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1일 월요일

요한계시록 22:1-2 생명수와 생명과를 먹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생명수와 생명과를 먹음
요한계시록 22:1-2

1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네게 보이니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에스겔 47:1-12

1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2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10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1. 생명수 강이 하나님과 어린 양 보좌로부터 나옴

본문 1-2절에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네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강수가 흘러 내려가는데, 생명강이 나오는 근원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강이 흘러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른다고 했는데,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케 한다고 했습니다. 참 좋습니다. 매달 한 번씩, 달마다 열매가 맺히고 또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케 한다고 했습니다.

에스겔 47:1-2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에서는 생명수가 어디서 나온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전 문에 이르니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계시록 본문에서는 생명강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왔습니다.

여기 성전 문지방 밑에서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영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성전 생활하는 사람이 그 흘러나오는 생수를 발견 할 수도 있고, 또 먹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서 그 보좌 앞에서 경배하는 사람, 곧 성전생활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생수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보좌를 멀리하는 사람에게는 생수가 없습니다. 지성소까지 들어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생활을 하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기도를 안 해서는 생수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이 먼저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 안에 깊이 들어가는 기도, 성전, 제단, 제단 밑에 까지 나가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거기서 생수를 발견하고, 생수를 자기가 먹고 이 생수를 교회에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또 교인들도 성전 생활하여야 됩니다. 죄가 있으면 가까이 가지 못하기 때문에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 많이 하고 신령한 세계를 많이 찾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면 거기서부터 생수가 흘러 나오는데 그 생수를 먹어야 자기가 삽니다. 생수를 먹지 못하면 생명이 살지 못합니다. 의식적으로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 되는 줄 아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생수를 먹는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제단생활해야 되고, 하나님 보좌 앞 생활해야 되고, 그곳을 찾아 나가야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원을 주셨는데 여기서 와서 기도 많이 하는 것은 생수가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제단 밑으로 나아가는 성전 생활하는 것이고 생수를 마시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생수가 없이 말라서는 살지 못합니다. 강에 생수가 흘러내려가야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8월, 5월, 정월초에 집회를 하는데, 이 집회를 위해서 저는 특별기도를 두 주간 동안 했습니다. 우리 기도원에 와서 한 주간하고, 부여의 한 조용한 기도원에서 한 주간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로 준비 안 하고는 생수를 얻을 수 없습니다. 기도 안하는 교역자 역시 모두 빼빼마른 교역자입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생수가 있고 다른 모든 성도들에게 나눠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몇 십년 전부터 삼각산에 가고, 또 우이동 골짜기에 가서 기도를 하는 등 기도를 많이 해왔습니다. 우이동 골짜기는 버스에서 내려 한 40분 걸어 들어가는데 거기 가서도 기도 많이 했습니다. 하여간 우리가 한 5-60년 동안 기도하러 산에 가는 생활, 특별 기도하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이렇게 생수를 얻어서 생수를 먹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생수가 조금 흐르는 교회도 있고 많이 흐르는 교회도 있습니다.

2. 순종하여 간 것만큼 물이 깊어짐

에스겔 47:3-5절에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일 천척을 재서 건너보니 물이 발목에 올라오고, 거기서 일 천척을 재서 건너보니까 물이 무릎에 올라왔습니다. 또 거기서 다시 일 천척을 재서 건너가게 하니 이번에는 물이 허리까지 올라왔고, 거기에서 또 다시 일 천척을 척량하고 건너가게 하여 건너니 큰 강이 되어 헤엄칠 강이요 물이 창일하여 사람이 건너지 못할 강이 된 것입니다. 처음에 일 천척 내려가니까 발목, 그 다음에 거기서부터 또 일 천척을 가니 무릎, 거기서부터 또 일 천척을 재서 건너가게 하니 이번에는 허리, 거기서 다시 일 천척을 내려가 도합 사천 척을 건너가보니 큰 강이 되서 헤엄칠 강물이 되었는데, 이것은 순종하는 만큼 깊어졌다는 뜻입니다.

성전에서 생수가 계속 나오는데 순종해서 내려가는 만큼 깊어집니다. 신령한 골방에 들어갈 때에도 꼴을 얻고 나갈 때도 꼴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성전에 들어갈 때 생수가 나오고, 순종해 나아갈 때 깊어지는 것입니다. 일 천척 순종을 하니 물이 발목에 올라왔고, 거기에서 조금 더 순종해서 이 천척을 순종하니 물이 무릎에 올라왔고, 거기에서 조금 더 순종해서 삼 천척을 가서 건너가는 순종하니 물이 허리에 올라왔습니다. 거기에서 조금 더 순종해서 사 천척을 내려가니까 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순종했습니까? 몇 천척을 내려갔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좀 깊어지고 싶어서 온 몸에 물을 바른다고 해도 얼마나 깊어지겠습니까? 내려가야 깊어집니다. 순종해야 깊어집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내내 그대로입니다. 또 성소에 들어가야 생수를 얻습니다. 들어가지 않는 사람은 빼빼 마릅니다. 물에 들어가서 내려가야 깊어집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깊어지지 않습니다.

3. 황무지와 사해바다도 소성하게 함

에스겔 47:6-8절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고 하였습니다. ‘아라바’는 황무지입니다. 이 생수가 흘러 내려가서 황무지로 내려갔습니다. 그러자 황무지인 아라바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황무지가 소성함을 얻었습니다. 강물이 흘러 내려가면 전도하기 힘들고 아무리 죄악이 관영한 곳이라 해도, 즉 황무지가 소생함을 얻습니다. 전부 소생합니다. ‘거기는 전도하지 못할 곳이다’, ‘선교하지 못할 곳이다’, ‘교회 세우기 어려운 곳이다’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황무지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물이 들어가면 소생함을 얻는 것입니다.

에스겔 47:9절에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물이 아라바로 해서 바다로 갔다고 했습니다. 이 생수가 사해바다로 들어가자 물이 소생해서 고기가 심히 많아진 것입니다. 고기도 못 살던 사해바다가 소생함을 얻어서 고기 잡는 어부가 와서 그물치고 고기 잡는다는 것입니다.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큰 바다처럼 고기가 심히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 생수가 참 좋긴 좋습니다. 생수가 가는 곳마다 소생함을 얻습니다. 황무지도, 사해바다도 소생하게 되는 생수라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걱정이니, 무엇 때문에 안 되겠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생수가 없어서 문제지, 생수만 흘러나가면 다 됩니다. 황무지와 사해바다도 다 소생하는 것입니다.

4. 소성되지 못하는 곳

에스겔 47:10-11절에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다 소생함을 얻는데 소생하지 못하는 땅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펄과 개펄입니다. 진펄과 갯펄이 어떤 곳입니까?

개펄은 바닷물이 들어오면 잠겨서 바다가 됐다가 물이 나가면 육지가 되는 곳입니다. 인천 앞바다에 가보면 물이 들어오면 개펄이 다 잠겨서 바다가 되었다가, 물이 나가면 육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최명신 장군이 우리 교단 중고청년부 연합 수련회 기간에 강연할 때 들어보니 인천 앞바다 물이 9미터 올라간다고 합니다. 9미터 높아졌다가 물이 나가면 9미터 내려가는 것입니다. 개펄과 같이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은혜 받을 때는 넘쳐 흐릅니다. 그러나 몇 일 못가서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땅이 됩니다. 아마 이번에 말씀을 들으면서 강이 된 사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며칠 가면 또 물이 다 물러가고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펄은 무엇입니까? 진펄이라는 것은 땅과 물이 섞여서 땅도 아니고 바다도 아니고 강도 아니고 그저 질척질척한 곳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게 믿는 사람은 소생하지 못합니다. 진펄은 땅도 아니고 강도 아닌 중간치기입니다. 이것 역시 소생하지 못합니다.

다 소생하는데 진펄과 개펄만 소생하지 못합니다. 물 들어왔을 때 바다가 된 것은 은혜 받아서 변화하여 새 사람이 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몇일 안 가서 다 빠져나가, 도로 옛날 땅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밤낮으로 물이 들어 왔다 나갔다 해도 소생함을 얻지 못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진펄 같은 사람은 한 발은 세상에 딛고, 한 발은 하늘나라에 딛고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교회 와서는 교인 노릇하다가 세상에 가서는 세상사람 노릇합니다. 내내 중간치기입니다. 교회에서 보면 성도 같은데, 세상에 나가 보면 불신자 같은 사람입니다. 술도 이따금 한잔씩 마시고, 담배도 피는 것과 같은 사림입니다. 이러한 개펄과 진펄은 소성하지 못합니다.

5. 달마다 실과를 맺음

에스겔 47:12절에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각종 먹을 실과가 달마다 맺히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요한 계시록22:2절에서는 열두 가지 종이 달마다 실과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해 있다고 했습니다.

달마다 실과가 맺힌다는 것은 시험을 이길 때마다 열매가 맺힌다는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험이 들어오는 것은 달이 없는 그믐이라는 것이고, 이기는 것은 밝아지는 것, 곧 보름입니다. 그믐하고 보름이 나타나면 한 달이 됩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는 어두운 그믐이 되나, 이기면 보름과 같이 밝아집니다. 이렇게 해서 한 달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6절에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해서 잠깐 근심한다고 했습니다. 잠깐 근심하는 그것이 그믐달입니다.
그믐날은 어두울 때라는 말입니다. 이러다가 시험을 이기면 다시 밝아집니다. 또한 잠간 근심하다가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밝아지는 것입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는 어두운 밤이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이기면 그 다음에는 광명한 보름달이 옵니다.

시험이 들어온다고 해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병이 들어 근심이 생기면 그것을 이기면 됩니다. 근심 생기는 것도 이기고, 병난 것도 이기고, 또 다른 사람을 통해서 오는 시험도 이기고, 경제적 시험도 이기고, 국가적 시험도 이기면 밝아집니다. 열매가 맺힙니다.
시험을 이기고 밝아지면서 한 계단 올라갑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생활,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으로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기게 해주시는데, 그때 열매가 맺힙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갈 때 그것은 흑암이고 기도해서 이기니까 광명입니다. 이렇게 한 달 동안 열매가 맺혀진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풀무에 들어갈 때 흑암의 시간을 만나다가 이기고 승리하므로 열매가 맺혔습니다. 달마다 맺힌다는 것은 시험을 이길 때마다 열매를 맺는다고 해석해야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시험을 이기면 밝아져 광명이 오고, 기쁨이 온다는 것이 낮이고 그렇게 한 달이 되어 열매가 맺힌다는 말입니다.

열두 가지 종류라는 것은 여러 가지 시험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으로 경제적 시험, 가정적 시험, 또 교회적 시험, 사업적 시험, 국가적 시험, 또 인간 관계에 대한 시험 등 여러 가지 시험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오는 시험이 열두 가지만 되겠습니까?
열두 가지와 같이 여러 가지 많은 시험 가운데서 이기면 많은 종류의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맺히면 좋겠습니까? 여러 가지 열매가 맺혀야 좋습니다. 여러 가지 열매가 맺히려면 여러 가지 시험이 들어와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들어와서 그것을 이기는 사람이 제대로 열두 가지 열매가 맺히는 사람이 됩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신자와 교역자는 못씁니다. 많은 연단과 많은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거기서 다 승리적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지금은 세상 떠난 옥병호 목사가 있었는데, 그 아들이 한국에 있을 때 공기총을 만들어 새 잡는다고 총알을 넣어서 쏘곤 했던 모양입니다. 하루는 총알을 넣는데 총알이 잘 안 들어가자 왜 안 들어갈까 하고 살펴보려고 총구멍에 눈을 들이댄 순간, 다른 아이가 부딪혀서 총이 발사되었고 총알이 눈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동대문 이대 부속병원에 갔는데, 눈을 다 버려서 못 쓰게 되었으니 안구를 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심방을 한번 갔는데 그 사모님이 참 믿음이 좋았습니다. 가서 기도해주고 나오는데, “목사님, 이번에도 승리적으로 이겼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 눈 하나를 뺐어도 기쁘다는 것입니다. 승리적으로 이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매가 하나 맺힌 것입니다. 또 손양원 목사가 아들 둘이 공산당에게 죽었는데, 그 공산당을 자기 아들로 삼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열매 맺은 것입니다. 아들이 죽은 것은 흑암이었지만, 승리적으로 자기 아들을 죽인 그 사람을 아들로 삼았으므로 광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열매가 맺혔습니다. 베드로전서에 시험이 들어올 때는 잠간 근심하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승리하면 광명이 와서 열매가 맺힌다는 말처럼 되는 것입니다.

6. 만국을 소성케 함

그리고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어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8절에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 곧 네가 믿음 지켰다는 그 소문이 각처에 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약재료가 됩니다. 만국을 소생케 합니다. 믿음 지킨 소문이 퍼지는데, 그 소문이 가는 곳마다 약재료가 되고 소생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을 지켰다는 소문이 들리면 듣는 사람이 큰 은혜를 받습니다. 아들의 눈이 하나 빠졌는데 옥병호 목사 사모님이 믿음 지키며 기뻐한다는 소문을 들을 때, 우리가 얼마나 은혜가 되고 약재료가 되느냐는 말씀입니다. 평안북도 천태동교회 김경숙 집사의 남편은 공산당이었는데, 자기 아내를 교회에 못 나가게 하려고 들어와서 때렸습니다. 그런데 팔목만한 굵은 나무로 된 다듬이 방망이로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머리채를 붙들고 때려서 다 터지고 다 부러져서 ‘이제는 죽었겠지’ 하고 내버렸는데, 그 날 저녁에 기도를 많이 하자 하나님께서 은혜로 낫게 해 주셔서 새벽기도도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아침에 밥상을 잘 차려서 “조반 잡수십시오” 하고 갔다 놓으니, 남편이 깜짝 놀라면서, ‘이 사람이 죽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 거냐? 이것을 보니까 진짜 하나님이 계시다. 나도 이제 하나님을 공경해야겠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이렇게 해서는 내가 정말 큰일 나겠다’ 하면서 그때부터 예수님을 믿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소문을 들을 때 소생함을 얻습니다. ‘참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이렇게 믿음 지키면 되는구나’ 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잎사귀는 믿음의 소문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소문이 가는 곳마다 만국을 소생하게 하고 또 약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강수가 흘러 내려가는 곳마다 소생함을 얻는다는 말씀의 신령한 뜻을 받아서 오늘날 우리에게 영적교훈으로 삼고, 생수와 생명강의 역사로 영적인 열매 맺는 일, 달마다 열매 맺는 일을 하고, 그 잎사귀가 만국을 소생하도록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야겠습니다. 또한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진짜 생명강과 생명나무가 있고 열매가 맺혀 있을 것입니다. 이 생명수가 성전에서부터 나오므로, 지성소로 들어가는 생활을 하고 순종해서 내려가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순종하는 것만큼 깊어지고 내려가는 곳 마다 소생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7-8 신천신지(新天 新地)를 유업으로 얻는 자와 못 얻는 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신천신지(新天 新地)를 유업으로 얻는 자와 못 얻는 자
요한계시록 21:7-8

7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1. 이기는 자는 유업으로 얻음

본문 7절에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들’이라는 것은 생명수 샘물, 하나님께서 눈물 닦아주시는 것,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는 것,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다 유업으로 얻는 것 입니다. 그러면 이것들을 어떤 사람이 유업으로 받습니까? 이기는자입니다. 이겨야 합니다. 눈물을 예수님께서 다 닦아주시고, 사망과 애통하는 것이 없고,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는 이 생명의 세계, 또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나가는 생수의 세계, 만물을 새롭게 하는 새 세계, 이러한 것들을 다 이기는 자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이겨야 하겠습니다. 지면 안 됩니다. 지는 사람에게는 유업이 없습니다. 이겨야만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일곱 교회가 나오는데, 교회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다 이겨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사람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는 사람에게는 주신다는 말이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과실을 주어 먹게 한다고 했습니다. 서머나 교회에는 이기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버가모 교회에는 이기는 자에게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두아디라 교회에는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사데 교회에는 흰 옷을,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하나님 보좌에 앉아 함께 먹고, 함께 마신다고 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이기기를 다 힘 써야 합니다.

이기선 목사님의 말씀인데, 씨름하는 곳에 가 보면 씨름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 씨름하는데 영감님이 밖에서 낑낑하며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낑낑 하냐고 물어보니까 우리 아들이라고 했답니다. 우리 아들이 이기기 위해서 힘을 써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또 그네 뛰는 데 가 보면 서 있는 어떤 사람이 그네가 나갈 때 같이 따라서 나갔다가 들어왔다 한답니다. 역시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저기가 우리 딸이라고 했답니다. 딸이니까 딸이 올라갈 때는 좀 더 올라가라고 앞으로 같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이기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닭도 싸울 때 다른 집의 닭 한테 이기라고 소금을 사다 먹인답니다.
그러니까 이기기를 다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다 이기기를 원하시지, 지는 것을 원하시겠습니까? 마귀와 싸워서 이기고 죄와 싸워서 이기고 여러 가지 시험에서 이기고, 그렇게 우리가 이기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기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많은 것을 받습니다. 지는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지 말고 이겨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고 마귀와 더불어 싸워 이겨야 합니다. 피 흘리기까지 마귀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방해하는 세력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자기하고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자기하고 싸워서 이겨야만 다른 것도 이길 수 있습니다. 자기하고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다른 것도 못 이깁니다. 누구든지 이기는 것을 원하지, 지는 것을 누가 원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날마다 이겨야 합니다.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늘 이겨야 합니다. 또 성경말씀에 어긋나게 또는 성경말씀과 반대로 가자고 하는 것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한 것들이 우상입니다. 이겨야 합니다.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기는 자의 아버지가 되시고,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2. 악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감

본문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유황 못은 아주 펄펄 끓는 못입니다. 거기에 참예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옵니다.
영원히 못 나오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거기 간다고 했습니까? 첫째는 두려워하는 자, 둘째는 믿지 않는 자, 셋째는 흉악한 자, 넷째는 살인하는 자, 다섯째는 행음하는 자, 여섯째는 술객, 일곱째는 우상숭배 하는 자, 여덟째는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이렇게 여덟 가지입니다. 여기에 참예하면 안 되겠습니다.

첫째가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앞장 서 나가야 합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을까봐 벌벌 떠는 것, 즉 두려워하는 것은 안 됩니다. 생명 내놓고 나가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를 믿다가 죽자’ 하고 나가야 합니다. ‘예수위아사 하니 아위예수사(예수爲我死 我爲예수死)’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돌아가셨으니, 나도 예수를 위해서 죽으리라 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해 주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벌벌 떨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데려 가시면 갈 예산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안 데려 가시면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죽지 못합니다. 때가 되기 전에는 죽이려고 해도 못 죽입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데려 가는 것입니다. 데려갈 때는 ‘잘 있거라, 세상아. 나는 가노라’ 하고 가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생명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인명은 재천(人命在天)’이라고 합니다. 사람 목숨이 하나님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죽을까봐 두려워합니까? 두려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 합해 놓으면 죽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목숨은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목숨인데, 내놓고 나가야 합니다. 어디든지 갑니다. 소돔 고모라, 아골 골짜기, 헤르몬 사자굴 있는 곳도 갑니다. 가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위협과 공갈을 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두려워말고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믿지 않는 자입니다. 믿지 않는 자가 유황불 못에 참예 하는 것은 정해놓은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앞장 서 나갈 사람이 누구입니까?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흉악한 자들입니다. 음모술수 하는 자들입니다.

그 다음 네 번째는 살인하는 자입니다. 남 죽이는 것, 즉 살인하는 죄가 큰 죄입니다. 요한일서 3: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 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하였습니다. 미워하는 자가 살인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는 영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워하는 자, 즉 살인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남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스데반은 돌로 자기를 때려죽이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저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죽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 하신 것 가운데,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신 것이 첫번째입니다. 죽이는 사람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스데반도 그랬고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죽이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왜 불쌍히 여겨야 합니까? 내가 죽는 것은 그 사람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데려 가실 때가 되어서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니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것입니까? 그래서 그 사람이 불쌍한 것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지만 그 사람들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데려 가실 때가 되어서 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죄만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미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살인하는 자들은 유황불 넣는 못에 참예합니다.

돈 잘라 먹은 사람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라 먹은 사람도 나쁘지만 자기도 책임이 있습니다. 안 잘리면 될 것인데 잘렸으니 말입니다. 다단계 하다가 돈을 다 잘립니다. 다단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고, 그런 것은 결국 잘리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해놓고, 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습니까? 언제나 책임을 자기가 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괜히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때문에 그렇지, 다른 사람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다단계 사기꾼이 아무리 많아도 저는 한 번도 안 떼어 봤습니다. 안하니까 뗄 것이 있겠습니까? 자기 책임입니다. 다단계 걸려서 돈 떼어 먹히고 왜 다른 사람을 원망합니까? 그러니까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행음하는 자입니다. 간음하는 자들, 즉 행음하는 자들도 유황불 넣는 못에 참예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절대 행음하면 안 됩니다. 정조를 지켜야 합니다.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하고 육신의 정조도 지켜야 합니다. 행음하면 그것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한다고 했습니다. 행음 죄를 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술객은 점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배당 앞 큰 길 앞에 나가 보면 ‘정 도령’이라고 써 붙인 데가 있는데, 점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역전에 가면 사주팔자, 작명을 본다고 써 붙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술객들인데, 우리는 거기에 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모두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길가에 앉아서 팔자 고쳐 준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저 사람이 진짜 팔자를 고치면 제 팔자부터 고치지, 길가에 앉아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쓰면서 누구를 고쳐주려고 그러느냐?”라고 했다고 합니다. 팔자 못 고칩니다. 하나님께서 팔자를 내신 대로 사는 것이지, 팔자 못 고칩니다. 고친다는 것은 다 속이는 것입니다.

팔자는 사실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대로 사는 것입니다. 팔자와 예정은 다릅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팔자는 우연히 그저 그렇게 되어서 우연한 세력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팔자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정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되는 것입니다. 예정은 주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이 있지 않습니까? 주인이 있고 또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예정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더 좋은 구원을 주시려고 그렇게 예정하시는 것입니다. 예정은 목적이 있고 신앙이 있고 주인이 있습니다. 팔자는 운명이라고 하는데, 운명은 목적도 없고 주인도 없고 신앙도 없는 것입니다. 우연히 그렇게 되어서 가다가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연이라고 합니다.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팔자 보는 사람들은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팔자 못 고칩니다. 봐도 못 고칩니다.
고치면 자기부터 고쳐야 하는데 자기도 못 고치면서 무슨 다른 사람의 팔자를 고칩니까? 그러나 우리는 팔자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예정을 믿습니다.

어떤 사람이 과부가 될 팔자여서 과부가 됐다는 것과 하나님의 예정대로 과부가 되었다는 것은 과부가 된 점에서 마찬가지입니다. 팔자가 사나워서 과부 된 것이나 예정 때문에 과부 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정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남편으로부터 해방을 시켜서 과부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일단 예정에는 주인이 있지 않습니까? 또 결과는 더 구원을 잘 이루어서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께 대한 믿는 일을 좀 더 잘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남편이 있으면 믿는 일을 못하니까 믿는 일을 좀 더 잘해서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게 해주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합니다. 해방 시켜주셔서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팔자는 해방은 무슨 해방입니까? 우연히, 그야말로 팔자가 사나워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예정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고 믿는 일을 더 잘하게 하시려는 뜻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생명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예정을 믿는 사람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실 줄 믿고 신앙적으로 나갑니다.

그러므로 술객에게 가지 마십시오. 술객들이 손금 보고, 관상 보고, 사주팔자 보고, 궁합 보고, 이사 가는 날짜 보는 것은 마귀한테 물어보는 것입니다. 보면 안 됩니다. 사주팔자가 맞을 것 같으면 쌍둥이는 꼭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날한시에 낳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쌍둥이 팔자가 똑같습니까? 5분 차이가 나서 다르다? 사주팔자에는 5분 차이는 안 나옵니다. 연월일시를 보기 때문에 팔자입니다. 금년이 정해년이니까 두 자입니다. 몇 월도 두 자, 날짜도 두 자, 시간도 두 자, 이렇게 해서 팔자가 되는 것입니다. 팔자는 시간까지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쌍둥이는 죽는 것도 한날한시에 죽고 꼭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쌍둥이는 사는 것이 같지 않습니다. 우리 고향에 쌍둥이가 하나 있었는데, 형은 집 나가서 객사를 했고, 동생은 아들이 몇이 있습니다. 아들도 안 맞고 사는 것도 안 맞고 재산도 안 맞습니다. 사주팔자 전부 허튼 소리들입니다. 괜히 다 꾸며서 하는 것입니다. 이름 가지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승만 박사는 이름이 이승만이어서 대통령이 되었다라고 했다가, 대통령 하야한 다음에는 이름이 이승만이라서 망했다고 했습니다. 괜히 갔다가 붙이는 것입니다. 잘되면 그 때부터 그래서 대통령이 되었다 하다가 또 망하면 또 그래서라고 합니다.
이것이 다 허튼 소리들인 것입니다. 절대 이 술객, 점하는 것, 물어보는 것, 관상 보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듣지 마십시오. 마귀 말인 줄 알고 안 들어야 합니다. 또 토정비결 보지 말아야 합니다. 술객들 다 지옥 갈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상숭배 하는 자들입니다. 다 지옥에 갈 줄 압니다. 유황불 타는 못에 참예합니다.

마지막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입니다. 거짓말하는 것이 죄입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거짓말하지 말고 진실해야 합니다.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옥상에 숨겨놓고 들어왔다가 나갔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생명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대로 하면 정탐꾼이 하나님의 성도인데 죽게 되겠기에 거짓말한 것입니다. 죽게 되겠으니 부득불 거짓말했는데, 생명에 관계된 것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십니다. 그러나 그 외에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사실대로 해야 합니다. 거짓말 하는 자들은 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불과 유황불에 들어갈 첫째가 무엇입니까? 두려워하는 자들, 둘째는 믿지 않는 자, 셋째는 흉악한 자, 넷째는 살인하는 자, 다섯째는 행음하는 자, 여섯째는 술객, 일곱째는 우상 숭배하는 자, 여덟째는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이 여덟 가지 죄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항상 힘써야 하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죄를 지으면 지옥은 안 갑니다. 안 믿는 사람이 이런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러한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징계를 해서 회개 시켜 데려 가십니다. 이런 죄 가운데 빠지면 하나님의 징계가 옵니다. 여러 가지 징계가 옵니다. 회개시키려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회개 시켜서 데려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지옥에 갈 죄에 빠지면 안 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1:10-27 새 예루살렘 성.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새 예루살렘 성
요한계시록 21:10-27

21:10 그가 성령 안에서 나를 크고 높은 산으로 이끌고 가서 거룩한 성, 곧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예루살렘을 내게 보여 주었는데 

21: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다. 

21:12 또 그 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이 있고 열두 문이 있었는데, 그 문들에는 열두 천사가 있었으며, 그것들 위에 이름이 쓰여 있었으니, 그 이름은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다. 

21: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 있었고 

21:14 또 그 성의 성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었는데, 그것들 위에 어린 양께 속한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었다. 

21:15 나와 함께 말하던 천사는 그 성과 그 성의 문들과 성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자를 가지고 있었다. 

21:16 그 성은 네모 반듯하여 그 길이와 너비가 똑같았다. 그가 그 성을 그 갈대로 측량하였는데, 만 이천 스타디온이었고 그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똑같았다. 

21:17 또 그 성의 성벽을 측량하니,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치수, 곧 천사의 치수이다. 

21:18 그 성벽의 재료는 벽옥이었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았다. 

21:19 그 성벽의 기초 석들은 각종 보석으로 꾸며졌는데, 첫째 기초 석은 벽옥, 둘째는 남보석, 셋째는 옥수, 넷째는 녹보석, 

21:20 다섯째는 홍마노, 여섯째는 홍보석, 일곱째는 황옥, 여덟째는 녹옥, 아홉째는 담황옥, 열째는 비취옥, 열한째는 청옥, 열두째는 자수정이었다. 

21:21 또 열두 문은 열두 진주로 되어 있었는데, 각 문은 진주로 되어 있었고, 성읍의 길은 정금이요 투명한 유리같았다. 

21:22 내가 그 성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으니,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분과 어린양께서 그 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이다. 

21:23 그 성은 해나 달이 비출 필요가 없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그것을 비추시고 어린 양께서 그 성의 등불이 되시기 때문이다. 

21:24 나라들이 그 성의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며 땅의 왕들이 자신들의 영광을 가지고 그 성으로 들어올 것이다. 

21:25 그 성의 문들은 낮에는 결코 닫히지 않을 것이며 거기에는 밤이 없을 것이다. 

21:26 그들이 나라들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 성으로 들어올 것이다. 

21:27 모든 속된 것과 혐오스러운 것과 거짓을 행하는 자는 그곳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나, 다만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것이다.


10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15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16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17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18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20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정이라 21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24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25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26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7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1. 새 예루살렘 성의 모습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내려옴

본문 10절에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예루살렘이 내려왔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장과 광과 고가 같은 네모 방정한 성으로 하늘에서부터 내려 왔습니다. 그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예수님 공중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올라간 성도들과 예수님이 새 예루살렘 성과 함께 이 땅 위에 내려옵니다. 그것이 지상 재림입니다.

본문 11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보석같이 빛나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습니다. 열두 진주문 또한 12절에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곽이란 성벽입니다. 문이 전부 열둘이라고 했습니다.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문이 모두 열둘입니다. 그 문에 천사가 지켜서서 들어올 자는 들어오게 하고 들어오지 못할 자는 못 들어오게 합니다. 누구나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가 문마다 지켜 있다고 합니다. 천사가 문마다 지켜 있다가 ‘너는 못 들어간다’ 하면 못 들어갑니다. 또 들어갈 자가 오면 ‘들어가라’ 하면 들어갑니다. 그곳이 새 예루살렘 하늘나라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늘나라도 되고, 또 천년왕국 때의 새 예루살렘도 되고, 영적세계도 됩니다.

천사가 문에서 ‘들어오지 못한다’라고 말할 때, ‘예수의 피가 내게 있다’라고 말하면 천사가 벌벌 떨면서 ‘들어가라, 들어가라’ 합니다. 예수의 피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세상에 과학이나 돈이나 권세나 양반이나 도덕군자나 선한 일 많이 한 것이나, 이런 것 갖고는 못 들어갑니다. 불교에서는 선한 일을 해서 간다고 하는데 선을 행해도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죄가 열 가지가 있다고 하면 선을 열 가지를 행해도 죄는 그냥 있습니다. 선은 선대로 있고 죄는 죄대로 있습니다. 100번의 선을 행해도 선은 선대로 죄는 죄대로 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9:22절에 “율법을 쫓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행해서는 못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만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문들 위에 이름 쓴 것이 있는데, 12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문이 열둘이니까 시므온, 레위, 르우벤 등 12지파의 이름이 문마다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어느 문으로 왔느냐?’ 하면 ‘난 유다 문으로 왔다’, ‘르우벤 문으로 왔다’, ‘므낫세 문으로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열두 기초석

본문 14절에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성곽을 쌓는데 그 기초석은 열둘입니다. 열두 보석이 기초석입니다. 그 열두 기초석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12사도, 즉 베드로, 요한, 안드레, 야고보 등 열두 사도의 이름이 기초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두 사도가 새 예루살렘 성벽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열두 사도가 이렇게 귀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두 사도를 통해 주신 성경 말씀이 새 예루살렘의 기초가 되는 것 입니다. 말씀이 기초가 되어 영적 성전을 건축해 나가는 것입니다.

본문 15-16절에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일만 이천 스다디온은 12수인데 하나님의 만수입니다. 요한계시록 14:20절에서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고 하였습니다. 스다디온은 자로 말하면 얼마 안 되는데, 일만 이천 스다디온은 12수로 만수니까 이 만수의 척량이 실재로 얼마인지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내정수입니다.

본문 17절에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곽을 척량하니 일백사십사 규빗이라고 하였습니다. 일백사십사도 12의 제곱입니다. 한규 빗은 한자 반으로, 50cm 쯤 됩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하나님의 내정수이므로 실재로 얼마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본문 18절에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성벽을 벽옥으로 쌓았습니다. 그 성은 정금이고 맑은 유리 같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벽옥으로 쌓은 성곽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부자 나라라도 거리를 정금으로 한 곳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늘나라는 전부 정금입니다.

또한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19-20절에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곽의 기초석을 먼저 해 놓고 성을 쌓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을 쌓을 때 콘크리트로 기초를 닦는데, 하늘나라는 기초석을 전부 각색 보석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첫째 기초석은 벽옥, 둘째는 남보석, 셋째는 옥수, 넷째는 녹보석, 다섯째는 홍마노, 여섯째는 홍보석, 일곱째는 황옥, 여덟째는 녹옥, 아홉째는 담황옥, 열째는 비취옥, 열한째는 청옥, 열둘째는 자정으로 전부가 보석입니다.
기초석을 보석으로 하는 성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만 있는 것입니다. 보석들은 세상에 있는 것인데 상징적인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설명하기 위해 보석으로 말한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보석은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 보석보다 더 좋은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여러 보석으로 설명했지만 하늘나라는 이 세상에 있는 보석 같은 것이 아닙니다. 더 좋은 보석입니다.

본문 21절에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열두 문은 진주 문입니다.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 길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황금길을 걸어 다니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금으로 반지를 해서 끼고, 목걸이를 하며 좋다고 하는데, 하늘나라에 가면 길이 전부 정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지와 목걸이가 다 필요 없습니다.


2. 새 예루살렘성의 생활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광이 충만한 곳

본문 22절에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성안에 성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성이 전부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바로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충만하시고 예수님이 충만하시기 때문에 그 안은 모두 하나님이 성전이고 예수님이 성전입니다.

본문 23절에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성에는 해와 달이 쓸 데 없습니다. 해와 달은 이 세상에서는 필요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필요 없습니다.

본문 24절에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만국이 다 새 예루살렘 빛 가운데로 다닌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땅의 왕들은 자기 영광을 가지고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온다고 하였습니다. 왕들이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서 왕 노릇 하다가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옵니다. 왕권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낮에 성문을 닫지 않습니다. 늘 열어 둔다는 것입니다. 밤에는 어떻게 할까요? 밤에는 닫습니까? 그러나 밤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늘 낮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환하게 비취는데 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낮에 성문을 닫지 않고, 항상 낮이고 밤은 없으니까, 항상 성문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문 닫고 있는 곳이 좋습니까 아니면 열어 놓고 있는 곳이 좋습니까?
열어놓고 있는 곳이 좋지 않습니까? 문을 열어놔야 공기도 들어오고 앞에도 내다보이지, 닫고 있으면 얼마나 갑갑합니까? 예전에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요즘은 점점 허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학교 같은 곳을 가보면 담을 헐고 그곳에 나무를 심곤 합니다. 명지대학이나 다른 학교도 가 보면 담을 헌 곳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는 담을 쌓고 대문을 걸고 자는데, 하늘나라는 그것이 필요 없습니다. “성문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들어옴

본문 26절에는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라고 하였고, 그 위에 본문 24절에는 왕들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다 왕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왕입니다. 24절에는 왕들이 들어온다고 했고 26절에는 사람들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왕이 따로 있고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은데, 원리적으로 볼 때에는 다 왕입니다. 왜 다 왕인가 하면,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왕권이 있게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왕권이 있습니다. 또 선지권도 있고 제사권도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지금도 왕권이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도 왕권이 있고, 천당에 가도 왕권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왕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왕이 따로 있고 백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갈라놓겠습니까?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들어온다는 것을 보면, 이것은 아마도 왕권이 많은 왕, 즉 자기 영광이 많은 왕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왕은 다 왕이라도 영광이 많은 왕이 있고 영광이 없는 왕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믿는 일을 하지 못하고 믿음 안 쓰고 죄만 짓다가 하늘나라에 갔는데 무슨 왕권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지위는 왕입니다. 왕의 아들이므로 아버지의 왕권을 계승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왕의 아들 중에 바보 같은 왕의 아들도 있지 않습니까? 제대로 왕 노릇 못하고 다니면서 사건만 일으키는 왕들이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왕인데, 왕의 아들이기 때문에 다 하나님의 왕권을 계승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왕노릇을 제대로 하는 왕이 따로 있고, 왕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왕이 있습니다. 아무 권세도 없고 아무 힘도 없고 지혜도 없고 아무 능력이 없는 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왕자인데, 자라나지 못하고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아무 힘도 없는 왕으로 바보 왕과 비슷합니다. 믿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런 왕이 됩니다.

여기에 자기 영광을 가지고 들어온다는 것을 보면 특별한 왕권이 있는 왕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면류관을 받을 일을 많이 해서 면류관과 영광이 충만한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옵니다.
왕은 왕인데 자기 영광을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는 자는 영광의 왕이 되지 못하고 믿는 일 제대로 못한 것입니다. 구원 이루어 나가는 것을 제대로 못한 왕은 자기 영광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그저 즐거워하기만 하는 것입니다. 바보 왕과 비슷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왕은 왕입니다. 하늘나라의 왕입니다. 믿는 일을 하지 못한 사람은 가서 이와 같이 됩니다. 왕은 왕인데 바보 왕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는데, 천사가 지켜 있다가 “못 들어간다”하면 무엇이라고 해야 합니까? “예수의 피가 있다” 하면 벌벌 떨면서 들어가라고 합니다. 예수의 피를 갖고 들어오는 사람은 다 들어갑니다. 그런데 바보왕도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시는 고치지 못 합니다. 영원토록 고치지 못합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 왕권을 이루어서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며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는 왕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에 참여해야 권능에 참여합니다. 이러한 영광스런 왕이 되어 하나님 앞에 가야 되겠습니다.

악한 자는 결코 들어오지 못함

본문 27절에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속된 것은 세속화 된 것입니다.
가증한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미워하는 일입니다. 또 거짓말 하는 자가 있습니다. 진실해야 됩니다. 거짓말 하지 말아야 합니다. 속된 것, 가증한 일, 그리고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고 했는데, 예수를 믿어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 들어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구속해 주신 것을 믿으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들어갑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속된 것, 가증한 일, 거짓말 하는 것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절대로 거짓말 하면 안 됩니다.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을 받지만, 거짓말 하는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그만큼 구원을 이루어 나가지 못합니다. 예수 믿어 하늘나라에 가면 왕은 왕인데, 거짓말 하는 사람은 바보 왕이 됩니다. 

절대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말로 남을 욕하지 마십시오. 남을 욕하고 저주하면 그것을 자기가 다 받습니다. 마태복음 10:37절에 “네 말로 너를 의롭다 함을 얻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는데, 말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있습니다. 남을 욕했으면 거기에 대한 심판이 옵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욕하는 말이나 남을 저주하는 말과 같은 말을 하지 마십시오. 손해 주는 말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교회에 손해 주는 말과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손해 주는 말은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그것도 심판 받습니다. 말에 대해서 조심하십시오. 말에 대한 심판이 옵니다. 거짓말 하던 자는 이제는 진실해야 합니다. 거짓말 하면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거짓말 하면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반드시 옵니다. 앞으로 심판도 옵니다. 우리는 믿는 일을 잘해서 심판대에 앞에 가서 왕권 있는 왕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1:1-14 심판과 하나님의 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심판과 하나님의 나라
요한계시록 21:1-14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12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이더라 13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그 성의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 말세의 될 일

말세 징조

말세에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고, 마태복음 24:7-8절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고 하였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4:32절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는 여름이 온다는 것은 유대 나라가 독립될 것을 상징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유대나라를 가리키는데, 유대나라 민족이 굳건히 회복되고, 그 민족이 여러 나라에서 자기 나라로 모여 들어서 독립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임박한 줄 알라는 것입니다. 주후 70년에 망한 유대나라는 1948년도에 독립을 해서 오늘날까지 그 민족이 세계 각국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독립했습니다. 이 말세는 노아 시대와 같고 소돔 고모라 시대와 같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을 짓습니다. 성경에서 이와 같이 현실주의, 음란방탕주의, 죄악이 관영한세대가 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천국 복음이 온 세계에 다 전파되고, 세계 어느 나라나 하나님의 복음이 다 들어갈 때에 세상 끝이 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대로 오늘날 천국 복음이 온 세계에 다 전파됐고, 유대나라는 독립이 됐고, 처처에 난리와 난리,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이 때를 당했는데, 이때가 과연 말세입니다.

말세의 때에 대해서, 디모데후서 3:2-4절에는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돈만 알고, 자기만 알고, 부모를 거역하고 배반하여 팔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세가 다 됐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이젠 말세가 됐다”고 말하고, 이종교에서도 “이젠 말세가 됐다”고 말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 재림

이때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 끝에 가서는 대환난이 있고, 대환난 중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끝에는 큰 환난이 있습니다. 그 환난 중간에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시고 이 세상에 재림을 하십니다. 전반기 환난과 후반기 환난이 있는데, 환난을 절반 나눠서 앞에는 전반기로서 처음에 당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오는 것을 후반기 환난이라고 합니다. 전반기 환난에 일곱인 떼는 것, 일곱 나팔 부는 환난, 즉 일곱 나팔 재앙이 옵니다.

요한계시록 6장은 일곱 인 떼는 재앙이고 8장은 일곱 나팔 재앙입니다. 삼분지 일이 피가 되고 삼분지 일이 죽는, 그와 같은 전반기 환난이 있고 그 중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을 요한계시록11:9-1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9-12절에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 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성도들에게 올라오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그때 성도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러 올라갑니다. 
이미 예수를 믿고 세상 떠난 성도는 무덤에서 다 부활해서 공중으로 예수님을 맞으러 올라갑니다. 그때 우리 살아 남아있는 성도들도 변화되어서 신령한 몸으로 다 예수님을 맞으러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마지막 재앙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후에는 마지막 재앙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6장에서부터 일곱 대접 재앙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중 재림하시면 성도는 다 들리어서 공중으로 올라가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성도들은 공중에 올라가 있고, 땅 위에는 후반기 환난인 일곱대접 재앙이 옵니다. 그때 세상에서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납니다.

큰 환난이 있어서 많은 이 세상 사람들이 독창의 고난도 당하고, 흑암의 고난도 당하고, 강과 물샘이 피가 되어서 피를 먹는 고난도 당하고, 해가 뜨거워져서 타져 죽는 고난도 당하는 등의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성도는 그때 공중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후반기 환난은 당하지 않습니다. 전반기 환난은 성도가 받아야 되지만, 후반기 환난은 성도가 공중에 올라가서 예수님과 같이 세상을 심판하는 기간입니다.

2. 천년왕국

그리고 후반기가 다 끝난 다음에는 마귀를 잡아 가둡니다. 아마겟돈 전쟁으로 사람이 거의 다 죽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사람이 희귀하게 됩니다. 사람이 희귀하게 됐을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마귀를 잡아다가 무저갱에 던져 잠급니다. 그래서 마귀는 무저갱에 일천 년 동안 갇혀 있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1-3절에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일천 년 동안 마귀를 결박해서 무저갱에다 던져 잠궈 놓습니다. 그때 이 세상은 일천 년 동안 마귀가 없는 세상이 됩니다. 또 죄도 없습니다. 마귀가 없으니까 죄가 없게 됩니다. 악이 없습니다. 모든 악은 다 마귀에게서 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도 다 마귀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짓게 되는데, 그 죄악과 악의 근본이 되는 마귀를 잡아다가 무저갱에다 가두어 놨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악이 없고 죄가 없는 세상이 일천 년 동안 계속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천년왕국 이라고 하는데, 천년 동안 사람이 죽지 않는 시기입니다.

이사야 65:17-22절에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 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의 건축한 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라고 하였습니다. 25절에는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이 천년왕국에 될 일들입니다. 마귀를 잡아 가두었기 때문에 천년왕국에서는 이리가 양과 같이 사자가 소와 같이 풀을 먹고, 뱀이 어린아이가 가지고 놀아도 물지 아니합니다. 그 짐승들에게까지 악이 빠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라고 했는데, 사람이 천 년 동안 산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백 세에 죽는 사람이 혹시 있는데, 그것은 저주받아 죽은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사람은 천년 왕국이 되기 전에 죄 지은 자입니다. 그 죄 값으로 저주 받아 죽은 것입니다. 백 세에 죽었다고 하면 ‘그 애가 왜 죽었는가’ 하고, 백 세에 죽는 것을 ‘애가 죽었다’고 말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평화가 가득합니다. 전쟁이 다시 없고,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화평이 충만한 시대가 됩니다.
평화가 넘쳐 흐릅니다.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 평화롭고, 말방울에까지 다 평화라고 쓰고 다니고, 포도원을 심고 타인이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에서는 자작농을 해 먹는 것입니다. 포도원 가꾸고 그 포도나무 열매를 먹고 살고, 이렇게 천 년 동안 죽지 않습니다. 또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왕 노릇 하시는 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 노릇 하시는 나라, 성도가 같이 왕 노릇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천년이 다 찬 다음에 마귀를 잠깐 놔 준다고 했습니다. 마귀를 놓아 주니까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또 전쟁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천년왕국이 다 찬 다음에 왜 마귀를 잠깐 놓아 주겠습니까? 택자와 불택자를 가르려고 놓아 주는 것입니다. 마귀가 없어서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섬기니까 누가 불택자인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귀를 놓아 주면 그 불택자는 마귀에게 싹 가 붙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대적하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지옥에 보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년왕국이 없다고 합니다. 이 천년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이지 실질적인 숫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는 실질적인 숫자가 많이 있습니다. 다 상징이 아닙니다. 일곱 교회, 열두 지파, 열두 사도와 같은 것은 다 실질적인 숫자입니다. 상징적인 숫자가 아닙니다. 천(千)도 실질적인 숫자로 봐야 합니다.
무(無)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천년왕국은 영적세계다’라고 주장합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가서 사는 나라를 가리킨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천년 후에 마귀를 놓아 준다고 했는데, 영적세계도 마귀를 놓아 줍니까? 또 하늘나라에도 곡과 마곡이 있습니까? 그것들이 맞지 않습니다. 영적세계나 구원세계에서는 마귀를 놓아 줄 수가 없습니다.
또 거기에는 곡과 마곡이 없습니다. 미혹이 없고, 전쟁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년왕국 끝에 가서는 곡과 마곡이 나오고 마귀가 나오고 전쟁을 일으키고 핍박을 하고 성도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천년왕국이 분명히 있고, 그 다음에 이 세상이 끝이 납니다.
천 년이 실질적인 숫자라고 믿는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 쉬신 것과 연결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8절에 하루가 천 년 같다고 하였기 때문에, 천지 창조의 하루가 실제 역사의 천 년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으로 지구의 역사를 따져보면 예수님 초림하시기 전 4천 년, 예수님 후 2천 년이 지났으므로, 지금 6천 년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5:17절에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일해 오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6일 동안 창조하시고 하루 쉬신 것처럼, 6천 년이 지나면 마지막에 천 년 동안 안식하는 천년 안식 세계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경의 원리에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6천 년이 되면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날짜를 계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연대를 계산하여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짜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정확한 연대를 계산하려는 사람들은 전부 다 비성경적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입니다. 거기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36절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몇 년도 몇 월 몇 일에 예수님이 온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을 떠난 행동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겟돈 전쟁으로 죽고 천년왕국에는 남은 사람만 들어갑니다. 전쟁 때에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육체 가진 사람들이 많이 죽고 희귀하게 남아 있는데, 마귀를 잡아 가두니까 그 사람들과 이 세상도 천년왕국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천년 동안 살면서 생산합니다. 즉 아이를 많이 낳게 됩니다.


3. 새 예루살렘 성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 성이 내려옴

그런데 본문에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옵니다. 본문 1절에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천년왕국이 되면 하늘에서부터 새 예루살렘이 내려옵니다. 사방이 단정하고 네모난 새 예루살렘이 쭉 내려와서 공중에서 성도들을 다 그 안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난 후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그것이 땅 위에 내려앉습니다. 그 때 세상은 현재 있던 세상에서 죄악만 없어진 세상인데, 여기에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와서 앉는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앉을지는 모릅니다. 그 새 예루살렘 안에는 변화된 성도만 살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문이 열둘입니다.
전부 진주와 보석으로 꾸몄습니다. 금과 진주로 꾸며놓았습니다.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인데 성도가 거기서 삽니다. 새 예루살렘성 밖에는 육신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그 성 안에는 예수님과 변화된 성도가 살면서 밖에 나가서 왕 노릇 하다가 들어오고 또 나가서 왕 노릇하다가 들어옵니다. 육체를 가진 사람은 못 들어옵니다.

본문 10절에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이더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의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전부 금으로 꾸미고 보석으로 꾸미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 새 예루살렘은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이 다음에 갈 하늘나라인 영원 천국을 가리키기도 하고, 문자적으로 천년왕국에서 왕들이 거하는 새 예루살렘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또한 신령한 세계를 가리키기도 하고, 오늘날에는 우리의 영적세계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성도들의 영적세계는 오늘날에도 새 예루살렘입니다. 우리는 새 예루살렘에서 삽니다. 이 다음에 천년왕국 때에는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예루살렘에서 삽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영원한 하늘나라가 새 예루살렘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이다음에 천년왕국에 가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은 정해져 있고, 또 하늘나라에 가서 살 것도 정해져 있습니다. 남은 것은 오늘날의 영적 세계인데, 우리가 영적으로 새 예루살렘 생활을 날마다 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할 자

그런데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있습니다. 어떤 자가 못 들어갑니까? 분문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 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은 새 예루살렘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못 들어갈 자는 두려워하는 자, 믿지 아니하는 자, 흉악한 자, 살인자, 행음하는자들, 술객들, 우상 숭배자들,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거기에 못 들어갑니다. 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한다고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이런 죄 값으로 지옥에 갑니다.

갈라디아서 5: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열다섯 가지입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은 다 성적인 죄입니다. 또 우상 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내는 것, 당 짓는 것, 분리함, 즉 갈라지는 것, 이단, 투기, 술 취하는 것, 방탕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술 취하는 죄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한 잔 먹는 것은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석 잔까지는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잔에 안 취하는 사람은 백 잔에도 안 취해야 합니다. 만 잔에도 안 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잔에 하나도 안 취하는데 또 한 잔 먹었으니까 또 하나도 안 취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또 한 잔 먹었으니까 또 하나도 안 취해야 되고 백 잔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백 잔도 한 잔부터 올라 가니까, 한 잔에 하나도 안 취하면 백 잔도 안 취해야 됩니다. 백 잔 먹어서 취하는 사람은 한 잔에서부터 취해 올라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술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한 잔부터 아예 안 먹는 것이 바로 된 것이지, 한 잔은 괜찮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술 취하지 말라’고 한 이 성경에 의해서 한 잔이라도 먹으면 안됩니다. 먹으면 취한 것이고, 성경 위반입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 성경 말씀을 가지고 심판하실 것인데,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취했느냐?’라고 하시면 무엇이라고 답변하겠습니까? 아예 안 먹는 것이 성경대로 바로 된 것입니다. 만약 먹었다면 이 다음에 심판대 앞에 서서 이 성경 말씀으로 심판 받습니다. 술을 안 먹어야 됩니다. 술 먹는 사람들 다 끊으십시오. 술 취하는 것 다음에 방탕하는 죄인데, 방탕한 자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4. 새 예루살렘 성에 합당한 자

영적 실력 있는 자

예수 믿는 사람도 지옥에 들어갈 죄를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 즉 믿음 쓰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세가 므리바 물가에서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을 쓰지 않은 것을 가리킵니다. 또 흉악한 자, 살인한 자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남을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음행하는 자,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음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술객, 사주팔자 보고 손금 보고 뭐 궁합 보고 이런 것들이 다 술객에 속하는 죄입니다. 우상 숭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고 더 지배를 받는 것이 다 우상입니다. 또 거짓말 하는 것, 예수 믿는 사람도 거짓말 합니다. 물론 안 믿는 사람은 이 죄 값으로 지옥에 갑니다. 당연합니다. 불 붙는 못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죄를 지으면 유황불 못에 참예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다음에 지옥은 안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지옥에는 안갑니다. 그런데 현세에서 지옥 고통을 당합니다. 심적으로 지옥 고통을 당합니다. 시편 32장에 다윗이 범죄한 다음에 지옥 고통을 당했습니다. 시편 32:3절에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노라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믿는 사람이고 성자입니다. 다윗이 구원을 얻어 놓았지만 범죄한 다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고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내리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옥 고통입니다.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당장 현세에서 지옥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죄 짓고 나가면 하늘나라에 가도 실력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갑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거저 갑니다. 하늘나라는 참으로 아주 영광이 충만하고 아주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는 신령한 나라인데, 그 나라에 가도 실력이 없습니다. 사용할만한 능력도 없고, 알만한 지혜도 없고,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일할 만한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그저 하늘나라에 가서 좋아서 즐거워 하긴 하지만, 하늘나라의 좋은 것들이 무용지물이 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사명도 없습니다. 그러니 하늘나라에 가서 즐거워 하긴 하지만, 하늘나라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어린애와 같은 것입니다. 나라에 들어가긴 들어갔지만 하늘나라에 가서 능력 있는 자, 필요한 자, 무엇을 제대로 할 자가 되지 못합니다.

가령 예를 들면, 아버지가 세계 일등 부자이고 그 아버지의 집에 아들이 많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아들들이 다 아버지의 집에서 즐거워하고 다 같이 잘 누립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아이의 능력 정도를 봐서 자동차도 하나 주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부릴만한 정도가 되어야 자동차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타고 다닐 수 있습니다. 또 비행기를 타고 다닐 만한 기술이 있으면 비행기도 하나 줄 수가 있습니다. 피아노나 전자 오르간 연주할 만한 기능이 있는 아이는 또 그것을 하나 줄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아들에게는 또 그것을 줄 수가 있습니다.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사람은 받아서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기능이 없는 아들은, 피아노를 칠 줄도 모르고, 오토바이를 탈 줄도 모르고, 자동차를 몰 줄도 모르고, 비행기를 몰 줄도 모르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무것도 줄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차 타고 갈 때 같이 타고 갈 수는 있지만 자동차를 줄 수는 없습니다. 주면 다 버리게 됩니다. 그저 같이 즐거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가 하나 주면 자기 것을 만들고 자기가 그것을 이용해서 어떠한 일을 하려면, 자기가 실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능력이 있고 기능이 있고 지혜가 있고, 모든 면에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늘나라에 가서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기를 만든 것만큼, 세상에서 능력 있는 자가 된 것만큼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십니다. 세상에서 지혜를 많이 터득해서 지혜자가 된 것만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많이 맡기십니다.

누가복음 19장의 므나 비유에서 므나 장사를 잘한 것만큼 고을을 맡깁니다.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은 열 고을 권세,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은 다섯 고을 권세를 누립니다. 각각 다 다르게 맡긴다고 했습니다. 많이 맡기는 사람이 있고 적게 맡기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또 달란트 비유에도 다섯 달란트를 더 남긴 사람과 두 달란트 더 남긴 사람에게 많은 것으로 맡기신다고 하였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기지 않은 사람에게는 맡기지 않고 오히려 빼앗아 많이 남긴 자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모하는 자

그러면 어떤 자가 되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사모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6 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니 내가 생명수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되어서 늘 생명수를 먹는 사람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습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심령이 갈급증이 나고 목이 말라서 어떻게 하던지 조금 더 은혜를 받으려고 하고, 조금 더 사모하려고 하고, 조금 더 예수님을 찾으려고 하고, 조금 더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기도 하는데, 목이 말라서 사모하니까 밤에도 입을 열고 헐떡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다고 합니다. 사모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새벽기도를 안 합니다. 잠 만 자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사람은 잠만 잘 수가 없습니다. 새벽에 일어나게 됩니다. 정신이 펄떡 납니다. 
또 사모하는 사람은 예배당에 늦지 않습니다. 일찍 옵니다. 예배시간에 안 빠집니다. 한 시간도 안 빠집니다. 미리부터 나와서 준비기도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사모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생명수를 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다음에 새 예루살렘, 또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능력 있는 왕이 되지 못합니다. 왕은 왕인데 아무 권세 없는 왕이 됩니다. 왕도 능력 있고 모든 일을 제대로 하는 권세 있는 왕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하는 왕도 있습니다. 그런 왕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러므로 권세 있는 왕이 되어야 합니다. 능한 왕이 되어야 합니다. 능한 왕, 능력 있는 왕, 지혜 있는 왕, 하늘나라의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갈 왕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사모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사모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늘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또 기도하기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기는 자

그 다음에 7절에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이겨야 합니다. 자기부터 이겨야 합니다.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일이 안 됩니다. 자기를 이기고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자기를 쳐서 복종 시켜서 옛 사람이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부패성이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자기를 쳐서 복종 시켜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만들어서 어려운 일이 많이 와도 잘 이기고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하나 이기지 못하면 천하를 다 얻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27절에 “내가 내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하였습니다.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버리워질까봐 자신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한 것입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자유 방종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언제나 자신을 쳐서 복종 시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거룩과 경건과 의를 이루어 나가는 사람

베드로후서 3:11-12절에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한 행실을 하고 경건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에베소서 4: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의와 거룩을 이루어 나가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거룩과 경건과 의를 날마다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이 말세에 이때가 어느 때인 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임박한 것과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이 앞으로 올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현재의 새 예루살렘 되는 영적세계에서 우리가 날마다 우리 자신을 만들고 자신의 실력을 길러 나가고 하나님의 사명을 다 하는 목마른 자, 언제나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마귀 시험을 다 이기고, 자기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 운동이 잘 이루어져 나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1:1-6 신천신지(新天新地).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신천신지(新天新地)
요한계시록 21:1-6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러라 5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1. 새 하늘과 새 땅

본문 1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5:17-19절에도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전의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했는데, 이것은 죄악의 하늘, 죄악의 땅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죄악의 하늘과 죄악의 땅을 다시 기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현재에 있는 하늘과 땅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고 죄악의 하늘과 죄악의 땅만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하신 것을 보면 만물이 다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같이 있다고 했습니다. 3절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라고 하였습니다. 다 없어진 것이 아니고, 사람들도 있고 만물도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인데, 죄악의 하늘과 죄악의 땅이 없어지고 사람들은 그냥 있고 만물도 그냥 있습니다.

2.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본문 2절에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 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했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에서 정방형의 새 예루살렘이 내려왔습니다. 엘리베이터로 내려오듯이 내려온 것입니다. 네모반듯한 정방형입니다. 장과 광과 고가 1만 2천 스다디온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이 내려와서 이 땅위에 내려앉는 것입니다. 어디에 앉을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성도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다가 공중에 세워 놓고 공중으로 올라가는 성도들을 다 태워서 그 다음에 이 세상에 내려와 앉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상 재림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3. 사망, 애통, 곡하는 것,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는 나라

본문 3-4절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고 사망이 없는 세계입니다.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천국왕국도 되고 하늘나라도 되고 영적세계도 됩니다. 세 가지가 다 포함된다고 봐야 합니다. 새 예루살렘, 하늘나라, 영적세계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다 씻겨주십니다. 세상에서 믿음 지키느라고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 눈물 흘린 것을 그 때에 예수님께서 다 씻겨주십니다. 다시 사망이 없습니다. 신령한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다시 사망이 없고 천년왕국에도 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혹시 하나씩 죽는데, 백 세에 죽는 자는 어린 아이이고 또 백 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아 죽은 자라고 하였습니다(사 65:20).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다시 없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또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아픈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병이 많이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에는 아픈 것이 다시 없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아픈 것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다시 없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곡한다는 것은 우는 것인데, 하나님의 나라에는 울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천년왕국, 하나님의 나라, 신령한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4. 만물을 새롭게 하심

본문 5절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천년왕국 시대에도 만물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만물이 다 탄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이용당하는 것을 탄식하는 것입니다. 죄 짓는데 이용당하는 것을 탄식하는 것입니다. 만물이 하나님께 이용당해야 즐거워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죄 짓는데 이용당하면 만물이 탄식합니다. 죄 짓는데 만물이 이용당하는 것은 탄식합니다. 무당집에 깃발 띄워놓은 것이 그렇습니다. 하얀 깃발이 바람에 계속 펄럭이는데,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닳아서 떨어져 나가게 생겼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탄식하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내신 천인데, 무당표시 하느라 이용당했으니 얼마나 탄식하겠습니까? 하나님께 사용되면 만물이 즐거워하고, 죄 짓는데 사용하면 만물이 탄식을 합니다. 이 세상에는 죄 짓는데 사용되는 만물이 많습니다. 음식도 그것을 먹고 죄를 지으면 그 음식이 탄식하고, 의복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다 죄를 짓는데, 죄를 짓는 사람에게 이용되는 만물이 다 탄식을 하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것입니다. 5절에서의 하나님 말씀은 신실하고 참되다고 하였습니다. 그대로 꼭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고 참된 말씀이니까 기록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5.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주심

본문 6 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알파’라는 말은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알파는 헬라어의 제일 첫째 글자입니다. 그리고 오메가는 마지막 글자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알파는 A자와 같고, 오메가는 Z자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십니다. 처음과 나중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마지막에 다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구원도 하나님께서 처음에 시작을 하셨고, 마지막에 완성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다 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나중까지 하나님께서 다 하십니다. 처음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생명수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4:14절에도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합니다. 속에서 솟아나오는 생수를 예수님께서 주신다고 했는데,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값없이 주신다고 했습니다. 거저 값없이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주십니까? 목마른 사람에게 주십니다. 값없이 주시긴 하는데, 목마른
사람에게 주시는 생수입니다. 목 안 마른 사람은 이 생수를 먹을 수가 없습니다. 목 안 마른 사람에게는 주시지 않습니다. 목마른 사람에게만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생수를 사모하는 사람, 먹으려고 애쓰는 사람, 구하는 사람,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 생명의 역사가 자기 속에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사람, 사모하는 사람에게만 주십니다. 목 안 마르고 배부른 사람에게는 안 주십니다. 배고픈 사람,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주십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 받아먹으려고 애쓰고, 하나 받아먹으면 즐거워하고, 어떻게 하든지 자기 생명을 살리려고 애를 쓰고, 생수의 역사가 일어나면 즐거워하고, 그 역사가 없으면 사모하고 목말라서 애써서 다시 받으려고 하는, 그러한 목마른 사람에게만 주시는 생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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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0:11-15 백보좌 심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백보좌 심판
요한계시록 20:11-15

11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20:11 또 내가 희고 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았는데,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 앞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마저 찾아볼 수 없었다.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으니, 곧 생명책이다. 죽은 자들이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았다. 

20:13 또 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니, 각 사람이 그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고,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 곧 불못이다.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졌다.


1. 하늘에 크고 흰 보좌를 베푸심

본문 11절에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 크고 흰 보좌를 베풀었는데 그곳에 예수님이 앉아 재판장으로서 심판을 행하십니다. 이것이 백 보좌 심판이며, 최후의 심판입니다.

요한계시록 21:1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5:17-19절에는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5:20절에는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 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사야 65:25절에는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셨는데, 지금의 땅이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즉 현재의 죄악의 하늘과 죄악의 땅이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년왕국 후에 예수님께서 하늘에 크고 흰 보좌를 베푸시고 심판주로서 최후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백보좌 심판, 곧 최후 심판입니다.

2.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받음

본문 12절에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책이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책이며, 둘째는 행위록입니다. 행위록에는 인간의 죄와 행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명책에는 믿는 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영생 얻을 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위록에는 불신자들의 모든 행위가 기록되어 있으며,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아서 지옥에 갑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공심판은 받지 않고, 상 받는 심판만 받습니다. 빌립보서 4:3절에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다고 하였는데, 예수 믿는 사람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고, 한 번 기록된 이름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25:31-45절에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뭐라고 했습니까?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아버지의 나라를 상속하라는 말씀입니다. 또 왼편에 있는 사람에게는 뭐라고 했습니까? 저희는 영벌에 처한다고 했습니다. 지옥에는 마귀가 있는 곳이고(마 25:41), 하늘나라는 영생 복락을 누리는 곳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지옥에 갈 염려는 없습니다. 천당은 따 놓은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세상에서 믿는 일 한 것, 주님을 위해서 봉사한 것, 바친 것, 충성한 것 등도 거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행한 대로 상급을 받습니다. 즉 행위를 따라 상급을 받습니다. 고린도후서 5: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 믿음을 지키고 선을 행하였으면, 그 행한 것만큼 그대로 상을 받습니다. 얼마나 선한 일을 했는가, 얼마나 믿는 일을 했는가, 얼마나 주를 위해서 충성했는가, 얼마나 주를 위해서 바쳤는가가 중요합니다. 생명까지 바친 스데반은 상급이 굉장히 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 가서 상 받을만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 받을 만한 일을 별로 한 것도 없이 하늘나라에 가서 다른 사람들은 다 상을 받는데 자기는 상을 못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에 쌓아놓은 것은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쌓아놓은 것은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동안에 힘써서 주님의 일에 충성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13절에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라고 하였는데,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어준다는 것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부활한다는 뜻입니다.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어주매”라고 하였는데, 음부란 무덤이라는 뜻으로, 무덤이 터지고 죽은 자들이 부활한다는 뜻입니다. 각 사람이 다 부활해서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3.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움

본문 14절에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후까지 사람들을 죽인 사망과 음부도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받아 불못에 던지움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사망이 없어집니다. 첫째 사망은 육신의 죽음이며, 둘째 사망은 지옥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고린도전서15:26절에는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망이 지금 전 세계적으로 다 사람을 잡아 삼키고,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데 이제 사망도 없어질 날이 옵니다. 다시는 사망과 음부가 없습니다. 사망과 음부는 영영토록 불못에 던지움을 당합니다. 음부와 사망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까지만 있고, 그 다음에는 사망과 음부가 불못에 던져집니다. 불못에 한번 가면 못 나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러므로 예수 믿지 않고 지옥에 가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한 사람이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건져내려고 힘을 써야겠습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들은 행위대로 상급을 받는다고 했으니까 주님을 위해서 더욱더 충성해야겠습니다.

의를 행한 것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즉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고,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주님을 위해서 바친 것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바치는 것 중에 제일 큰 것은 생명을 바쳐 놓고 나가는 것으로 영광스러운 부활을 받게 됩니다. “사망도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라고 하였는데, 불못이 가장 나중 지옥입니다. 처음에는 그다지 큰 고통을 안 당하다가, 그 다음 마지막에 예수님의 백 보좌 심판 후에는 더 큰 고통으로 던져집니다. 불못에 던지우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거기에 던져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에게 큰 복이 있습니다.
또 예수를 믿어도 믿는 일을 잘하는 사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충성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더 큰 상급을 받게 됩니다.


4.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움

본문 15절에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불못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낙원에 들어갑니다. 즉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거저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거저 천당에 가는 것입니다. 천당에 가서 상 받는 것은 자기가 믿는 일 한 것만큼 상을 받습니다. 또 믿는 일을 할 때에 자라나는데 자라난 것만큼 상을 받습니다. 자라나려면 성경말씀을 순종해야 자라납니다. 마태복음 5:19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행하며 가르치는 자라납니다. 
또 행하며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성경대로 행하지 않고 믿는 사람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또 하늘나라에 가면 받을 것이 없습니다. 작은 자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동안에 우리가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대로 순종하는데 있어서 제일 첫째가 주일 지키는 것부터 잘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무엇을 사고 팔면 안됩니다. 또 주일에 외상으로 가져오는 것도 안됩니다. 주일은 아예 생명을 내어놓고 잘 지켜야 됩니다.
그러면 먹을 것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금식하면 됩니다. 한 달 동안 금식하는 사람도 있고, 사십일 금식하는 사람도 있는데, 하루금식을 못합니까? 또 주일에 손님이 왔으면 어떻게 합니까? 손님대접하느라고 교회에 못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마귀한테 잡히는 것입니다. 하여간 주일을 잘 지키려고 결심을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십일조를 드려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빈손 들고 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나올 때에는 빈손 들고 오지 말아야 합니다. 연보를 정성스럽게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바로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가 주일 안 지키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목사님이 없어서 후임 교역자를 정하려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데려다가 한 번씩 주일 설교를 시켰는데, 예배가 끝난 다음에는 음식점에 가서 대접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도사를 한번 초청을 했답니다. 전도사가 주일 예배를 인도하였는데, 그 교회 장로들이 음식점에 가자고 하니까 그 전도사가 오늘은 주일이라 못 간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 장로들이 “아, 이거 진짜가 하나 왔구나”하며 그 전도사를 교역자로 초빙했다고 합니다. 오늘 날 교회들이 점점 다 주일을 내어 버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고려파가 옛날에는 주일을 철저하게 지켰는데, 요새는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또 주일에 학생들 시험치지 말아야 합니다. 자격증 시험들을 주일에 많이 치는데 주일에 시험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바로 믿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또 말씀을 바로 세워 나가는 교회가 중요합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고 하였는데, 얼마나 끔찍합니까? 불이 설설 끓는 불못입니다.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오는 불못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어서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불못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하늘나라에 가면 상 받는 심판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 므나를 남긴 사람처럼 상 받을 준비를 잘 해서 하나님 앞에 서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0:1-10 천년왕국.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천년왕국
요한계시록 20:1-10

1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3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잠깐 놓이리라 4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7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8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9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10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20:1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그의 손에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20:2 천사가 용, 곧 마귀요 사탄인 옛 뱀을 잡아서 천년 동안 결박하여, 

20: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봉인하여 천년이 찰 때까지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 반드시 잠깐 풀려나게 될 것이다.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사람들이 거기에 앉아 있었는데, 심판하는 권세가 그들에게 주어졌다. 또 예수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이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다스렸다. 

20:5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찰 때까지 살지 못하였다. 이것이 첫째 부활이다. 

20:6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며, 둘째 사망이 이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다. 

20:7 천년이 찰 때 사탄이 그의 옥에서 풀려나 

20:8 땅의 사방에 있는 나라들,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나가서, 전쟁을 하기위해 그들을 모을 것인데, 그들의 숫자는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이다. 

20:9 그들이 넓은 땅으로 올라와 성도들의 진영과 사랑받는 성읍을 에워싸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삼켜 버렸고 

20:10 그들을 미혹했던 마귀가 불과 유황의 못에 던져지니 거기에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영원 무궁히 밤낮 고통을 받을 것이다. 


1. 천년왕국

본장은 천년왕국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천년왕국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학설이 많습니다. 즉 천년왕국이 없다는 무천년설과 예수님의 재림이 천년왕국 전에 있다는 전천년설과 예수님의 재림이 천년왕국 후에 있다는 후천년설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천년설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천년왕국 전에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후천년설은 점점 세상이 발전되어서 천년왕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이 천년왕국 후에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천년설은 천년왕국이 아주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단을 잡아 무저갱에 던짐

본문 1-3절에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천사가 마귀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습니다. ‘무저갱’은 밑이 없는 흑암의 처소인데 마귀를 거기에 던지고,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 잠깐 놓습니다.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고 하였는데, 마귀와 사단은 같은 것입니다. 귀신은 마귀의 졸도들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도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잘못 인식하고 있는 그런 귀신도 아닙니다. 귀신이 병도 나게 하고, 사람을 거꾸러뜨리기도 하고, 또 더러운 구렁텅이로 끌고 가고, 더러운 짓도 하게하고, 악한 짓도 하게하고, 또 미혹도 시킵니다.

그런데 여기는 큰 용을 잡았다고 했습니다. 즉 마귀의 원대장을 잡았습니다. 귀신이 다 거기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귀를 잡아서 무저갱에 가두었기 때문에 다시는 미혹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땅 위의 죄가 없어집니다. 모든 죄와 미혹은 마귀로 인하여 있었던 것인데, 마귀를 잡아 가두니까 사람들이 범죄를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다가 천년왕국 끝에는 잠깐 놓아 줍니다. 그 때에 마귀가 세상을 미혹하게 되는데, 그 결과로 마귀에게 미혹된 곡과 마곡이 전쟁을 일으킵니다.

성도가 천년동안 왕 노릇함

본문 4절에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천년왕국 때에 어떤 사람이 왕 노릇 한다고 했습니까? 순교자, 짐승과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지킨 자,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아니하고 즉 믿음 지킨 자가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한다고 했습니다.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라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예수를 믿고 죽은 자는 모두 부활하여 공중에 들려 올라가고, 살아서 예수 믿는 성도는 홀연히 변화되어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최후 심판 후에 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와 천년왕국을 지냅니다. 이때에는 부활한 신령한 몸으로 천년 동안 왕 노릇하게 됩니다.


2. 천년왕국에 대한 세 가지 학설

무천년설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본문 4절의 ‘살아서’를 ‘영이 살아서’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부활의 몸을 입지 않은 영혼들이 살아서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구원받은 성도의 영이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 것을 천년왕국이라고 합니다. 또 이 세상에서도 성도가 영이 살아서 영적 세계에서 왕 노릇하는 것을 천년왕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살아서’의 원어 ‘에제산’은 몸이 부활한 자에게 사용된 단어입니다. 무천년자들은 천년왕국이 없다고 합니다.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또 마귀를 잡아 가두는 것은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그 사람들의 주장은 천 년이라는 숫자는 실질적인 숫자가 아니고 상징적인 숫자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천년왕국을 미래에 있을 실재의 기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재가 영적 천년왕국이라고 하면, 마귀를 무저갱에 가두었으니까 마귀의 미혹이 없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현재 마귀의 미혹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맞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는 천년왕국을 영적 세계로 보면 마귀가 영적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년왕국 끝에 곡과 마곡이 나온다고 했기 때문입니다(8절). 곡과 마곡은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대적하는 적기독 국가입니다. 북방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39:1절에 “인자야 너는 곡을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천년왕국이라고 하면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마귀의 미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이 구원받은 자의 영적 세계라고 하면, 천년이 차면 마귀를 다시 놓아 주어서 미혹한다고 하였는데, 구원 받은 자의 영적 세계에는 마귀가 들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천년설은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후천년설

다음으로 후천년설은 천년왕국이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 재림 전에 점점 이 세상이 발전되어서 죄 없는 세상이 한 번 왔다가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점점 발전되고 개량되어서 죄 없는 세상이 올 것 같습니까?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어 갈수록 죄가 더 악해지는데, 어떻게 죄가 없는 세상이 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후천년설도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전천년설

우리는 전천년설을 믿습니다. 전천년설은 천년왕국 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으로 가장 성경적입니다. 예수님이 지상 재림하실 때에 악한 자는 심판하시고 마귀를 천 년 동안 무저갱에 잡아 가두므로, 마귀가 세상을 미혹하지 못하게 되어 천년 동안 죄 없는 시대가 됩니다. 그 때에 구원 받은 성도들은 부활한 신령한 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땅에서 천 년 동안 왕 노릇합니다. 천년왕국은 이 땅 위에 천 년 동안 이루어집니다. 즉 죄악의 땅과 죄악의 하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 즉 죄 없는 새 세계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집니다. 천년왕국 시대에는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안에서 예수님과 부활한 성도들이 살면서 성밖, 즉 이 세상에 나가서 왕 노릇도 하고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 밖에는 육신을 가진 사람들이 농사하며 약 천년 동안 죽지 않고 삽니다(사 65:21-22). 그러므로 사람들이 땅 위에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천 년이 끝날 무렵에 하나님께서 마귀를 잠깐 놓아 주십니다. 왜냐하면 천년왕국의 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새로 출생한 자 가운데 불택자를 가려내기 위해서입니다. 그 때에 마귀가 곡과 마곡을 미혹시키는데, 불택자는 거기에 미혹됩니다. 그러나 최후에는 하나님께서 곡과 마곡을 심판하시고, 믿지 않고 죽은 자들까지 전부 부활시켜 공중에서 백 보좌 심판을 하십니다. 그리하여 성도는 영원한 천국으로 데려가시고 불신자는 지옥으로 보내십니다(계 20:12; 마25:16-31).
이와 같이 천년왕국설에 대하여 세 가지 학설이 있는데, 요즘 이상한 것은 무천년설자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한국에 무천년설자가 많아졌습니다. 왜 많아졌는가 하면,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는 무천년설을 주장하는데, 거기서 배운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신학교 교수와 강사들이 되어 무천년설을 자꾸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천년설을 믿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습니다.
전에는 전천년설을 믿는 목사들이 꽤 있었는데, 지금은 적습니다. 다 무천년설로 기울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년 안식세계가 있는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히브리서 4:4-9에 “제 칠 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 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천년왕국이 남아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죄 없는 세상이 옵니다. 마귀는 잡아 가두고 하나님의 의가 충만한 세계가 옵니다. 스가랴 14:20-21절에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천년왕국에는 성결과 평화가 충만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충만해집니다.

본문 5-6절에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란 예수 믿지 않고 죽은 불신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천년왕국이 끝날 때까지 부활하지 못한 채로 있다가 천년왕국이 끝날때에 부활합니다. 즉 불신자는 천년왕국 다 지나간 다음에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지옥가게 됩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라고 하였는데, 첫째 부활은 성도의 부활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첫째 부활에 참여합니다. 즉 첫째 부활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한 사람들입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성도는 복이 있고 거룩한 자들입니다. 부활하여 영과 육이 완전한 구원을 이루었으므로 둘째 사망이 없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합니다. 예수님께서 구름타시고 재림하실 때에는 예수를 믿고 세상을 떠난 성도는 다 부활해서 올라갑니다. 또 살아남은 사람도 변화되어서 올라갑니다. 공중에서 다 만납니다. 그러면 공중에서 만나서 무엇을 합니까? 세상을 심판합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성도와 같이 지상 재림하십니다. 즉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예수님과 부활한 성도가 그 안에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이 땅에 내려앉습니다. 어디에 내려올지 그것은 모릅니다. 하여간 이 땅위에 내려 앉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신령한 세계입니다. 열두 문이 있고, 문마다 진주문이고, 거리는 정금이고, 성곽 기초석은 열두 보석입니다(계21:10-14). 부활한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습니다. 성 밖에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죽다 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육체를 가진 사람들이 요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천 년 동안 죽지 않고 살면서 자녀를 출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땅위에 다시 사람이 가득해집니다. 새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부활한 성도는 예수님의 부활한 몸과 같은 몸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므로 성 밖에 있는 보통 사람들처럼 자녀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신령한 몸으로 다 부활했으므로 육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일 수도 있고, 같이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고 살 수도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부활한 성도는 나가서 왕 노릇하다가 들어오곤 합니다. 육신을 가진 성 밖의 사람들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입니다.

3. 곡과 마곡의 전쟁

사단이 옥에서 나와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함

본문 7-10에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천 년이 차면 사단이 옥에서 놓여 나와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합니다. ‘곡과 마곡’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이들은 마귀에게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성도를 대적하는 운동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

곡과 마곡을 불로 심판하시고 마귀를 지옥에 던짐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라고 하였는데, 사단이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바다 모래와 같이 많은 수를 모아 그리스도와 성도의 진으로 싸우다가 하나님의 불심판으로 망합니다. 성도들의 진은 새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성도들의 진입니다. 즉 천년왕국에 사는 백성 중에서 나중까지 마귀에게 미혹되지 않고 곡과 마곡의 핍박 중에서도 신앙을 지킨 성도들입니다. ‘사랑하시는 성’은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사단의 세력이 성도와 새 예루살렘 성을 멸망시키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저희를 소멸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적기독 세력들이 새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모든 성도를 다 죽이려고 둘러싸도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예수님께서 계시고 부활한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멸망시킬 수 없습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라고 했는데, 마귀는 불과 유황 못에 던지움을 당합니다. 불과 유황 못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며 거기에는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습니다. 이것이 지옥입니다.