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1일 월요일

요한계시록 22:18-19 하나님의 말씀을 잘 보존하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의 말씀을 잘 보존하자
요한계시록 22:18-19

18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갈라디아서 1:6-10
6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종자

선경 말씀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5절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죽었던 영혼이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이 성경을 기록하는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씨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종자인데, 종자를 뿌리면 그 종자대로 나옵니다. 세상의 모든 종자는 그 뿌리는 대로 나옵니다. 그와 같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면 생명의 종자이기에 생명이 살아납니다. 성경말씀은 영생이 있습니다. 세상의 다른 책을 아무리 봐도 영생이 없습니다. 다 세상 이치와 과학, 물질의 이치, 성경 외의 모든 책들은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육신에 속한 것, 세상에 속한 것, 물질에 속한 것인데,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고 동시에 그런 것들도 다 가는 것입니다. 잠깐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책만은 영생이 속에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영생의 열매를 얻으려면 이 성경말씀을 많이 봐야 합니다. 성경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도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며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즐거워하고 묵상하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것처럼 더위가 오나 가뭄이 오나 열매를 잘 맺히는 사람이 됩니다.

말씀이 생명의 길이고, 말씀이 복 받는 길입니다. 말씀이 ‘생명의 씨’입니다. 말씀을 받아야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중생할 때에도 말씀으로 중생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물과 성령으로 중생한다’고 했는데, 그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습니다. 말씀이 생명이 되었기에 산 영혼이 되었습니다. 말씀이 생명이 되었기에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

그런데 이 중생한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먹어야 합니다. 말씀이 영의 양식인데, 이 영의 양식을 우리는 늘 먹어야 합니다. 영의 양식을 먹지 못하면 그 심령이 힘이 없고 자라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의 양식을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젖으로 먹는 방법이 있고, 단단한 식물로 먹는 방법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 고린도교회는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젖만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는 성도는 어린아이입니다. 자라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자라납니다. 육신의 아이들도 한두 살 때는 젖만 먹어도 괜찮지만 좀 자라난 다음에도 젖만 먹이면 영양부족이 생겨서 그 아이가 크지 못합니다. 젖에는 장성한 사람을 위한 영양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여러가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자라납니다.

그러면 단단한 식물은 무엇입니까? 젖도 성경이고 단단한 식물도 성경입니다. 모든 성경을 젖으로 해석해서 설교할 수 있는데, 젖이란 것은 초보적인 진리를 말합니다. 또한 모든 성경을 단단한 식물로 해석해서 설교할 수 있는데, 단단한 식물이란 것은 좀 더 깊은 진리, 신령한 뜻, 육의 사람으로는 잘 모르는 것, 영의 귀가 열려야만 들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달음박질도 잘하고, 올라가고, 힘을 얻어서 나아가게 됩니다. 모든 성경을 단단한 식물로 먹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쉽게 “예수를 믿으면 된다”고 하는데, 어느 성경을 봐도 ‘예수를 믿으면 된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성경을 봐도 ‘믿음을 지켜야 된다’, ‘성경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행해야 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냥 믿으면 된다고도 말할 수 있고, 믿고 행해야 된다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것은 젖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믿음을 지켜야 된다’는 것은 성경을 단단한 식물로 먹이는 것입니다. 어떻게 믿는 일을 해야 하는지를 성경을 통해 발견해서 가르치는 것이 단단한 식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좁은 길’과 ‘넓은 길’도 마찬가지인데, 젖으로 해석한다면 예수 믿는 사람은 좁은 길로 가는 것이고 예수 안 믿고 죄짓고 다니는 것을 넓은 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해석하면 예수 믿으면 다 된 것이기에 더 할게 없습니다. 단단한 식물로 해석하는 것은, 예수를 믿은 사람이 성경을 다 행하는 것을 좁은 길로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주일 안 지키고 성경 말씀 어기고 나가는 것은 넓은 길로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좁은 길로 가야만 생명이 있다고 했는데, 좁은 길로 간다는 것은 예수를 믿어도 성경 말씀대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도 성경 말씀대로 그래도 행하며 믿는 사람이 있고, 성경은 내어 놓고 교회 왔다가고 그저 자기 멋대로 신앙생활하며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멋대로 행하면서 믿는 그것은 넓은 길입니다. 믿음 지키다가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좁은 길입니다.
모든 성경이 마찬가지로 이렇게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로 알고, 좁은 길로 가며 단단한 식물을 날마다 먹고, “진리가 무엇인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가 있겠는가?”, “어떻게 하여야 예수를 바로 믿을 수가 있겠는가?”, “영이 어떻게 하면 살 수가 있겠는가?”, “내 영이 날마다 살아야 되겠다”하며 날마다 영이 살아나가는 길을 걷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이 살지 못한다면 세상 것을 다 준다고 해도 쓸데가 없습니다. 세상 것은 다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이 사는 길로 걸어가야 되겠다고 하면서 믿는 사람은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이고, 단단한 식물인 진리를 찾아서 “어떻게 해야만 바로 믿을까?”, “어떠한 것이 진리인가?” 하는 사람이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입니다.


2. 성경말씀을 보존할 것

가감하지 말 것

이 성경말씀을 잘 보존하라 하십니다. 첫째는 가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둘째는 변질시키지 말라는 것이고, 셋째는 혼합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말씀입니다. 더하거나 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릇된 신비주의자들은 “계시를 받았다”, “음성을 들었다”, “예언을 들었다”, “꿈을 꾸었다”, “지시받았다”, “환상을 보았다”라고하면서 성경말씀이 아닌 것을 성경말씀과 같이 따라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더하는 것입니다. 성경 외에는 계시가 이젠 없습니다. 표준계시는 종결이 되었습니다. 계시 받았다는 것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성경말씀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또한 성경말씀에서 빼도 안 됩니다. 신신학자들은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도 있고, 사람의 말도 있고,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골라 믿어야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하는 것입니다. 또한 빨트주의자들은 성경말씀을 볼 때에 성령께서 감동을 시키시면 하나님의 말씀이고, 감동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은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니, 이 말씀에 더하면 재앙을 더하고, 감하는 자는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린다고 했습니다. 가하면 하나님의 재앙을 받는 것입니다. 감하면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는데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변경하거나 혼합하지 말 것

갈라디아서 1장 6-9절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변경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17절에,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2절에,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을 혼잡하게 하면 생명이 없습니다. 무얼 섞지 말고, 변경시키지도 말고, 가감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생명이 없어집니다.

종자는 그대로 심어야 나올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 11절에,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라고 했는데, 이 말씀이 곧 종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루로 빻아 다른 것을 섞어서 동그랗게 해가지고 심으면 그것이 나옵니까? 아무 종자든 그 종자를 가루로 빻아 다른 것을 섞어서 동그랗게 만들면 보기는 좋겠지만 심으면 나지 않습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복음은 그대로 심어야 합니다. 보기 좋게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또 무얼 가져다가 섞으면 안 됩니다. 수다한 사람들이 복음에 무엇을 섞는다고 여기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혼잡케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복음에다 세상적인 것을 섞어서 하고, 복음에다 철학이나 과학을 섞어서 하고, 복음에다 육신의 모든 것을 섞으면 그것은 생명이 없습니다. 종자를 그대로 심지 않고 보기 좋게 하려고 섞으면 생명이 없게 됩니다.

요즘 중,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성경말씀을 보기 좋고 먹기 좋게 하려고 노력들을 많이 하는데 그런 것들은 다 헛수고입니다. 그저 예수 십자가,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는 것, 예수님 가라사대라고 한 것만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 아닌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것을 섞어 만든 것은,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보기 좋지 않고 맛이 없어 보여도, 그저 순수한 복음을,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그저 죽었다고 했으면 죽었다는 것을 전하고, 살았다고 했으면 살았다는 것을 전하고, 예수님 재림하신다고 했으면 그대로만 전하고, 우리가 올라간다고 하셨으니 올라가는 것을 전하고, 천당을 말했으면 천당을 전하고, 지옥을 말했으면 지옥을 전해야 합니다. 그저 그대로 전하라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멸망받는다는 것도 그대로 전하고, 죄 값은 사망이라는 것도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회개하면 산다는 것도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섞으면 안 됩니다.


3. 말씀 보존하는 방법

성경번역을 바로 해야 함

말씀을 보존하라 하셨는데, 성경 말씀을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첫째는 성경번역을 바로 해야 합니다. 성경은 원문이 있습니다. 마태가 기록한 마태복음 원문이 있고, 누가복음은 누가복음 원문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쓴 원문들이 있는데, 원래의 원문은 지금 없습니다. 그 원문을 보고 베낀 사본들, 그 원문을 기록한 사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본들 가운데서도 다 같지를 않습니다. 약간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사본 상의 논쟁점이라고 하는데, 원문이 없기 때문에 원문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원문을 보고 기록한 사본들이 신약은 천 개도 넘게 있습니다. 그렇게 사본들이 많이 있는데, 시내산 사본, 바티칸 사본, 안디옥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 등 이렇게 많이 있는데, 이 사본들을 보고 성경을 번역한 것이 오늘날 지금 있는 성경들입니다.

성경 번역을 바로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바로 번역해서 그 원문의 교훈을 그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원문의 성경을 전달하는 전달자입니다. 이것이 원문이 아닙니다. 사본도 원문이 아닙니다. 원문은 없어졌고 못 찾았습니다. 원문의 사상을 전달받은 것이 오늘날의 성경입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원문의 사상을 전달 받은 것인데, 원문 사상대로 잘 전달받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성경번역을 다시 해야 합니다. 왜 다시 해야 하냐면 문체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어렵게 된 문체입니다. 술어들도 현대인이 알지 못하는 어려운 술어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여러 사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좀 더 바른 성경을 번역하여야 하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여러 가지 번역된 성경이 있는데,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성경은 ‘개역성경’이라고 합니다. 1956년 즈음에 나온 것인데, 이것을 개역성경이라고 합니다. 그다음에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공동으로 번역한 ‘공동번역’이 있습니다. 또, 대한성서공회에서 나온 ‘표준 새 번역 성경’도 있습니다.

‘표준 새 번역 성경’의 문제점과 ‘한국성경공회’의 필요성

그런데 이 ‘표준 새 번역 성경’은 많이 잘못되었습니다. 거기에 보면 잘못된 것이 많은데, 유무상통을 두고는 “사도들이 나누어주었다”고 했는데 ‘표준 새 번역 성경’은 “나누어 가지니라”고 했습니다. 나누어 가져가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으로 나누어 주는 것과 아주 다릅니다. 창세기 1장 3절에서도,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를,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하시니, 빛이 생겼다”로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 있어라”라고 했는데, 표준 새 번역 성경에는 “빛이 생겼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진화론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표준 새 번역 성경은 현대어로 번역하였지만 잘못된 번역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사회주의 사상, 진화론 사상, 신신학 사상 등, 다른 많은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이 성경을 번역할 때가 왔다고 생각되어서 ‘한국성경공회’를 만들었습니다. 신신학 사상으로 만든 곳은 ‘대한성서공회’이고, 여기는 ‘한국성경공회’입니다. 그렇게 따로 해서 성경번역을 바로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성경공회에서 성경번역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몇 년이 가면 성경이 나올 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번역하지 않으면 아무리 말씀을 보존하려고 해도 바로 보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른 성경을 번역하는 것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기도를 많이 해주어야 하겠습니다. 바른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서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아는 많은 신학교 교수들, 여러 신학자들이 스물 대여섯 명 정도가 새로운 성경 번역에 착수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번역하는 도중에 있는데, 이 성경을 바로 번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 번역을 잘못해 놓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경 번역을 바로 해야만 말씀을 바로 보존할 수 있습니다.

바른 복음에 굳게 서고 성경을 바로 해석할 것

먼저, 바른 복음을 많이 배우고, 이 바른 복음에 굳게 서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해석을 바로 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15-16절에,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해석을 바로 해야 합니다. 바로 성경을 해석하지 못하면 멸망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바로 번역해야 하고, 바른진리에 굳게 서야하고, 성경 해석을 바로 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3장 16절에,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는데 그 가운데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성경해석을 함부로 하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해석을 바로 해야 하는데, 해석을 바로하지 못하면 멸망합니다. 우리는 바른 해석을 배워야 합니다. 바른 해석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라나지 못한 사람은 바른 해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자라나야 바른 해석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소경에게 빨강이나 검정이나 흰색 등, 그 색깔들에 대하여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모릅니다. 한달을 철야하며 가르쳐주어도 모릅니다. 몇 년 가르쳐주어도 소경은 모릅니다. 만져봐야 똑같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알 수 있나하면 눈을 떠야 알 수 있습니다. 눈 뜨기 전에는 아무리 가르쳐도 모릅니다. 또 어린아이들에게 결혼생활의 도리와 아이 낳는 도리를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모릅니다. 그것은 자라나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성경해석도 자기가 자라나야 합니다. 자라나지 못한 사람들이 성경 해석하는 것은 전부 잘못된 것입니다.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이 색깔을 안다고 하는 것과 같이 전부 잘못된 것입니다. 결혼연령에 도달하지 못한 아이들이 결혼생활에 대한 연기를 아무리 잘 해도 그것은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라나야 합니다.

자기가 모르겠으면 자라나도록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아는 것만 믿고 모르는 것은 두어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라나도록 기다리면 그때 가서 “아, 이것을 가지고 그랬구나!”하고 아는 것입니다. 자라난 사람이 성경을 해석해야 바로 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성경을 바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전부 삐뚤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믿음을 지키도록 해석을 합니다. 믿음을 못 지키는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전부 믿음을 못 지키도록 해석을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라나야만 성경해석을 바로 할 수가 있고, 믿음을 지킨 사람이어야만 성경 해석을 바로 할 수가 있습니다. 신사참배도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신사참배는 죄다. 생명을 내놓고 지켜야 한다.”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못 지킨 사람들은 신사참배에 대해 “그것은 국가 의식이다. 그것을 신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석을 합니다. 게다가 일본의 신상에게 절하는 것에 대해 “그것은 일본 신상에 절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기에 괜찮다”라고 한 것입니다. 신사참배가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른 성경 해석을 배우고 말씀을 보존할 것

우리는 자라난 사람이 성경 해석한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보존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생명으로 삼는 게 중요하고, 말씀을 단단한 식물로 먹고 자라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으로 새 힘을 얻어서 영이 달음박질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리고 말씀을 변경시키지 않고, 가잠하지 않고, 혼합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하든지 교인들의 귀를 즐겁게 하느라고 별 것을 다 섞어서 기복신앙으로 기울어지게 하는데, 기복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복신앙이 무엇입니까? “기도해주면 복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모릅니다. 복이라는 것이 세상의 물질, 육신의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복은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복입니다. 또한 말씀대로 자신이 만들어지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말씀대로 자라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받아가지고 그 말씀이 자신의 생명이 되는 이것이 복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혼합시키지 말고, 가감하지 말고, 변경 시키지 말고, 말씀을 잘 보존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경 번역을 바로 해야 합니다. 바른 복음을 굳게 세우며 파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해석을 바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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