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신지(新天 新地)를 유업으로 얻는 자와 못 얻는 자
요한계시록 21:7-8
요한계시록 21:7-8
7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1. 이기는 자는 유업으로 얻음
본문 7절에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들’이라는 것은 생명수 샘물, 하나님께서 눈물 닦아주시는 것,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는 것,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다 유업으로 얻는 것 입니다. 그러면 이것들을 어떤 사람이 유업으로 받습니까? 이기는자입니다. 이겨야 합니다. 눈물을 예수님께서 다 닦아주시고, 사망과 애통하는 것이 없고,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는 이 생명의 세계, 또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나가는 생수의 세계, 만물을 새롭게 하는 새 세계, 이러한 것들을 다 이기는 자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이겨야 하겠습니다. 지면 안 됩니다. 지는 사람에게는 유업이 없습니다. 이겨야만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일곱 교회가 나오는데, 교회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다 이겨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사람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는 사람에게는 주신다는 말이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과실을 주어 먹게 한다고 했습니다. 서머나 교회에는 이기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버가모 교회에는 이기는 자에게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두아디라 교회에는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사데 교회에는 흰 옷을,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하나님 보좌에 앉아 함께 먹고, 함께 마신다고 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이기기를 다 힘 써야 합니다.
이기선 목사님의 말씀인데, 씨름하는 곳에 가 보면 씨름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 씨름하는데 영감님이 밖에서 낑낑하며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낑낑 하냐고 물어보니까 우리 아들이라고 했답니다. 우리 아들이 이기기 위해서 힘을 써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또 그네 뛰는 데 가 보면 서 있는 어떤 사람이 그네가 나갈 때 같이 따라서 나갔다가 들어왔다 한답니다. 역시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저기가 우리 딸이라고 했답니다. 딸이니까 딸이 올라갈 때는 좀 더 올라가라고 앞으로 같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이기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닭도 싸울 때 다른 집의 닭 한테 이기라고 소금을 사다 먹인답니다.
그러니까 이기기를 다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다 이기기를 원하시지, 지는 것을 원하시겠습니까? 마귀와 싸워서 이기고 죄와 싸워서 이기고 여러 가지 시험에서 이기고, 그렇게 우리가 이기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기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많은 것을 받습니다. 지는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지 말고 이겨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고 마귀와 더불어 싸워 이겨야 합니다. 피 흘리기까지 마귀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방해하는 세력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자기하고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자기하고 싸워서 이겨야만 다른 것도 이길 수 있습니다. 자기하고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다른 것도 못 이깁니다. 누구든지 이기는 것을 원하지, 지는 것을 누가 원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날마다 이겨야 합니다.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늘 이겨야 합니다. 또 성경말씀에 어긋나게 또는 성경말씀과 반대로 가자고 하는 것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한 것들이 우상입니다. 이겨야 합니다.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기는 자의 아버지가 되시고,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2. 악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감
본문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유황 못은 아주 펄펄 끓는 못입니다. 거기에 참예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옵니다.
영원히 못 나오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거기 간다고 했습니까? 첫째는 두려워하는 자, 둘째는 믿지 않는 자, 셋째는 흉악한 자, 넷째는 살인하는 자, 다섯째는 행음하는 자, 여섯째는 술객, 일곱째는 우상숭배 하는 자, 여덟째는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이렇게 여덟 가지입니다. 여기에 참예하면 안 되겠습니다.
첫째가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앞장 서 나가야 합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을까봐 벌벌 떠는 것, 즉 두려워하는 것은 안 됩니다. 생명 내놓고 나가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를 믿다가 죽자’ 하고 나가야 합니다. ‘예수위아사 하니 아위예수사(예수爲我死 我爲예수死)’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돌아가셨으니, 나도 예수를 위해서 죽으리라 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해 주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벌벌 떨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데려 가시면 갈 예산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안 데려 가시면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죽지 못합니다. 때가 되기 전에는 죽이려고 해도 못 죽입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데려 가는 것입니다. 데려갈 때는 ‘잘 있거라, 세상아. 나는 가노라’ 하고 가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생명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인명은 재천(人命在天)’이라고 합니다. 사람 목숨이 하나님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죽을까봐 두려워합니까? 두려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 합해 놓으면 죽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목숨은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목숨인데, 내놓고 나가야 합니다. 어디든지 갑니다. 소돔 고모라, 아골 골짜기, 헤르몬 사자굴 있는 곳도 갑니다. 가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위협과 공갈을 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두려워말고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믿지 않는 자입니다. 믿지 않는 자가 유황불 못에 참예 하는 것은 정해놓은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앞장 서 나갈 사람이 누구입니까?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흉악한 자들입니다. 음모술수 하는 자들입니다.
그 다음 네 번째는 살인하는 자입니다. 남 죽이는 것, 즉 살인하는 죄가 큰 죄입니다. 요한일서 3: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 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하였습니다. 미워하는 자가 살인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는 영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워하는 자, 즉 살인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남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스데반은 돌로 자기를 때려죽이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저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죽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 하신 것 가운데,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신 것이 첫번째입니다. 죽이는 사람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스데반도 그랬고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죽이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왜 불쌍히 여겨야 합니까? 내가 죽는 것은 그 사람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데려 가실 때가 되어서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니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것입니까? 그래서 그 사람이 불쌍한 것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지만 그 사람들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데려 가실 때가 되어서 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죄만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미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살인하는 자들은 유황불 넣는 못에 참예합니다.
돈 잘라 먹은 사람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라 먹은 사람도 나쁘지만 자기도 책임이 있습니다. 안 잘리면 될 것인데 잘렸으니 말입니다. 다단계 하다가 돈을 다 잘립니다. 다단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고, 그런 것은 결국 잘리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해놓고, 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습니까? 언제나 책임을 자기가 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괜히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때문에 그렇지, 다른 사람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다단계 사기꾼이 아무리 많아도 저는 한 번도 안 떼어 봤습니다. 안하니까 뗄 것이 있겠습니까? 자기 책임입니다. 다단계 걸려서 돈 떼어 먹히고 왜 다른 사람을 원망합니까? 그러니까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행음하는 자입니다. 간음하는 자들, 즉 행음하는 자들도 유황불 넣는 못에 참예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절대 행음하면 안 됩니다. 정조를 지켜야 합니다.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하고 육신의 정조도 지켜야 합니다. 행음하면 그것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한다고 했습니다. 행음 죄를 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술객은 점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배당 앞 큰 길 앞에 나가 보면 ‘정 도령’이라고 써 붙인 데가 있는데, 점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역전에 가면 사주팔자, 작명을 본다고 써 붙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술객들인데, 우리는 거기에 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모두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길가에 앉아서 팔자 고쳐 준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저 사람이 진짜 팔자를 고치면 제 팔자부터 고치지, 길가에 앉아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쓰면서 누구를 고쳐주려고 그러느냐?”라고 했다고 합니다. 팔자 못 고칩니다. 하나님께서 팔자를 내신 대로 사는 것이지, 팔자 못 고칩니다. 고친다는 것은 다 속이는 것입니다.
팔자는 사실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대로 사는 것입니다. 팔자와 예정은 다릅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팔자는 우연히 그저 그렇게 되어서 우연한 세력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팔자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정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되는 것입니다. 예정은 주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이 있지 않습니까? 주인이 있고 또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예정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더 좋은 구원을 주시려고 그렇게 예정하시는 것입니다. 예정은 목적이 있고 신앙이 있고 주인이 있습니다. 팔자는 운명이라고 하는데, 운명은 목적도 없고 주인도 없고 신앙도 없는 것입니다. 우연히 그렇게 되어서 가다가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연이라고 합니다.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팔자 보는 사람들은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팔자 못 고칩니다. 봐도 못 고칩니다.
고치면 자기부터 고쳐야 하는데 자기도 못 고치면서 무슨 다른 사람의 팔자를 고칩니까? 그러나 우리는 팔자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예정을 믿습니다.
어떤 사람이 과부가 될 팔자여서 과부가 됐다는 것과 하나님의 예정대로 과부가 되었다는 것은 과부가 된 점에서 마찬가지입니다. 팔자가 사나워서 과부 된 것이나 예정 때문에 과부 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정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남편으로부터 해방을 시켜서 과부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일단 예정에는 주인이 있지 않습니까? 또 결과는 더 구원을 잘 이루어서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께 대한 믿는 일을 좀 더 잘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남편이 있으면 믿는 일을 못하니까 믿는 일을 좀 더 잘해서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게 해주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합니다. 해방 시켜주셔서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팔자는 해방은 무슨 해방입니까? 우연히, 그야말로 팔자가 사나워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예정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고 믿는 일을 더 잘하게 하시려는 뜻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생명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예정을 믿는 사람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실 줄 믿고 신앙적으로 나갑니다.
그러므로 술객에게 가지 마십시오. 술객들이 손금 보고, 관상 보고, 사주팔자 보고, 궁합 보고, 이사 가는 날짜 보는 것은 마귀한테 물어보는 것입니다. 보면 안 됩니다. 사주팔자가 맞을 것 같으면 쌍둥이는 꼭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날한시에 낳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쌍둥이 팔자가 똑같습니까? 5분 차이가 나서 다르다? 사주팔자에는 5분 차이는 안 나옵니다. 연월일시를 보기 때문에 팔자입니다. 금년이 정해년이니까 두 자입니다. 몇 월도 두 자, 날짜도 두 자, 시간도 두 자, 이렇게 해서 팔자가 되는 것입니다. 팔자는 시간까지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쌍둥이는 죽는 것도 한날한시에 죽고 꼭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쌍둥이는 사는 것이 같지 않습니다. 우리 고향에 쌍둥이가 하나 있었는데, 형은 집 나가서 객사를 했고, 동생은 아들이 몇이 있습니다. 아들도 안 맞고 사는 것도 안 맞고 재산도 안 맞습니다. 사주팔자 전부 허튼 소리들입니다. 괜히 다 꾸며서 하는 것입니다. 이름 가지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승만 박사는 이름이 이승만이어서 대통령이 되었다라고 했다가, 대통령 하야한 다음에는 이름이 이승만이라서 망했다고 했습니다. 괜히 갔다가 붙이는 것입니다. 잘되면 그 때부터 그래서 대통령이 되었다 하다가 또 망하면 또 그래서라고 합니다.
이것이 다 허튼 소리들인 것입니다. 절대 이 술객, 점하는 것, 물어보는 것, 관상 보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듣지 마십시오. 마귀 말인 줄 알고 안 들어야 합니다. 또 토정비결 보지 말아야 합니다. 술객들 다 지옥 갈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상숭배 하는 자들입니다. 다 지옥에 갈 줄 압니다. 유황불 타는 못에 참예합니다.
마지막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입니다. 거짓말하는 것이 죄입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거짓말하지 말고 진실해야 합니다.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옥상에 숨겨놓고 들어왔다가 나갔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생명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대로 하면 정탐꾼이 하나님의 성도인데 죽게 되겠기에 거짓말한 것입니다. 죽게 되겠으니 부득불 거짓말했는데, 생명에 관계된 것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십니다. 그러나 그 외에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사실대로 해야 합니다. 거짓말 하는 자들은 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불과 유황불에 들어갈 첫째가 무엇입니까? 두려워하는 자들, 둘째는 믿지 않는 자, 셋째는 흉악한 자, 넷째는 살인하는 자, 다섯째는 행음하는 자, 여섯째는 술객, 일곱째는 우상 숭배하는 자, 여덟째는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이 여덟 가지 죄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항상 힘써야 하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죄를 지으면 지옥은 안 갑니다. 안 믿는 사람이 이런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러한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징계를 해서 회개 시켜 데려 가십니다. 이런 죄 가운데 빠지면 하나님의 징계가 옵니다. 여러 가지 징계가 옵니다. 회개시키려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회개 시켜서 데려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지옥에 갈 죄에 빠지면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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