있으면 비행기도 하나 줄 수가 있습니다. 피아노나 전자 오르간 연주할 만한 기능이 있는 아이는 또 그것을 하나 줄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아들에게는 또 그것을 줄 수가 있습니다.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사람은 받아서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기능이 없는 아들은, 피아노를 칠 줄도 모르고, 오토바이를 탈 줄도 모르고, 자동차를 몰 줄도 모르고, 비행기를 몰 줄도 모르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무것도 줄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차 타고 갈 때 같이 타고 갈 수는 있지만 자동차를 줄 수는 없습니다. 주면 다 버리게 됩니다. 그저 같이 즐거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가 하나 주면 자기 것을 만들고 자기가 그것을 이용해서 어떠한 일을 하려면, 자기가 실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능력이 있고 기능이 있고 지혜가 있고, 모든 면에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늘나라에 가서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기를 만든 것만큼, 세상에서 능력 있는 자가 된 것만큼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십니다. 세상에서 지혜를 많이 터득해서 지혜자가 된 것만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많이 맡기십니다.
누가복음 19장의 므나 비유에서 므나 장사를 잘한 것만큼 고을을 맡깁니다.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은 열 고을 권세,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은 다섯 고을 권세를 누립니다. 각각 다 다르게 맡긴다고 했습니다. 많이 맡기는 사람이 있고 적게 맡기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또 달란트 비유에도 다섯 달란트를 더 남긴 사람과 두 달란트 더 남긴 사람에게 많은 것으로 맡기신다고 하였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기지 않은 사람에게는 맡기지 않고 오히려 빼앗아 많이 남긴 자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모하는 자
그러면 어떤 자가 되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사모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6 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니 내가 생명수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되어서 늘 생명수를 먹는 사람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습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심령이 갈급증이 나고 목이 말라서 어떻게 하던지 조금 더 은혜를 받으려고 하고, 조금 더 사모하려고 하고, 조금 더 예수님을 찾으려고 하고, 조금 더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기도 하는데, 목이 말라서 사모하니까 밤에도 입을 열고 헐떡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다고 합니다. 사모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새벽기도를 안 합니다. 잠 만 자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사람은 잠만 잘 수가 없습니다. 새벽에 일어나게 됩니다. 정신이 펄떡 납니다.
또 사모하는 사람은 예배당에 늦지 않습니다. 일찍 옵니다. 예배시간에 안 빠집니다. 한 시간도 안 빠집니다. 미리부터 나와서 준비기도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사모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생명수를 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다음에 새 예루살렘, 또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능력 있는 왕이 되지 못합니다. 왕은 왕인데 아무 권세 없는 왕이 됩니다. 왕도 능력 있고 모든 일을 제대로 하는 권세 있는 왕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하는 왕도 있습니다. 그런 왕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러므로 권세 있는 왕이 되어야 합니다. 능한 왕이 되어야 합니다. 능한 왕, 능력 있는 왕, 지혜 있는 왕, 하늘나라의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갈 왕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사모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사모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늘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또 기도하기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다음에 새 예루살렘, 또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능력 있는 왕이 되지 못합니다. 왕은 왕인데 아무 권세 없는 왕이 됩니다. 왕도 능력 있고 모든 일을 제대로 하는 권세 있는 왕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하는 왕도 있습니다. 그런 왕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러므로 권세 있는 왕이 되어야 합니다. 능한 왕이 되어야 합니다. 능한 왕, 능력 있는 왕, 지혜 있는 왕, 하늘나라의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갈 왕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사모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사모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늘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또 기도하기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기는 자
그 다음에 7절에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이겨야 합니다. 자기부터 이겨야 합니다.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일이 안 됩니다. 자기를 이기고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자기를 쳐서 복종 시켜서 옛 사람이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부패성이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자기를 쳐서 복종 시켜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만들어서 어려운 일이 많이 와도 잘 이기고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하나 이기지 못하면 천하를 다 얻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27절에 “내가 내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하였습니다.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버리워질까봐 자신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한 것입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자유 방종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언제나 자신을 쳐서 복종 시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거룩과 경건과 의를 이루어 나가는 사람
베드로후서 3:11-12절에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한 행실을 하고 경건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에베소서 4: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의와 거룩을 이루어 나가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거룩과 경건과 의를 날마다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이 말세에 이때가 어느 때인 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임박한 것과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이 앞으로 올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현재의 새 예루살렘 되는 영적세계에서 우리가 날마다 우리 자신을 만들고 자신의 실력을 길러 나가고 하나님의 사명을 다 하는 목마른 자, 언제나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마귀 시험을 다 이기고, 자기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 운동이 잘 이루어져 나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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